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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아동학대에 무기력한 세상 숨죽이게 한 '고백'



영화

    [노컷 리뷰]아동학대에 무기력한 세상 숨죽이게 한 '고백'

    영화 '고백'(감독 서은영)

    영화 '고백' 스틸컷. 리틀빅픽처스·퍼레이드픽쳐스 제공

     

    ※ 스포일러 주의

    빠짐없이 뉴스를 채운 아동학대 사건들 탓에 국민들이 공분으로 들끓던 시기를 지나고 있다. 여전히 진행형인 문제에 관심이 수그러들지 않을까 두려운 요즘, 영화 '고백'(감독 서은영)은 다시금 우리네 시선을 아동학대로 돌리게끔 돕는다.

    어느 날, 전대미문의 유괴사건이 일어난다. 유괴범은 국민 1인당 1천원씩 일주일 안에 1억원을 모으지 않으면 유괴한 아이를 죽이겠다고 협박한다. 기묘한 '천원 유괴사건'은 전 국민적 관심사로 떠오른다.

    그 사이 한편에서는 사회복지사 오순(박하선)이 돌봐주던 보라(감소현)의 아버지가 숨진 채 발견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보라는 사라졌다. 사건을 조사하던 신입 경찰 지원(하윤경)은 학대 부모의 멱살을 잡을 정도로 아동학대를 참지 못했던, 그리고 보라를 유독 아꼈던 오순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유괴범이 제시한 기한 1주일 안에서 영화는 조금씩 유괴사건과 살인사건을 풀어나간다. 그러면서 오순이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보라는 어떤 아이인지, 지원은 어떤 경찰인지 설명한다.

    오순은 아동학대를 보면 참지 못한다. 폭력을 휘두르는 학대 부모 멱살을 잡고 거친 말을 내뱉는다. 그 안에 담긴 건 행복한 삶을 살지 못하는 아이들을 향한 선의와 그들을 그렇게 만든 부모와 세상에 대한 분노다. 그렇게 엄마 없이 친부에게 지속적인 폭행을 당하고 방치된 보라가 오순 눈에 계속 밟힌다.

    영화 '고백' 스틸컷. 리틀빅픽처스·퍼레이드픽쳐스 제공

     

    오순과 보라는 같은 피해자라는 점에서 알게 모르게 동질감과 연대를 느낀다.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연대는 오순과 지원, 지원과 스토킹 피해자에게로 이어진다. 이렇듯 영화는 인물들을 통해 아동학대, 학교폭력, 여성폭력 등 약자를 향한 폭력의 위협에 놓인 여성 이야기를 중간중간 짚고 넘어간다.

    아이들과 보라가 당하는 폭력을 마주하며 오순은 점차 그 안에 분노와 슬픔을 쌓아간다. 이 어둑한 감정은 과거 자신의 경험과 맞닿으며 복잡하게 어그러지고 뒤섞인다. 보라 역시 계속된 아빠의 폭력이 낳은 여파인지 때때로 섬뜩한 기운을 내비친다.

    어쩌면 학대 아동은 소위 말하는 보통 아이들과 다르다는 어른의 말이 만들어 낸 편견일 수도 있다. 폭력적인 상황에 노출된 아이들이 겪는 불안과 위협을 우리는 섬뜩함과 음울함으로 받아들이는 건지도 모른다. 이들을 둘러싼 인물들, 그들이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 '국민 양심 테스트'로 불린 1천원 모금에 대한 국민 여론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인간상을 그린다.

    1천원 모금과 아이를 향한 시선들을 통해 영화는 관객들을 끊임없이 시험하고 질문을 던진다.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지 등 말이다.

    영화 '고백' 스틸컷. 리틀빅픽처스·퍼레이드픽쳐스 제공

     

    영화는 아동학대를 건드리지만 학대를 직접적으로 보여주지는 않는다. 다만 학대라는 거대한 폭력이 지금 겪고 있는 아이, 그리고 그 시간은 견뎌내어 어른이 된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반면 영화는 오순이라는 사회복지사를 등장시켜 현재의 시스템과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결코 근절될 수 없는 아동학대의 굴레와 사회 시스템의 빈틈만큼은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보호할 수 있는 위치에 섰지만 무기력함만 반복해서 느끼고 좌절해야 하는 오순의 모습은 우리가 무엇을 놓치고 있는지 보여준다. 개인의 분노, 짧은 관심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오순의 분노는 증오가 되고, 증오는 애써 지켜온 자신을 무너뜨린다. 오순은 자신을 '고장 난 어른'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의 대에서 끊어내지 못한 폭력의 굴레를 보라만큼은 끊어내길 바란다. 이러한 오순의 고백은 현실의 우리들을 서글프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영화에는 상처를 가진 이들의 여러 고백이 나오지만 보라의 고백은 앞서 아이에게서 느낀 선뜩한 음울함마저 부끄럽게 만든다. 보라라는 어린 피해자가 최악의 상황에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 그리고 가장 아프게 자신을 고백할 수밖에 없게 한 우리를 부끄럽게 만든다.

    아동학대라는 소재뿐 아니라 또 다른 폭력과 이에 얽힌 많은 사람을 모두 짚고 풀어 내려다보니 중심 이야기에 대한 집중도가 다소 흔들리는 듯 보인다. 그러나 점점 현재와 과거의 폭력과 그늘에 잠식돼 가슴 아픈 고백을 내뱉는 오순을 연기한 박하선의 얼굴이 뚜렷하게 관객들 감정을 붙잡는다.

    어느 때보다 관심 있게 바라보고 또 적극적으로 목소리 내야 하는 지금인지라, 영화 '고백'이 가진 의미는 새삼 더욱 크고 무겁게 다가올 것이다.

    99분 상영, 2월 24일 개봉, 15세 관람가.
    영화 '고백' 포스터. 리틀빅픽처스·퍼레이드픽쳐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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