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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보로 보는 한국사 ①] 오세훈, 서울시장 트라우마에도 재출마한 이유는?



정치 일반

    [후보로 보는 한국사 ①] 오세훈, 서울시장 트라우마에도 재출마한 이유는?

    • 2021-02-23 07:00

    '오변·배변' 방송·일조권 소송으로 스타덤
    18대 총선 불출마 후 2006년 서울시장 당선
    "보수냐 국민이냐" 오세훈 앞 두가지 갈림길
    무상급식 사퇴 후 '보수의 보수화' 재촉돼
    야권 승리에 기여해 '10년의 짐' 벗고 싶을것

    ■ 방송 : CBS 라디오 <김종대의 뉴스업=""> FM 98.1 (18:25~20:00)
    ■ 진행 : 김종대 (연세대 객원교수)
    ■ 대담 : 박성민 대표 (정치컨설팅 ‘민’), 김수민 평론가, 김민하 평론가, 임경빈 작가


    ◇ 김종대> 4월 재보궐 선거 이제 40여 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후보 간의 경선 아주 치열해지고 있습니다. 김종대의 뉴스업에서 여러분들 위한 특별한 코너 준비했습니다. 후보로 본 현대사. 후보의 현대사라도 해도 되겠네요. 각 후보의 행적을 통해서 인생 역전 현대사를 짚어봅니다. 이 시간을 위해 특별히 정치컨설팅 ‘민’의 박성민 대표 나오셨습니다.

    ◆ 박성민> 안녕하세요.

    ◇ 김종대> 특별히 반갑습니다. 그리고 정치인과 현대사하면 이 세 분 빠질 수 없죠. 뉴스업 주제의 맞춤형 게스트 뉴스화산 김수민, 뉴스빙하 김민하, 퀵마우스 임경빈 작가 세 분도 함께하십니다. 오늘 첫 시간으로 누구를 하면 좋을까 고민했는데 화산 첫 주인공 소개해 주시겠습니까?

    ◆ 김수민> 현재의 서울시장 후보군 중에서 유일하게 서울시장 경험이 있는 후보, 오세훈 전 시장, 첫 번째 시간 인물로 정했습니다.

    ◇ 김종대> 1번 타자는 오세훈 전 시장이다. 그러면 오세훈은 누구인가. 먼저 설명을 듣겠습니다. 퀵마우스 임경빈 작가.

    ◆ 임경빈> 제가 정리해 드리겠습니다. 모두의 이력서는 역사가 된다. 정치인 오세훈의 약사입니다. 1961년생이고요. 84년 사법시험 합격. 첫 번째 정치적 분기점은 1991년입니다. 변호사 개업 직후에 인천 산곡동 경남아파트 주민 집단 소송 사건을 수임을 했는데 아파트 간격을 건설사가 너무 가깝게 지어서 햇빛이 들지 않으니까 일명 일조권 소송을 벌였는데 당시까지는 한국에 아직 생소했던 주거환경권을 내세운 소송에서 승리를 하면서 역시 당시까지는 아직 생소했던 환경전문변호사로서 입지를 구축했습니다. 훤칠한 인상과 깔끔한 목소리에 방송계가 주목했고요. MBC 생활법률 프로그램인 오변호사, 배변호사로 스타덤에 오른 뒤에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시사프로그램으로 유명세를 탔습니다. 오죽했으면 1996년 2월 동아일보에 결혼하고 싶은 남성상 조사를 했더니 6위가 당시 오세훈 변호사였다. 7위가 누구냐면 참고로 영화배우 이병헌 씨였습니다. 남성 스타의 상징이었던 양복 정장 광고를 하기도 했는데 그런 어떤 깔끔한 이미지를 바탕으로 2000년 16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서울 강남을에서 당선이 됐지만 정작 의정활동에서는 그렇게까지 큰 임팩트를 보이지를 못했다는 평가를 받다가 2004년 임기 막판에 돌연 총선 불출마를 선언, 이후에 정치자금법 개정에 앞장을 섭니다. 이게 기업의 정치자금 후원 금지와 지구당 폐지를 담은 일명 오세훈법인데 정치 현실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많았지만 본인은 결국 깨끗한 정치라는 이미지를 자산으로 챙겨서 국회를 떠났습니다. 이 이미지 그대로 2005년이 되면 그 유명한 얼음정수기 광고를 따내는데요. 당시 정수기 문구가 '속 보이는 얼음처럼 세상도 투명하게' 였습니다.

    ◇ 김종대> 그러니까 일약스타로 뜨게 된 사건이 91년의 일조권 소송이다. 이거 어떤 내용입니까?

    ◆ 김민하> 일조권이라는 게 사실 저는 지금도 1층에 살고 있습니다. 1층에는 빛이 안 들거든요. 그런데 빛이 안 드는 것에 대해서 팔자라고 생각을 하지 그것이 권리가 박탈됐다, 이렇게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런데 이 당시에 일조권이라는 개념도 없을 때인데 하지만 좀 그래도 좋은 환경에 산다든지 또는 너무 이게 빛이 안 드는 건물을 짓거나 해서 그 건물에 가려서 빛이 안 든다든지 이게 심각한 피해라고 생각을 하면서 이제 일조권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기던 때 이걸 변호를 했다는 거죠. 뉴스화산님은 이 얘기 잘 알지 않습니까?

    국민의힘 오세훈 서울시장 예비후보가 21일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상가를 방문해 상인들과 인사하고 있다. 윤창원 기자

     


    ◆ 김수민> 저는 일조권보다도 오세훈 당시 변호사가 방송을 진행할 때 오변호사, 배변호사이 방송이 제가 살던 아파트에 왔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뚜렷하게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 김종대> 그렇군요.

    ◆ 임경빈> 도움을 좀 받으셨나요, 그러면?

    ◆ 김수민> 그때가 모 기업의 하수종말처리장냄새 때문에 저희 주민들이 굉장히 고통을 받고 있을 때였는데 이것으로 크게 여론이 환기가 되긴 했었죠. 그리고 어떤 배상 이런 걸 떠나서 그 기업 측에서 처리장을 옮겼습니다. 그 프로그램 여파가 있었던 거죠.

    ◇ 김종대> 오세훈 당시 변호사가 찍은 광고 중에 정수기 광고. 그러니까 이렇게 투명하고 맑은 거 이런 쪽의 이미지로 떴단 말이에요. 우리 박성민 대표님. 오세훈 대표 이미지가 시작은 참 신선하고 맑고 좋았어요. 굉장히 이미지가 자산인 그런 정치인 같습니다.

    ◆ 박성민> 저는 그분을 개인적으로 2000년에 처음 뵀는데 그때 그분이 양복 광고 유명한 로로 시작하는 그 광고 모델도 하고 굉장할 때죠. 그리고 영화배우 같은 그런 샐럽 같은 이미지로 처음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 김민하> 박성민 대표님 선거 전문가시니까 선거 전문가 입장에서 볼 때 그런 컬러의 어떤 인물을 한번 정치인으로 데뷔시켜보면 어떨까라든지. 어떻게 보세요? 정치인으로서의 원석, 반짝반짝 빛나는 그런 원석이었을까요?

