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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센은 왜 유일하게 야수를 뽑았나



야구

    넥센은 왜 유일하게 야수를 뽑았나

    '강정호처럼 커야 한다' 넥센이 27일 1차 지명으로 뽑은 휘문고 내야수이자 야구 천재 이종범의 외아들 이정후(왼쪽)와 강정호(피츠버그), 박병호(미네소타)를 메이저리그로 보낸 넥센 염경엽 감독.(자료사진=넥센)

     

    프로야구 2017년 신인 1차 지명이 이뤄진 27일. KBO 리그 10개 구단은 제각기 연고지 유망주들을 골랐다.

    야구는 투수놀음이라는 속설이 말해주듯 대부분 구단들의 선택은 투수였다. 9개 구단이 투수들에 1차 지명권을 행사했다.

    롯데는 메이저리그(MLB) 진출설이 나돈 '뜨거운 감자' 윤성빈(17 · 부산고)를 일단 지명했다. 두산도 유일하게 대학 선수를 뽑았지만 역시 우완 사이드암 투수 최동현(동국대)이었다. 나머지 구단들도 마운드 보강을 꾀했다.

    다만 넥센만이 다른 선택을 했다. 투수가 아닌 야수를 찍었다. 휘문고 내야수 이정후(18)다. 이정후는 한 시대를 풍미했던 '천재' 이종범 MBC 스포츠플러스 해설위원의 아들이다. 그 피를 이어받은 만큼 예사롭지 않은 소질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는다. 어쩌면 당연한 지명이다. 여기에 넥센의 구미를 당기는 투수 자원이 올해는 없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다른 구단이 아닌 넥센이라는 점에서 이번 지명은 흥미롭다. 'KBO산 1호 메이저리거 야수' 강정호(29 · 피츠버그)와 'KBO산 거포' 박병호(30 · 미네소타)를 배출한 넥센이라 그렇다. 여기에 올 시즌 강력한 신인왕 후보 신재영(27)을 보유한 구단이기도 하다. 이들 사이에 이정후 지명의 또 하나의 '묘한 배경'이 형성되는 것이다.

    ▲KBO 출신 야수 'MLB 성공 시대'

    알려진 대로 넥센은 나머지 9개 구단과 달리 모기업이 없다. 넥센은 네이밍 스폰서로 넥센타이어가 실제 구단 소유주는 아니다. 히어로주 구단주인 이장석 대표도 갑부라서 구단을 소유하는 게 아니다.

    넥센은 부지런히 투자를 유치하고 돈을 벌며 아껴서 유지되는 구단이다. 굴지의 모기업으로부터 실탄을 지원받는 다른 구단과는 다르다. 올 시즌 선수들의 총 연봉은 40억 원 남짓으로 100억 원이 넘는 한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이런 가운데 넥센은 최근 2년 동안 짭짤한 가외 수입을 얻었다. 바로 선수 수출이다. 강정호와 박병호를 키워 200억 원이 넘는 이적료를 받았다. FA(자유계약선수)로 떠난 유한준(케이티), 손승락(롯데)의 각각 8억4000만 원, 15억 9000만 원의 보상금도 쏠쏠했지만 박병호, 강정호에 비할 바는 아니다.

    '정호, 최고!' 2014시즌 뒤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피츠버그 강정호(왼쪽)와 지난 시즌 뒤 미국 무대를 밟은 미네소타 박병호.(자료사진=노컷뉴스DB)

     

    2014시즌 뒤 해외 진출 자격을 얻은 강정호는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의 독점협상권에 대한 비공개경쟁입찰(포스팅)에서 500만 2015 달러(약 55억 원)에 낙찰됐다. 지난 시즌 뒤 박병호는 강정호의 배가 넘는 1285만 달러(약 147억 원)를 입찰액을 넥센 통장에 입금시켰다. 둘의 이적료만으로 넥센은 올해 기준으로 5년치 선수단 전체 연봉을 번 셈이다.

    현재 MLB에서는 KBO 출신 선수들이 각광을 받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가 최근 "KBO 출신 선수들은 가격 대비 최고의 가치를 제공하고 있다"는 기사를 싣는 등 현지 유력 매체들이 다투어 한국 선수들을 주목하고 있다.

