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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호장비는 '목장갑' 뿐… 메탄올 자욱한 '실명 작업장'



경제 일반

    보호장비는 '목장갑' 뿐… 메탄올 자욱한 '실명 작업장'

    [메탄올 산재 사고로 본 파견노동 ②]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는 '파견직 안전'

    불과 2달만에 4명이 잇달아 시력을 잃고, 뇌손상까지 입었다. 이들은 모두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일하는 20대 파견노동자. 이들의 건강과 행복을 빼앗은 범인은 비단 메탄올만일까. CBS는 '메탄올 산업재해'를 중심으로 3차례에 걸쳐 생명까지 위협받는 파견직-하청업체의 현장을 조망하려 한다. [편집자 주]

     

    팀 동료로부터 "눈이 보이지 않는다"는 호소를 듣고도 메탄올 위험을 알지 못한 채 계속 일했던 2번째 메탄올 산재 피해 노동자 A(28)씨.

    만약 A씨가 메탄올 중독에 대한 적절한 교육을 제공받았다면, 메탄올 중독 초기 증세인 어지러움과 두통, 메스꺼움, 시력 약화를 참아가며 일했을까.

    이처럼 피해노동자들이 메탄올 산재에 내몰리고 있는 근본원인은 자신이 하는 작업에 관한 충분한 안전정보를 얻을 수 없는 영세 하청업체와 파견직 노동이라는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대부분 파견직 노동자는 사업장 형편에 따라 여러 사업장을 조금씩 근무하다보니 단순한 작업 요령만 숙달할 뿐, 자신이 하고 있는 업무 배경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갖기 어렵다.

    인력 파견 업체는 물론, 사용사업주 역시 수시로 바뀌는 파견직 노동자들에게 별다른 안전교육까지 제공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영세한 사업장에서는 사업주 역시 화학물질에 대한 자세한 취급정보를 알지 못하기도 한다. 실제로 이번 메탄올 산재가 일어난 부천의 한 사업장에서는 사업주의 친인척도 함께 일 했을만큼 메탄올의 위험성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메탄올이 위험한 물질이라는 정보쯤은 알아도, 얼마나 위험한 물질이며 어떻게 취급해야 안전한지는 전혀 모른채 경험에만 의존해 다뤘다는 얘기다.

    결국 노동 현장에서 파견직 노동자들의 안전은 그 누구도 책임지기는커녕 애초에 관심조차 없는 현실이다.

    ◇ 뚜껑 열린 채 공장에 가득한 메탄올… 보호장비는 '목장갑 한 벌' 뿐

    아무도 파견직 노동자들의 안전을 신경쓰지 않은 결과는 메탄올 산재가 일어난 작업현장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이번 4명의 메탄올 산재 피해노동자는 모두 휴대전화 케이스 부품을 만드는 CNC(컴퓨터수치제어) 공정에서 일했다.

    줄지어 서있는 약 2m 높이의 식당용 냉장고처럼 생긴 절삭기계가 알루미늄 판을 깎아내면 메탄올 윤활유가 계속 뿌려진다.

    피해노동자들은 열려있는 기계 앞에서 제품을 만들고 검수하면서 제품에 묻어있는 메탄올을 제거했는데, 이 과정에서 메탄올이 몸에 튀거나 증기 형태로 흡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이들은 보안경이나 보호장갑, 방진마스크. 안전복 등은 전혀 없이 사복을 입고 목장갑만 낀 채 작업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뿐만 아니라 메탄올을 담고 있는 하얀 말통은 경고 표시는커녕 뚜껑이 열린 채 기계 옆에 방치돼 있었고, 보관용 드럼통에서 메탄올을 옮겨 붓는 과정 역시 아무런 보호장구 없이 이뤄졌다.