    ◆ 박성민> 정치컨설턴트가 생각만큼 그렇게 그렇지 않아요. 제가 이 일을 오래 하다 보니까 많은 후보를 만나죠. 그런데 연예인급으로 유명했던 분들. 실제 연예인도 있고. 그런데 홍정욱이라고 전 의원, 남궁원의 아들. 이분도 제가 딱 봤을 때 이분은 더 연예인 같구나, 실제로. 그런 느낌을 받았고. 오세훈 후보도 제가 처음 봤을 때 거의 이제 연예인 같다, 이런 생각을 했고요. 이제 길거리 같이 걸어보면 알잖아요. 남들 반응이라는 게 어느 정도의 인지도가 있고 어떤 반응을 대중들에게 보이느냐를 보면 많은 후보들이 있지만 홍정욱, 오세훈 이 두 분은 거의 연예인급의 그런 인지도와 대접을 받았다 저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 김종대> 그러면 팬덤도 아주 형성하는데 굉장히 큰. . .

    ◆ 임경빈> 그렇죠. 그분들 팬덤들이 있고 그랬죠.

    ◆ 김민하> 특히 지금 환경변호사 이렇게 이름도 날렸으니까 그 시기에 예를 들면 정치나 선거에서 환경 이슈 이런 게 얼마나 파괴력이 있었죠? 그때 우리는 너무 어려서 잘 모르거든요, 사실.

    ◆ 박성민> 글쎄요, 이분 2000년에 처음 나왔는데 2000년에 제가 사실 오변호사, 배변호사 이때는 제가 잘 몰랐고 그것이 알고 싶다 진행도 했다고 하는데 실제 저는 2000년 총선 때부터 기억이 납니다. 2000년 총선이라는 건 김대중 대통령이 이른바 386이죠. 386을 대거 영입했죠.

    ◇ 김종대> 그렇죠. 젊은 피 수혈받는다고 해서.

    정치컨설팅 '민' 박성민 대표 (사진=김종대의 뉴스업)

     


    ◆ 박성민> 그래서 새천년민주당이라는 당을 만들고 임종섭, 이인영, 우상호 이런 분들이 다 그때 영입돼서 나간 거거든요. 그렇게 했기 때문에 이해찬 한나라당 대표도 영입을 안 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아마 제 생각에 그때 대표적으로 들어왔던 분들이 오세훈, 원희룡 이런 분들인데 또 고진화 이런 분들도 운동권 출신들도 들어오고 했지만 특히 인기 있었던 건 원희룡, 오세훈 이 두 분이 굉장히 아마 모르기는 해도 그때 양당으로부터 다 아마 러브콜을 받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이제 한나라당을 선택했고 당시로서는 한나라당의 텃밭이라고 하는 오세훈 후보는 강남을의 공천을 받았고 원희룡 후보는 양천갑. 지금은 민주당이 거기에서 다 국회의원을 합니다마는 그때만 해도 아주 전통적인 보수텃밭이었죠. 거기를 공천을 받고 들어왔죠.

    ◇ 김종대> 그렇군요. 정치 입문 이후에 가장 개혁적인 행보 이걸 꼽으라면 바로 오세훈법이라고 하는 정치자금법 통과입니다. 당시 장면이 준비된 것 같습니다. 듣고 가시죠.

    [오세훈 / 당시 한나라당 의원 : 조그마한 기득권이라도 이를 버리는 데서 정치 개혁이 시작된다고 주장했던 대로 이제 이를 실행하려 합니다. 그러한 고민의 산물인 지난번 지구당 위원장직 사퇴에 이은 것이 이번 불출마이며 이것이 정치권의 새로운 변화를 바라는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습니다.]

    ◇ 김종대>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정치자금법 개정안을 내놨습니다. 이게 지구당을 폐지하는 어떤 정치자금법 역사에서 가장 획기적인 법안으로 지금도 평가되고 있죠?

    ◆ 김민하> 그런 것 같습니다. 그때 지구당이 돈 먹는 하마다, 이렇게 얘길 해서. 지구당에 예를 들면 그 동네 국회의원이나 이렇게 유력한 사람이 있으면 다들 거기에 와서 이제 음성적인 얘기를 하기도 하고 거래가 오가기도 하고.

    ◇ 김종대> 우선 돈이 많이 들었어요, 유지하는데.

    ◆ 김민하> 그렇죠. 일단 돈이 많이 들었고 거기서 그런 일들이 많이 벌어질 것이다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 그때 많이 나온 기사들 중에는 짜장면 먹는 얘기도 그랬는데 거기 모여서 그런다라는 얘기도 있었는데. 사실 짜장면은 핵심은 아니겠죠. 그런데 이게 오히려 이게 되면서 이게 사실은 정당의 지역활동이라는 게 사실은 정당 정치를 굉장히 엄밀한 의미에서 하려면 중요한 것인데. 이 법 때문에 오히려 그게 어려워졌다 이런 평가도 또 있는 거거든요. 그래서 이런 상반된 평가가 있는 어떤 그런 법안이었기 때문에 사실 이미지로는 굉장히 깨끗한 정치를 추구했다 이런 이미지를 오세훈 지금 후보가 남겼지만 실제로 정당정치라는 측면에서 어땠을까 이건 의문이 남는 것 같습니다.

    ◆ 김수민> 그 당시에 새정치라고 하는 것이 그때도 있었던 것이고 그 핵심 내용이 국민 여론들 사이에서는 돈 먹는 하마들 좀 없애라고 하는 거고. 그다음에 정당과 정치는 국회라는 터가 있지 않느냐. 국회 원내 중심 정당을 만들어라. 이런 것이었거든요. 이게 한마디로 유럽식보다는 미국식 정치 개혁 모델인데 일각의 시민단체, 참여연대라든지 이쪽에서 그런 방향으로 추구하고 있었고. 그런 것들이 내용에 담겨져서 오세훈법이라고 나타났던 거고 이러다 보니까 다른 정당 모델을 모색했던 민주노동당이라든가 이쪽에서는 이 법을 악법으로 평가하는, 지구당 폐지를 포함해서. 그런 분위기도 또 있었습니다.

    ◆ 박성민> 이건 약간 시대적 배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데 2003년도에 노무현 정부 첫 해에 이른바 대선자금 수사가 있었습니다.

    ◇ 김종대> 그랬죠.

    ◆ 박성민> 그래서 여야에 노무현 대통령 최측근인 안희정 씨도 구속되고 그다음에 특히 한나라당은 타격을 많이 받았습니다. 차떼기라는 오명도 쓰고. 그래서 정치자금에 대한 굉장히 부정적 이미지가 확산되어 있었던 상황이고 그런 것들이 영향을 저는 미쳤을 수 있다 그런 생각을 합니다. 물론 저도 개인적으로는 이 법에 대해서는 평가가 다 갈리지만 제가 한때 칼럼에서도 비판하면서 이건 미국의 옛날의 금주법 같은 거다. 일종의 술을 못 만들게 하니까 음성적인 마피아가 돈을 더 벌고.

    ◇ 김종대> 번성했죠.

    ◆ 박성민> 그러니까 오히려 이걸 좀 양성화시켜서 정당으로 합법적인 돈들이 투명하게 갈 수 있도록 그렇게 했더라면 어떨까. 이걸 막아놓게 되니까 음성적으로 더 하게 되는 그런 건 있겠습니다마는 당시는 어쨌든 한나라당은 당사도 내놓고.

    ◇ 김종대> 연수원도 팔아버리고 그랬죠.

