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이른바 '선(先)구제 후(後)회수' 전세사기 특별법 개정안이 오늘 국회 본회의 표결에 부쳐진다. 다수당인 야권 주도로 추진돼 통과 가능성이 높지만, 개정안에 반대해온 정부가 대통령에 거부권 행사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은 변수로 꼽힌다.
정부는 경매로 넘어간 피해주택을 낙찰받아 피해자의 주거안정을 보장하는 '대체안'을 전날 발표하고, 반대 의사를 명확히 했다. 다만 정부안은 개정안과 상호 충돌이 아닌 보완 관계인 만큼 병행해 피해자 보호를 두텁게 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野 주도 '특별법 개정안' 통과 가능성↑…정부 반대 '변수'
28일 정부와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는 이날 오후 본회의를 열어 야권 주도로 추진된 '전세사기피해자 지원 및 주거안정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안'을 표결한다.
안건은 앞서 지난 2일 재석 268명 중 찬성 176표, 반대 90표, 무효 2표로 가결돼 부의된 만큼 통과 가능성이 높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1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인 이날 반드시 개정안을 의결하겠다는 의지를 피력해 왔다.
개정안은 HUG(주택도시보증공사) 등이 주택도시기금을 활용해 피해자의 임차보증금반환채권을 공공 매입하는 방식으로 피해액을 우선 변제해준 뒤, 추후 채권 추심과 매각을 통해 회수하는 '선구제 후회수' 프로그램 도입을 골자로 한다. 필요한 경우 임차보증금반환채권에 앞서는 제3자의 선순위 채권도 매입한다.
이 밖에 구제 대상에 외국인을 포함하고 임차보증금 한도 역시 3억 원 이하에서 5억 원 이하로 상향해 전세사기피해자로 결정받을 수 있는 대상 범위를 넓히는 등 지난해 6월 1일 제정·시행된 기존 특별법을 보완했다.
이달까지 전세사기 피해자 8명이 극단적 선택을 해 신속한 구제책이 긴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등 피해자들은 개정안 처리를 촉구해왔다.
문제는 정부·여당이 선구제 후회수 개정안 시행을 강력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 '하루 전' 대책 발표…"보완해 새 개정안 추진"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이 27일 오후 정부세종청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 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정부는 전날 관계부처 합동으로 '전세사기 피해자 주거안정 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1년간 시행한 특별법의 정부 차원 보완책으로, 이를 보완·발전해 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야권 추진 개정안 대신 정부안으로 새로운 개정안을 내 22대 국회에서 논의하자는 것이다.
정부안 내용을 보면 LH(한국토지주택공사)가 피해자들에게서 피해주택 우선매수권을 양도받아 경매로 매입한 뒤 다시 해당 피해자에게 공공임대로 제공, 최장 20년간 주거 안정성을 보장한다는 기본 틀은 기존과 같다.
다만 통상 68% 안팎인 평균 낙찰률에 따라 30%의 경매차익이 발생하는 점에 착안, 이 재원에다 국고 지원을 더해 피해자들이 최초 10년은 임대료 없이 무상으로 거주토록 하고 희망하면 추가 10년간 시세보다 50~70% 할인된 비용으로 거주토록 하는 내용이 추가됐다.
임대료를 지원하고도 남은 경매차익은 피해자가 공공임대주택을 퇴거할 때 지급해 보증금 손해를 최대한 회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내용도 제시됐다. 공공 매입 대상에 그간 제외됐던 위반건축물과 신탁사기주택 등도 포함해 지원 사각지대를 줄였다.
이에 더해 그간 발표해온 저리 대출 등 금융지원, 안심전세앱 운영과 공인중개사 책임 강화 등 예방책을 한데 모으고 다듬어 특별법 개정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개정안이 통과하더라도 실무적으로 집행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어 "(피해자들이 떼인 보증금은) 사업자금이나 학자금이 아니라 전세금이라 주거가 불안해진 것이니, 주거 불안을 신속하게 없애주는 것이 신속한 구제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피해자 단체·전문가 "보완 관계…둘 중 선택하도록 해야"
피해자 단체와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야권이 추진해온 특별법 개정안과 전날 정부가 발표한 대책은 서로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관계가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만큼, 병행해 시행하면서 피해자가 둘 중 하나의 구제책을 선택하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와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는 전날 오후 논평을 내고 "모든 피해자가 피해 주택에 계속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므로 피해주택에서 계속 살라는 정부 방안 외에 다양한 선택지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정부의 대책대로 지원을 받기 원하는 피해자는 그 방안대로, 보증금반환채권을 매각해 선구제 받기를 원하는 피해자는 특별법 개정안에 따라 채권매각대금을 받도록 각자의 상황에 맞게 선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좋다"고 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김남주 법무법인 도담 변호사도 "정부 대책 자체는 긍정적으로 볼 부분이 있지만 피해 주택에서 나가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구제책이 안 된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이번 대책은 특별법 개정안과 모순되는 것이 아닌 만큼 보완책으로 활용해 피해자 보호를 두텁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