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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검사님들의 영달과 해병대 군사경찰의 트라우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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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검사님들의 영달과 해병대 군사경찰의 트라우마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류영주 기자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 류영주 기자
    군인의 계급은 상사이다. 직책은 수사관이다. 박정훈 대령의 해병대수사단에서 채해병 사건 수사를 맡았다. 작년 10월까지 해병대수사단에서 군사경찰로 일했다. 채해병 사건을 수사한지 벌써 1년 3개월을 훌쩍 넘겼다. 그의 표정은 심각하기도 했고 진지하기도 했다. 신중한 말솜씨가 진정성을 더해줬다. 그러나 이유를 알 수 없는 '대통령 격노'로 시작됐던 해병대 사태의 트라우마는 결코 숨길 수 없었다.
     
    2024년의 가을은 단풍도 제 갈 길을 잃은 것 같다. 변신의 계절을 감지하지 못하는 가로수 은행잎들. 이상한 것은 기후만이 아님을 일상 도처에서 체감한다. 신용산역에서 왜고개를 지나 용산 대통령실로 향하는 골목길은 연말 밀어내기 공사 소음으로 소란스럽다.
     
    해병대 항명사건 재판이 열리는 중앙지역군사법원을 갈때마다 '머피의 법칙'이 떠오른다. 잘못될 수 있는 일은 결국 잘못되게 마련이다. 하필이면 항명사건 재판을 직통으로 올려다보이는 용산 대통령실 코 앞에서 받는 걸까. 박정훈 대령의 그 짓궂은 운명은 무엇일까. 윤석열 대통령과 박 대령은 한두달에 한 번쯤은 5백미터 거리에서 서로 일한다. 은하수 다리조차 필요하지 않은 가까운 거리다. 그 마주한 운명의 결과가 연말연초를 전후해 일차로 판결날 것이다.


    "VIP 격노는 누군가의 몰카가 아닐까…."


    엊그제 해병 항명사건 군사재판에서 마지막 증인신문이 열렸다. 이 재판도 다음달이면 결심이 열린다. 박영길 전 해병대수사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군사경찰 박영길은 지금까지 소환된 증인 가운데 가장 솔직했다. 권력사건 재판에서 다수의 증인들은 본인의 양심 안에 모종의 그림자를 세운다. 그리고 그 안에서 자꾸 숨으려고 한다. 본능적이든 작위적이든 권력눈치를 보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한다. 해병대 군사경찰 수사관은 그러하지 않았다.
     
    "채상병 사건이 발생하고 두 달 간 넋이 나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저를 포함해서 사실은 좀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영화 속에만 보던 게 실제로 이렇게 현실로 이뤄지고 있다고 생각했고, 당시 이게 사실인지 아닌지 구분이 잘 안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뒤늦게 VIP 격노를 들었을 때, 누군가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검사 최진석의 월권


    신문은 이어졌다. 박영길 증인이 뜻밖의 사실을 꺼냈다. 방청객과 변호인들 모두 놀랐다. 포항지청 소속 검사가 해병대수사단의 수사에 개입 정황에 관한 이야기였다. 검사의 수사개입 정황은 그간 일부가 알려졌지만 육하원칙에 입각한 사실관계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공수처 수사에서 이미 진술한 내용이라고 말했다.
     
    "작년 경북경찰청에 사건 이첩을 하기 하루 전날입니다. 광역수사대장과 함께 포항으로 복귀하던 중 해군 군검사에게서 '좀 보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8월 1일 오후 3시 어간입니다. 사건인계서를 갖고 해군 군검찰로 갔습니다. 해군 군검사로부터 법리 조언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갑자기 포항지청의 최진석 검사라고 하는 분이 해군 군검사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해군 군검사가 입모양으로 '그 검사'라고 알려줬습니다.
     
    최 검사는 해군 군검사에게 '해병대 사건을 해군검찰이 송치받아 포항지청으로 넘겨달라'라고 요구했습니다. 군검사가 그건 어렵다고 대답했습니다. 군 경찰과 군 검찰 관계가 민간 경찰과 검찰 관계와 달라서 '이첩하라'고 할 수 있는 지휘관계가 아니라고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최진석 검사가 '그런 게 어디 있냐, 할 수 있다면 빨리 (이첩 받아) 우리한테 넘겨 달라'고 다시 요구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채상병의 선배 해병들이 채상병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국립대전현충원에는 채상병의 선배 해병들이 채상병을 추모하기 위해 모였다. 
    해병대수사단에서 군검찰이 채상병 사건을 강제로 이첩받아 민간 검찰로 넘겨달라는 것은 대한민국 검사 최진석의 명백한 월권이다. 최진석은 30대 중반의 검사다. 일개 검사가 무슨 의도로 군검사에게 사건이첩을 종용했는지 법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놀랍고 대담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대한민국 검사이면 계통도 절차도 없이 타 기관에 사건 강제이첩을 종용할 수 있는 권능이 선혜적으로 부여됐다고 생각한 걸까. 30대 검사의 객기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이다. 최진석 검사는 "상부에서 시켜서 한 일"이라고 어느 지인에게 나중에 실토했다고 한다. 최 검사는 살아가는 동안 '그 상부'가 누구인지를 반드시 밝혀야 하는 의무를 질 것이다.
     
