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제5차 중앙위원회의 에 참석해 공천 관련 항의성 발언에 눈을 감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다. 황진환기자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대위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셀프공천한 데 대해 당 안팎에서 논란이 거세게 일고 있다. 여기에 일부 비례대표 후보들에 대한 도덕성 논란까지 일면서 더민주가 후폭풍을 맞고 있다.
김종인 대표가 '셀프공천'에 대해 납득할 만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면 외연확장은 고사하고 기존 야권 지지층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더민주는 20일 중앙위원회 회의를 열어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할 예정이었지만 중앙위원들의 반발로 의결에 실패했다.
더민주 지도부는 비례대표 후보군을 A그룹(1~10번)·B그룹(22~20번)·C그룹(21번 이후)으로 나눠 후보자 순위를 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을 채택하려 했지만 일부 중앙위원들이 당에서 전략 지정하는 후보 외에는 '칸막이를 헐고' 투표할 것을 촉구하며 강하게 반발했고 결국 이날 중앙위가 무산됐다.
10번 중반대가 당선 안정권으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B그룹을 제외하고는 중앙위에서 비례대표 순번을 정하도록 한 당헌과 당규를 정면으로 위반한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특히 김종인 대표가 자신을 비례대표 2번에 배정했고, 그가 공천권을 행사해 비례대표 1번과 6번에 배정된 인사들에 대한 각종 의혹들이 불거지면서 중앙위원들의 반발에 기름을 부었다.
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5차 중앙위원회의에서 김광진 의원이 의사진행발언을 요청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 비례대표 1번, 제자 논문 표절 의혹, 6번은 정체성 논란비례대표 1번과 6번으로 올린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학과 교수와 최운열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에 대해선 각각 제자 논문 표절 의혹과 정체성 논란이 제기됐다.
박 교수는 2004년 학회지에 기고한 논문 일부가 같은 대학 대학원생의 석사학위 논문 내용과 같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박 교수는 김 대표에게 "물의를 빚은 사실이 있지만 그 부분에 대해 학교 측에 충분히 소명됐고, 문제가 해소됐다"고 말했고 김 대표가 박 교수를 비례 1번으로 선정했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김성수 대변인은 전했다.
최 교수는 외환은행을 인수했다 매각한 해외사모펀드 '론스타'를 옹호하는 글을 한 일간지에 기고했다. 더민주는 그동안 당론으로 론스타를 '먹튀 기업'으로 비판해왔다.
당선안정권인 A그룹에 속한 김숙희 서울시의사회장은 한 언론에 올린 칼럼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겨냥한 듯한 "자살로 자신의 과오를 묻어 버린 대통령"이라는 표현을 써 논란이 됐다.
10번대 그룹인 B그룹에 속한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의 경우 2012년 아들이 비리 방산업체에 근무한 사실이 드러났다.
같은 그룹에 속한 심기준 강원도당위원장은 올해 시민단체가 선정한 4·13 총선 낙천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
더민주 윤후덕 의원은 다른 시민단체가 선정한 4·13 총선 낙천 대상자 명단에 포함됐다는 이유 등으로 공천배제됐다 해당 시민단체가 ‘윤 의원을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겠다’고 확인한 뒤 구제된 바 있다.
◇ "출마 생각 추호도 없다"더니…"표 떨어지는 소리가 마구 들린다"김종인 대표의 '셀프공천'은 자신의 기존 입장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김 대표는 지난 1월 15일, 대표 취임기자회견에서 총선 출마 가능성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 나이가 77세다. 국회 와서 쪼그리고 앉아서 한다는 건 곤욕스런 일이다. 어떻게 될지는 모르나 지금에 와서 그걸 추구할 입장은 아니"라고 단언했다.
지난달 28일, 취임한달 기자회견에서도 비례대표 출마에 대한 입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내가 과연 비례에 큰 욕심이 있느냐, 그런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나는 그런 생각이 추호도 없으니 그 정도만 아시만 된다"고 일축했다.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문재인 전 대표 측에서) 비례대표 2번을 준다고 해서 내가 핀잔을 줬다. '내가 비례대표 하나 오퍼(제의)한다고 거기에 따라갈 사람이냐'고. 그런 유치한 소리는 듣기도 싫다.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라고도 했다.