    특히 야수들의 가치가 상대적으로 더 높게 평가받는 모양새다. 이미 지난해 15홈런을 때려내며 능력을 입증한 강정호는 올해도 벌써 11홈런을 날렸다. 박병호도 최근 극심한 타격 부진을 보이나 전반기를 돌기 전에 12홈런을 때려냈다.

    김현수(28 · 볼티모어)도 타율 3할3푼9리, 출루율 4할2푼4리의 높은 숫자를 찍고 있다. 플래툰 시스템에도 11홈런을 날린 이대호(34 · 시애틀) 역시 일본을 거치긴 했으나 뿌리는 KBO에 둔 타자다. 이러니 KBO 출신 야수들의 주가가 높아지지 않을 수 없다.

    ▲'포스트 강정호' 김하성이 쑥쑥 큰다

    물론 KBO 출신 투수들도 빼어나다. 'MLB 선구자' 류현진(29 · LA 다저스)은 2013, 14시즌 연속 14승을 거두며 정상급 선발로 자리잡았다. 역시 일본을 거친 오승환(34 · 세인트루이스)도 최고의 불펜에서 어느덧 팀의 마무리로 승격한 상황이다.

    하지만 일본 리그 출신 투수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구성이 '옥에 티'다. 오승환이야 불펜 투수라 그렇다 쳐도 류현진은 탈이 나 어깨 수술을 받았다. 워낙 KBO 리그에서 많이 던진 데다 MLB에서 4일 휴식의 선발 로테이션이 힘겨웠다. 다르빗슈 유(텍사스)와 다나카 마사히로(뉴욕 양키스) 등도 수술과 재활 등 후유증을 겪고 있다.

    미국 현지에서도 5일 휴식이 몸에 밴 한일 투수들의 내구성에 의구심이 적잖은 상황이다. 투수의 팔은 많이 던지면 던질수록 소모된다는 통설이 사례로 입증되는 현실도 한몫을 하고 있다. 물론 이와쿠마 히사시(시애틀), 구로다 히로키(히로시마) 등 미국 현실에 적응해 꾸준한 활약을 펼치거나 펼쳤던 선수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이라면 KBO 출신 선수들의 미국 진출도 투수보다는 야수가 더 수월해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MVP급 활약으로 KBO 리그를 평정해 기량을 인정받아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이다.

    넥센 유격수 김하성이 지난 12일 케이티와 홈 경기에서 홈런을 때려낸 뒤 더그아웃에서 동료들의 축하를 받는 모습.(자료사진=넥센)

     

    이미 2명을 미국으로 보낸 넥센은 또 다른 미래의 '수출 자원'이 있다. 바로 김하성(21)이다. 강정호의 뒤를 이어 영웅군단의 유격수를 맡은 김하성은 '킹캉'의 공백이 무색할 정도로 잘해주고 있다.

    2014년 강정호의 백업이던 김하성은 지난해 주전을 맡아 대활약했다. 유격수를 맡으면서도 140경기 타율 2할9푼 19홈런 73타점 22도루의 성적을 냈다. 아쉽게 구자욱(삼성)에 밀려 신인왕을 놓쳤지만 버금가는 활약이었다. 올해는 더 잘한다. 71경기 타율 3할1푼3리 14홈런 47타점 12도루다. 20홈런-20도루는 떼논 당상이고, 30-30까지도 도전할 기세다.

    이 선수가 불과 KBO 3년차요, 풀타임 2년차다. 해외 진출 자격이 생기는 5년 뒤에는 강정호급, 혹은 그 이상으로 성장해 있을 가능성이 크다. 강정호는 2014년 40홈런-117타점을 올리며 미국으로 진출했다. 당시는 넥센의 홈이 홈런 공장으로 불리던 목동이었지만 올해 김하성이 쓰는 고척스카이돔은 훨씬 크다. 김하성은 175cm로 조금 작지만 파워는 강정호 못지 않다. 어리기에 벌크업도 가능하다. 전성기가 다가온다.

