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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처럼 일하는 황정민, 그가 견뎌낸 '대장'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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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처럼 일하는 황정민, 그가 견뎌낸 '대장'의 무게

    [노컷 인터뷰] "힘들어도 말 못하는 책임감…'꼰대' 되지 않으려 노력"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배우 황정민은 2015년, 잊지 못할 한 해를 보냈다. 그는 영화 '국제시장'부터 '베테랑'까지 각기 다른 장르와 역할로 쌍천만 영화를 이끈 주역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황정민이 영화 '히말라야'로 다시 한 번 추운 겨울을 녹일 따뜻한 인간애를 품고 돌아왔다. 영화는 앞선 두 영화들보다 훨씬 인간의 한계에 가깝게 닿아 있었다. 영화 속 엄홍길 대장처럼 그는 '황정민 대장'이 되어 배우들을 지탱하는 기둥을 자처했다.

    그가 제 역할을 다해내지 못했다면 배우들과 스태프들 사이에 이토록 끈끈한 정이 쌓이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감당할 것이 많았던 만큼, 외로움도 컸다. 홀로 막중한 책임감을 지고 오른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그는 차마 자신에게 속내를 털어놓지 못한 엄홍길 대장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다 내려놓은 마지막 촬영에서는 끝내 눈물을 흘렸다.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음에도, 여전히 황정민은 '소처럼 일하는' 배우의 대명사다. 자신이 연출에 주연까지 맡은 연극 '오케피'를 무대에 올렸고, 2월에는 배우 강동원과 호흡을 맞춘 '검사외전'이 개봉하며 영화 '아수라'의 시장 역을 맡아 틈틈이 캐릭터 분석에 고심하고 있다.

    모든 것을 떠나 '인간 황정민'만을 보자면 그는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선배이고, 현장에서 자신의 이름 세 글자가 쓰여진 의자도 공용 의자로 만들어 버리는 그런 사람이다.

    스스로 '꼰대'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배우, 황정민과의 일문일답.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본인이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았다. 영화를 처음 봤을 때 어떤 느낌이었나.

    - '내가 이 영화를 해내다니'. (웃음) 내내 할 수 있을지, 찍을 수 있을지 그런 물음들로 가득했다. 기본적으로 '베테랑' 같은 영화는 많이 찍어보기도 해서 관객들이 어떻게 하면 좋아하는지 아는데 산악영화는 해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모든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맨 땅에 헤딩하는 느낌이랄까. 이왕 하는 거면 잘 해보자는 생각은 있었다. 다음 산악 영화를 찍는 팀들이 우리 영화를 보면서 지침으로 삼을 수도 있으니까.

    ▶ 촬영 과정에서 고생이 심했다는 게 느껴진다. 배우들뿐만 아니라 스태프들도 영화에 대해 각별한 마음이 있겠다.

    - 그 팀들은 다 알 거다. 저희가 쫑파티, VIP 시사회 그리고 스태프 가족 시사회를 할 때 3분 짜리 메이킹 필름을 틀었다. 거기서 다 눈물 바다가 됐다. 정말 눈물이 확 올라오더라. 이석훈 감독님도 그렇게 잘 우는 사람이 아닌데 인사하다가 눈물이 올라왔나 보다. 그래서 굉장히 짧게 목 멘 소리로 '감사합니다'만 하고 무대에서 내려갔다.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 해발 4,000m가 넘는 고지에서 촬영을 했다고 들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고생담이 있었는지 궁금하다.

    - '히말라야'의 휴먼 원정대처럼 우리는 함께 움직였다. 스태프나 배우로 나눠진 것이 아니라 정말 똘똘 뭉친 한 팀이었다. 사람이 무거운 짐을 다 매고 산을 올라야 되는데 여자 스태프들이 많았다. 여자들에게 무거운 짐을 들게 할 수는 없으니까 남자 배우, 스태프들 할 것 없이 서로 서로 짐을 지고 날랐다. 영화 속에서 나오는 북한산 훈련을 매일 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매일 그렇게 짐을 지고 두 시간 반에서 세 시간 정도 올라가고 한 시간 반 정도 내려왔다. 모니터를 지고 갈 수도 없어서 연기를 해도 모니터링을 할 수가 없었다. 나중에 정말 북한산에 촬영하러 갔을 때는 모든 스태프들이 거기를 30분 만에 올라가더라.

    ▶ 대원 역을 맡은 배우들이 모두 후배들이었는데 현장에서 '대장'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나름대로의 마음 고생이 있었겠다.