    ◆ 박성민> 굉장히 절박했던. 그러니까 연수원은 내놓고 당사는 팔고 이렇게 지금 된 걸로 기억하는데 그런 정도였기 때문에 그런 배경이 좀 의미 있다,

    ◆ 김수민> 그리고 이 법 내용뿐만 아니라 이 행보가 결정적이었던 것이 오세훈 당시 의원이 오세훈법을 처리하면서 총선에 불출마하겠다라고 한 다음에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되거든요. 엄청나게 한나라당이라든지 이쪽 의원들이 비판을 많이 받는데 거기서 오세훈 당시 의원은 빠져나올 수 있었다라고 하는 점도 있습니다.

    ◇ 김종대> 그러니까 본인은 나름대로 불출마를 하면서도 정치를 했어요. 그게 바로 이 정치자금법 개정안인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18대 총선 불출마 선언하고 정치와 한발 멀어졌던 오세훈 전 의원을 다시 불러냈던 것이 2006년 서울시장 선거입니다. 그 이후로 오세훈 후보의 행보 퀵마우스 소개해 주시죠.

    퀵마우스 임경빈 작가 (사진=김종대의 뉴스업)

     


    ◆ 임경빈> 다시 오세훈 정치 약사입니다. 세상도 투명하게라는 정수기 광고 문구랑은 다르게 그의 정계 복귀는 조금 갑작스럽게 전격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당시 열린민주당 강금실 법무부 장관의 바람에 맞선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경선을 불과 16일 앞두고 전격적으로 복귀를 선언, 당내 경쟁자였던 홍준표, 맹현규 후보를 밀어내고 최종 한나라당 후보가 됩니다. 이때 한나라당의 상징색은 파란색이었는데 파란색을 안 쓰고 초록색을 자신의 색깔로 내세워서 선거운동을 했고요. 반대편의 강금실 후보는 열린우리당 상징색인 노란색을 빼고 보라색을 내세웠었습니다. 여야가 서로 자기네 당 상징색을 버렸던 조금은 희한한 대결의 선거였고요. 결과는 오세훈 후보의 압승 61%라는 역대 서울시장 최대 득표율로 당선이 됐습니다. 이후에 2010년 재선에까지 성공했었습니다.

    그런데 오세훈 정치 역점의 결정적 분기점은 2011년에 찾아옵니다. 2010년 지방선거를 휩쓸었던 무상급식 정책에 반기를 들면서 당시 민주당의 다수였던 서울시의회와 계속 갈등을 빚다가 결국에는 시장직을 걸고 주민투표를 강행했는데 졌습니다. 그래서 시장직을 내려놓게 됩니다. 주민투표 투표율 25.7%, 개표 요건인 30%를 넘기지 못하고 투표함은 개봉조차 못했습니다. 투표가 끝난 바로 다음 날 당시 한나라당 지도부의 만류를 뿌리치고 퀵 사퇴. 5년간의 오세훈표 서울시정에서 오세이돈과 무상급식 반대라는 이미지만 남긴 채 이렇게 퇴장했습니다. 이 사퇴가 이후 10월 재보궐선거로 이어지면서 안철수의 급부상 그리고 박원순의 서울시장 당선 그리고 기나긴 그야말로 기나긴 한나라당 고난의 행군의 시작이 될 줄은 아무도 미처 몰랐습니다.

    문제의 2011년 이후에는 그야말로 복귀 노동과 패배의 반복입니다. 2016년 20대 총선, 서울 종로구에서 정세균 현 총리와 맞붙어서 패배, 2017년 새누리당 탈당 후 바른정당으로 왔다가 2018년 자유한국당 복당해서 2019년 당대표 출마했다가 황교안 대표에게 패배. 2020년 21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구을에서 고민정 의원과 맞붙어서 역시 패배. 그리고 2021년 10년 만에 다시 그 자리입니다.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에 출마를 했는데요. 이미지에서 그다음 이미지로 정치 행보를 이어왔던 정치인 오세훈이 2021년에 남길 마지막 이미지는 뭘까요?

    ◇ 김종대> 10년의 역사가 굉장히 좀 파란만장합니다. 수많은 어떤 영광과 좌절이 교차하네요. 2006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와 거리를 두었던 오세훈 후보가 혜성처럼 서울시장 후보에 등장했다 어떻게 봐야 됩니까?

    ◆ 김민하>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때 정말 혜성처럼 등장했나 봐요. 왜냐하면 그전까지 서울시장 후보 누가 나갈거냐 이걸 놓고서는 당시에 한나라당에서는 오세훈 사실 후보가 거론되지 않던 시기가 있었고 오히려 홍준표 지금 의원이라든지 그리고 지금은 상당히 잊혀진 이름입니다마는 맹현규 전 의원이라든지 이런 사람들이 막 논쟁에 나올 때이고 정책도 무슨 반값 아파트 얘기도 있고 그랬던 시기로 기억하는데 그런데 아무래도 상대인 열린누리당에서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 나온다고 하면서 대항마처럼 거론된 측면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을 하거든요.

    ◇ 김종대> 그때 강금실 후보 열풍이 초반에 대단했는데.

    ◆ 김민하> 그렇죠. 이건 사실 왜 한나라당이 이런 선택을 했는지는 선거 전문가한테 한번 물어봐야 되지 않겠습니까?

    김민하 시사평론가 (사진=김종대의 뉴스업)

     


    ◆ 박성민> 결과적으로 보면 2006년 선거는 한나라당이 압승을 했기 때문에 홍준표, 맹현규, 오세훈 누가 나갔어도 압승을 했을 겁니다. 그런데 사실은 맹현규 후보가 좀 앞서나가면서 뒤에 홍준표 후보가 뒤늦게 출마 선언을 하면서 경합을 하고 있을 때였죠. 그런데 여론조사를 할 때 저는 지금도 불만인 게 대통령 후보들 할 때 여야를 섞어서 쭉 늘어놓잖아요. 다른 나라는 이렇게 안 합니다.

    ◇ 김종대> 그렇습니까?

    ◆ 박성민> 미국은 이제 민주당, 공화당 따로 하죠. 여권, 야권을 같이 경쟁할 일이 없으니까. 그렇게 하고 가상 대결을 붙이는 방식인데. 지금도 우리는 여권, 야권을 분리해서 조사하는 게 맞다고 봅니다. 그다음에 이제 각 진영의 대표 주자를 가상대결 붙여보면 되는 거죠. 그런데 2006년에 제 기억에 그런 식의 조사 방법이 거의 처음 들어온 것 같아요. 쭉 늘어놓고. 그런데 그때는 기술적으로 이게 로테이션 되는 게 잘 안 돼서 강금실은 가나다순으로 홍준표는 저기 제일 뒤에 있고 강금실 가나다순으로.

    ◆ 박성민> 그때 후보들을 물어볼 때 사실 교육감 2009년인가 언제까지 교육감 선거 때는 전부 다 강 씨가 제일 앞에 가는 가나다 순으로 이렇게 후보를 한 적도 있어요, 우리가.

    ◆ 김민하> 여론조사 과정에서 물어보는 순서 말씀하시는 거구나.

    ◆ 박성민> 그렇게 물어보니까, 가다나 순으로 물어보는. 그렇기 때문에 그때 사실 좀 혜택을 봤죠. 1번으로 강금실이 나오니까. 사실 그래서 강금실 장관이 상당히 경쟁력 있는 걸로 초기에 좀 나왔는데 그래서 이제 한나라당 내에서 이기려면 맹현규, 홍준표 가지고 안 된다. 그러니까 안 하려고 하는 오세훈을 그때 이제 좀 젊은 분들이 종용을 했죠, 당신 나와야 된다. 그래서 뒤늦게 출마 선언을 하고. 바로 출마한 것도 아니에요. 출마를 딱 하려고 했는데 당비인가를 안 내서.

