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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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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문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변상욱의 기자수첩] 묻지 마라, 왜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해 3월 서일대학교 문예창작과 학생들이 학교측의 일방적인 학과 통폐합에 반대하는 침묵 집회를 갖고 있다. (자료사진)

     

    대학에서 인문계 학과를 전공한 졸업생들이 취업 현장에서 외면당하는 현실이 이슈가 됐다. 인구론이라는 신조어가 유행이라 한다. '인'문계 졸업생은 '구'십 퍼센트(%)가 '논'다는 의미. 전공이 인문학 쪽이라면 서류통과 자체가 버겁다고 한다. 위로한다면서 하는 말이 "그러게 왜 그런 과에 갔느냐?"고 한다니 애처롭다.

    [변상욱의 기자수첩 전체듣기]

    ◈ 왜냐고 묻지를 마라, 인문학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지난 2월 건강보험 자료를 토대로 취업률을 조사하니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률은 이공계의 절반 아래였다.

    국어국문과 37.7%, 인문교육학과 25.8%, 해양공학과 77.4%, 기계공학과 71.7%.

    제조생산 분야는 그러겠다 싶은데 이제는 경영이나 영업 쪽에서도 이공계 졸업생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다. 이공계 출신이 활용도가 더 높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대학이 아닌 사회에서는 인문학 열풍이 불고 있다. 대기업 입사 시험문제에서 인문학 문제가 나오고 한국사 자격증 소지자는 가산점도 받는다. 현대자동차 입사시험에 등장한 세계사 문제.

    '몽골제국과 로마제국이 발전한 사례가 현대차의 글로벌 전략에 시사하는 점을 쓰시오'

    공학과 역사를 연결한 문제도 있다.

    '역사 속 발명품 중 공학도의 자질과 연관 있는 발명품을 선택해 이유를 쓰시오'

    삼성 직무적성검사에서는 개화기 조선을 침략한 국가를 순서대로 나열하도록 했다.

    김홍도의 그림이 제시되고 옛 문학 중 처용가 황조가도 등장했다.

    세상도 알아야 하고 역사와 인간의 운명에 대해서도 술술 풀어낼 수준은 되어야 답을 적을 수 있다. 인문학적 지식과 소양을 제대로 갖춘 사람을 뽑으려는 취지이다. 이는 최근 계속되고 있는 추세이다. 다만 철학사조와 관련해 문제를 내면 특정학과 출신이 유리할 수 있어 그보다는 보편적인 역사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보인다.

    물론 기업들의 진정성에 의혹은 있다. 이익만 밝히는 기업이 아니라 이 정도 소양이 있는 기업임을 홍보하려는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선진 외국의 경우는 기업의 인문학 투자가 보다 구체적이고 짜임새 있다.

    IBM은 인문학자를 부서에 배치해 인문학과 경영의 접목을 연구하고, 야후는 심리학 문화인류학 등 인문학 팀이 소비자를 연구하고 있다. 인텔은 기술발전 연구에 인류학자 심리학자 소설가까지 배치돼 있다고 한다. 기술에 인간미를 접목해 사람들에게로 다가가려는 것이다.

    (사진=이미지비트 제공)

     

    ◈ 인구론의 끝은 어디일까?

    그런데 인문계 졸업생은 찬밥이다. 국회 국정감사에 제출된 교육부 자료를 보면 최근
    5년 간 대학에서 폐과시켜버린 건수는 1,050건인데 인문학계열의 비중이 높다. 올해 없어진 학과의 30%는 인문계열이다. 사회계열이 25.5%. 특히 수도권 대학들이 인문계열 학과들을 가장 많이 없앴다.

    왜 인문계 학과 폐지가 늘고 있는가는 정부 정책에 답이 있다. 정부가 대학 졸업생의 취업률을 대학평가에 크게 반영하니 인문계 학과가 많으면 평가 성적이 떨어진다. 그래서 정부가 올해부터는 인문계·예체능계 취업률은 아예 평가항목에서 빼내 버렸다. 그랬더니 대학들은 인문계 학과를 폐지하고 남은 여력으로 상경계나 이공계 학과를 늘렸다. 취업률을 올리려는 것이다. 결국 인문계는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이런 통계도 있다. 올해 새로 박사학위를 딴 사람들의 정규직 취업은 37.4%이다. 그 가운데 인문학 박사학위를 딴 사람의 정규직 취업률은 9.2%로 평균보다 훨씬 낮다. 인문계 박사 10명 중 1명만 정규직이라는 것. (한국직업능력개발원 자료)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 들어가려면 경쟁률은 평균 2.2대 1이다. 인문대학은 1.1대 1이로 평균의 절반이다. 충원률을 봐도 학과 정원에 73%로 가장 낮다. 박사 과정 학생을 1명도 뽑지 못하는 학과도 생겨난다. 박사 공부를 하다 때려치우는 사람도 인문대학이 가장 많다. 중도 포기나 제적 비율이 7.2%에 이른다. 전체 학과들을 종합하면 박사학위 공부 중 그만 두는 비율은 평균 2.1대 1이다. (서울대 대학원 실태조사 연구 보고서).

    흥미로우면서도 속상한 통계도 있다. 취업이 세상에서 가장 쉬운 사람들 이야기다. 교육부 퇴직 고위공무원 60%는 퇴직 당일에 다른 직장으로 출근하거나 퇴직 다음날부터 출근한단다. 출근하는 곳은 대학과 산하기관이다. 겨우 취업하는 게 아니다. 직함을 보면 기관장, 감사, 상임이사, 사무총장, 정년보장트랙 교수 등 알짜배기이다.

    결국 따지면 관료들이 재취업 하는 통에 밀리고 밀리면 죽어라 공부해 박사 학위 딴 사람들의 갈 자리를 교육부 고위퇴직관료들이 채 간 셈이다. 어쩌면 교육부 관료 하면서 퇴직 후 갈 자리 봐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교육부가 대학 구조조정 한다고 대학을 압박하는 상황인데 퇴직하면 압박하던 대학 요직에 가 앉는다. 이것이 무얼 의미하나? 관피아다.

    이렇게 해서 그 학문이 갖는 사회적 가치와 미래의 비전은 사라지고 학문의 생태계는 4대강 사업 결과처럼 파괴되고 만다. 눈앞의 이익과 전시적 효과 때문에 생태계가 파괴되는 건 여기나 저기나 마찬가지이다. 수익과 성적, 효율이 사상과 학문을 무너뜨리는 지금의 상황은 결국 교육과 시대의 기초 부실로 나타나고 말 것이다. 공학이라 하더라도 기초학문인 물리학 화학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오래 갈 수 없다. 인문학 제도 전반에 대한 밑그림을 다시 그리고, 균형발전을 위한 청사진을 짜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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