    - 늘 '리더'이고 '대장' 역할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었다. 짐을 들 때도 가벼운 짐을 들 수 없고, 무거운 짐을 들고 내려갔다. 나도 사람이다 보니 당연히 기압 때문에 힘들었지만 힘들다고 이야기하지 않았다. 사고가 날까봐 큰 소리를 낼 때도 있었고, 아침마다 누구보다 일찍 나가서 준비하면서 솔선수범해야 했다. 그래야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하지 않는데 후배들에게 그러는 건 양아치 아닌가. 후배들 앞에서는 '나는 완전 산악인 체질인가 보다'라고 이야기하고, 혼자 방에 들어가서는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여기서 이러고 있나'라고 생각했다. 항상 그런 싸움이었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촬영하면서 정말 단 하나의 바람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

    - 제발 단 한 사람도 다치지 않고, 사고 없이 잘 끝나기만을 바랐다. 연기도 필요 없었고, 못해도 괜찮았다. 그런 책임감이 제일 컸다. 마지막 촬영에서 그 무게감이 떨어져 나가니까 사람이 와르르 무너지더라. 창피하게 나이 먹은 남자가 울었다. 찍을 때는 그냥 정신력으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생각보다 큰 부담이었던 것 같다. 눈물이 많은 편은 아닌데 그 때는 그냥 북받쳐 올라와서 미치겠더라.

    ▶ 영화 들어가기 전, 이렇게 어려운 여정이 될 것이라는 예상은 했었나?

    - 솔직히 처음 시작할 때는 그런 고민이 없었다. 영화 '댄싱퀸' 팀이 다시 뭉친다니까 그게 좋아서 '칠렐레 팔렐레'하고 합류한 거지. 당시에 워낙 팀워크가 좋았다. 원래 촬영이 끝나면 뿔뿔이 흩어지는데 '댄싱퀸' 때는 끝나고 엠티까지 갔었다. 그 팀이 다시 뭉쳐서 작품을 한다니 얼마나 기분이 좋겠냐. 그런데 하고 나서 큰코 다친 거지. (웃음)

    ▶ 산악영화라기 보다는 따뜻한 메시지가 돋보이는 휴먼 드라마에 가까운데, 본인은 '히말라야'가 줄 수 있는 메시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 산을 빙자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닐까. 관객들이 함께 영화를 보러 온 그 사람의 옆모습을 볼 때 제가 이 영화를 한 이유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사실 상대방을 지그시 바라보기가 힘들다. 말하기 힘든 공기들이 피어난다. 정상을 보지 않고 사람을 위해 첫 발을 내딛는 것 자체가 그렇다.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에서 시작된 영화인 거다. 감독님이 그런 이야기에 공을 많이 들였고, 삶 속에서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이 영화를 통해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저 역시도 그게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였다. 이 실화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가 있다. 우리가 다큐와 뭔가 다른 게 있어야 한다는 고민과 중압감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런 점들이 그 다른 지점인 것 같다.

    ▶ 정상 등반이 아니라, 죽은 대원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여정이다. 캐릭터를 분석하면서 어떤 마음으로 엄홍길 대장이 그런 일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

    - 실제로 해당 대원의 시신이 등반로 길목에 있다. 그래서 지금도 망원경으로 보인다고 하더라. 전 세계 산악인들이 그 주검을 밟고 지나가야 된다는 거다. 그래서 100% 수긍이 갔다. 그 시신이 결국 표지한이 되는 건데 그게 싫은 거다. 한국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어떤 '정'의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그 곳은 자기 몸 하나 가누기 힘든 곳인데 거기서 시신을 수습하겠다고 한 것이다. 전 세계 등반 역사 상 이런 일이 없었을 정도로 거의 '미친 짓'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실제로 엄홍길 대장과 만나서 어떤 이야기를 들었는지 궁금하다.

    - 술이 정말 강해서 내가 먼저 쓰러지는 바람에 엄 대장의 속내를 들을 겨를이 없었다. 본인이 히말라야의 기를 주겠다는 이야기는 했는데 그 이상은 절대 이야기를 안 하더라. 그런데 오히려 그것이 내게는 득이 됐다. 촬영을 하면서 그가 짊어졌을 책임감과 외로움을 느꼈다. 진짜 힘든 상황에서도 단 한 마디도 힘든 이야기를 하지 못했던 고통스러움. 그걸 느끼니까 자신의 치부와 나약함을 드러내기 힘든 그 지점이 이해가 갔다. 한편으로는 마음이 짠했다.

    ▶ 다른 영화보다 열심히 고생하고 노력했기 때문에 그만큼 만족도도 높을 것 같다.

    - 일단 내 영화에는 무조건 만족한다. '만족하지 않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이상한 것 같다. 영화가 잘 되지 않아도 그렇게 밖에 찍을 능력이 안 되고, 그릇이 그것밖에 안되는데 어떻게 크게 늘리겠냐. 그 안에서 나는 어떻게든 애를 쓴 거고, 판단은 관객들이 하는 것이다. 다음에 할 때는 이런 실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것에 대해 절대 후회는 하지 않는다. 후회할 거면 아예 하지 않는 게 맞다. 무조건 한다고 하면 철저하게 하는 타입이다.

    ▶ 이제 현장에 가면 선배보다는 후배들이 더 많겠다.