    ◆ 김민하> 2년 동안.

    ◆ 박성민> 당원 자격이 없어요. 엄밀하게 말하면 그때 홍준표 대표가 만들어놨던 홍준표 혁신안에서 만들어놨던 2332룰 방식이라고 하는 게 한나라당 대선 경선을 위해서 그다음에 2007년에 대통령 경선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룰이 있는데 그 룰로 서울시장 선거를 처음 치러보는 겁니다. 대의원, 당원 그다음에 국민참여선거인단 그다음에 여론조사 이렇게 된 건데. 우선 후보 자격이 없는 거예요. 본인도 아마 사퇴를 고민했을 것 같아요. 그런데 통 크게 맹현규, 홍준표 두 분이 선배답게 그거 같이 하자. 진짜로 그걸 통 크게 열어준 거예요. 열어줘서 후보가 되고 압승을 했죠. 그때는 누가 나가도 압승을 했을 겁니다.

    ◇ 김종대> 그렇군요.

    ◆ 김민하> 오세훈만이 아니어도 이길 수 있었다.

    ◆ 김수민> 당시 열린누리당 분위기가 너무 나빠서 결과적으로도 광역단체장 중에서 전라북도 도지사 한 명만 당선이 됐죠. 그렇기 때문에 결과론적으로 보면 한나라당에서 누가 서울시장 후보로 나갔어도 승리했을 거다라는 가정이.

    ◆ 김민하> 결국은 강금실 1위라고 하는 성적이 오세훈 지금 후보로서는 상당히 득이 된 거네요, 개인으로 놓고 보면.

    ◇ 김종대> 그렇죠. 호명을 당한 계기가 강금실 요인이었으니까요. 이게 선거는 그렇게 해서 무난히 사필귀정처럼 이겼다, 이거예요. 그런데 서울시장에 갑니다. 그리고 2010년에는 서울시장 재선에도 성공합니다. 이 정도면 성공한 시장 아니냐 이러는데 재선 시장 때 돌발변수가 발생하죠. 시장직을 걸고 나서며 울먹이는 모습이 있었습니다. 무상급식 주민투표 문제였습니다. 당시 음성 듣고 가겠습니다.

    [오세훈 / 당시 서울시장 : 존경하는 서울시민 여러분, 8월 24일 치러질 이번 주민투표 결과에 제 시장직을 걸어서 그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의 제 결정이 우리나라의 지속 가능한 복지와 참된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는 데 한 알의 씨앗이 될 수 있다면 저 오세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해도 더 이상 후회는 없습니다.]

    ◇ 김종대> 굉장히 비장한 성명서입니다. 시장직을 내려놓겠다는 이야기예요. 그 정도로 당시에 무상급식 이슈가 이렇게 중요한 문제였나요?

    ◆ 김민하> 그 당시에 이제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열풍이 불고 이래서 그 당시 제 기억으로는 지금의 더불어민주당 그때는 민주통합당이었습니까? 아무튼 그 당이 상당히 성적을 많이 거두고 그리고 전국적으로 하여간 무상급식 이슈는 굉장히 파괴력 있는 이슈로 여겨지던 시절이었죠. 그래서 저는 아직도 사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잘 이해는 안 되는 게 그러한 파괴력 있는 이슈이고 전국적인 열풍이 있었는데 왜 굳이 오세훈 시장은 당시에 이런 약속을 걸고 주민투표를 강행하려고 했을까. 해석은 분분했습니다. 저 같은 정치평론가들이 대선으로 가려는 징검다리이다, 여러 가지 해석을 했습니다마는 왜인지는 아직도 궁금하고. 역시 박성민 대표님한테 물어봐야 됩니다. 왜 그랬을까요?

    ◆ 박성민> 약간 이것도 배경 설명이 필요해요. 2006, 2007, 2008년 한나라당이 크게 다 3번 압승합니다. 2006년 지방선거도 역사상 유례없는 압승을 했고 2007년 대통령 선거도 530만 표 차이로 이명박 후보가 당선 되고 2008년 총선도 여당이 한나라당에 압승을 하죠, 민주당이 패배하고.

    민주당이 굉장히 암울했을 때인데 2009년에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이 두 분 다 돌아가십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게 그때 야당에다가 새로운 분위기를. 그래서 2010년 선거는 지방선거는 이른바 친노의 부활이에요. 그러니까 대거 친노들이 구청장, 시장, 도지사, 광역단체장의 공천을 받고요. 이렇게 온 겁니다. 그런데 이제 그때를 우리가 되돌아보면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2008년도에 월가가 붕괴한 이후로 'occupy 운동(월가 점령 시위 : Occupy Wall Street)'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면서 젊은층의 분노가 있고 그랬죠.

    ◇ 김종대> 점령운동.

    ◆ 박성민> 그래서 그때 이것이 2010년 지방 선거에도 투표 참여운동으로 연결이 됐고. 그러면서 전 세계적으로 포퓰리즘 논쟁이 좀 붙었어요. 2009년도 금융위기 이후에 그리스 재정위기 같은 게 있고요. 그래서 사실 오세훈 시장은 40대에 재선시장이 되는 최초의. 그건 조선시때 때부터 해서 통틀어서 서울시장에 더군다나 40대에. 그러니까 이분이 2000년에 들어와서 2010년쯤에는 누가 봐도 한나라당의 전략적 자산으로 성장한 분이에요.

    한나라당 전략적 자산이 돼서 시장 재선되고 문을 탁 열고 나가니까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단 말이에요. 하나는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로 한 단계 올라갈 수 있는 도약할 수 있는 길이 있고 또 하나는 보수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이 있는 거예요. 그때 아마 그분이 대한민국의 전략적 자산이 되는 길로 갔다면 무상급식 같은 거 수용하고 말이죠. 이랬다면 더 큰 정치인 됐을 겁니다.

    그런데 그때 두 가지 이유가 있었어요. 보수의 전략적 자산의 길로 간 이유가 있는데 하나는 박근혜라는 변수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뭐라고 많이 얘기했냐 이명박 대통령이면 절대 박근혜한테 차기를 주지 않는다. 그러니 서울시장 오세훈이든 경기도지사 재도전한 김문수든 또 김태호 나중에 총리 지명된 이런 분들에게 기회를 줘서 반드시 맞을 거니까 한번 뛰어봐라. 이런 걸 이제 얼마나 솔깃했겠어요. 그렇게 예측해 봅니다, 그냥.

    ◇ 김종대> 저 같으면 솔깃해서.

    ◆ 박성민> 그 얘기를 청와대가 안 했다고 하더라도 소위 친이계에서는 주자죠. 주자 중에 한 명일 거 아닙니까? 그런 게 하나 영향을 미쳤을 것 같고. 또 하나는 마침 그때 분 무상급식 바람입니다. 이게 2009년에 경기도 교육감이 된 김상곤 교육감이 무상급식을 정면 무상급식을 들고 나왔는데 2009년도 경기도 의회의 상황은 2006년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을 했기 때문에 도의 상황이 그걸 관철시킬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그래서 2010년 선거 때 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이 이걸 전면적으로 들고 나왔죠. 오세훈 시장은 이때 하위 30%까지만 해 주자고 얘기를 했어요. 그런데 그 선거 0. 6% 차로 한명숙 후보한테 진짜 신승을 했어요.

    ◇ 김종대> 신승을 했어요, 새벽에.

