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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역 4개월 앞두고 왜?" 한 군인의 죽음, 군 대응 도마에



국방/외교

    "전역 4개월 앞두고 왜?" 한 군인의 죽음, 군 대응 도마에

    헌병대 조사관, 결과 짜맞추기 질문에 '막말'까지

     

    지난해 말 부산 해운대에 있는 육군 53사단에서 근무 중이던 한 장병이 숨진 사건과 관련해 군 당국의 허술한 대응이 도마에 올랐다.

    해당 장병이 생활관에 피를 남기고 점호에도 불참했지만, 군 당국은 1시간 뒤에야 사태 파악에 나섰고, 불과 5백m 거리에 있던 장병의 시신을 발견하는 데까지 2시간여가 걸렸다.

    사고 원인 조사에 나선 군 당국은 짜맞추기식 수사에 막말까지 일삼아, 유가족들이 군의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며 각종 의혹을 제기하고 나섰다.

    ◈ 바닥에 뿌려진 핏자국, 점호 불참한 장병…발견까지 2시간 걸려

    육군 53사단에서 근무하던 이모(27) 상병이 숨진 채 발견된 것은 지난달 29일 오전 8시 10분쯤.

    이 상병은 생활관에서 약 5백m 떨어진 예비군 훈련장 화장실에서 목을 맨 채 발견됐다.

    생활관에서 성인 걸음으로 불과 5분도 걸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군 당국은 이 상병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인지한 지 1시간 30여 분 뒤에야 이 상병을 발견했다.

    군 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이날 오전 6시 40분쯤, 숙소를 나서는 이 상병을 한 사병이 마지막으로 목격했다.

    20분 뒤인 오전 7시쯤, 군은 생활관 아침 점호를 하던 중 이 상병이 자리를 비웠다는 것을 파악했지만 별다른 의심도,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결국, 군은 이 상병의 당직근무 교대시간인 7시 30분이 지나도 이 상병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뒤늦게 수색에 돌입했다.

    이 상병이 주둔 건물을 나간 지 1시간이 지나서야 수색에 나선 것이다.

    문제는 이 상병이 사용하던 침구류에서 이 상병이 흘린 것으로 보이는 많은 양의 피가 발견됐고, 심지어 바닥에도 혈흔이 남아 있었지만 군 당국은 물론 함께 생활하던 장병들도 이 상병을 발견하기까지 2시간 동안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몰랐다는 점이다.

    참고인 신분으로 군 당국의 조사를 받고, 현장을 확인한 이 상병의 지인은 "사고 당일 저녁까지 군 당국은 혈흔에 대한 언급을 전혀 하지 않다가, 가족들이 의심을 품고 상황을 재차 물어보자 그때야 '혈흔이 발견됐다'는 말과 함께 생활관을 공개했다"며 "오후 7시쯤 현장을 확인한 결과 사물함 아래에 있던 이 상병의 모포에는 흥건히 피가 묻어 있었으며 감식 결과 바닥에서도 다량의 피가 발견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발견 당시 이 상병의 왼쪽 손목에는 깊이 2cm가량의 큰 상처가 있었고, 혀의 일부분도 절단된 채 발견됐다.

    또 부검 결과 장기에서는 약으로 추정되는 다량의 가루 성분이 검출됐다.

    군은 이러한 정황으로 미뤄, 침구류에 있던 혈흔은 이 상병이 왼손을 자해하면서 남겼으며, 이후 군이 행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2시간여 동안 추가로 2~3차례 자살을 시도한 끝에 숨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상병의 유가족들은 군이 사병이 사라진 지 1시간이 넘도록 어디에 있는지 의심조차 하지 않았고, 생활관에서 함께 있던 장병들이 벽과 바닥에 남아 있는 핏자국을 아예 몰랐다는 점을 이해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이 상병의 유가족은 "군은 공식적으로 인원을 점검하는 아침 점호 시각에 부대원이 이유 없이 사라졌는데도 아무런 의심을 하지 않았다"며 "게다가 함께 생활하던 동료들이 기상 시각이 한참 지난 뒤까지 매트릭스를 다 적신 혈흔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점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 "여자 문제 없었나?" 군 헌병대 조사관 참고인에 '막말'

    조사 과정에서 군의 태도와 수사 방식도 도마에 올랐다.

    이번 사건과 관련한 조사를 받은 다수의 참고인은, 군 헌병대 조사관으로부터 개인 신변에 대한 추측성 질문과 인격 모독성 '폭언'으로 큰 상처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헌병대로부터 조사를 받았다는 한 이 상병의 지인은 "처음 조사를 시작할 때부터 고압적인 분위기에서 이 상병의 주변 사람에 대한 개인 신변을 물어보거나 본인과 직접 관련이 없어 알 수 없는 질문들을 던졌다"며 "심지어 고인의 지인 사이의 금전적 문제나 이성 문제에 대해 추측성 질문을 던지는 등 객관적 근거 없는 떠 보기 식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또 이 상병과 함께 근무했던 한 병사는 헌병대의 조사 과정에서 이 상병의 여자친구를 잘 아느냐 질문과 함께 '혹시 이 상병의 여자친구와 부적절한 사이는 아닌가'라는 등의 인격 모독성 질문까지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군 당국이 '이 상병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라고 단정한 채, 이성 문제 등 외부 갈등 요인을 짜 맞추기 위해 무리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유가족 '군 믿을 수 없어', 군 '수사 결과 기다려달라'

    이 때문에 유가족들은 군이 명확한 진상규명을 위한 수사 의지가 없는 상태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이 상병의 한 유가족은 "제대를 불과 4개월 앞둔 상황에서 스스로 뼈가 보일 정도로 깊은 상처를 내고, 그것도 모자라 5백m 거리에 있는 화장실을 찾아가 목숨을 맬만한 동기가 전혀 없다"며 "군의 수사 태도와 내용까지 듣고 나니 조사 과정과 지금까지의 결과를 전혀 신뢰할 수 없다"고 호소했다.

    허술한 대응과 각종 의혹에 대해 53사단 측은 '수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어떤 말도 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53사단의 한 관계자는 "유가족이나 여론의 여러 가지 의심에 대해 지금으로써는 할 말이 없으나 수사 결과를 보면 알 것"이라며 "관계 기관이 수사를 계속하고 있으며 조만간 유가족들을 만나 중간 결과를 설명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또 군 헌병대의 수사 방향과 태도에 대해서는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알 수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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