김 대표의 돌변에 당 안팎에서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의원들은 자신의 SNS를 통해 "정의롭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김광진)", "사람들이 염치가 있어야지…좌시하지 않겠다(정청래)", "더민주의 이번 비례대표 선정은 원칙도 없고 국민도 없다(추미애)"고 실명으로 비판을 이어갔다.
원외 인사들도 "검증을 제대로 못 하고, 사사로운 욕심을 내려놓지 못하고, 부적절한 후보를 내놓는 것은 당을 다시 위기로 내모는 길(송영길)", "김종인 대표가 (혁신공천안이) 대표의 권한을 없앤 '고약한 규칙'이라고 비판하면서 비례대표 선발규칙을 바꾼 결과가 이것이다. '고약한 선택'이다(조국)"라고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표 떨어지는 소리가 마구 들린다(수도권 한 의원)", "비례대표를 4번이나 했는데 그렇게도 국회의원이 하고 싶냐. 당을 사당(私黨)으로 만들어 사단을 일으키고 있다(이해찬 측)" 등의 비난도 잇따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지난 1월15일 기자간담회에서 문재인 더민주 전 대표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전문가들 "김종인의 악수(惡手)로 야권 지지층 등 돌릴 것"전문가들은 김 대표의 이런 결정이 이번 총선에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고 있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지금까지 지역구 공천에서는 새누리당보다 평가가 좋았는데 막판에 보인 '탐욕의 정치'로 지금까지 벌어온 것을 다 까먹었다"며 "마지막 한 수로 인해서 더민주의 많은 지지자들이 유보적인 태도로 돌아설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김 대표가 얼마나 야당을 우습게 봤으면 2번을 스스로 배정했겠느냐. 겉으로는 공천개혁을 얘기하면서 국민들을 이렇게 속여도 되느냐"고 맹비난한 뒤 "스스로 철회하지 않으면 더 큰 악수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침묵을 지키고 있는 문재인 전 대표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도 "더민주가 새누리당의 '공천활극'에 반사이익을 보나 했더니 마지막에 방점을 찍었다"며 "김 대표가 2번을 셀프 배정한 것은 명분도 없고 자신의 발언과도 배치된다"고 혹평했다.
최 교수는 또 "비례대표 제도의 취지는 자신의 힘으로는 정치권에 진입할 수 없는 사회적 약자나 소수계층 등의 과소대표를 배정한다는 것인데 무슨 근거로 교수나 당직자들을 대거 배정했는지 알 수 없다"며 "그럴려고 비례대표 의석 증원을 요구한 거냐"고 반문했다.
그는 "더민주가 막판에 보인 악수는 정당득표에는 물론 지역구 후보들의 득표활동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했다.
조원씨앤아이 김대진 대표도 "DJ(김대중)와 YS(김영삼), 박근혜 대통령은 선거를 총괄하는 지위에서 '목표비례의석'의 끝번으로 자신을 배치하며 선거에 이길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는 정치적 행보를 걸어왔다"며 "김 대표가 스스로를 비례대표 안정권에 배정한 것에 대한 정확한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면 야권 지지층에서는 긍정적인 영향보다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라고 분석했다.
더민주 비대위는 20일 오후 비례대표 순번 등에 대한 대한 재논의를 한 데 이어 21일 오후 중앙위를 다시 열어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하겠다는 계획이지만 결과는 불투명하다.
특히 김 대표는 20일 회의에서 자신의 비례대표 순번을 후순위로 조정하는 게 좋겠다는 권유에 "비례 2번이든, 10번이든, 15번이든 (당선 안정권인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 후순위로 돌리는 것이 오히려 꼼수 아니냐"며 뜻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대표는 비대위원들과 의견이 좁혀지지 않자 먼저 회의장을 떠났으며 21일 중앙위에도 불참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