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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량 오류로 봉수터가 사유지로?…전직 장관 "건들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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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측량 오류로 봉수터가 사유지로?…전직 장관 "건들지마"

    용인 건지산 봉수터, 주소 오류 발견
    국유지인 봉수터가 '사유지'로 바뀌어
    지적 경계 정정 필요, 법률 검토 중
    전직 장관 아내가 토지주, "발굴 반대"
    사적 지정 등 국가 문화재 사업 난항
    "땅값↑ 기대감 목적 아니냐" 비판도
    전문가들 "매장 문화재는 국가 소유"
    전 장관 측 "유적인지 납득 어려워"

    용인 건지산봉수터 추정지에서 발견된 연조와 기와·토기편 모습. 용인특례시청 제공용인 건지산봉수터 추정지에서 발견된 연조와 기와·토기편 모습. 용인특례시청 제공
    과거 중요 군사통신수단이던 '봉수터'로 추정되는 땅이 일제강점기 측량 오류로 국유지가 아닌 사유지가 되면서 유적 복원과 세계문화유산 등재 추진 사업이 좌초 위기에 놓였다.
     
    해당 봉수터가 포함된 땅의 주인이 유적 발굴에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가운데, 이 토지주가 전직 장관의 배우자로 알려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용인 봉수 완전체 위한 '건지산 봉수' 주목

     1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문화재청과 경기도 용인시는 봉수 유적지 복원을 통해 국가 사적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관련해서 문화재청은 지난달 27일 부산에서 서울을 잇는 제2로 직봉 노선(44개소)의 16개 봉수를 유적으로 지정 예고했다. 용인의 '석성산 봉수'(경기도 기념물 제227호)도 여기에 포함됐다.
     
    하지만 용인 내 또 다른 봉수인 '건지산 봉수'는 지정에서 제외됐다. 건지산 봉수는 충청지역에서 보낸 신호를 받아 석성산 봉수로 연결하던 곳이다. 이에 시는 관내 봉수 체계 완성을 위해 2020년부터 건지산 봉수 발굴을 추진해왔고, 지난해 4월 처인구 원삼면 건지산 한 능선에서 '봉수터'로 추정되는 곳을 찾아냈다.
     
    발견된 봉수터에서는 봉수의 연조(불을 피우던 굴뚝) 흔적과 기와편, 토기편 등 다수의 유물이 나왔다.
     
    용인 처인구 내 조사지역(맹리 산42)과 건지산봉수터 추정지 위치. 용인특례시청 제공용인 처인구 내 조사지역(맹리 산42)과 건지산봉수터 추정지 위치. 용인특례시청 제공
    아울러 지난 8월 시는 발견된 터가 봉수가 있던 자리임을 입증하는 '용인 건지산봉수터 추정지 문화유적 지표조사 보고서'(한국문화유산연구원)를 펴내기도 했다.
     
    지표조사에 직접 참여한 김주홍 문화재청 사적분과 전문위원은 "건지산 봉수는 경상북도 내륙에서 주로 보이던 '연대(망을 보고 연기·횃불 피우는 시설)'가 이례적으로 설치됐던 곳으로도 파악돼 발굴 조사만 더해지면 유적 지정 확률이 100%에 가깝다"고 말했다.
     

    사유지 된 봉수터 유적…측량 기준 '오차' 때문

    그러나 1년 반이 지나도록 건지산 봉수터에 대한 현장 발굴조사 등 후속 절차는 한 발짝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땅 주인이 발굴조사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기 때문인데, 그렇다면 중요 국가시설인 봉수터가 어떤 연유로 국유지가 아닌 사유지가 됐을까.
     
    일제시대인 지난 1919년 제작된 임야원도. 건지산봉수가 산42로 표기돼 있다. 용인특례시청 제공일제시대인 지난 1919년 제작된 임야원도. 건지산봉수가 산42로 표기돼 있다. 용인특례시청 제공
    일제강점기 임야원도와 임야조사부에는 봉수 위치가 '맹리 산42번지'로 국유림으로 기재돼 있다. 반면 이번에 발견된 봉수터를 국제표준에 따라 재측량한 결과 '산42번지'가 아닌 '맹리 산43번지'로 확인됐다. 일제강점기 당시와 현재의 측량 기술 차이로 직선거리로 40m 정도의 오차가 발생한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국유지인 봉수터가 사유지가 됐고, 엉뚱한 산꼭대기 땅이 국유지가 돼 있다는 게 시의 주장이다. 시는 잘못된 주소지 경계를 정정하기 위해 관련 법률을 검토 중이다.
     