    이런 가운데 넥센은 김하성의 후계자 격으로 이정후를 택한 것이다. 185cm, 78kg의 체격의 이정후는 고교 통산 42경기 타율 3할9푼7리(144타수 55안타), 1홈런, 44득점, 30타점, 20도루를 기록 중이다. 일단은 김하성의 뒤를 이을 재목이다. 김하성이 해외든, 다른 팀으로 가든 공백을 메울 자원이다.

    하지만 이정후가 이종범의 혈통이라면 더 큰 물에서 뛸지도 모른다. 이정후는 1차 지명 소감으로 "아버지보다 더 뛰어난 선수가 되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일본이 아닌 미국으로 가야 할 판이다. 이종범은 KBO 리그를 넘어 일본 주니치에서 뛰었다. 아버지를 넘으려면 더 큰 무대인 미국이다. 본인도 꿈을 갖고 있다. 아직 시기상조이긴 하나 강정호가 미국에 진출하고 김하성이 이렇게 잘해줄지 누가 예상했겠는가.

    ▲투수? 흙속의 진주 캐내면 된다

    이런 가운데 신재영(27)의 출현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신재영은 올 시즌 다승과 평균자책점(ERA) 1위를 달리는 리그 최고 투수다. 국내 선수 중 가장 먼저 10승 고지에 올랐고, ERA는 2.71로 내로라 하는 국내외 선수들을 제치고 선두다.

    그런 신재영은 원래 2012년 NC가 무려 8라운드 69순위로 지명한 선수였다. 계약금은 4000만 원에 불과했다. 그야말로 흙속의 진주다. 넥센이 2013년 4월 트레이드 때 데려와 키웠다. 올해 1군에 데뷔해 잭팟을 터뜨린 연봉 2700만 원짜리 선수다. 염경엽 넥센 감독은 "경찰청 복무 동안 선발 수업을 쌓았고, 코치진이 잘 가다듬었다"고 흐뭇한 표정이다.

    박주현(20)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해 2차 3라운드 29순위로 뽑힌 박주현은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담금질을 한 뒤 올해 4승(3패)을 거두며 선발진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꼭 1차 지명과 높은 순번 선수가 아니더라도 투수들을 발굴, 육성할 수 있다는 점이 입증됐다. 넥센이 2015년 1차 지명해 계약금 3억5000만 원을 준 최원태가 아직 1군 승리가 없다는 점이 대비를 이룬다.

    올 시즌 넥센의 희망으로 떠오른 신재영은 2012년 8라운드 69순위 신인이다.(자료사진=넥센)

     

    신재영, 박주현 등의 발굴과 결실은 순수 신인 투수들의 활약이 미미한 최근 KBO 상황과 맞물린다. 2006년 류현진(당시 한화), 2007년 김광현(SK) 등 몇몇을 빼면 근래 신인 투수들이 데뷔 1, 2년째 두각을 보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감독들은 "KBO 리그 수준이 높아진 반면 고교 선수들은 주말리그제 등으로 경쟁력이 낮아졌다"면서 "특히 타자들의 기술이 갈수록 좋아져 신인 투수들이 데뷔 시즌에 버티기가 힘들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차 지명으로 입단한 최충연(삼성), 김대현(LG), 정동윤(SK), 이영하(두산), 박종무(롯데), 김현준(KIA) 등 투수들은 1군에서 보기 어렵다.

    고교 주말리그로 에이스들에게 등판이 몰리는 혹사 논란도 이유가 될 수 있다. 류중일 삼성 감독은 "선발진이 무너진 올해 최충연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기회인데 다쳐서 못 나온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런 가운데 넥센은 투수 대신 야수를 올해 1차 지명한 것이다. 넥센은 지난해도 1차 지명으로 포수 주효상(계약금 2억 원)을 찍었다. 올해에 이어 2년 연속 야수 1차 지명도 넥센밖에 없다. 의미있는 지명이다.

    염경엽 감독은 "넥센은 강정호, 박병호 같은 선수를 많이 키워야 한다"면서 "해외로 진출한다면 언제든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고 말한다. 선수 본인은 물론 그게 넥센이 살 길이기 때문이다. 왜 유일하게 1차 지명 야수를 뽑았는지에 대한 중요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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