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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끝작렬] 84세 '폐지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법



사회 일반

    [뒤끝작렬] 84세 '폐지 할아버지'가 살아가는 법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국민 돕는 것이 국가 존재 이유

    노컷뉴스의 '뒤끝작렬'은 CBS 노컷뉴스 기자들의 취재 뒷얘기를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전 방위적 사회감시와 성역 없는 취재보도라는 '노컷뉴스'의 이름에 걸맞은 기사입니다. 때로는 방송에서는 다 담아내지 못한 따스한 감동이 '작렬'하는 기사가 되기도 할 것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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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인 두 분이 인천 부평구의 한 골목길에서 폐지를 정리하는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된 것은 토요일인 지난 14일 오후였습니다.

    키 150㎝, 몸무게 45㎏ 정도로 보이는 왜소한 체구의 두 노인이 손수레에서 주워온 종이상자 등을 트럭 위로 옮기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분들의 작업 동작이 너무도 느리고 힘겨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84세 할아버지가 주민이 버린 의류 가운데 쓸만한 것들을 고르고 있다. (변이철 기자)

     

    ◇ "이거라도 안 하면 먹고 살 수가 없어"

    다가가서 이분들과 잠시 대화를 나눴습니다. 두 분은 부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1933년생으로 84세고, 할머니는 일곱 살 어린 77세입니다.

    두 분은 새벽 5시 반부터 저녁 7시까지 손수레를 끌고 다니며 폐지를 줍습니다. 이렇게 모은 폐지를 1톤짜리 트럭 위에 가득 실으면 7만 5천 원을 받는다고 합니다. 시간은 일주일 정도 걸린다고 하는군요.

    이분들은 쉬는 날도 없습니다. 일요일에는 평일보다 폐지가 적게 나오지만 그래도 일을 멈추지는 않습니다.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세요?"
    "이거라도 안 하면 먹고 살 수가 없고, 안 먹으면 안 되는 형편이니까 할 수 없이 하는 거지 뭐…."

    노부부는 보증금 1,000만 원에 월세 35만 원짜리 집에서 생활합니다. 부지런히 폐지를 모아 한 달에 손에 쥐는 돈은 약 30만 원. 그러니까 집세 내기도 빠듯한 형편입니다.

    이 일을 하신 지는 벌써 20년이 됐다고 합니다. 할아버지의 고향은 충남 태안이고 할머니는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랐습니다.

    두 분은 결혼한 이후 갖은 고생을 다 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철물점 일을 주로 하셨고 할머니는 식당을 전전하며 2남 1녀를 키웠냈다고 합니다.

    '자식들이 세 명이나 있는데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하실까?' 잠시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노부부에 대한 딱한 사정을 듣고 나서야 이분들에 대한 처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됐습니다.

    홀로 고등학생 아들을 키우고 있는 큰아들은 '차상위계층'으로 정부 양곡을 신청해 먹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딸은 무슨 사정이 있는지 몰라도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하는군요. 또 고물상을 하는 막내아들도 경제적으로 어렵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노부부가 수거한 종이상자를 힘겹게 트럭 위로 올리며 정리하는 모습. (변이철 기자)

     

    ◇ "이 나이 먹을 때까지 부끄러운 짓은 안 했어"

    이분들은 기초생활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지정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폐지 모아 번 돈 30만 원과 두 분이 노인연금으로 받는 36만 원을 합쳐 약 66만 원으로 한 달을 버티고 있는 셈입니다.

    할아버지는 이처럼 어렵게 살면서도 자식을 원망하기보다는 오히려 도와주지 못하는 것을 미안해하셨습니다.

    "자식들이 넉넉하고 다 잘 살면 '조금 도와달라'고 할 생각도 있지만, 지금 자식들이 그런 형편이 안 되니까 그런 말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되지. 부모 입장에서 보태주진 못할망정 저희도 사느라고 쩔쩔매고 있는데…."

    이분들은 자신의 모습을 부끄럽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성실하게 일해서 생계를 꾸려나갔지 절대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하지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양심에 가책되는 일은 이 나이 먹을 때까지 해보지 않았어. 왜냐하면, 양심에 가책되면, 괜히 나쁜 짓 하면 그게 좋지 않아. 남의 눈에 띄고 들키면 '저놈, 저놈'하며 흉보잖아. 그런 나쁜 마음은 안 가지고 성실하게 일했어. 가게에 박스가 여러 개 있어도 '이거 가져가도 돼요'라고 물어보고 가져가지 절대 슬쩍 집어오지는 않아요."

    나이 80을 훌쩍 넘긴 할아버지나 밤마다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는 할머니가 노구를 이끌고 얼마나 더 폐지를 주울 수 있을지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딱한 사정을 전해 들은 인천 부평구청(구청장 홍미영)이 기초생활수급자 지정 등 이분들을 도울 수 있는 방안들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군요.

    부평구에 따르면 이분들처럼 폐지를 모으는 65세 이상 어르신들이 관내에만 약 600명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전국적으로는 얼마나 많은 어르신이 생계를 위해 지금 이 시각에도 거리를 헤매고 다니실지 가늠조차 되지 않습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노인빈곤율은 49.6%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라는 불명예를 차지했습니다.

    이는 OECD 가입국 평균(12.8%)보다 3배 이상 높은 수치로 65세 이상 노인의 절반에 가까운 수가 빈곤상태라는 의미입니다.

    새벽 5시 반부터 폐지를 주워 생활하는 노부부가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다. (변이철 기자)

     

    ◇ "우리 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우리 양심이 그래요"

    지난 4.13 총선에서는 기초노령연금 인상안이 야권의 주요 공약으로 내걸렸습니다.

    기초연금은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대선에서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 원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내걸면서 도입된 제도입니다.

    하지만, 소득하위 70% 노인에게만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기초생활수급 여부 등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수정되면서 '노인 빈곤 해소'라는 본래의 취지는 상당히 퇴색됐습니다.

    야3당은 우선 기초생활수급자에 대한 현행 기초연금 감액제를 폐지하고 모든 노인에게 균등 지급하는 방안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또 더불어민주당은 2018년까지 소득하위 70% 노인층에게 기초연금을 월 30만 원까지 올리는 방안을 공약으로 내세웠습니다.

    정의당도 모든 노인에게 즉각 월 20만 원을 지급하되 장기적으로 지급액을 월 30만 원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정부와 여당은 재원 문제를 이유로 이런 방안에 대해 반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국민을 돕는 것이 국가의 존재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점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나라에 뭐 바라시는 거 없으세요?" 다시 할아버지에게 여쭈었습니다.

    "아이고 불쌍한 사람이 어디 한두 사람인가. 테레비 보면 별사람이 다 있는데 그걸 어떻게 나라에서 다 도와주겠어. 우리 보다 못한 사람도 많은데. 우리 양심이 그래요. 정부가 주는 대로 받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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