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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주의자" 발언 고영주…한국사회에 부활한 '매카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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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산주의자" 발언 고영주…한국사회에 부활한 '매카시즘'

    [임기상의 역사산책 125]

    국정감사장에서 발언하는 고영주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 그야말로 1950년대 매카시 상원의원의 부활을 방불케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가 공산주의자이고, 문 후보가 당선되면 우리나라가 적화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확신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민중민주주의자이자 변형된 공산주의자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와 새누리당 이재오 의원은 전향한 공산주의자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우상호·오영식·이인영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과거 친북 행위가 있었기 때문에 '친북·반국가행위자 인명사전'에 올랐을 것이다"

    "우리나라 국사학자 90% 이상은 좌편향이다"

    "친일인명사전은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이 놀라운 발언을 누가 했을까?

    대한민국의 공영방송이라는 MBC의 대주주이자 이 방송국의 관리·감독을 맡고 있는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라는 고영주가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마구 쏟아낸 얘기이다.

    이 인물은 대한민국에서 '공산주의자'라고 지목당하면 어떤 꼴을 당하는지 아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자신의 생명이나 가족은 물론 가문의 몰락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마치 고영주에게 "당신은 반민족행위자이자 민족반역자"라고 규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면 그 사람의 삶의 궤적이나 발언, 글 등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고영주는 그런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나는 확신한다"는 말로 대신했다. 정말 무책임한 발언이다.

    그런데 이 인물을 보면서 내 뇌리에 수십 년 전 미국에서 평지풍파를 일으킨 어느 괴이한 인물이 떠오른다. 바로 '매카시 상원의원'이다.

    매카시 상원의원은 기자회견 때마다 "내 손에 미국에서 암약하는 공산주의자들의 명단을 갖고 있다"고 떠벌렸다.

     

    1956년 2월 9일 조지프 매카시 상원의원은 미 공화당 여성당원회의에서 연설을 하던 중 갑자기 서류 한 뭉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흥분된 목소리로 외쳤다.

    "여기 국무부 안에서 활동하는 공산주의자 205명의 명단이 있습니다. 이들은 지금 이 시각에도 국무부에서 미국의 정책을 만들고 집행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른바 '매카시 광풍'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미국 전역에서 '빨갱이 사냥'이 시작됐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이 당시 미국에서는 잇따라 소련이 미국에 심은 스파이 사건이 터지고 그 전해에 소련이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해 소련과 공산주의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있었다. 여기에다 중국 대륙마저 모택동의 공산당 수중에 넘어가고 한반도에서 북한이 전쟁을 도발하면서 위기감이 고조되던 시기였다.

    풋내기 상원의원이었던 매카시는 그 당시 경력 위조, 상대방에 대한 명예훼손, 로비스트로부터의 금품수수, 음주추태 사건 등으로 정치적으로 사면초가에 몰린 상태였다. 그는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이같은 충격적인 이슈를 내민 것이다.

    마치 '쓰나미'처럼 국무부는 물론 미국 행정부 전체, 기업과 사회단체에서 '의심스러운 인물'을 색출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매카시가 상원 조사위원회장을 맡은 뒤로는 정부는 물론 학계·문화계·노동계, 심지어는 할리우드 스타들과 감독에 이르기까지 모든 분야에서 공산주의자 사냥이 벌어졌다. 500명이 넘는 사람들이 청문회에 불려 나왔다.

    매카시는 소환된 인물들에게 2가지를 요구했다.

    "당신이나 당신 주변 인물들은 공산주의자인가?"

    "당신이 알고 있는 공산주의자나 공산당 동조자 인물을 대라"

    많은 사람들이 증언을 거부하는 바람에 블랙리스트에 오르거나 해고 또는 감옥에 수감됐다. 민주주의의 종주국 미국이 암흑세계로 들어간 것이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영화배우 찰리 채플린도 이 사슬에 갇혔다.

    영화 '위대한 독재자'에서 연설하고 있는 찰리 채플린

     

    이 영화에서 채플린은 당시 세력이 커지고 있었던 히틀러를 희화화했다. 이어 나온 영화에서도 자본주의의 폐단을 풍자적으로 비판했다. 이런 사회 비판적인 예술행위 때문에 매카시즘의 마수에 걸렸다.

    채플린은 영화 시사회를 열기 위해 영국에 가던 길에 미국 정부로부터 추방 통보를 받았다.

    이유는 단 하나다. "공산주의자로 의심된다"는 것이다.

    채플린이 사망한 지 35년이 지난 2012년 미국 FBI의 의뢰를 받고 그의 뒷조사를 맡았던 영국 정보기관 M15는 자료를 공개했다.

    "채플린은 냉전시대 반공주의인 매카시즘의 희생자였다"

    마구잡이로 빨갱이 사냥을 하던 매카시는 별 소득이 없자 금단의 영역을 넘어버렸다.

    미 육군에 침투한 간첩을 색출한다는 명목으로 2차대전의 영웅 랠프 즈위커 육군 준장을 소환한 것이다.

    역시 2차대전의 영웅이었던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분노했다.

    매카시의 정치생명을 끝장낸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매카시의 저열한 '공산주의자 만들기'를 저지하기 위해 이 청문회를 TV방송으로 생중계하도록 했다. 이 청문회를 지켜본 수백만명의 시청자들은 그제서야 매카시의 심문이 막무가내에다 엉터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번에는 미국의 CBS 방송이 나섰다. 전설적인 언론인 에드워드 머로 기자가 'See It Now'라는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매카시의 주장을 조목조목 밝혀 그의 주장이 거짓이라는 것을 규명했다. 이렇게 해서 철옹성 같던 매카시의 신화가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여론이 급속하게 악화되자 미 상원은 1954년 12월 2일 67대 22로 매카시에 대한 견책안을 가결시켰다. 매카시는 자폐증상에 이어 알코올 중독과 우울증에 시달리다 3년 후 49세로 죽었다.

    연방대법원은 그동안 공산주의자로 누명을 쓴 증인들을 모두 사면 복권했다. 영화배우 험프리 보가트는 이렇게 회고했다.

    "국가를 부르는 동안 엉덩이를 긁적거린 사람은 모두 공산주의자 혐의를 받았다"

     

    매카시의 언행은 어이없게 60년 후 대한민국에서 재현되고 있다. 나와 의견이 다르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아니면 '공산주의자'로 매도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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