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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조악하다'며 기각한 국정원 파일, 현직판사들도 갸우뚱



법조

    대법원 '조악하다'며 기각한 국정원 파일, 현직판사들도 갸우뚱

    상고법원 앞두고 정권 정통성 판단 부담스러워 유무죄 하급심에 맡긴 듯

    16일 오후 대법원 대법정에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상고심 선고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대법원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선거개입 사건의 원심을 파기하고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윤창원기자/자료사진

     

    대법원이 끝내 증거로 인정하지 않은 국정원 직원의 이메일 첨부파일로 논란이 일고 있다. 이는 대선개입 혐의로 2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사건이 파기된 주된 이유가 됐다. 내용이 일부 조악하고 정보의 근원, 기재 경위 등이 불분명하다며 대법원이 이를 기각한 것이다. 하지만 내용의 조악함으로 전자문서의 증거능력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한 대법원의 판단에 현직 판사들도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 '내게보낸메일함'에서 발견된 파일도 내용 '조악하다' 증거 불인정

    국정원 트위터팀 소속 김모씨의 이메일 중 '내게보낸편지함'에서 발견된 2개의 첨부파일은 원 전 원장의 재판 결과를 뒤흔들었다. '425지논', 'ssecurity'라는 이름의 이 파일에는 업무 일지, 원장님 지시사항, 트위터 활성화 방법은 물론 결정적으로 트위터 계정 목록과 직원들 이름까지 나열돼 있었다.

    김씨는 검찰 조사에서 파일을 작성했다고 진술했지만 법원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부인했다. 1심은 본인이 작성 사실을 부인한 만큼 작성자가 불분명하다며 증거로 채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심은 형사소송법 315조를 근거로 이 파일들을 핵심 증거로 되살렸다. 형사소송법 315조 2,3호에 따르면 '상업장부 항해일지 기타 업무상 필요로 작성한 통상문서'와 '기타 특히 신용할 만한 정황에 의해 작성된 문서'는 증거로 인정된다. 2심은 이 문서들이 '내게보낸 메일함'에서 발견됐고 매일 반복적으로, 업무상 필요로 작성된 점을 들어 증거로 인정된다고 봤다.

    특히 2심 재판부는 "문서 내용 중 일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해명되지 않았거나 일부에 작성자의 사적인 영역에 대한 기재가 들어가 있다고 해서 그 이유만으로 증거능력을 부정할 수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대법원은 내용을 문제삼아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 재판부는 "425지논 파일의 내용 중 상당 부분은 출처를 명확히 알기도 어려운 매우 단편적이고 조악한 형태의 언론 기사 일부분과 트윗글 등이고, 시큐리티 파일 기재 트위터 계정은 그 정보의 근원, 기재 경위와 정황이 불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업무와 무관하게 개인적 필요로 수집해 기재해 놓은 것으로 보이는 여행․상품․건강 관련 다양한 정보, 격언, 직원들로 보이는 사람들의 경조사 일정 등 신변잡기의 정보도 포함돼 있어 업무를 위한 목적으로만 작성된 것이라고 보기도 어렵다"고 덧붙였다.

    같은 전자파일의 성격을 두고 2심과 대법원이 완전히 다른 해석을 내린 것이다. 대법원의 소극적인 해석을 두고 법조계에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 '일기에 낙서 있다고 증거 안되나'...전자문서 증거능력 좁게 해석 논란 예상

    한 현직 부장판사는 "선장의 항해일지나 상인의 가계장부에도 개인적인 내용이나 조악한 낙서같은 내용이 섞여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증거가 안된다는 것은 법 논리상 다소 이상하다"고 말했다.

    또다른 수도권 현직 판사는 "일기나 일지가 아무리 본인만 알아볼 수 있게 조악하게 쓰여도 비슷한 형식과 패턴을 반복한다면 증거로 인정될 수 있다"며 "업무상 쓰던 문서라도 본인만 참고하는 것이기 때문에 개인적인 내용이 포함될 수 있는데 대법원이 이를 너무 엄격하게 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법원의 이번 판단은 전자문서의 증거능력을 지나치게 좁게 해석해 혐의 입증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디지털 시대에 손으로 작성하기 보다 대부분 전자문서로 업무를 보기 마련인데, 이런 식으로 전자문서에 대한 증거능력을 좁게 해석한다면 나중에 재판에 가서 자기가 작성하지 않았다고 다 부인해버리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검찰도 이 부분을 지적했다. 특수부 모 검사는 "이메일의 '내게보낸메일함'에서 발견된 파일조차 증거로 채택되지 않는다면 앞으로 어떤 것이 증거가 될 수 있겠느냐. 자기 컴퓨터에서 발견됐어도 내가 쓰지 않았다고 부인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이처럼 대법원의 이번 판결로 전자문서 증거능력 범위에 대한 격론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선거법 판단만은 피해간 대법원의 애매한 행보, 상고법원 의식했나

    대법원이 증거능력만 판단하고, 공직선거법 적용에 대해서는 따로 법리 판단을 내리지 않아 모호한 자세를 취했다는 비판도 있다.

    이 파일들이 증거에서 빠지면 인정되는 트위터 계정이 716개에서 175개로 내려간다. 국정원 직원들이 사이버 공간에 전파한 정치 선거 관련 27만4800천여건의 트윗글 중 선거법 위반에 해당하는 글도 13만6천여개에서 11만3천여개로 대폭 줄어들게 된다.

    선거법 위반인지 아닌지가 1심부터 핵심 쟁점이 됐던 상황에서, 대법원이 증거법 위반 문제를 핑계로 이에 대한 판단을 피해가면서 양측 모두에 여지를 남기는 상황이 됐다.

    일부에서는 박근혜 정부의 법적 정통성이 걸린 사안인 만큼 상고법원 설치를 추진하는 대법원이 부담을 피하기 위해 유무죄 판단 없이 파기환송하고 하급심의 판단을 종용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한 현직 판사는 "상고법원 설치가 한창 추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법원이 정권의 정통성이 달린 문제에 대해 대놓고 법리 판단을 하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러웠을 것이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검찰 출신 변호사는 "2심처럼 선거법 위반이 된다고 하면 대법원이 정권의 정통성을 부정하는게 되고, 선거법 위반이 안된다고 했다면 오히려 야권 등에 역풍을 맞았을 것이다. 대법원이 상고법원 설치를 앞두고 아주 영리한 선택을 한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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