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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스님, 정신과 의사의 '마음 공부'



책/학술

    철학자, 스님, 정신과 의사의 '마음 공부'

    신간 '상처받지 않는 삶'

     

    뇌성마비 장애를 가진 철학자 알렉상드르 졸리앙, 촉망받는 과학자에서 승려로의 삶을 택하고 40년간 수행해온 마티유 리카르, 심리치료에 최초로 명상법을 도입한 정신과 의사 크리스토프 앙드레. 이 세 사람은 작가들이자, 서로의 책과 사적 교류를 통해 친분을 쌓아온 친구들이다.

    세 절친이 모여 마음껏 '인생살이'를 논할 자리를 오래도록 고대해온 그들에게 마침내 보름간의 합숙이라는 자리가 마련됐고, 그 결과물을 종합한 것이 '상처받지 않는 삶'이다.

    살면서 누구나 한 번쯤은 고민할 만한 문제들이 있다. 세 친구는 삶이라는 전쟁터에서 필연적인 고통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그들이 성찰한 내용을 나누고자 한자리에 모였다. 인간의 내면 가장 깊은 곳에서 갈망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하면 불행을 감소시킬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과 조화롭게 사는 법은 무엇일까? 행복을 만드는 능력, 이타적으로 살 수 있는 능력은 어떻게 키울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참된 자유를 누리면서 살 수 있을까? ……

    세 사람은 자신의 경험을 나누며 각자가 그 화두를 풀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왔는지, 그 과정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리고 진심 어린 조언을 잊지 않는다. 살아온 여정이 다른 만큼 세 사람의 관점과 생각은 다르지만 본질적인 부분에서는 한마음에 이르고 있음을 독자와 저자 모두 확인할 수 있다. '삶'이라는 소명을 잘 수행하기 위한 지혜가 필요한 우리 모두에게, 이 책은 명쾌하고 따뜻한 지침서가 되어준다.

    '오늘 누구를 만나든, 그는 벌써 여러 차례 지옥을 경험한 사람임을 기억하라.' (크리스티앙 보뱅/시인)

    모든 사람은 너 나 할 것 없이 각자의 몫만큼 고통스러운 삶을 산다. 그리고 그 고통은 한편으론 각자가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런 고통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고통은 어디서 오는가? 왜 사람은 끊임없이 지난 일을 회고하며 죄책감을 느끼는 걸까? 왜 우리는 스스로를 고문하며 사는가?
    이 책은 '어떻게 하면 삶을 보다 잘 이끌어갈 수 있을까'라는 의문에 답하기 위해 시작됐지만 결국은 살면서 느끼는 고통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로 집약된다. 그리고 그에 대한 우선적인 전제는 '왜'보다는 '어떻게'를 더 고민할 것,이다. '어떻게'의 고민은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만 '왜'를 고민하는 것은 자칫 제자리에서만 빙빙 돌게 만들 위험이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문제의 원인과 해결책을 고민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과거의 시간 속에서 헛되이 맴돌고 있을 뿐이며, 이는 고통만 가중시킬 뿐이다.

    저자들은 각자의 사상과 관점이 교차하고 충돌하는 지점에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들여다본다. 철학자, 승려, 정신과 의사라는 직업의 차이만큼이나 그들의 대화는 방대하고 풍요롭다. 그것은 서로가 지금껏 '어떻게 하면 보다 나은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온 시간과 고뇌의 흔적이며, 동시에 같은 고민으로 힘들어하는 독자들을 위한 따뜻한 위로와 격려이기도 하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이야기, 성장하는 과정에서 겪은 고통들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우리가 우월한 인간이 아님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일 뿐이라는 걸 말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경험이 독자들을 도울 수 있으니까요. 세상을 바라볼 때 우등한 사람과 열등한 사람, 이렇게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고 믿는다면 얼마나 불행하겠어요? (중략) 모든 사람들은 비슷한 무게의 짐을 지고 살지요.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걸어가는 그 길 위에서는 모두가 똑같은 크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서문 중에서

    평생을 뇌성마비 장애인으로 살아야 하는 알렉상드르는 철학이라는 도구를 통해 심리적ㆍ육체적 고통을 극복한 경험을 들려주며, 마티유는 구도자로서 수행해온 시간과 불교의 관점에서 행복해지는 길을 보여주고, 크리스토프는 정신과 의사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고통의 바다를 헤쳐 나오는 길을 안내한다.


