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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뒤의 형벌…'응징 사회'에서 정의는 구현될까



사건/사고

    형벌 뒤의 형벌…'응징 사회'에서 정의는 구현될까

    "빈곤과 사회적 소외 등 구조적·환경적 요인 무시"

    (자료사진)

     

    "흉악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을 만천하에 공개하는 게 과연 국민의 알권리를 위한 것일까요?"

    서울의 한 경찰서 수사관은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푸념이 잔뜩 섞인 목소리였다. 그는 "최근 경찰청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흉악 범죄자의 얼굴 공개를 적극 검토하라는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하달했다"고 말했다. 범죄자의 얼굴과 신상공개 기준이 들쭉날쭉하다는 비판 여론에 따른 것이라지만 너무나 가혹하지 않느냐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 경찰청은 내부 회의를 통해 검거된 피의자가 호송될 때 언론의 촬영을 허용하라는 지시까지 내렸다. 이렇게 되면 지난달 자신의 아내와 두 딸을 목졸라 살해한 '서초동 세모녀 살인사건'의 범인 강모(48) 씨의 얼굴도 공개될 수 있다.
     
    ◇ 흉악범 얼굴공개·신상공개 대상 확대·보호수용제 추진…

    사회적 지탄을 받는 이들의 신상정보를 공개하자는 방침은 군으로도 이어졌다. 병무청은 올해 7월부터 병역 의무를 고의로 면탈하거나 기피하는 이들의 인적사항을 공개한다. 지난해 12월 병역기피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내용을 담은 병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데 따른 것이다. 신상정보의 공개는 범죄자의 인권을 침해할 뿐만 아니라 그 가족들에게까지 주홍글씨를 찍히게 한다는 우려는 저만치 밀려나 있다.
      
    '형벌 뒤의 형벌'을 덧씌우려는 기류는 최근의 형사정책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법무부는 성폭력, 살인 등의 강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에 대해 형기 종료 후 일정 기간 '보호 수용'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보호수용법안을 입법 예고했다. 오는 4월에는 중범죄자에 대한 보호관찰 등을 전담하는 특정범죄관리과도 신설할 예정이다.

    안전 사회를 구현하겠다는 명분으로, 범죄자에 대한 집중적인 사후 관리를 통해 강력 범죄의 재발을 방지하겠다는 게 법무부의 설명이다. 하지만 징역 등 법적 처벌이 끝난 뒤까지 자유를 박탈하거나 제한하는 강제적 조치라는 점에서 가혹하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형사정책의 기조가 단순히 응징으로 흘러선 안된다는 지적이다.
     
    (자료사진/이미지비트 제공)

     

    ◇ "강력한 처벌로는 범죄예방 효과 없어"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이호중 교수는 "빈곤과 사회적 소외 등 구조적·환경적 요인을 무시한 채 개인의 악성으로만 범죄 요인을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형벌을 강화하고 중범죄자들을 사회적으로 격리시키는 것이 범죄 예방 효과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정책을 마련할 때에도 이런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중앙대 사회학과 신광영 교수는 "강력한 처벌의 범죄 예방 효과 여부에 대해 '효과가 없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 견해"라면서 "강력한 처벌 기조를 유지하는 미국의 살인사건 발생률이 전 세계적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사법 당국의 과도한 형벌권 행사가 결국 인권 침해로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보호수용제도를 놓고 인권단체들은 2005년에 폐지된 사회보호법의 부활이라고 주장하는 가운데, 천주교 인권위원회 김덕진 사무국장은 "이미 법에 정한 징역형을 다 살고 난 사람의 신체를 또 구속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범죄를 예방하겠다는 정부가 처벌 강화에만 초점을 맞추는 이유는 무엇일까.

    ◇ 신자유주의가 낳은 마녀사냥의 형벌정책

    이호중 교수는 "큰 틀에서 보면 복지 정책이 후퇴하면서 신자유주의적 성향이 형벌정책에도 영향을 준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국가가 강조될 때는 범죄자에 대한 교정과 교화가 강조되는 반면, 신자유주의가 팽배할 때는 범죄 자체를 개인의 문제로 취급한다는 설명이다.

    그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손쉽게 위험한 사람들을 낙인찍은 뒤 사회적으로 격리시켜 '우리는 안전하다'는 환상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며 "형벌을 강화하는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음을 간과해선 안된다"고 지적했다.
     
    {RELNEWS:right}김덕진 사무국장도 "우리나라뿐 아니라 다른 나라도 사회적 위기나 혼란이 야기될 때 사형을 집행하거나 강력 범죄의 형량을 높이는 모습을 보여준다"면서 "정부가 국민을 보호할 수 있는 도리를 다 했다는 모습을 강조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강대 사회학과 전상진 교수는 "여론이 응징과 처벌에 지나치게 호응하는 것은 마녀사냥적 측면이 있다"고 밝혔다. 스스로를 을(乙)이라고 생각하는 다수 국민들이 자신들이 느끼는 울분을 해소할 대상을 찾아 헤맨 결과라는 것이다.

    "통치자 입장에선 사회적 혼란에 대한 책임을 마녀에게 전가시키고 회피함으로써 자신의 정통성을 유지하거나 확인받을 수 있지 않겠어요?"

    사회 시스템을 개선하려는 노력의 포기가 결국 응징의 사회를 낳고 있다는, 전 교수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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