    ◆ 박성민> 그런데 하고 보니까 이게 완전히 민주당 의회가 되니까 본인도 현실을 인정해서 50%로 좀 올립니다. 50%로 좀 하자. 나중에 무상급식 문구에 보면 첫 번째 안이 오세훈 안인데 50%까지 단계적으로 하자 이렇게 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런 상황에서 민주당 의회가 다수파가 되니까 그걸 가지고 견디다 못해 2011년에 이제 주민투표에 들어가게 되는 거죠.

    ◆ 김민하> 현실적 한계와 자신의 어떤 대권에 대한 어떤 생각, 이게 겹쳐진 결과였다라고 이렇게 볼 수 있네요.

    ◆ 박성민> 그건 잘 모르겠어요. 그 시절에 그런 박근혜는 아닐 거다라는 것이 있었을 거고. 그때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보편복지냐, 선별복지냐. 이게 대한민국에서 굉장히 뜨거웠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아무 논쟁거리도 아니지만 당시에는 이게 다른 나라의 재정 얘기까지 얘기가 돼서 굉장히 뜨거운 이슈였기 때문에 이 이슈를 내가 잘 다루면 보수의 대권주자가 될 수 있다라고 생각을 했을 수 있다고 봅니다.

    ◆ 김수민> 저는 그때 지방의원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제가 일하고 있던 공간에서도 무상급식이 대단히 큰 화제였고. 그래서 이 주민투표 과정을 굉장히 눈여겨보고 있었죠. 그런데 공교롭게도 제가 다녔던 대학교에서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총학생회장이 총여학생회를 폐지하겠다면서 학생 총투표에 이걸 붙이거든요. 그때 결국에 그 학생회장이 투표율이 안 올라가니까 무릎을 꿇었습니다. 투표해 달라. 그리고 투표율은 최종적으로 25%가 나왔어요. 그래서 저는 그때 경험을 토대로 오세훈 주민투표도 똑같이 된다, 오세훈 시장도 무릎을 꿇고 투표율도 25%쯤 나온다, 결과는 25.7%.

    ◆ 김민하> 투표랑 관련이 없는 것 같은데. 믿기 어려운 얘기예요, 25%. 내가 그때도 이걸 맞혔다 이거죠.

    김수민 시사평론가 (사진=김종대의 뉴스업)

     


    ◆ 김수민> 그런데 이게 얼마나 강렬한 효과를 발휘했냐면 사실 오세훈 당시 전 시장이 그 당시에는 학습 준비물, 학교에서 지원하는 것도 서울시 정책으로 했었고. 민간 어린이집 보육료라든지 이런 지원도 굉장히 늘렸었거든요. 그런 복지시장의 이미지가 있었는데 이 투표를 통해서 그 부분은 잊혀졌다라는 측면이 있는 거죠.

    ◇ 김종대> 투표 이야기로 바로 넘어갈게요. 그런데 질문이 들어왔어요. 아까 퀵마 브리핑 중에 오세이돈이라는 용어가 나왔는데 그거 왜 나온 건지 짚어주시죠.

    ◆ 임경빈> 2011년 주민투표가 있던 해에 7월에 집중호우가 서울에 쏟아진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에 서울 강남대로나 혹은 광화문대로까지도 엄청난 침수 사태가 발생했었죠.

    ◇ 김종대> 완전 물바다였어요.

    ◆ 임경빈> 물바다였고 저도 이제 개인적인 경험으로는 그 당시에 여의도 국회의사당에 차를 세워놨다가 차가 침수가 됐던 그런 경험을 하면서 아, 오세이돈이라는 이름이 저의 뇌리에도 강하게 아주 새겨졌던 이런 사태인데 그러다 보니까 그 당시에 서울시민들 사이에서 인터넷을 중심으로 어떤 패러디가 돌았냐면 아니, 애들 무상급식하라니까 그건 안 하고 왜 우리한테 무상급수를 하고 있냐 이런 식의 비꼬기. 그래서 그 물난리 사태 이후에 7월의 물난리 사태 이후에 8월에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는 굉장히 부담을 크게 안고 주민투표로 넘어갔던 그런 어떤 정국의 상황이 좀 있었죠.

    ◇ 김종대> 그래서 빚대서 말씀하셨다, 이런 설명입니다. 어쨌든 주민투표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투표율이 원하는 수치에 미치지 못하고 투표함은 개봉도 못하는 이런 사태가 되니까 그다음 날 즉각 사퇴를 결정했는데요. 그 장면 들어보시죠.

    [오세훈 / 당시 서울시장 : 저는 주민투표의 결과에 책임을 지고 오늘 시장직에서 물러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복지 방향에 대한 서울시민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결국 확인하지 못하고 아쉽게 투표함을 닫게 된 점 매우 송구스럽고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 김종대> 이렇게 해서 서울시장에 물러납니다. 당연히 시민들과 정치권 충격을 받았죠. 특히 당시에 한나라당 시끌벅적했겠죠. 아주 이거 폭탄이 터진 거 아닙니까?

    ◆ 김민하> 그렇죠. 서울시장이 어쨌든 이렇게 무모한 도전 끝에 무모한 사퇴를 결정했으니까 잘하는 서울시장이 없어졌으니 얼마나 혼란스러웠겠습니까? 그리고 이게 사실은 서울시장 사퇴가 당내에서도 반대가 많지 않았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행을 한 것이기 때문에 시한폭탄이 터진 것 같은 그런 분위기로 저는 기억을 합니다.

    ◆ 임경빈> 그리고 시기가 문제였는데요. 주민투표에서 졌더라도 사퇴 시기를 바로 붙여서 할 필요가 있느냐가 그 당시의 한나라당 내부의 대체적인 얘기인데. 왜 그러냐면 재보궐선거가 10월에 치러지기 때문에 바로 재보궐시장에서 서울시장 후보가 붙게 되면 정치적으로 상당히 부담이니까 조금 늦춰서 10월 이후에 사퇴를 해라 그게 그 당시의 당 지도부의 의견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그 말을 안 듣고 투표가 끝나자마자 바로 사퇴를 해 버리는 바람에 더 이제 당에서 큰 질책을 받았었던.

    ◇ 김종대> 그러면 당시 대표가 홍준표 대표, 맞습니까?

    ◆ 임경빈> 그렇습니다.

    ◇ 김종대> 이 두 분 사이에 긴장이 조성돼서 악연이 시작된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퀵마가 정리했습니다. 듣고 가시죠.

    ◆ 임경빈> 홍준표와 오세훈 두 사람의 악연의 시작점은 조금 전에도 설명을 드렸다시피 2006년이었습니다. 2005년부터 사실 홍준표 당시 의원은 서울시장 선거를 준비를 해 왔는데 당내에서는 맹현규 행안부 장관하고 각축을 벌이고 있었고요. 그런데 아까 박성민 대표께서 설명해 주셨다시피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어차피 이길 선거였는데 느닷없이 오세훈이 끼어들어서 내가 서울시장직을 놓쳤다라는 일종의 원한이 그때 생기게 됐었던 거고 그래서 그 당시에 홍준표 의원 같은 경우도 계속해서 얘기를 했던 게 나는 10년 동안 당에서 시키는 대로 저격수를 하라고 그러면 저격수를 하고 암살수를 하라고 그러면 암살수를 했는데 2년 동안 당비도 안 냈던 사람한테 후보 자격을 내주라는 말이냐, 이런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우리가 지금 얘기하고 있는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 당시에는 홍준표 당시 한나라당 대표 시절입니다. 그래서 당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에는 친박계였던 유승민 의원이나 황우여 의원 그리운 이름들이네요. 그분들이 강력하게 반대를 했는데. 그 반대를 뚫고 무상급식 주민투표를 지원했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지고 나니까 당하고 제대로 된 상의 없이 곧바로 시장직을 사퇴를 해 버린 거고 그러니까 분노를 하게 됐던 거라서. 그 당시에 기자회견하면서 기자들이 다 있는 자리에서 국익이나 당보다 개인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안 된다. 혹은 앞으로 나하고 다시는 볼 일이 없다, 내가 전화기도 꺼버렸다. 이런 얘기를 하면서 격하게 비난을 했었습니다. 그 당시에 홍준표 대표의 코멘트 한번 들어보시죠.