    알렉상드르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완전한 노력은 삐걱거리는 것이 삐걱거리도록 기꺼이 내버려두는 일이다'(베르나르 캉팡/영화배우)라는 말을 인용하며, 온갖 소음 속에서도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법을 강조한다. 세 사람은 '감정'에 주목하면서 긍정적인 감정이든 부정적인 감정이든, 우선은 일상적인 마음 상태를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일상적으로 느끼는 기분은 마치 부식토와 같아서 결정적인 순간에 큰 사고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마음 상태를 이해하고 관리하는 노력을 기울이다 보면, 특정 감정이 나타나는 순간 그것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의 습득도 가능하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마음을 관리하는 데 익숙하지 않은 우리로선 훈련이 필요하다.

    주의할 것은 감정과 마주할 때는 긍정적인 것이든 부정적인 것이든 모든 감정을 존중해야 한다는 점이다. 모든 감정은 필요해서 발생한 일종의 신호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감정은 욕구가 충족됐거나 충족되는 과정에 있음을, 부정적인 감정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러므로 각각의 상황에 적절하게 행동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필요와 욕구가 어떤 상태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한다. 이유 없이 기분이 가라앉거나 화가 나거나, 쓸데없는 걱정이 들거나 과장된 슬픔에 빠지는 것까지, 이 모든 감정의 일탈은 초기에 바로잡을 일이다. 감정의 균형을 맞추는 문제는 삶에서 매우 중요하다.

    감정이 자연스럽게 떠나갈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는 방법으로 저자들은 모두 명상을 권한다. 명상은 마음속 폭탄의 뇌관 제거법을 터득하는 과정이다. 마음속에 격정의 폭풍이 일 때 반응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려면 초인적인 용기가 필요하지만, 내버려둘 수만 있다면 감정은 저절로 지치게 되어 있다. 명상으로 스스로를 훈련시키다 보면, 하루에도 수천 번씩 휩쓸리게 되는 감정의 파도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켜낼 수 있다. 수만 가지 감정처럼 머릿속의 생각 또한 99퍼센트는 완전히 환영이다. 감정의 소용돌이를 지켜보듯 환영이 만들어졌다 사라지는 과정을 관조하는 것에도 익숙해지면 모든 걱정과 근심 역시 그저 잠깐 동안 머릿속을 스치는 잡념에 불과함을 깨닫게 된다.

    마치 기차의 각 칸을 들여다보며 '이 칸에는 분노가 있구나', '이 칸에는 두려움이 있네'라고 말하며 기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보듯 마음도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집착하는 대상이 있다면 이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집착을 버릴 때 폭풍 속에서 살아나올 수 있습니다. (중략) 하루에도 수천 번 당신의 감정이 떠날 수 있도록 길을 내어주세요……. ―본문 146쪽

    증오라는 감정은 아주 격하고 사나운 것이지만 결국은 제 의식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지나지 않습니다. 제 의식이 증오를 만들어낸 거라면 역시나 제 의식이 증오를 버릴 수도 있는 게 아니겠어요? ―본문 123쪽

    침묵으로 들어가는 것은 자신을 치유하는 길입니다. 기도하고 명상하는 시간을 통해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놓은 온갖 이름과 역할로부터 잠시 떠나 침묵의 공간을 살 수 있지요. ―본문 167쪽

    자기 자신과 함께 있어주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 저는 명상을 통해 나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중략) 명상을 시작하면서 나 자신과 함께한다는 것을 새롭게 배웠습니다. 내 몸과 생각과 감정, 내 모든 존재와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본문 177쪽

    거센 파도가 출렁이는 저 바다 밑 깊은 곳에는 그 무엇으로도 흔들리지 않는 고요함이 있다. 결국 사람의 마음도 이와 같다.

