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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하러 왔는데 성매매 강요… 무너진 '코리안 드림'



사건/사고

    공연하러 왔는데 성매매 강요… 무너진 '코리안 드림'

    예술흥행 비자 이주민 노동착취·성매매강요 심각… 절반 가까이 도망자 신분

    (자료사진)

     

    필리핀에서 밴드로 활동하던 A 씨는 "한국에서 공연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말을 믿고 '코리안 드림'을 꾸며 한국으로 향했다.

    입국 비용이 상당했지만, 현지 에이전시를 통해 소개받은 한국인 브로커는 "월급에서 조금씩 갚아나가면 된다"며 A 씨를 안심시켰다.

    하지만 A 씨 앞에 닥친 현실은 필리핀에서 들은 얘기와는 전혀 달랐다. 하루 12시간씩 일하는데 공연 횟수는 기껏해야 하루 2번뿐 실제로 하는 일은 손님 '말벗'을 하며 '술시중'을 들어야 했다.

    담당한 손님이 올리는 매상인 '주스 쿼터'를 채우지 못하면 업소 매니저에게 혼이 나거나 욕을 들었다. 야한 옷을 입고 춤을 추라는가 하면, 손님이 치근대거나 몸을 더듬어도 가만히 있으라고 강요했다.

    급기야 A 씨는 주스 쿼터뿐 아니라 '바 파인'을 나가라고 강요받기 시작했다. 손님과 함께 나가 일정 시간 데이트를 한다는 명목이지만, 사실상 성매매를 하는 '2차'를 가라는 요구였다.

    이렇게 해서 A 씨가 손에 쥔 돈은 기껏해야 월 100만 원, 입국 비용으로 진 빚이 줄어들기는커녕 생활비를 아무리 아껴도 그녀만 보고 사는 고향의 가족들에게 돈을 보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참다못해 도망친 A 씨는 미등록 신분인 불법체류자가 됐다. 여권과 외국인등록증은 입국할 때부터 사장이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예술흥행(E-6) 비자로 한국에 들어온 이주여성 3명 중 2명은 성폭력 피해에 시달리는 등 인권유린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부터 5개월간 예술흥행 비자를 가진 이주민 151명을 대상으로 실태를 조사한 결과 전체 151명 중 83명(55.0%), 여성 120명 중 82명(68.3%) 등은 업주나 손님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17일 밝혔다.

    예술흥행 비자는 수익이 있는 예술활동이나 공연·연극·광고 등에 출연하기 위해 한국에 들어오려는 외국인들에게 정부가 입국을 허가하는 것으로 외국인이 2년 동안 취업활동을 할 수 있는 체류 자격을 부여한다.

    현재 E-6 비자로 한국에 체류 중인 이주민은 미등록 상태를 포함해 약 5,000명에 달한다. 전체 한국 체류자 4만 9,000여 명이 가진 비자 중 3번째로 많지만, 미등록률은 43.7%로 가장 높다. 그만큼 도망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많다는 방증이다.

    이들 대부분은 입국할 때부터 빚을 지고 시작한다. 입국 비용 명목으로 필리핀의 경우 평균 100여만 원, 몽골의 경우 260여만 원이 소요되는데 고스란히 이 돈은 한국 작업장 사장에게 갚아야 하는 빚으로 남는다.

    어떤 일을 하는지 충분한 설명도 듣지 못한다. 필리핀 이주민의 20%는 근로계약서가 한국어로만 작성됐다고 답했다.

    본 적도 없는 계약서에 처음부터 본인의 사인이 적혀 있는 경우도 있었다. 그마저도 카페(83.3%)나 나이트클럽(77.3%) 등에 끌려간 경우는 아예 계약서를 보지도 못했다고 답했다.

    제대로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다 보니 현지에서 구두로 한 약속과는 전혀 다른 노동 조건이 펼쳐졌다.

    조사 대상 이주민 중 95명(62.9%)은 계약서와 다른 업무를 강요받거나 계약서 업무내용 자체를 모르고 있었다. 놀이공원 근로자를 제외한 이주민 129명 중 65명(53.4%)은 계약서 상의 임금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했다

    업무 시간이 아닌 시간이나 휴일에 강제로 일하는가 하면, 외출조차 하지 못하고 개인 시간에도 늘 감시를 받는 경우도 절반에 가까웠다.

    본인이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이 한 업무를 살펴보면 고객 말벗(42.9%), 성매매(18.3%), 랩댄스(17.5%), 출장데이트(15.9%) 등 순으로 E-6 비자가 악용돼 상당수가 성매매 현장에 '인신매매'를 당한 사실이 드러났다.

    업주에게 항의해도 돌아오는 건 욕설과 매질뿐이었다. 응답한 이주노동자의 53%는 언어폭력을, 46.4%는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고 답했다.

    도망치고 싶어도 고용업체가 여권을 압류하거나(46.0%), 외국인 등록증을 빼앗았기 때문에(49.1%) 도망치면 곧바로 미등록 신분, 즉 불법체류자가 되고 만다.

    인권위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예술흥행 비자 소지 이주민의 인권 향상을 위한 법제 개선 방안과 관계기관 협력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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