    [홍준표 / 당시 한나라당 대표 : 오 시장이 전화 왔을 때 내가 전화를 껐습니다. 또 일방적으로 통보하는 게 아닌가 그래서 내가 전화를 껐습니다. 국익이나 당보다도 개인의 명예가 더 중요하다는 것 그것은 당인의 자세가 아니고 조직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 임경빈> 홍준표 대표 같은 경우는 당시에 오세훈 시장의 사퇴와 재보궐선거 패배 때문에 그 폭풍으로 그 해 연말에 당대표직에서도 사퇴를 해서 물러났습니다. 그러다가 다시는 안 보겠다고 했었는데 그러지는 않았고요. 2018년에 역시 자유한국당의 당대표가 홍준표 대표였는데 지방선거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해달라는 오세훈 후보를 후보군에 올렸었는데 정작 그때는 거부를 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악연은 아직까지도 앙금이 제대로 풀리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다, 이런 사연이 되겠습니다.

    ◇ 김종대> 홍준표 의원, 오세훈 후보와의 악연 그 역사도 아주 질긴 악연이다, 이런 느낌이 듭니다. 일각에서 이때를 보수진영 균열이 시작됐다 이렇게 분석하기도 했죠. 바로 그래서 한나라당의 고난의 행군이 시작된다 이런 얘기까지 나옵니다.

     


    ◆ 김민하> 그러니까 이 이후에 익히 아시다시피 이제 안철수의 탄생 그리고 박원순 시장 등장 이렇게 이어지고 오세훈 개인의 역사로 보면 분위기가 사실 그렇습니다. 삼국지를 보시면 제괄량 북벌 이후에 상당수가 불량이 있는데 사실은 복잡하고 슬픈 내용이어서 그런지 사실 잘 조명이 안 되지 않습니까? 오세훈 개인의 역사로 봐도 이후에는 상당히 되는 일이 없는 상황으로 계속 이어져와서 상당히 우울한 얘기들만 있죠.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사실은 바른정당으로 가니 안 가니로 이어지고 그다음에도 총선 나가서 잘 안 되기도 하고 잘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그런 인생이 돼버렸고. 그리고 보수정치도 거기에 휩쓸려서 같이 좀 되는 게 없는 상황이었던 기억이 있죠.

    ◇ 김종대> 그런데 오세훈 시장이 사퇴하는 바람에 박원순 시장이 등장하는 새로운 또 선거의 판이 깔렸습니다. 결국은 박원순의 길은 오세훈이 깔아준 거 아닙니까? 어떻게 보세요?

    ◆ 박성민> 그러니까 이게 지금 아까 홍준표 대표가 7월4일 전당대회에서 천신만고 끝에 정말 그전에도 정당대회를 나왔다가 계속 지고.

    ◆ 김민하> 세 번째 도전 만에.

    ◆ 박성민> 이게 화려하거든요. 홍준표가 1등. 유승민이 2등, 나경원이 3등, 원희룡 4등, 남경표 5등 이게 7월 4일날 이렇게 됐는데. 그 뒤에 무상급식이 무산되지 않았습니까? 아마 홍준표 당대표하고 청와대 임태희 실장하고 오세훈 시장 간에는 사퇴를 하더라도 그러면 이미 8월 20일에 이미 약속을 했으니까 미달되면 사퇴한다고 약속했으니까 하더라도 10월 26일 이후에 하게 되면 4월 총선과 같이 할 수 있는 거 아니냐 그렇게는 양해를 구했던 것 같아요.

    그건 세 분 사이의 약속일 테니 제가 잘 모릅니다마는 그런데 그게 잘 안 지켜지고 일찍 하게 되니까 홍준표 대표가 그런 반응을 아까 저런 반응을 보인 것 같고. 문제는 그때 야당이 굉장히 지리멸렬 할 때였습니다. 물론 그 해 있어서 2011년 4월달에 보궐선거는 민주당이 이겼어요. 강대섭이 손학규한테 지기도 하고 했지만 총선 전망만 놓고 보면 7월 4일 전당대회 이후에 굉장히 한나라당이 새롭게 지금 하고 있는데 갑자기 10월 26일 보궐선거가 장외 우량주인 안철수와 박원순을 야권으로 재편시켰어요. 장외 우량주였는데 가만히 있으면 민주당으로 갈 일이 아닌데 야권으로 재편시켰고 10. 26 선거를 진 거뿐만 아니라 그 해 끝나고 나서 선관위 디도스 공격 파문이 있어서 결국 어떻게 됐느냐. 12월 27일날 박근혜 비리위원장에 들어서거든요. 이게 왜 보수 역사에서 중요하냐면 본인은 좀 억울할 수 있어요. 왜냐하면 2012년에 총선과 2012년 대통령 선거를 이겼으니까.

    2011년이 왜 중요하냐 하면 그게 한국 정치의 지금 구도가 그 해에 다 완성된 거거든요. 실제로 안철수, 박원순, 오세훈, 나경원, 박영선. 이런 얘기하지만 그 해에 문재인도 재등장하는 겁니다. 사실 노무현 대통령 돌아가시고 나서 정계 은퇴뿐만 아니라 완전히 초야에 묻혀 있던 문재인이 그때 책을 내고 출판기념회 한 게 바로 이때쯤입니다. 나꼼수가 등장한 것도 이 해고.

    보수정당으로만 보면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서는 거거든요. 사실 그 전당대회에서 7월 4일 전당대회에서 홍준표, 유승민, 나경원, 원희룡, 남경필이 다섯 분이 지도부가 됐는데 처음부터 전당대회에서 유승민과 원희룡은 ‘반(反)홍’입니다. 그러니까 나경원과 남경필이 홍준표 대표의 편을 들어서 3대 2로 그냥 가는 거죠. 그런 구도가 10‧26 재보선 이후에 남경필마저 이탈하니까 2:3으로 됐다가 나경원마저 이탈하니까 못 견디고 그만뒀고 결국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왔잖아요. 박근혜 비대위가 들어왔다는 건 한국 보수정당에서 굉장히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러니까 2012년에 총선 승리를 했죠. 152석 인가를 했고. 그거는 그 해 대통령 선거에 박근혜 대망론이라는 게 충청도 강원도까지 상륙을 했는데 중요한 건 보수정당 내에 오세훈이 포함됐던 미래연대라든가 개혁파들이 계속 있었잖아요. 그런데 이때를 기점으로 거의 개혁파 목소리가 사라지게 된 겁니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딱 패권을 쥐면서.

    그래서 박근혜 대통령이 2012년 대선을 이겼지만 그 뒤부터 개혁파의 목소리가 보수 정당 내에서, 새누리당 안에서 사라지게 된 역사적 계기가 됐기 때문에 아마 그 점이, 오세훈 후보도 되돌아보면 지금 가면 개인보다도 당이나 그런 역사의 아픔이 좀 있지 않을까. 돌아가면 그 선택을 안 하겠다고 하는 것은 개인적인 욕심 때문이 아니라 그런 당에도 정치의 흐름이 보수화된 것에 대한 후회가 있을 겁니다.