    '비웃지도 말고 울지도 말고 미워하지도 말라. 다만 이해하라.' (스피노자/철학자)

    칭찬을 들을 때만 자신을 긍정적으로 인식하고 비판을 들을 때는 부정적으로 이식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태도다. 이런 식이라면 설탕이나 담배, 술, 마약에 중독되듯, 타인의 평가에서 빠져나올 수 없게 된다. 우리는 왜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할까?
    자기애, 자존감, 자기중심주의 등의 이름으로 이해되는 ‘에고’를, 저자들은 삶을 괴롭게 만드는 주범으로 지목한다. 우리는 에고란 곧 존재의 심장부이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일관되게 우리를 규정하는 정체성이자 완전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에고를 위협하는 것에는 반감을, 에고를 만족시키고 위로하는 것에는 매력을 느낀다. 이 상반된 반응에서부터 분노, 욕망, 시기, 질투 등등의 무수히 많은 감정적 갈등이 빚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에 대해 마티유는 '에고는 실체 없는 환영에 불과하며, 사는 동안 계속 유지되는 정신작용의 결과일 뿐'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흔히 에고가 곧 우리의 의식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하지만 의식이라는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 실체가 없는 어떤 흐름일 뿐이에요. 과거는 죽은 것이고 미래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것이며 현재는 순간 지나가는 것일 뿐 전혀 지속성이 없지 않습니까? 어떻게 에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무엇(과거)과 아직 존재하지 않는 무엇(미래) 사이에서 지속성을 갖고 존재할 수 있단 말입니까? (중략) 더 이상 에고를 극복하는 일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 환영일 뿐이라면, 다만 눈을 뜨듯이 착각에서 깨어나면 되는 것입니다. 에고에 대한 애착이 고통의 원천임을 기억하고 에고의 속임수를 먼저 밝혀내야 합니다. ―본문 81쪽

    '에고는 친구일까, 아니면 친구를 가장한 사기꾼일까?'라는 질문을 던져놓은 2장은 이렇게 답을 찾아 나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결국 나를 에고에 가두는 모든 메커니즘을 끈질기게 파헤치고 내가 무엇의 노예가 되어 있는지를 분별하는 것. 저자들의 안내를 따라가다 보면 이 막막한 과제는 난제라기보다 흥미진진한 도전으로 다가온다. 이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나의 에고는 건강하고 바람직한 자존감이 될 수도, 병적인 자기비하로 추락할 수도 있다.
    크리스토프는 주문을 외우듯 스스로를 이렇게 다독일 것을 권한다.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상관없이 너 자신을 괴롭히지 말라.'

    저자들은 이렇듯 감정과 생각의 실체, 우리가 '나'라고 확신하는 에고의 허상을 바탕으로, 고통스러운 삶을 해결해 나가는 열쇠들을 정성껏 꺼내 보여준다. 일상에서 숱하게 마주하는 상황과 관계를 풀어줄 그 열쇠는 때론 타인의 말에 온전히 귀를 기울이는 것이기도 하고, 때론 소홀히 여겨온 우리 자신의 육체를 들여다보며 몸과 영혼의 관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이기도 하고, 혹은 나와 이웃 모두를 이롭게 하는 이타적인 삶의 권유이기도 하다. 또한 소박한 삶이 주는 기쁨과 행복을 만끽하는 법, 죄책감을 해결하고 진정한 용서를 구하고 받는 법, 궁극적인 자유를 누리기 위해 매일 조금씩이라도 실천에 옮겨볼 세세한 습관에 이르기까지, 일상에 넘쳐나는 선물을 알아보고 삶에서 아름다운 것들을 볼 수 있는 단서는 멀리에 있지 않다.

    결국 상처받지 않는 삶을 위한 수행의 본질은 복잡하지 않다.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주어진 일을 할 때 신이 이 일을 위해 나를 창조했다고 생각할 만큼의 정성을 기울일 것, 그리고 내 몸을 돌보고 내 마음을 돌보고 이웃을 돌보는 일에 그만큼의 온 정성을 쏟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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