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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익효수, 댓글 꾸준히 달아서 무죄?…'면죄부' 논란



법조

    좌익효수, 댓글 꾸준히 달아서 무죄?…'면죄부' 논란

    페북 글 2건 올린 서울시공무원은 '유죄'…형평성 논란

     

    악성 정치 댓글을 단 혐의로 기소된 국가정보원 직원이 무죄를 선고 받자 검찰의 '늑장 수사'와 법원의 '면죄부 판결'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죄인은 죄인일 뿐, 문제 많은 사람 문제인…죄인은 부엉바위에서 자폭하라'

    지난 2012년 대선을 불과 일주일 남겨둔 12월 12일, 인터넷 포털사이트 기사에 이런 내용의 댓글이 달렸다. 댓글을 작성한 사람은 국가정보원 직원 유모(42)씨.

    국정원법과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정치적 중립 의무를 지켜야 하는 공무원은 특정 후보를 당선 또는 낙선시킬 목적으로 선거운동을 해서는 안 되지만, 유 씨는 당시 '좌익효수'라는 필명 아래 숨어 악성 댓글들을 쏟아냈다.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관련 기사에 문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4차례 올렸고, 2011년 4·27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때는 격전지였던 경기 분당을의 손학규 후보를 비방하는 댓글을 6차례나 올렸다.

    또 호남을 '뒈지게 패야된당께 홍어종자들', '전라디언' 등의 표현으로 비하하고,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북한의 심리전에 넘어간 광주인들'이라고 표현하는 등 원색적인 비난을 서슴지 않았다.

    유 씨는 아프리카TV에서 방송을 진행하는 '망치부인' 이경선 씨와 남편, 초등학생 딸에 대해서도 수십 차례 성적으로 모욕하는 댓글을 달았다가 지난 2013년 10월 결국 고소를 당했다. 국정원법 위반 및 모욕 혐의였다.

    하지만, 검찰은 '늑장 수사'로 일관했다. 좌익효수의 존재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검찰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대선개입 의혹을 수사하던 같은 해 7월이었지만, 고소장을 접수한 지 2년여 만인 지난해 11월에서야 유 씨를 불구속 기소한 것이었다.

    선거사범 공소시효가 6개월 이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검찰이 조금만 더 빨리 좌익효수의 글을 발견하고 공소 제기를 했더라면, 유 씨는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도 처벌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검찰이 좌익효수의 신원확인조차 하지 않고 사건을 뭉그적거리던 지난해 9월 망치부인 이 씨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가 1심에서 패소했다. "좌익효수가 국정원 직원이라는 점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에서였다.

    베일에 싸여있던 유 씨는 같은 해 12월 드디어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지만, 가림막 뒤로 철저히 얼굴과 목소리를 가린 상태였다.

     

    유 씨는 국정원의 정치활동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 18조 1항과 9조 1·2항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면서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다. 이어진 공판에서는 "인터넷을 하다 나도 모르게 빠져들었다"며 12장짜리 반성문을 제출하기도 했다.

    세 차례에 걸친 공판 끝에 유 씨에게 '면죄부 판결'이 내려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5단독 이창경 판사는 21일 유 씨의 국정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유 씨가 달았던 댓글이 모두 10건, 댓글 게시 기간은 2~3일에 불과했다"면서 "낙선을 의도했는지 의문"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재판부는 또 "유 씨가 선거와 관계 없이 훨씬 전부터 야권 정치인에 대해 매우 저속하고 과격한 표현으로 비방 댓글을 지속적으로 달아온 것과 일관된 모습"이라면서 "즉흥적이고 일회성으로 댓글을 게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유 씨는 이미 게시된 글에 자신의 의견·감정을 표현한 것이고, 유 씨의 댓글이 어느 정도의 비중이나 위치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며 "해당 선거구의 유권자가 아니어서 아무런 관련이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특히 재판부는 유 씨가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한 야당과 야당 정치인을 비방한 데 대해 "자신이 소속된 기관을 보호하거나 방어하려는 목적에서 비롯됐을 가능성이 적지 않다"면서 마치 유 씨가 정당방위를 한 것처럼 오해할 법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그러나 이같은 판결은 정치관여 금지를 규정한 국정원법을 선거개입 금지로만 좁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국정원법 18조 1항은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한 사람은 7년 이하 징역 및 자격정지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 국정원법 9조 1항은 '정당이나 정치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활동에 관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 9조 2항 4호는 '특정 정당이나 특정인의 선거운동을 하거나 선거 관련 대책회의에 관여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반면, 2014년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박원순 서울시장을 지지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겨진 서울시 7급 공무원 김민호(49)씨는 벌금형이 확정돼 공무원 직위를 상실했다.

    김 씨는 같은 해 5월 11일 "오세훈이 박원순으로 바뀌니 많이 바뀌더라.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편지를 썼더니 오세훈은 한 번도 답장 안 하더라. 그런데 박원순은 꼬박꼬박 한다. 늦은 밤에 또는 이른 새벽에 하더라"는 글을 페북에 올렸다.

    또 같은 해 5월 13일에는 정몽준 당시 새누리당 서울시장 후보의 사진과 함께 "자기 자식 때문에 우는 놈 정신 빠진 놈,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네 이놈아, 안산에 합동분향소 아이들, 영정사진 가서 봐라"는 글도 올렸다.

    대법원 (사진=자료사진)

     

    한 보수언론에 김 씨의 글이 실리자, 새누리당 윤상현 의원은 김 씨를 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고, 검찰은 같은 해 11월 김 씨를 불구속 기소했다.

    1심 재판부는 "김 씨의 글은 박원순을 지지하거나 정몽준을 반대하는 내용으로, 지방선거에서 박원순의 당선 또는 정몽준의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 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되는 능동적·계획적인 행위로서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유죄를 선고했다.

    김 씨의 항소는 2심에서 기각됐고, 대법원도 박 시장을 지지하는 글을 올리고 박근혜 대통령을 비방한 혐의로 기소된 김 씨의 상고심에서 벌금 250만원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대법원은 "김 씨의 글은 공직선거법상 선거운동에 해당하고, 공직선거법에서 금지하는 선거운동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하는 경우로 제한되지 않는다고 봐 유죄로 판단한 원심은 정당하다"고 밝혔다.

    페북 친구가 5000명인 김 씨가 자신의 페북에 올린 정 후보 비판 글은 유죄. 유 씨가 불특정 다수에 공개된 인터넷 기사와 디시인사이드에 올린 10건의 댓글은 무죄가 나온 아이러니한 상황.

    또 서울시 공무원이었던 김 씨가 서울시장 후보를 비방한 행위는 유죄로 인정된 반면, 유 씨가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을 제기한 야당을 비방한 것은 "소속 기관을 보호·방어하려는 목적일 가능성이 있다"는 재판부의 해석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김 씨는 "검찰이 공소시효를 넘기지 않으려고 나의 사건을 신속하게 처리한 데 이어 법원은 개인적인 페북 글을 정치활동이라 판단했다"면서 "국정원 직원의 댓글은 정치활동이 아니라는 판단은 법의 원칙이 동일하지 않게 적용된 것"이라고 말했다.

    법조계 관계자는 "선거와 관계 없이 지속적으로 야권 정치인 비방 댓글을 작성했다면, 오히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를 어기고 일상적으로 정치개입을 했다는 의미인데 무죄를 선고한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국정원을 보호·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댓글을 썼다고 해석하는 것은 죄형법정주의를 위배하고 면책사유의 범위를 지나치게 넓게 해석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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