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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신음일까 비명일까…AI시대 맞이한 속기사들

    AI로 누구나 쉽게 음성변환…속기사 무용론
    하지만 전문성 떨어지고, '비언어 표현' 인지 못 해
    "온라인서 가짜 속기사 난립"…속기사 신뢰도↓
    대한속기협회, 속기사법 제정 추진 "AI와 공존할 것"

    속기사. AI 생성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캡처속기사. AI 생성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캡처
    A속기사가 이어폰을 끼고 음성파일을 재생한다.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뢰인이 속기록을 요청한 녹음본이다. 속기사는 고개를 반쯤 돌리고 집중하더니 '아(!)…아(!)…아(!!)'라고 속기를 남긴다.

    A속기사는 "음성파일에서 피해자는 신음소리가 아닌 비명을 지르고 있다"며 "피해자에게 거부 의사가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해 느낌표를 붙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음성인식 인공지능(AI)이 보편화 됐는데, 과연 AI는 이 파일에서 '아' 소리를 어떻게 표기하겠나. 또 재판부는 어떻게 해석하겠나"라며 "사람이니까 아직 할 수 있는 영역이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필에서 기계속기, 이제는 AI로 변곡점

    AI의 발달로 음성인식 변환 서비스가 보편화되면서 속기사 업계가 변화를 맞고 있다.

    29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현재 국내에서 활동하는 속기사는 6500여 명이다. 이들은 국회·지방의회(1천명), 법원·검찰(2천명), 속기사무소·프리랜서(3500명) 등 각 영역에 분포돼 있다.

    속기사가 되려면 매년 상하반기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리는 국가기술자격시험에 합격해 자격증을 취득해야 한다. 때문에 속기사가 작성한 속기록은 공정성이 담보된 기록물로 인정된다.

    속기사들은 과거 손으로 기록하는 수필속기로 시작해, 특수 제작된 키보드를 활용하는 기계속기로 넘어온 상태다. 최근에는 AI의 발달로 속기 업계는 변곡점을 맞고 있다. 누구나 휴대전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음성을 문자로 실시간 변환할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가짜 속기사 난립…"AI 의존해 잘못된 속기록 제작"

    가장 큰 변화가 감지되는 곳은 현장에서 고객을 만나는 속기사무소다. 이곳은 주로 수사기관이나 법원에 증거로 제출하는 속기록을 작성하는데, 최근 들어 온라인에서 사기 피해를 입었다는 고객들이 찾는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속기사. 연합뉴스속기사. 연합뉴스
    학원에서 강제해고를 당한 B씨 역시 수도권의 한 속기사무소를 찾았다. 최저가를 자랑하던 온라인 업체에 속기록을 의뢰했다가 사실과 다른 결과물이 나왔기 때문이다. 온라인 업체는 B씨와 학원 관계자의 대화를 반대로 표기해 속기록을 완성했다.

    B씨가 문제를 제기하자 업체는 환불을 거절하며 연락을 차단했다. 주소지도 검색되지 않아 결국 B씨는 다시 돈을 들여 오프라인 속기사무소를 찾은 것이었다. B씨는 "저렴하게 속기를 해준다는 말을 믿고 온라인 업체에 맡겼다"며 "하지만 내가 한 말을 학원 관계자 말로, 관계자 말을 내가 한 말로 반대로 적었더라"고 방문 이유를 밝혔다.

    업계에선 AI를 활용한 무자격 속기사를 원인으로 짚었다. 한 속기사무소 관계자는 "최근 음성인식 앱이 발달하다 보니 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앱을 이용하거나, 속기사 준비생들이 속기록을 만든다는 이야기가 자주 들린다"며 "사람이 직접 녹음파일을 듣고 풀었다면 상대방이 한 말을 잘못 표기하는 엉뚱한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목소리, 분위기…'비언어적 표현'은 사람만이 알 수 있어

    속기사. AI 생성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캡처속기사. AI 생성 이미지 플레이그라운드 캡처
    속기사들은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면서도, AI 역시 한계가 있다고 강조한다. 대화 분위기나 목소리 등 비언어적인 영역은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A속기사는 최근 자신이 맡은 성범죄 사건을 예시로 들었다. 의뢰인은 업체 대표에게 성희롱을 당했다는 여직원이다. 녹음파일 속에서 업체 대표는 해당 직원에게 "여보" "당신"이라고 상습적으로 부른다. A속기사는 피해 직원이 "으흠"이라고 다소 불분명한 발음으로 답하는 것까지 듣고는 속기록에 '(난처한 웃음) 으흠'이라고 남겼다.

    A속기사는 "이 직원은 집에선 가장이기 때문에 당장 회사를 그만둘 수 없는 상황이었다"라며 "회사에 남아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에 참고 또 참아가며 불분명하게 답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인공지능이라면 앞뒤 맥락없이 '으흠'이라고 적을 것이고, 속기록을 받은 수사기관이나 법원은 전후 사정을 알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화뿐 아니라 배경음도 속기사들이 중요하게 참고하는 비언어적 영역이다. A속기사는 "만약 비가 오는 날 살인 사건이 발생했는데, 유력 용의자가 당일에는 해가 쨍쨍했다고 말했다고 가정하자"라며 "용의자가 알리바이로 제시한 녹취파일에서 빗소리가 들린다면 이것 또한 중요 근거"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사건 당사자가 AI를 이용해 직접 속기록을 작성해 관계기관에 제출하는 일이 늘어나면서 속기사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속기사는 "누구나 쉽게 속기록을 작성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장점이지만, 잘못된 속기록이 난립할 경우에는 결국 속기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커질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속기협회, 속기사법 제정 추진…"AI와 공존할 것"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자 속기사 협회는 속기사법을 제정해 기록물 작성에 대한 책임을 강화하고, 속기사 무용론을 불식시키겠다는 계획이다. 특히 AI를 배척하는 것이 아닌 AI와의 공존을 통해 개선점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최대 규모 속기사 단체인 대한속기협회는 속기사법 제정(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대한속기협회는 현행 공공기록물법에 속기사 업무를 규정하는 조항을 추가해 개정 입법을 추진할 계획이다. 주요 내용은 △속기사 자격 강화 △속기사 서명 의무화 △속기협회 법인화 등이다.

    대한속기협회는 제22대 국회 개원 이후 본격적인 활동에 나설 방침이다. 협회 관계자는 "음성인식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니 속기사의 정체성에도 혼돈이 발생하고 속기 무용론까지 확산되고 있다"며 "주요 공공기록물에 대해선 작성한 속기사의 실명제를 의무화하고, 현장에서 활동하는 속기사들에게는 인증제를 강화하는 게 계획"이라고 했다. 이어 "AI를 활용해 속기록을 작성하고, 속기사가 재차 검토하는 방식 등 공존하는 방안도 마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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