    용인시 관계자는 "지적이 잘못돼 경계 조정이 필요하면 일반적으로 땅 주인과 협의를 통해 위치를 조정한다"면서도 "건지산 봉수터의 경우 (소유주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어 직권으로 조정이 가능한지 구체적인 근거 자료들을 검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알짜 땅이라서?…토지주는 전직 장관의 부인

     이 봉수터가 포함된 땅의 소유주는 박근혜 정부 시절 장관을 지낸 A씨의 배우자 B씨로 확인됐다.
     
    B씨 소유 땅의 임야대장과 부동산등기부등본 상 증여 시점은 2012년 8월이다. 당시 공시지가는 ㎡당 7590원이었다. 올해 1월 공시지가는 9660원으로 30% 가까이 올랐다.
     
    기존 건지산봉수 주소지 위치(분홍색)와 지난해 4월 발견된 실제 봉수터 추정지 위치(노란색) 표시도. 용인특례시청 제공기존 건지산봉수 주소지 위치(분홍색)와 지난해 4월 발견된 실제 봉수터 추정지 위치(노란색) 표시도. 용인특례시청 제공
    일대 부동산업계에서는 A 전 장관 측이 봉수터 발굴에 반대하는 배경으로 지가 상승에 대한 기대감이 작용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봉수터는 120조 원 규모의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사업부지와 직선으로 2~3㎞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인근의 한 부동산 업자는 "SK하이닉스가 투자하는 용인 반도체클러스터 부지가 가깝다"며 "당장은 평범한 산지나 나대지로 보이지만, 땅 좀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향후 개발압력에 따라 지가가 크게 오를 것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라고 했다.
     
    실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기준, 인접한 맹리 산○○번지(임야)는 올해 7월 ㎡당 13만 5천 원에 거래됐다. 이를 B씨의 봉수터 필지(5만 2959㎡)에 적용하면 시세는 71억 4900여만 원으로 추산된다. B씨가 땅을 증여받은 시점인 2012년 또 다른 맹리 산○○번지 필지가 ㎡당 6만 8천 원에 거래된 것을 감안하면, 증여 당시 B씨 땅의 시세는 36억여 원 정도로 지금 당장 땅을 팔아도 35억 원 이상의 차익을 기대할 수 있는 셈이다.
     

    기관·전문가들 "공익 우선" VS 토지주 측 "아직 납득 불가"

     용인시는 A 전 장관 측을 설득하기 위해 지난해 말부터 3차례 공문을 보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또 다른 용인시 관계자는 "발굴을 위한 굴착과 형질 변경에 동의가 필요한데 토지주와는 직접 소통하는 것도 어렵다"며 "땅을 시가 매입하겠다고 해도 받아들이지 않고 있어 답답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봉수 유적을 국가 사적으로 지정해 세계문화유산 등재까지 목표로 삼고 있는 문화재청 역시 일부 봉수가 누락될 경우, 신호 전달 체계가 중요한 봉수의 문화재적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어 난처한 입장이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한반도에 있는 봉수 중 우리나라 봉수는 몇 안 되기 때문에 하나하나가 귀하다"며 "봉수는 '연결성'이 핵심인데 일부 봉수가 빠지면 문화재적 의미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문화재 전문가들도 국가 문화재 보존이라는 공익적 사업에 전직 고위 공직자의 전향적인 협조를 촉구했다.
     
    서영일 한국문화유산협회 회장은 "매장 문화재는 국가 소유다. 사유지더라도 공공재적 성격이 강하므로 토지주가 발굴 조사에 협조해야 된다"며 "더구나 전직 고위 공직자로서 공적 이익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해 전향적으로 판단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고 지적했다.
     
    고(古)지도에 표기된 건지산 위치 표시. 용인특례시청 제공고(古)지도에 표기된 건지산 위치 표시. 용인특례시청 제공
    이에 대해 A 전 장관 측은 "명확한 유적인지 여부 등에 대해 납득이 되기 전까지 토지 이용을 허용할 수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봉수는 횃불(밤)과 연기(낮)로 변방의 병란, 사변 등을 중앙관아(정부)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 삼국시대의 일부 사용 기록이 있고, 고려 봉수제를 거쳐 조선시대까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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