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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영화 황제' 김염의 발자취, 상하이에서 캐다



책/학술

    '조선인 영화 황제' 김염의 발자취, 상하이에서 캐다

    신간 '아주 특별한 사나이'

     

    '아주 특별한 올드상하이' 는 조선인 배우 김염의 흔적을 찾아 떠난 외손녀의 상하이 연서이다. 독립운동가의 후손이라는 멍에를 짊어진 한 청년이 조국이 아닌 이국땅에서 부단한 노력과 열정으로 자신의 꿈을 성취한 인간승리의 현장을 그의 후손이 찾아내고 기록했다.

    20년 전 어느 날 우연히 어머니의 아주 오래된 앨범 속 사진 한 장으로부터 시작된 저자 박규원의 올드상하이 탐험. 영화 황제 김염과의 만남이 저자에게 새로운 충격이었듯 그가 살았던 상하이 역시 저자에게는 새로운 세상이었다. 오랜 역사를 안고 있으면서도 그 자체로 신세계인 그곳. 아편전쟁의 결과로 문을 연, 상하이 조계(租界)라는 반식민지는 근 1세기 동안 세계에서 으뜸가는 항구 도시이자 세계 모험가들의 천국이었다. 아편 무역과 온갖 상업으로 번창한 상하이는 20세기 초 금융의 중심지로 급성장한 특수한 국제사회였다. 중국, 영국, 프랑스, 미국 어느 나라도 상하이를 독점적으로 통치할 수 없는, 황금이 땅에 깔리고 기회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세계였다. 특히 프랑스 조계지는 모던하고 자유로운 환경으로 전 세계와 중국 도처에서 학자, 사상가, 예술가, 망명가, 작가들이 모여 들었다. 심지어 전 세계에서 혁명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거점이 되었다. 이렇듯 20세기 전반기의 상하이는 '동양의 파리'라 불렸고, 상하이에서 시작된 중국 영화의 르네상스도 이런 분위기에서 비롯되었다.

    쑨원은 1915년 이곳을 근거지로 혁명활동을 했고, 마오쩌뚱은 1921년 이곳 어느 골목에서 공산당을 창당했다. 그는 신중국을 세운 후 가장 좋아하던 김염을 국가 일급배우로 봉했다. 김염을 '중국의 부마'라 부르며 아낀 저우언라이의 집도 이곳에 있었고, 김염의 고모부 김규식과 고모 김순애는 이곳 대학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하숙을 치며 와이셔츠를 만들어 팔아가며 독립운동을 했다.

    이곳 거리에서 어깨를 스치며 지나가던 사람 중에는 버나드쇼, 아인슈타인, 채플린도 끼어 있었다. 1920~1930년대의 상하이는 중국의 새로운 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로 미술‧음악‧연극‧문학 등 신흥예술의 메카였고, 세계 활동의 중심이었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의 문명과 문화가 맞부딪쳐 타오르는 용광로이자 자유롭고 개방적이면서 로맨틱한 유럽풍의 분위기를 지닌 이 도시에서 중국인들은 서양인들과 함께 올드상하이의 전성기를 만들어갔다.

    저자는 김염의 두 번째 부인이자 94세의 현역 영화배우 친이 할머니와, 상하이 문단 최고의 영화 극작가이며 많은 이의 존경을 받는 노작가, 그리고 올드상하이의 산증인인 션지 선생을 통해 올드상하이의 그때 그 시절을 들여다본다.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소장 자료들을 이 책에 소개한다. 김염의 열렬한 팬이었던 션지 선생은 영화계에 들어와 일하면서 김염을 만나게 되었고 급속히 가까워졌다. 김염을 문화혁명 때 고난을 같이했던 친구이자 인생의 스승으로 생각한 션지는 저자 박규원을 만나자 '김염의 외손녀는 나의 외손녀'라며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션지 선생은 상하이 영화사에서 일하면서 만난 1930년대 기라성 같은 감독들로부터 직접 들은 1930년대 중국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 이야기를 그보다 30년 어린 저자에게 지난 20년에 걸쳐 전해주었다. 김염의 외손녀인 저자에게 션지는 그가 썼던 '대형','대반','대세계전기','인생 옛일'등 올드상하이의 주인공들을 열변을 토하며 가르쳐 주고, 매번 만날 때마다 졸라대는 저자에게 그 전설과 신화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만인과 조국을 위해 몸을 던졌던 쑨원, 온 국민을 사랑했던 저우언라이, 25세에 세상을 져버려야만 했던 중국 영화의 전설 롼링위, 영화예술을 위해 온몸을 불살랐던 영화 황제 김염, 인생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해 중국 마피아의 두목이 된 두웨이성, 평생 도전하고 고민하며 극복하기를 반복했던 하퉁 같은 모험가들의 삶과 매력이 실타래처럼 풀려 나왔다.

    저자는 최근 책을 탈고했음을 션지 선생에게 알렸다. 션지 선생은 부인과 함께 두 달 전에 폐기종으로 입원했다. 90이 넘어서까지도 1년에 1권씩의 책을 꾸준히 출간하며, 아무도 말해준 적이 없는 보석 같은 스토리를 들려주었던 션지를 만나러 저자는 이 책을 들고 상하이로 향했다.

    과학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지만 길 하나만 건너면 다른 세계가 펼쳐지는, 현대보다 더 복합적이고 역동적이며 압축된 올드상하이 속 중국인의 진짜 삶의 모습을 통해 저자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왜 사람들이 그토록 올드상하이를 그리워하는지, 어떻게 해서 식민지의 한 청년이 거대한 중국 문화계의 주류에 편입돼 중국 영화 100년 역사상 유일한 황제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는지 어렴풋이 나마 그 답을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저자는 묻는다. 100년 전의 그들은 지금의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를.

    저자 박규원은 중국의 영화 황제가 된 작은 외할아버지 김염의 일대기를 그린 '상하이 올드데이즈'(중국판 '나의 할아버지를 찾아서')로 2003년 민음사에서 주최한 '올해의 논픽션상' 대상을 받았고, 소설집 '불꽃 속의 나라'(중국판 '상하이의 눈물')를 펴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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