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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삐라로 싸우다니…



기자수첩

    21세기에 삐라로 싸우다니…

    [변상욱의 기자수첩]

    테마가 있는 고품격 뉴스, 세상을 더 크고 여유로운 시선으로 들여다보는 CBS <김현정의 뉴스쇼=""> '기자수첩'에서는 정의롭지 못한 것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을 담았다. [편집자 주]

    [변상욱의 기자수첩 전체듣기]

    탈북자단체인 자유북한운동연합 회원들이 지난달 10일 오전 경기도 파주 오두산전망대 주차장에서 북한 노동당 창건 기념일이자 황장엽 전 당비서 4주기를 맞아 대북전단을 살포했다. (사진=황진환 기자)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주말 성명을 내고 "삐라살포 망동을 중단하지 않는 한 그 어떤 대화나 관계 개선이 있을 수 없다"고 강하게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우리 정부도 이에 맞서 헌법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면서까지 남북관계 개선을 추진할 수는 없다는 입장. 이리되면 남북관계의 진전은 당분간 어려워 보인다.

    그런데 지난 31일 홍대 일대에 박근혜 대통령을 풍자하는 전단 4천여 장이 뿌려졌다. 박 대통령을 희화하고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문구가 적혀 있다. 그렇다면 이것도 헌법상 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할 것인가. 정부는 단속에 나설 것이다. 세월호특별법 제정촉구 전단도 막았는데 대통령 비난 전단을 그냥 둘 수는 없을 테니 우리 정부의 이중 잣대와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르게 되었다.

    ◈ 뿌리고 거두는 건 누구 맘대로?

    전단의 시작은 16세기 루터의 종교개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예수 그리스도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장면과 교황의 발에 왕들이 입을 맞추는 모습을 나란히 그려 가톨릭의 절대적 권위와 부패를 풍자한 전단이 뿌려진 것이 근대 전단 살포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전단이 전쟁에 동원된 건 제 2차 세계대전 때 ‘총력전’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다. 독일 참모차장 에리히 루덴도르프가 착안한 이 개념에서 심리전이 등장하고 전단은 전방과 후방의 군인·민간인을 상대로 뿌려졌다. 이때 독일과 미국이 약간의 차이를 보이는데 독일은 국민을 전쟁에 내몰기 위해 전쟁의 당위성을 설득시키려는 선전이 주를 이뤘고, 미국은 적군을 상대로 사기를 꺾는 심리전에 치중했다.

    심리전 전단의 다음 무대는 6.25 전쟁의 한반도였다. 맥아더 장군의 극동군 사령부가 정보참모부에 심리전 담당과를 두고 6.25 며칠 뒤부터 전단 살포를 시작했다. 휴전이 이뤄진 뒤에도 남북 간에 선전전이 계속되며 전단이 뿌려졌는데 북한은 인민무력부 적공국이 주관해 전단 살포를 시도했다. 그러나 70년대 들어서면서 북한은 전단 살포에 소극적으로 변한다. 왜냐하면 국군의 전단은 산업화로 고도성장해 가는 한국 경제의 생생한 모습을 담은 양질의 종이인데 반해 북한은 마땅히 넣을 사진도 없고 종이의 질도 나빠 효과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1972년 7.4 남북 공동성명에서 상호비방·중상 금지를 합의한 것을 시작으로 1991년 12월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남북기본합의서)에서 전단·방송을 동원한 비방과 중상 금지를 약속했고, 2004년 남북장성급 군사회담이 군사분계선 지역에서의 선전활동 중지, 선전수단 제거 등을 합의해 내면서 전단 살포 경쟁은 끝이 난다.

    길에 버려진 대북전단 (자료사진)

     

    ◈아이고, 의미 없다…

    현재 북을 향해 날리는 전단도 내부적으로는 시행주체와 흐름을 달리한다. 첫째는 내용에서 남과 북의 현실을 북한 주민들에게 사실적으로 설명하며 의식을 일깨우는 방식이고, 둘째는 북한 체제를 원색적으로 비판하며 뒤엎자고 선동하거나 선정적인 내용을 집어넣어 북한 지도부를 희화화 하는 방식이 있다. 전자의 방식으로 전단을 보내는 사람들은 지나친 내용이 북한 당국의 반발 뿐 아니라 주민들의 반감을 불러일으킨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시행단체 역시 과거부터 독지가의 기부금으로 전단을 만들어 조용히 날려 보내온 사람들이 있고, 주기적으로 이벤트를 열며 전단 살포를 홍보해 기부금을 공개적으로 모으는 사람들도 있다.

    살펴 본대로 북으로 보내는 전단은 휴전 상황 아래서는 준군사적 선전물일 수 있어 내용과 시기, 방법을 민간에게 전적으로 내맡기는 건 부담이 크다. 또 전단에 우리나라 정치상황과 관련해 오도된 내용들이 여과 없이 실리는 것도 문제이다. 북한 주민들의 시대 인식 자체가 왜곡되고 이들이 탈북해 한국으로 들어온다면 왜곡된 시대인식은 그대로 한국 사회의 일부를 구성하게 된다. 또한 전단을 만드는 사람들의 인식이 탈북동포들을 중심으로 여과없이 수용되어 번지는 것도 문제이다.

    우리 사회 내부에 뿌려지는 전단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정치와 권력에 대한 건강한 비판과 토론이 언론을 통해 여론이 되고, SNS 등 여러 수단을 통해 공유될 수 있는데 굳이 전단을 이용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전단 살포는 통제와 불통의 시대를 반증한다.

    또한 전단은 내용이 풍자적이고 격렬할 수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면 어느 것이 풍자고 희화였는지 사실과 뒤섞여 버리기도 한다. 한 쪽의 전단은 경쟁자인 다른 정파 지지자들의 전단을 불러 낼 수도 있다. 극단적이고 원색적인 표현에 의해 정파나 이념적 갈등이 증폭되는 것은 우리 사회의 통합과 민주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이 갈등과 상충은 정부가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 그러나 통제해야 할 것은 표현의 자유라며 방기하고, 국민의 비판적 담론은 사적인 대화까지 털어서 막으니 일이 엉키는 것이다. 국민을 위기와 갈등으로 밀어 넣는 리더십이 국민통합과 세계 평화 기여를 외친다. 의미 없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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