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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장인(匠人)이 밝힌 제주옹기의 비밀



제주

    50년 장인(匠人)이 밝힌 제주옹기의 비밀

    화담(火潭) 김청길 장인의 제주옹기 이야기

    제주옹기

     

    제주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아름답다. 그 비결은 흙에 있다. 반백년동안 고집스럽게 제주옹기를 만들어온 한 장인의 열정과 집념도 비결의 하나다.

    "집집마다 항아리에는 굿을 할 때 올릴 술이 있고, 허벅 진 촌 아낙네 구슬픈 방아노래...."

    이익태(李益泰)의 『지영록(知瀛錄)』에 있는 ''탁라가(이증 목사)의 일부이다.

    항아리 즉, 옹기는 옛부터 우리 생활의 일부였다. 그러나 모든 환경이 바뀌면서 옹기의 소중함은 점차 잊혀졌고 지금은 골동품 정도로 치부되고 있다.

    50년 동안 제주옹기를 만들어온 화담(火潭) 김청길(73) 장인이 있어서 그나마 명맥은 유지되고 있다.

    그는 제주시 한경면 조수리 제주옹기마을에서 생활한다.

    전남 여수가 고향인 김청길 장인은 젊을때 안해본 것이 없다. 양복점, 빵집 등을 전전했다.

    어느날 부산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보고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단다. 맘먹고는 곧장 실행했다.

    "무작정 제주도로 내려온 거라 내 주머니에 그 당시 돈으로 10원 한 장 있었어. 10원으로 뭘 할 수 있겠어. 그런데 그 때 여관에서 만난 사람이 나한테 옹기 일을 해보지 않겠냐고 하더라고. 경제적으로 좋지 않았던 난 당장 일을 하겠다고 했지."
    제주옹기 김청길

     

    나이 열아홉, 그렇게 제주옹기와의 기나긴 동행은 고산지역의 옛 가마터에서 시작됐다. 옹기 대장 고홍수 선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제주옹기를 본격적으로 만든건 스물세살, 올해로 딱 50년이다. 김청길 장인의 얼굴과 손에 잡힌 주름은 그의 인생과 제주 옹기의 역사다.

    제주전통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는다. 유약은 옹기의 전체적인 느낌을 곱게한다. 그런데 왜 제주옹기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을까?

    그 비밀은 제주의 흙에 있다. 제주옹기의 원료인 제주 흙은 화산재가 섞여서 점토가 된 것이다. 또 사면이 바다인 제주도의 특성상 흙에는 바닷모래도 약간 섞여 있다. 제주 흙에서 빛이 나는 이유다.

    "제주도 옹기는 유약을 바르지 않아도 상당히 곱게 나와. 유약에는 사람건강에 좋지 않은 중금속이 많아서 옹기에도 유약을 바르지 않는게 좋지. 제주옹기는 흙을 그대로 빚어 굽기 때문에 그 흙 성분을 그대로 살리는 거지. 또 유약을 바르지 않으면 액젓이나 술 같은 게 유리그릇이나 다른 도자기에 비해 발효도 잘돼.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한다고."

    김청길 장인의 제주옹기에 대한 열정은 꾸준한 연구에서도 드러난다. 매년 한 번씩 과학관에서 실험을 하는데 제주도 흙이 얼마나 좋은지, 어떻게 하면 제주옹기가 더 좋아질지를 끊임없이 연구한다.

    제주옹기

     

    제주옹기는 1960년대까지는 우리네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숨구멍이 있어 습기제거도 되고 쥐가 구멍을 뚫을 수도 없기 때문에 음식 보관 창고로 많이 쓰였던 것이다.

    지금은 책이나 오래된 신문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지만 아낙네들이 등에 지거나 머리에 이고 가는 물허벅 용도는 물론 집의 마당 한구석에서 먹을거리를 지켜준 물건이 바로 제주옹기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우리 곁에서 제주옹기는 사라졌다. 왜일까?

    "옛날엔 옹기에 음식을 담아 먹으니 좋았지. 그런데 1980년대부터 플라스틱 통이나 대나무 통 같은 게 나오니까 옹기가 안 팔렸어. 옹기는 어쨌든 깨질 수가 있는데 플라스틱이나 대나무로 만든 통은 그렇지가 않거든. 옹기가 아무리 장점이 많아도 별 수 있어. 또 요즘엔 조금씩 사다 먹는 생활을 하다보니까 옹기에 저장해서 두고두고 먹을 필요가 없지. 그래서 옛날엔 동네 사람들이 옹기 만드는 일을 했었는데 지금은 죄다 그만뒀어."

    1980년대는 양란이 유행하던 시기였다. 집 안에서 키우는 식물이 유행하면 자연스레 그것을 담는 화분도 유행하는 법. 다른 옹기 제작자들처럼 김청길 장인도 제주의 흙을 이용해 토분을 만들었다.

    그러나 다시 중국이나 필리핀에서 빠르게 들어온 값싼 플라스틱 화분에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옹기를 만들던 사람들은 돈벌이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을 그만뒀다.

    김청길 장인도 잠시 고민에 빠졌지만 그의 손은 옹기를 떠나지 않았다.

    ''그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그는 ''좋으니까''라는 간단한 답변을 내놨다. 50년 제주옹기에 대한 일편단심은 바로 그의 열정과 전통을 버리지 않는 고집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제주옹기

     

    "앞으로 10년은 더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말속에 안타까움이 묻어난다.

    현재 큰 딸이 아버지를 도와 제주옹기마을을 운영하고 있다. 또 세 아들가운데 한 아들이 옹기 일을 조금씩 함께 하고 있다.

    하지만 김청길 장인은 더 많은 사람들이 제주옹기 만드는 일에 동참해주길 바란다. 맥이 끊기지 않고 세계로 뻗어나갔으면 하는 바람, 김청길 장인은 진정 제주옹기를 사랑한다.

    "그릇 하나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그 가치를 몸으로 깨달을 수 있을 정도로 연구를 해야 해. ''문화재는 전통을 이어나가야 한다''는 원칙이 아니면 안되는데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것 같아. 원칙을 떠나서 새로운 것도 받아들이고 옛날 것도 보전해 가야 제주 옹기가 끝까지 맥을 이어나갈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김청길 장인의 손끝은 고집의 흔적을 담아 그가 사랑한 제주의 흙과 물을 어루 만지고 있다. 열정이라는 불에 달궈지고 꺼내어 식혀지며 제주전통옹기의 맥을 이어 나간다.

    그의 옹기는 50년 세월의 장인정신과 제주 흙에 대한 사랑이 담겨 오늘도 고운 자태를 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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