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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오늘 뭐했지?]10대 강호동, 최연소 천하장사 오르던 날



스포츠일반

    [1990:오늘 뭐했지?]10대 강호동, 최연소 천하장사 오르던 날

    "엄마 천하장사 먹었어요." 강호동은 연예인이기 이전에 씨름 선수였다. ( 당시 경기 화면 캡처)

     

    [90년대 문화가 다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토토가'는 길거리에 다시 90년대 음악이 흐르게 만들었습니다. 사실 90년대는 스포츠의 중흥기였습니다. 하이틴 잡지에 가수, 배우, 개그맨 등과 함께 스포츠 스타의 인기 순위가 실릴 정도였으니까요. 그렇다면 90년대 스포츠에는 어떤 일이 있었을까요. 지금으로부터 25년 전. 90년대 문화가 시작된 1990년 오늘로 돌아가보려 합니다.]

    강호동(45)하면 어떤 단어가 떠오르세요. 어린 아이들은 '예체능', 혹은 '스타킹'을 떠올릴 수도 있고, 학생들은 '1박2일'이라는 단어를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조금 더 나이가 있으신 분들은 '행님아'를 떠올릴 수도 있습니다. 20년 이상 연예인으로 활동했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하지만 저는 강호동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를 꼽으라면 '천하장사'를 꼽겠습니다.

    물론 위 단어를 떠올렸던 분들도 강호동이 연예인이기 이전에 씨름 선수였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을 겁니다. 물론 1989년 혜성처럼 나타나 1992년 은퇴를 했으니 당시 경기를 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씨름 선수 이미지보다는 연예인 이미지가 더 강할 수밖에 없겠죠.

    25년 전 오늘. 그러니까 1990년 3월12일은 바로 강호동이 민속씨름 역사상 최연소 천하장사에 오른 날입니다. 당시 모래판에 불었던 강호동 열풍을 다시 돌아보겠습니다.

    성남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제18회 천하장사대회.

    당시 씨름판은 '황제' 이만기의 독무대였습니다. 앞서 17번의 천하장사대회에서 10번의 타이틀을 거머쥘 정도로 딱히 적수가 없었습니다. 다소 작은 체구에도 화려한 기술을 앞세워 모래판을 정복했습니다. 여기에 천하장자 1품 2회를 차지했으니 말 그대로 이만기 없는 천하장사대회 결승은 상상하기 어려웠습니다.

    이만기 외에는 이준희(3회), 이봉걸(2회), 장지영(1회), 김칠규(1회)가 전부입니다. 천하장사 타이틀을 따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이만기에게 새파란 10대 강호동이 도전장을 던졌습니다. 일단 이틀 전 열린 백두급 결승에서는 강호동이 3-1로 이겨 장사 타이틀을 획득, 기선을 제압한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12일 열린 천하장사대회 준결승전. 강호동과 이만기가 일찌감치 붙었습니다. 1989년 7월 처음 백두급 장상에 오른 강호동은 아직 천하장사 타이틀이 없는 상황. 반면 이만기는 10번이나 천하장사에 오른 베테랑이었습니다. 그런 이만기를 상대로 강호동은 특유의 괴성을 지르면서 준결승전을 시작합니다.

    팽팽한 신경전이 펼쳐졌습니다.

    첫 판은 강호동이 먼저 샅바를 놓쳐 위기를 맞았습니다. 이만기 역시 샅바를 놓친 사이 강호동이 잽싸게 달려들어 밀어치기로 끝냈습니다. 다음 판에서는 샅바 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연신 샅바를 풀면서 심판에게 항의를 하다가 경기기 시작는데요. 결국 강호동의 밀어치기로 승부가 갈렸습니다. 이만기는 강호동의 악수를 뿌리치고 내려올 정도로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리고 이만기는 그 해 9월 씨름판을 떠납니다. 강호동 때문이라는 말도 많았지만, 사실 부상이 가장 큰 이유였습니다. 이만기의 통산 성적은 345전 293승 52패. 승률 84.9%라는 놀라운 성적이었으니 '모래판의 황제'라는 애칭이 따라다니는 것이 당연했습니다.

    이제 결승전입니다. 결승 상대는 한라급이었던 유영대였는데요. 체중 차이가 25kg이었으니 결과는 싱거웠습니다. 강호동이 3-0 완승을 거두고 생애 첫 천하장사에 올랐는데요. 19세의 나이로 천하장사에 오르며 최연소 기록을 세웠습니다. 종전 기록은 이만기의 21세였습니다.

    "방송도 천하장삽니데 이~." 강호동은 씨름 천하장사에서 방송 천하장사로 변신했다. (자료사진)

     

    물론 이 기록은 1993년 제28회 천하장사대회에서 우승한 백승일에 의해 깨졌습니다. 백승일은 17세6개월의 나이로 정상에 올랐습니다.

    이후 씨름판은 강호동 전성시대였습니다. 18회 대회를 시작으로 19회, 20회까지 천하장사를 3연패했고, 23회와 24회 대회에서도 꽃가마를 탔습니다. 강호동이 놓친 21~22회 대회는 황대웅이 천하장사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강호동은 1992년 3월 24회 천하장사대회 정상에 오른 뒤 5월 돌연 은퇴를 선언합니다. 기간으로 따지면 3년 정도의 짧은 민속씨름 선수 생활이었습니다. 학업이 주 이유였습니다. 당시 강호동은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만기 선배처럼 대학 공부를 한 뒤 지도자의 길을 걷겠다"고 했는데요.{RELNEWS:right}

    하지만 이듬 해인 1993년 6월 씨름 지도자가 아닌 개그맨으로 전격 데뷔합니다. 바로 '코미디 동서남북'이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요. 이후 '행님아'로 알려진 '소나기'로 스타 반열에 오른 뒤 '천생연분', 'X-맨', '무릎팍 도사' 등에서 정상급 MC로 활약했고, 지금도 활약하고 있습니다.

    비록 3년 정도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씨름 선수 강호동은 연예인 강호동 못지 않게 대단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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