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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함을 통해 불편함에 대항하는 것이 예술"



공연/전시

    "불편함을 통해 불편함에 대항하는 것이 예술"

    5일 서울 대학로 SH아트홀에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정치적 검열을 규탄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열렸다.

    문화연대, 한국작가회의, 서울연극협회, 언론개혁시민연대, 한국문화정책연구소, 대학로X포럼 등이 주최한 ‘검열과 파행’이라는 제목의 예술인 연대포럼이었다.

    이날 기조발언을 한 극작가 고연옥의 글 전문을 공개한다.

    극작가 고연옥. (사진=한국작가회의 제공)

     

    <예술은 당신을="" 불편하게="" 합니다="">

    - 극작가 고연옥

    더 깊은 고민과 성찰없이 이 자리에 나오게 되어 부끄럽습니다.

    이번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지원과정에서 직원들이 심사과정에 개입하거나 지원이 결정된 예술가에게 포기할 것을 종용했다는 사건에 대해 이것이 어떤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위험성을 가지고 있는지, 제 소견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국가기관이 작가, 혹은 대본을 검열한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를 국민의 기본권리로 명시한 대한민국 헌법에 위배되는 심각한 범죄입니다. 마땅히 그 잘못을 지적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책임자 처벌까지 요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일들이 그러하듯이 이번 사태는 어떤 징조이며, 상징이고, 또 어떤 계획의 과정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국정감사 자리에서 김종덕 문체부 장관은 “문화예술계에서 정치적 이슈화에 골몰하는 이들이 있는 것이 문제”라고 했고, 한선교 의원은 “시민의 예산지원이 이뤄지는 작품이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우려가 있다면 지원철회가 마땅하다”고 했으며, 문화예술위 관계자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만큼 지원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고려하는 것은 공공기관의 의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정부가 公共性이라는 이름으로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검열하고 금지시킬 수 있다는 것으로 민주주의에 위배되는 범죄행위를 스스로 시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발언에 대해 안타깝게도 일반 국민들은 예술가들만큼 분노를 느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우리사회는 이미 오래 전부터 개인의 자율성이나 자유로운 토론과 합의, 인간에 대한 예의와 상식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질서가 무너져 버렸습니다.

    정부는 지금까지 우리가 익히 봐온 많은 일들처럼 이 사태 역시 자신의 잇속만을 주장하는 ‘예술가들만의 문제’로 갈라놓으려는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지금, 예술이 예술가의 것만이 아니라면, ‘예술이란 무엇인가?’ 라는 이야기를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예술을 억압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국민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도 얘기해야 할 것입니다.

    고통 없는 성찰은 있을 수 없듯이 우리 역시 예술의 힘을 믿으며, 나 자신의 성취보다도 더 많은 개인들의 삶과 이 시대의 문제에 대해 깊이 사유했는지, 예술가의 자유와 상상력이 우리 사회의 소중한 가치임을 느끼게 하는 작업을 해왔는지에 대해 반성해야 될 것입니다.

    예술가의 가치가 돈으로 환산되는 시대를 살면서, 관객들은 극장에서 충분히 즐기기를 원하는 듯 보입니다. 실컷 웃거나 울거나 혹은 환호하며 큰 감동을 받고 돌아가야만 그 작품과 예술가를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그렇고 문화가 그러하듯, 또 시대를 앞서갔던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예술 역시 우리를 불편하게 하고, 고통스럽게 하며, 논란을 일으키고, 과연 나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라는 고민을 끊임없이 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예술은 우리 시대, 우리 사회, 수많은 인간들의 삶에 내재되어 있는 어떤 문제를 꺼내놓으며 그 불편한 진실과 대면하는 경험을 통해 그것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생각하게 해야 합니다.

    즉, 불편함을 통해서 불편함에 대항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예술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건강한 예술적 풍토를 가졌다는 것은 국민의 자부심이며, 한 나라의 국격이 됩니다.

    사실 우리는 꽤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검열을 당해왔습니다.

    지원금 혹은 국공립단체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하는 작업이니 자칫 관객들을 어렵게 하거나 불편하게 하는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 한다든지, 정치적으로 해석될 이야기는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그런 검열의 시대가 적극적으로 실현될 것임을 확인시켜주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코 예술가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예술이 단지 오락으로 전락할 때, 국민들의 의식을 검열하며, 주도하고, 순응시키는 일은 아주 쉬워집니다.

    나치스, 일본 군국주의 등 수많은 파시스트 정권의 역사 속에서 빠질 수 없는 장면이었고, 우리는 그 이후 수많은 예술가들이 참회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불행히도 우리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시대를 맞닥뜨리게 될 위험이 있다고 느껴집니다.

    세월호 사건에서 보듯 국민을 살리는 데는 무관심하고 무책임했던 정부가 더 큰 일이 일어나도 무감각해지는 사회로 만들어 갈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부조리한 일을 당한 우리 동료 몇 사람의 문제가 아닌, 또 언젠가 우리가 겪을 문제라는 인식도 아닌, 이 시대 예술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대전제로부터 실마리를 찾고 우리의 지향점을 좀 더 명확히 벼리면서 더 끈질기게 싸워야 될 싸움이라고 생각합니다.

    극장에서라도 현실을 잊고 싶다는 관객에게 왜 당신은 날 웃겨주지도 않고, 카타르시스를 주지도 않고, 왜 자꾸 불편하게 만드냐는 비난을 받을 각오도 해야 합니다.

    환호와 박수를 받는 인기 예술인의 자리를 포기하고, 죄송합니다만, 예술은 당신을 불편하게 하는 겁니다 라는 말을 해야 합니다. 그들이 우릴 싫어할 수는 있어도 우리가 하는 작업이 이 시대에 의미 있는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거라는 희망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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