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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박 악재' 류중일, 진정한 '명장' 시험대 올랐다



야구

    '도박 악재' 류중일, 진정한 '명장' 시험대 올랐다

    '우째 이런 일이...' 삼성 류중일 감독(가운데)은 최근 해외 원정 도박 혐의를 받고 있는 주축 선수들 없이 한국시리즈를 치러야 하는 위기에 봉착했다.(자료사진=삼성)

     

    프로야구 사상 첫 통합 우승 4연패를 이룬 류중일 삼성 감독(52)이 지도자 인생에 중대 고비를 맞았다. 5년째 맞는 사령탑 생활에 최대 위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로 주축 선수들의 도박 파문이다. 삼성은 20일 기자회견을 열고 최근 경찰이 '해외 원정 도박 혐의'로 수사를 검토 중인 선수들을 한국시리즈(KS) 명단에서 제외하겠다고 밝혔다.

    투수들로 알려진 이들 3명이 빠진다면 삼성의 사상 첫 통합 우승 5연패는 힘들어질 수 있다. 이들은 이전까지 4연패를 이뤄낸 주역이었기 때문이다. 더욱이 투수력이 중요한 단기전에서 이들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대구 홈에서 자체 청백전 등 KS 대비 훈련 중인 류 감독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해야지"라며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금하지 못했다. 과연 '명장' 류중일 감독은 이 위기를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가.

    ▲"이제 운짱보다 지장이라고 불러도!"

    류 감독은 지난해 4년 연속 한국시리즈(KS) 우승을 이룬 뒤 "이제는 지장(智將)이라는 말을 좀 듣고 싶다"고 말했다. 그동안 덕장(德將)이나 특히 운장(運將)으로 많이 분류돼 공부하는 지도자라는 이미지가 상대적으로 적은 데 대한 서운함이 담겨 있었다.

    이는 우승이 쌓일수록 류 감독이 경기 전 취재진과 담소 때 종종 농담처럼 했던 말이었지만 4연패를 이룬 뒤에는 공식 회견에까지 꺼낸 것이다. 틈틈이 상대 전력 분석을 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하지만 노력보다는 운이 더 크게 부각되는 듯한 시선에 마침내 마음 속 얘기를 꺼낸 류 감독이었다.

    사실 감독 류중일에게는 적잖게 운이 따른 부분이 분명히 있다. 사령탑 취임부터 그랬다. 2010시즌 뒤 12월 30일 전임 선동렬 감독이 갑작스럽게 사퇴하면서 당시 작전코치던 류 감독이 이듬해 1월5일 구단의 13대 지휘봉을 잡았다. 당시 선 감독은 4년 계약 기간이 남은 상황이었다.

    '내 뒤를 부탁함세' 지난 2011년 1월5일 류중일 감독(오른쪽)이 전임 선동렬 감독의 뒤를 이어 삼성의 13대 사령탑에 취임한 뒤 악수를 나누는 모습.(자료사진=삼성 라이온즈)

     

    부임 첫 해 류 감독은 정규리그와 KS를 제패했다. 사령탑의 갑작스러운 교체에도 팀 분위기를 잘 추스른 삼성이 잘했지만 경쟁팀의 변수도 호재로 작용했다. 전년도 KS에서 삼성을 4연패로 압도했던 SK는 김성근 감독이 시즌 중 갑작스럽게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후 이만수 수석코치가 감독대행을 맡아 다시 KS에 나섰지만 삼성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2013년에는 KS에서 1승3패로 몰렸지만 상대팀 두산의 소극적인 마운드 운용에 시리즈를 뒤집어버렸다.

    2012년과 2014년에는 강력한 원군들이 왔다. '국민타자' 이승엽과 '뱀직구' 임창용 등 76년생 동갑내기들이 차례로 일본과 미국 생활을 접고 왔다. 이승엽은 2012년 KS MVP까지 오르며 2연패를 이끌었다. 임창용은 지난해 '특급 마무리' 오승환(한신)의 공백에 허덕이던 삼성을 구하며 4연패에 기여했다. 당시 "오승환의 돌직구가 가자 뱀직구가 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삼성과 류 감독에게 운이 따른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다.