    최 검사가 채상병 사건을 검찰로 송치해달라고 요청한 때는 대통령 격노의 시기와 딱 들어맞는다. 사건 이첩을 놓고 국방부는 해병대사령부에 온갖 외압이 증폭됐던 시기다. 그런 시기에 윤석열 대통령이 장악한 검찰까지 나섰으니 복합적 수사개입 정황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채 상병사건에서 대체 몇 갈래의 수사외압이 존재했던 것인지 박영길 수사관의 증언을 듣는 동안 아득함이 밀려왔다. 수많은 외압 정황에도 공수처 수사는 멈춰서 있고 채상병 특검법은 격노의 장본인 앞에서 한 발도 나가지 못한다.
     

    전우를 생매장하려는 군검사의 몰염치

     
    연합뉴스연합뉴스
    작년 8월 1일 박영길 수사관과 광역수사대장이 해군 군검사를 찾아간 것은 해군 군검사의 연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침 박영길 수사관도 법리적 조언을 주었던 해군 군검사를 만나고 싶었다. 이심전심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최진석 검사가 이첩 종용을 하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것이다.
     
    국방부검찰단 소속 군검사는 이 장면을 박정훈 대령에 대한 <구속영장청구서>에서 아래와 같이 기록하고 있다.
     
    "피의자(박정훈)는 자신이 압수수색을 당할 것을 예상하고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증거들을 모두 은닉하고 반대로 해병대수사단 수사관들을 시켜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자료들을 수집하게 하였습니다. 실제로 수사관 박영길은 사건인계서를 작성함에 있어서도 마치 (해군)군 검사가 그 결론에 동의하고 검토를 마친 것처럼 거짓말하게 하였습니다."
     
    주어와 술어도 맞지 않는 문장은 영장청구서에 나온 그대로다. 변호인은 이 영장청구서를 재판에서 보여주며 "군 검찰 조사때 박정훈 피고인 지시에 따라 거짓말을 한 것이냐"고 박 수사관에게 물었다.
     
    그 찰나 군검사는 돌연 발언을 제지하고 나섰다. 자신들이 작성한 <구속영장청구서>가 재판에 증거로 제출되지 않은 문서이므로 그 영장청구서를 기반으로 한 변호인의 증인신문은 제지돼야 한다는 요구였다.
     

    군검사: 재판장님! 증거채택이 되지 않은 구속영장청구서는 지금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므로 변호인 신문을 제지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변호인석에서도 방청석에서도 동시에 장탄식이 터져나왔다. <구속영장청구서>가 이 사건과 관련이 없는 내용이라니 이 검사의 '정신세계'를 무엇으로 설명해야할지 모르겠다. 본인들이 작성한 영장청구서조차 재판에서 증인신문자료로 활용하지 못하게 한다면 그 이유는 명백하다. 그들은 부끄럽다. 영장청구서가 거짓으로 쓰여졌다는 실토의 다름이 아닐 것이다. 공판에 참여하는 군검사의 이름은 대한민국 국방부 검찰단 소속 김민정 검사, 염보현 검사이다.
     
    변호인:지금 재판을 진행중인 군 검사님의 구속영장청구서인데 어떻게 이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하시는지요?

    군검사:증거로 제출되지 않아서…

    변호인:당신들이 만든 구속영장청구서 아닙니까? 검사님들이 증거로 내지 않았지만 증거자료에 편철해서 문서로 제출한 자료에요.

    재판장:잠깐만요. 검사님! 이 자료는 편철되어 재판부에 제출돼 있습니다. 검사님 요청은 기각합니다.

    대한민국 검사님과 군검사님들은 무슨 푯대를 향해 달려가는 것일까. 그들의 영달인가. 명예인가. 아니면 권력의 편에 서버린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할 수 없게 된 걸까. 법복을 입은 공직자들이 제복을 입은 군인들의 숨을 가두려고 한다. 마치 적을 섬멸하려는 것 같다. 기자는 국회청문회에서, 군법정에서 권력에 밀착한 고관대작 군인과 검사가 군경찰의 대령, 중령, 상사보다 힘의 우위에 있음을 실감한다.
     
    그것이 세상의 전부는 아니다. 대령과 중령,상사로 이뤄진 해병대수사단 전우들은 오늘도 싸운다. 그들은 권력에 맞서느라 '묵사발'이 되었다. 그러나 부끄럼 없는 전우애가 그들을 꿋꿋하게 지탱시킨다. 그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모두 옳다고 외치지 않는다. 그들은 양심에 따라 수사를 했다고도 과시하지 않는다. 그들의 외침은 군더더기가 없다. 단순하고 소박할 뿐이다.
     
    "저는 해병대수사단 수사관입니다. 본분을 다했을 뿐입니다. 제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최선을 다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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