    ◆ 김민하> 보수 정치가 그렇게 되면서 사실 오세훈 후보가 가진 무상급식 투표 이전까지의 장점도 자기가 발휘할 수 있는 공간이 사실상 없어진 거 아닙니까. 그러다 보니까 계속 표류한 거 아니겠습니까.

    ◆ 박성민> 그러니까 그게 좀 안타까울 거예요. 왜냐하면 처음 재선 시장이 나온 거고 경기도지사도 김문수 지사가 처음 나온 거고. 그것이 아까도 말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은 보수의 다음 대통령은 박근혜는 아닐 거야, 이런 거에 대한 오판도. 사실 그렇게 할 거였으면 이명박 대통령이나 그때 한나라당의 지도부가 좀 세게 드라이브를 걸어서는 되는데 그렇게도 못하고. 그래서 여권 내 야당인 박근혜한테 권력이 넘어갔죠.

    (서울=연합뉴스) 이지은 기자 =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광진을에 출마한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가 13일 오후 서울 광진구 강변역에서 퇴근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던 중 한 시민과 주먹인사를 하고 있다. 2020.4.13 jieunlee@yna.co.kr

     


    ◇ 김종대> 그러면 지금 상황하고 한번 비교해 보죠. 문제는 이번 선거입니다. 이번에도 개혁보수냐 전통적 보수냐. 오세훈과 나경원. 이런 식의 어떤 색깔의 분화는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때 당시와 데자뷔 아니냐 이런 의문도 들어요. 이번 선거에서의 오세훈 후보의 중요성 좀 설명해 주시죠.

    ◆ 김민하> 중요한 후보일 텐데, 그런데 지금 말씀하셨듯이 과거에 무상 투표 전에 굳어졌으면 지금 말씀하신 구도로 사실은 당내 경선도 진행이 돼야겠죠. 그런데 지금 사실 오세훈 후보와 나경원 후보 이렇게 둘을 놓고 봤을 때 나경원 후보에 대한 비토 정서랑 나경원 후보에 대한 우측에서의 지지 이런 것들이 확고하게 있는 상황이라고 보이는데. 왜냐하면 그전에 패스트트랙 대응도 있고 자기가 쌓아온 이미지도 있고 그런 게 있으니까. 오세훈 후보가 여론조사상 중도층의 지지가, 잘 나오는 여론조사도 있기는 하겠지만 오세훈 후보로 집중돼 있는 지지라는 게 중도층 또는 개혁파의 지지인 거냐 그것도 의문이거든요.

    ◆ 박성민> 이게 약간 보충 설명이 필요한데 한국의 보수정당이 태동한 것은 사실 어떤 사람들은 뭐 일제 시대 직후까지 끌고 가는데, 그건 심하고. 1990년 3당 합당으로 봐야 되거든요. 3당 합당에 노태우 대통령이 이끌던 민정당의 김영삼이 이끄는 통일민주당이 합류한 거거든요. 이게 어떻게 보면 리버럴이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개혁파라고 얘기할 수도 있고 중도라고 얘기할 수 있는데. 그래서 세력이 팽팽해요. 그래서 보수 정당은 개혁파와 보수파가 굉장히 팽팽했습니다. ‘남원정’도 있고 미래연대도 있었죠.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이 들어오고 나서 점점점점, 그 전부터 그랬어요. 김영삼 이후에 이회창-이명박-박근혜로 가면서 보수정당 안에서 이니셔티브가 TK 쪽으로 이동을 하고 보수파 쪽으로 이동을 하죠. 그러면서 PK 쪽도 이탈을 하고, 개혁파가 이탈을 하고 이런 게 있었는데.

    그래도 이명박 대통령 때까지는 잘 버텼는데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사실 2015년에 김무성-유승민 파동 나고 2016년 총선에서, 국정교과서 파동도 2015년에 있었잖아요 그렇죠. 그러면서 상당히 보수화돼서 거기에 실망한 중도보수가 상당히 이탈을 합니다. 그런데 이탈을 했기 때문에 탄핵 때 62명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탄핵에 동의했을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탄핵이라고 하는 게 보수 분열의 원인이 아니라 저는 결과라고 보는 사람입니다. 만약에 그런 게 없었다면 탄핵이라는 걸 공동으로 막아서 싸웠을 가능성이 있어요. 그런데 이미 분열됐기 때문에 그랬고.

    2017년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대선후보가 참패를 하고 2018년 지방선거도 졌잖아요. 그러면서 사실 보수 정당 내에서 중도보수가 많이 이탈을 했습니다. 계속 졌기 때문에. 작년 총선까지 그랬죠. 이번에 서울시장 후보들 중에서 나경원 후보는 상대적으로 10년 동안 보수색이 좀 더 강화돼서 보수의 지지를 강하게 받고 국민의힘 지지층에서는 조금 더, 그래서 당원 투표에서 이겼다는 거죠. 오세훈 후보는 상대적으로 나경원 후보에 비해서는 조금 더 중도지향적이다, 이렇기 때문에. 그래서 저는 여전히 두 분 간의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 전화 면접 조사로 할 거거든요. 이게 여론조사로 1차 때 오세훈 후보가 얼마큼 이겼는지 모르겠습니다마는 1등 했다는 거예요. ARS로 조사를 하면 나경원 후보가 유리하겠지만 전화 면접 조사는 중도층이나 무당층도 응답을 하기 때문에 제가 보기에 이 승부는 잘 모르겠어요.

    다만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당의 정체성을 봤을 때는 나경원 후보가 마음에 들지만 선거를 놓고 보면 오세훈 후보가 좀 더 나은 거 아닌가. 이 고민이 완전히 끝난 건 아니에요.

    ◇ 김종대> 그러면 당내 입지와 후보의 경쟁력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구별돼야 한다. 이런 말씀처럼 들리네요.

    ◆ 박성민> 그건 지금 국민의힘 지지자들이 국민의당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하거나, 윤석열을 지지한다거나 할 때의 고민이 똑같은 거죠. 지금 필요한 건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에 반대하는 누군가가 무조건 이겼으면 좋겠는 거예요. 당의 정체성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은 중도에서 지지를 조금 더 얻는 그런 후보가 강세를 보일 수밖에 없고 상대적으로 보면 그런 문제는 안철수 후보가 조금 더 강세고 당내에서는 오세훈 후보가 나경원 후보보다는 조금 더 중도지향적이기 때문에 이게 아직까지 승부가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보는 거죠.

    ◆ 김민하> 방금 말씀하신 탄핵 국면에서 이탈한, 중도보수 내지는 개혁보수의 마음을 누가 데려올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할 텐데. 사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그렇고 오세훈 전 시장도 그렇고 이게 마음을 데려오는 것을 잘 하려면 실력이라든지 어떤 문제를 잘 다룰 수 있다는 이미지가 있어야 되는데. 안철수 대표도 좀 뭔가에 미숙하다는 이미지가 있기는 하지만 오세훈 전 실장도 사실 이번에 출마선언을 할 때나 ‘v' 논란 이런 걸로 볼 때나 상당히 희화화되기 쉬운 행보가 또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출마 선언을 할 때도, 처음에 공식적인 출마선언은 아니었지만 ’안철수 대표가 입당을 할 경우에는 나는 나가지 않겠지만‘ 이런 식으로 얘기를 풀다 보니까. 조건부 출마 선언인지 조건부 불출마 선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런 행보가 오히려 불안감을 가중시키고 그게 오히려 경쟁력에 대한 의문으로 이어지거나 그러지는 않을까요?