    여기에 삼성은 그동안 꾸준하게 전력이 갖춰져 왔다. 국보급 투수 선 감독이 막강 불펜진을 구축했고, 최형우와 박석민, 채태인 등 중심타자와 박한이, 배영섭, 박해민 등 테이블 세터진이 조화를 이뤘다. 베테랑들의 가세로 신구 조화까지 이뤄진 삼성은 가만히 둬도 잘 돌아가는 팀으로까지 불렸다. 류 감독은 이른바 '관중일'이라는 웃지 못할 별명까지 얻기도 했다.

    ▲감독? 선수들 제 기량 발휘하게 해야

    하지만 류 감독과 삼성이 경쟁자들을 제치고 통합 4연패를 이룬 과정이 결코 쉽지는 않았다. 다소 운이 따랐다고는 하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처럼 부단한 노력이 있어야 결실로 맺을 수 있는 법이다.

    우승 전력을 갖추고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든 팀은 최근에도 여럿 나왔다. 최대한 선수들이 제 기량을 끌어낼 수 있도록 팀 분위기를 조성하는 게 사실 감독의 가장 큰 능력일 수 있다. 굴러온 복을 차버리는 감독도 적지 않다. 복장(福將)이 되기도 어렵다.

    여기에 선수단 운영과 경기 중 작전 등에 감독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하느냐 조절하는 것도 관건이다. 자칫 너무 깊숙하게 개입하면 오히려 농사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류 감독은 성공적으로 사령탑 역할을 수행해냈다.

    올 시즌 KBO 리그 최초로 정규리그 5연패를 달성한 삼성 선수단의 모습.(자료사진=삼성)

     

    메이저리그 텍사스는 신임 제프 배니스터 감독이 시즌 초반 지나친 개입으로 팀이 삐걱거리다가 후반기 선수들에게 맡기는 스타일로 바뀌면서 지구 우승까지 이뤄냈다. 올해 KBO 리그 역시 김경문 감독의 NC, 김태형 감독의 두산, 염경엽 감독의 넥센, 김용희 감독의 SK 등 선수들을 믿고 역할을 맡기는 팀이 가을야구에 나섰다.

    사실 올해도 삼성은 복덩이가 굴러왔다. 걸출한 신인 구자욱이 등장한 것. 대형 신인의 가세는 반가웠지만 기존 주전들과 출전 배분이 곤란했다. 베테랑들의 불만이 나오면 팀 분위기가 흐트러지는 경우는 다반사. 그러나 류 감독의 삼성은 큰 잡음 없이 해결했다. 물론 적기에 선수들의 부상이 생겨 교통정리가 된 점도 있지만 이런 문제를 매끄럽게 처리하는 것은 쉽지 않다.

    ▲KS 우승보다 어떤 경기를 펼치느냐

    이런 가운데 류 감독은 지금까지 겪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단순히 전력 누수도 문제가 아니라 팀 분위기 전체가 흔들릴 수 있는 위기다. 핵심 선수 3명이 빠진 상황에서 NC와 두산 등 강적들에 맞서기는 쉽지 않다. 비교적 순탄하게 삼성을 이끌어왔던 류 감독에게 닥친 어쩌면 첫 번째 시련일 수 있다.

    지난 20일 해외 원정 도박 혐의 선수들에 대해 사과하는 김인 삼성 구단 사장(가운데)과 선수단의 훈련 모습.(자료사진=삼성)

     

    현 상황에서 류 감독이 5연패를 달성하지 못한다고 해서 지탄받을 일은 아니다. 선수단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비판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해당 선수들은 모두 30대를 훌쩍 넘긴 성인들. 교육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고교팀 감독처럼 통제할 계제가 아니라 선수 본인의 각성이 중요한 사안이다. 야구가 아닌 생활의 문제다.

    다만 어떻게 KS를 치르느냐가 관건이다. 예기치 못한 악재에 상대가 누구든 삼성이 먼저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면 결과를 떠나 올 시즌은 실패에 가깝다. 그러나 우승을 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동안 삼성이 보여온 단합된 경기력을 보인다면 그것으로도 성공이다. 팬들 역시 단순히 결과에 일비일희하는 때는 지났다.

    그런 분위기를 만드는 게 감독의 역할이다. 현 위기에도 삼성이 KS에서 우승을 차지한다면 류 감독은 전설적인 명장이 될 것이다. 그러나 준우승에 머문다 해도 어떤 경기력, 특히 정신력을 보이느냐에 따라 진정한 명장임을 다시 입증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번 위기는 오히려 류 감독에게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던 저평가의 시선을 뗄 기회이기도 하다. 류중일 감독이 진정한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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