    메탄올을 쓰는 사업장에 있어야 할 MSDS(화학물질취급설명서)도 보이지 않았고, 피해노동자를 고용했던 한 업체 관계자는 '바람이 너무 강해 겨울에는 환기장치를 틀 수 없다'며 환기장치 도 꺼놓았다.

    그 결과 작업장 환경은 충격적이었다. 한 사업장의 대기중 메탄올 수치는 1103~2220ppm으로 노출기준의 10배에 달했고, 또다른 사업장 역시 228.5-417.7ppm으로 2배를 넘겼 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노동자가 메탄올 증기를 흡입한 사례는 이미 1930~60년대 이후 국제적으로 자취를 감춘지 오래 "라며 "세계 7위 무역대국인 한국에서 일어난 산재라고 믿기 어려운 지극히 후진적인 노동환경"이라고 개탄했다.

    이미 반세기 전 유물로 자리잡은 메탄올 산재가 다시 벌어지면서 국제적 망신까지 사게 됐다. 노동건강연대와 민변 관계자에 따르면 오는 5월 UN '기업과 인권' 팀이 한국에 방문할 때에도 메탄올 산재가 주요 이슈로 다뤄질 것으로 보인다.

    ◇ 정부는 '여력 없다' 발뺀 동안… 사업주 "안전교육 의무? 들어본 적도 없다"

    '메탄올 산재'가 일어난 한 사업장. 노동자들은 부품에 묻은 메탄올을 에어건으로 날려 공기 중으로 내보냈다.

     

    이처럼 파견직 노동자에 대한 안전망은 허술하다 못해 사라진지 오래지만, 정부의 감독능력은 여지없이 헛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 3일 중부지방고용노동청에서 지도점검한 사업장에서 4번재 메탄올 산재 피해노동자가 발생한 경우가 단적인 예다.

    당시 근로감독관이 현장방문까지 했지만, 사용사업주의 "지난해 말부터 절삭용제를 에틸알코올로 교체했고, 앞으로도 메탄올을 취급하지 않을 계획”이라는 허위진술에 넘어가 별다른 조치 를 취하지 않았다가 화를 부른 것.

    물론 노동부도 산업안전보건공단을 통해 모범적인 안전교육을 시행하는 사업장에 지원금을 지급하는 클린사업장 조성지원 사업을 운영하는 등 안전교육을 확대하도록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하지만 애초 영세사업장 사업주들은 사업장에 부과된 안전교육 의무 자체를 모르거나 교육할 여력이 없는 경우가 많은데다 고용이 일정하지 않은 파견직 노동자을 일정 기간 이상 교육시키 기도 쉽지 않다.

    노동부 입장에서도 고작 전국 300여명에 불과한 산업안전 근로감독관으로 200여만개 사업장을 모두 계도하기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한 노동부 관계자는 "다른 근로기준법의 의무와 마찬가지로 일일이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사업주가 문의하면 공단을 통해 안내하고, 어길 경우 엄정 처벌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피해노동자들이 산업재해를 인정받도록 지원한 법률사무소 새날의 권동희 노무사는 "정부도 사업주에게 안전교육을 시킬 의무가 있지만, 단 한번이라도 제대로 가르친 적 있나 묻고 싶다"며 "메탄올이 눈을 멀게 만들 수 있다고 사업주에게 일러줬다면 이런 사고는 없었다"고 강조했다.

    이어 "실제 사고가 일어난 사업장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단 한번도 관리감독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했다"며 "사정이 이런데도 정부는 이번 산재를 사업주만의 책임으로 내몰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노무사도 "메탄올 외에도 위험한 화학물질이 5만여 종류가 넘는다"며 "정부는 화학물질을 안전히 사용할 방법을 적극 알려주고, 근본적 개선을 위한 제도 마련을 모색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 파견노동의 열악한 현실을 방조한 원청업체에 대한 기사는 내일 이어집니다.)

     



    * 이 사건을 지원하고 있는 노동건강연대(02-469-3976)는 파견알바, 전자제품 제조 하청 노동자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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