    - 맞다. 이제는 가서 돈만 내고, 후배들이 술자리에서 빨리 일어나 주길 바라는 나이다. (웃음) 그런 순간이 오더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나이가 먹으면 먹을 수록 할 수 있는데까지는 '꼰대'처럼 굴지 말아야 겠다고 생각한다. 후배들이 봤을 때 정말 늘 자리에 있길 원하고, 멋있는 사람이 되어야 겠다고. 스스로 의식하고 공부하면 그렇게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배우로서 잘 늙는 것이 아닐까. 저는 60대에도 멜로 영화를 하고 싶으니까 그러려면 잘 늙어야 된다.

    ▶ 영화 '행복'에서의 연기가 기억에 남는다. 여전히 멜로 영화에 대한 마음이 식지 않았나 보다.

    - 늘 하고 싶다.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가 정말 행복하다. 그건 나를 비롯한 관객들도 누구나 느낄 수 있고, 잘 아는 감정들이라 소통이 이미 된다. 생각보다 멜로를 사랑한다. 아주 섬세한 감정이 있고, 그걸 잘 해낼 때 쾌감을 느낀다. 멜로는 눈 하나를 깜빡일 때마다 오는, 아주 다른 어떤 감정선이 있다. 그게 너무 좋은데 영화판에서 하지를 않는다. 제작자들한테 맨날 부르짖는다. 차라리 예전에 봄에는 가족 영화, 여름에는 블록버스터, 가을에는 멜로, 이렇게 개봉했던 게 부럽기도 하다. 뭐 하나 잘되면 그걸로만 밀어 붙이니까. 장르적인 유행도 무시할 수는 없겠고.

    영화 '히말라야'에서 엄홍길 대장 역을 맡아 연기한 배우 황정민.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차기작 영화 '아수라'에서는 악역을 맡았다. 그 동안 선한 역할 위주로 맡아와서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줄 것 같은데 작품 선택 시, 어디에 중점을 두나.

    - 저는 이야기 안에서 인물이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캐릭터 위주로 작품 선택을 안 한다. 제일 싫어하는 것이 바로 이야기는 재미없는데 캐릭터는 좋은 경우다. (웃음) 재미있는 이야기가 관객에게 통해야 인물 역시 살아 숨쉬는 것이다. '아수라'에서 맡은 역할이 시장이다. 겉으로는 근사한데 속은 완전히 악의 원흉이고 악의 도가니다. 그게 너무 어렵다. 시장으로서의 모습이 있어야 하지만 늘 웃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그 비릿함을 살려야 한다. 능글능글하면서 그 말도 안 되는 미소들이 있지 않나. 정치인들을 보면 눈과 입이 따로 논다. 그게 정말 최고의 연기인데 제 안에 감정이 그렇게 되어 있지 않아서 얼굴로 표현하기가 힘들다.

    ▶ 캐릭터 분석에 있어서 정말 심혈을 기울이는 것 같다. 스스로 내면화 하는 작업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한데.

    - 항상 '왜?'라는 물음을 대본 아래에 쓴다. 왜 하필 이 시기에 이 사람들과 이 작품을 하는 것인가. 왜 이 인물이 이 상황에서 이 말을 하는 것인가. 내가 이해가 되어야 관객들과도 이야기를 할 수 있으니까 너무 어렵다. 요즘 죽을 것 같다. 깡패 역할이나 형사 역할을 한 번 하고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다음 영화에서 또 다른 느낌의 깡패나 형사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그러면 또 그 다른 캐릭터를 관객들이 기억하는 시점이 있을 것이다. 늘 작품을 할 때마다 캐릭터 구축을 하는데 분명히 한계점도 있다.

    ▶ 최근 들어 선택한 영화들이 모두 대중들에게 큰 호응과 공감을 얻었다. 운이 좋다고도 할 수 있겠다. 지금까지 영화 인생을 돌아봤을 때, 초심을 상징하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

    - 신기하게도 지금처럼 작품이 잘 되지 않았을 때도 내가 어떤 영화를 한다고 했을 때 그 영화가 엎어지거나, 투자가 되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신세계' 이전까지는 충분히 투자가 불확실할 수 있었음에도 그렇지 않았다. 어떻게 보면 큰 복이다. 처음 현장에 있었던 제 의자가 기억이 난다. 빨간색 나무 의자에 제 이름이 박혀져 있었다. 그 의자에 한 번도 앉지 않았다. 못 앉겠더라. 아직도 그 의자는 저희 집에 있다. 요즘은 제가 먼저 의자에 있는 이름을 벗겨 버린다. 창피하니까 당장 벗기라고 한다. (웃음) '내 의자'가 아니라 누구나 앉을 수 있는 의자이니까.

    ▶ 정말 쉼없이 달려온 배우들 중의 하나다. 아직까지는 스타 감독들과 많이 작업해 왔지만, 이후에 신인 감독들에게 힘을 실어줄 생각도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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