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여의도 한 식당에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오찬 회동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외연 확장을 위한 광폭 행보에 나섰다. 보수계 인사들을 만나는가 하면, 경제계와도 접점을 넓히고 있다. 민주당도 발맞춰 심우정 검찰총장 탄핵을 보류하는 등 '합리적 공세'로 기조를 고쳐 잡는 모양새다.
이는 최근 여당의 내홍 상황을 활용,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른바 '김건희 리스크'와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 관련 폭로가 연이어 터지면서 정부·여당에 피로감을 느낀 중도층을 겨냥하겠다는 것이다. 동시에 대선 조직을 키워가며 대권 준비도 본격화되고 있다.
李, '보수 책사' 만나고 민생 행보도 계속…'탄핵 공세'는 속도조절
이 대표는 30일 여의도의 한 식당에서 정치권 원로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과 만나 정국 현안을 논의했다. 윤 전 장관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 박근혜 전 대통령 등을 도운 '보수 책사'로 불린다. 이 대표의 이날 일정은 지난달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상돈 중앙대 명예교수와 만나 조언을 구한 것과 같이 지지층 외연 확장을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표는 정부·여당에 대한 공세를 자제하면서 협치와 포용을 강조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서로 미워하고 감정적으로 적대하고 있다"며 "정치인들은 싸우다가도 다시 화해하고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를 향해서는 "자주 만나자"며 2차 대표 회담을 촉구하기도 했다. 이는 윤 전 장관이 "대통령의 국민 신뢰도가 낮아 무슨 정책을 펴도 효과가 안 난다"라며 "국가를 이끌어가는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 저렇게 흔들려서 곤란하지 않느냐"고 비판한 것을 의식한 듯, 윤 대통령과 대조된 모습이다.
민생과 경제를 위한 행보에도 힘을 싣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소상공인·자영업자들을 만나 민생 경제 간담회를 연 데 이어, 다음달 4일에는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리는 'SK AI서밋 2024' 행사에 참석한다. 오는 11일에는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만나 정책 간담회를 진행하는 등 '경제 행보'를 이어 간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소상공인·자영업자 민생경제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이같은 이 대표의 중도적 관점에서 민생을 챙기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경제와 민생에 강한 이미지를 심는 동시에, 지난 전당대회 출마 때부터 자신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웠던 '먹사니즘' 또한 알리겠다는 취지다. 민주당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정치적 지향보다는 실용성을 추구하겠다는 게 이 대표 생각"이라며 "이 대표가 공약으로 내세웠던 먹사니즘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맞춰 민주당도 정부·여당을 겨냥한 공세의 수위를 조절하는 기류다. 당초 당은 김건희 여사 불기소에 반발하며 심우정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을 추진하기로 했는데, 최근 이를 보류하기로 가닥을 잡았다. 심 총장이 김 여사 사건에 수사지휘권이 없어 법적으로 탄핵 요건을 충족하기 어렵다는 실무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자칫 과도한 정치공세로 여겨질 수 있는 카드를 썼다가 역풍을 맞을 경우, 이 대표의 외연 확장 행보에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려도 영향을 미쳤다.
이 대표 측근 인사로 분류되는 민주당 정성호 의원은 이날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심 총장이 직접적으로 도이치모터스 사건 무혐의 등 일련의 사건과 관련해 책임이 있는지는 사실 조금 애매하다"며 "탄핵은 법적 요건을 잘 갖춰야 한다. 위헌·위법행위가 중대하고 명백해야 한다"고 말했다.
與 내홍에 흔들리는 중도층 흡수 나서…특보단 꾸리며 대권행보도 박차
이 대표와 민주당의 이같은 노선은 최근 여당의 자중지란 상황에서 반사이익을 얻기 위한 전략으로도 해석된다. 최근 김건희 여사와 관련해 주가조작, 공천개입, 불법 여론조사 등 각종 의혹 제기가 이어지면서 여론이 악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명씨의 잇따른 폭로가 기화제가 돼 여권 내 계파 갈등으로까지 비화하는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30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연합뉴스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21~2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2510명을 대상으로 조사(95% 신뢰수준·표본오차 ±2.0%p)한 결과, 윤 대통령의 국정 수행 긍정 평가는 24.6%로, 5주 연속 20%대에 머물렀다. 국민의힘도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24~25일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4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지지도 조사(95% 신뢰수준·표본오차 ±3.1%p)에서 국민의힘 지지도는 32.6%, 민주당은 43.2%를 기록했다. 국민의힘 지지도는 지난 8월 3주차에 민주당에 추월당한 이후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민주당이 여당에서 이탈한 중도층 민심을 흡수할 경우 이 대표의 대권가도에도 힘이 실릴 것으로 보인다. 이를 의식한 듯 민주당은 다음주 출범을 목표로 '당 대표 총괄 특보단'을 꾸리고 있다. 사실상 이 대표의 대권 준비팀 성격을 띤다.
총괄특보단장은 5선 중진 안규백 의원이 맡는다. 이와 함께 △정무특보단장에 안호영 의원(3선) △경제특보단장에 유동수 의원(3선) △언론특보단장에 박수현 의원(재선)이 내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무게감 있는 다선 의원들을 중심으로 타 기구의 역할을 보완하겠다는 포석이다.
민주당은 특보단에 앞서 대선 준비를 위해 인재위원회와 집권플랜본부를 조직한 바 있다. 다양한 당내 대선 준비기구의 출범으로 인해 선거철이 아님에도 사실상 대선 캠프가 꾸려지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민주당은 이 같은 행보가 현안마다 계파 갈등에 막혀 고전 중인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와의 차별화에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주당 수도권 지역구의 한 의원은 "여권이 집안싸움에 매진할 때 이 대표는 대권을 준비하며 앞서가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