    ◆ 박성민> 그런데 4월 7일 선거의 특징을 봐야 하는데 이 선거는 누가 서울시장을 잘할 거냐 뽑는 선거가 아니에요. 냉정하게 보면 반문재인-반민주당의 유권자들은 중도나 보수나 누가 이기냐. 여기서 중요한 것은 민주당 후보가 아닌 사람 누군가가 되는 게 중요하고 이길 후보를 찾고 있는 거기 때문에. 그리고 오세훈 후보는 이미 서울시장을 두 번이나 한 분이잖아요. 기본적으로 시정에 대한 판단이나 이런 거는 다 돼 있다고 보고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게 중요한 이슈는 아니고. 과연 오세훈 후보로 했을 때 안철수랑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느냐. 또 단일 후보가 됐을 때 민주당 쪽 유력한 후보의 박영선 후보에게 이길 수 있느냐. 지금은 그게 관심이지 나머지는 좀 부차적인 것으로 보입니다.

    ◇ 김종대> 그런데 오세훈 후보하고 가장 악연이 아까 홍준표 의원이라고 임경빈 작가가 설명했는데, 홍준표 의원이 고춧가루를 잘 뿌립니다. 이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 김수민> 사실 홍준표 전 대표는 야권 단일화에 본인이 주선하고 있다라면서 덕담을 하고 있기는 해요. 하지만 10년 전에 주민투표를 무리하게 벌이다가 그때 사퇴했었던 오세훈 전 시장에게 대해서 ‘모든 것이 다 배배 꼬여버렸어요.’ 라고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속마음으로. ‘그 때 내 말만 들었어도’ 라는 말을 속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서울=연합뉴스) 한상균 기자 = 3일 제21대 국회의원선거 광진을 후보자 토론회가 열린 노원구 인덕대학교에서 미래통합당 오세훈 후보(왼쪽)와 더불어민주당 고민정 후보가 인사하고 있다. 2020.4.3 xyz@yna.co.kr

     


    ◆ 박성민> 홍준표 대표는 지금 두 가지가 목표일 거예요. 첫째는 지금 객이 주인 행사를 하고 있잖아요, 홍준표 대표 입장에서는. 김종인이란 분이 차고 앉아서 못 들어오게 하고 있잖아요. 대선을 나가려고 해도 당에 들어와야 하는데. 그러니까 그분 입장에서는 안철수가 되든 나경원이든 오세훈이든 상관이 없는 거예요. 누구든 되면 나경원과 오세훈은 원래 전통적으로 국민의힘이라고 하는 보수정당의 맥을 같이 하는 분이고. 자기랑 같이 이 정당의 주인이라는 거죠. 누가 되더라도 본인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은 열린다. 이런 게 하나 있을 것 같고요.

    두 번째는 본인이 이번 선거를 보니까 서울시장 선거도 중도 지향적인 사람들이 저렇게 주목을 받고 그러는구나. 그러니까 나경원 후보도 그렇고 홍준표 대표도 그렇고 작년까지는 굉장히 보수적인 얘기를 많이 했잖아요. 보수 우파 이런 얘기도 많이 하고 중도인 척 하지 않겠다는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이게 중도의 지지를 받아야 되는구나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하고 그런 점에서 조금 더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거. 이 두 가지, 유화적이고 중도적인 이미지를 회복하는 것과 국민의힘이나 야권이 이기는 것. 이 두 가지에 집중하고 있는 거죠.

    ◆ 김민하> 궁금한 게 생기는데, 오세훈 후보가 남은 기간 동안에라도 뭔가를 해서 안철수 대표를 단일화를 통해서 이기려면 뭘 해야 될까요?

    ◆ 박성민> 그런데 오세훈 후보는 제가 보기에는 무상급식에 대해서도 좀 억울해하는 게 있는 것 같고 실제로 지난번에 광진구에 가서 진 것도 사실 오세훈이니까 그 험지에 가서 선전한 겁니다. 그리고 이번도 보면 이번에도 보면 사실 1월 7일에 ‘안철수가 합당하면 나는 출마를 접겠다’고 하고. 또 얼마 전이죠. 단일화는 경선보다는 정치적 결단으로 하는 게 좋겠다. 이런 것을 보면 이분은 본인이 꼭 후보가 되겠다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 본인이 그 트라우마, 10년 전에 내가 보수 정당의 주도권을 넘겨준 책임이 있기 때문에 이걸 어떻게든지 씻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한 것 같아요. 그리고 여전히 젊고, 여전히 보수 정당 내에서는 유력한 정치인 중에 한 명이거든요. 이분이 당 대표를 하거나 대선 주자나 서울시장을 할 때 항상 불려나오는 분인데. 그런 억울한 점이 있겠죠. 있겠지만 어쨌든 본인이 지금 안철수를 꼭 꺾어서 내가 후보가 돼야겠다. 이 면에서는 나경원 후보보다는 확실히 의지는 그 반의 반도 안 되는 거 아니냐. 그러니까 나경원 후보는, 모든 정치인이 그렇죠, 내가 후보가 돼서 승리해야겠다는 의지가 좀 더 굉장히 있는 거고. 오세훈 후보는 중요한 게, 이번 선거에 야권이 이기는 한데 나도 좀 뭔가 기여함으로써 10년 동안 쌓여왔던 나의 짐을 좀 벗어버리고 싶다 이런 게 강해 보여요. 그분 얘기를 쭉 하시는 거 보면.

    ◆ 김민하> 파이팅을 더 가져야 한다, 의지를 더 가져야 한다?

    ◆ 박성민> 그렇게 안 해도 이미 여론조사에서. 그러니까 나경원 후보는 꼭 내가 후보가 돼야 된다 이런 게 강하지만 오세훈 후보는 내가 후보가 안 돼도 됩니다. 그렇게 얘기하는 안철수 후보나 오세훈 후보가 여론조사에서는 오히려 더 좋은 선거 전략일 수 있어요. 야권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길 사람 찾고 있는데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사람보다는 ‘나 아니어도 됩니다. 야권이 이길 수만 있다면.’ 이렇게 하는 분이. 그러니까 오세훈 후보에 대해서 의지가 약하다고 왔다 갔다 한다 이렇게 얘기하지만 어쩌면 그게 내가 꼭 서울시장이 돼야 되겠어. 이렇게 하지 않는 게 좋은 전략일 수도 있습니다.

    ◆ 김민하> 희생 정신을 부각해라, 이런 말씀이네요.

    ◆ 김수민> 그런 의미에서 국민의힘과 안철수 간의 단일화 협상이 교착에 가서 선거 막판까지 몰린다고 했을 때 저는 나경원에 비해서 오세훈 쪽이 자진 사퇴 가능성이 훨씬 높다. 유사시에 던질 수도 있다. 던짐으로써 내가 기여해서 이 판에 승리를 일구었다라고 하는 그런 목표를 가질 수도 있다고 봐요.

    ◇ 김종대> 이건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필사즉생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지간에 죽는 길을 먼저 보여줌으로써 또 더 크게 사는 길을 노리는. 이것도 고단수 전략 같아요.

    ◆ 김민하> 그다음에 또 대선이 있으니까요.

    ◇ 김종대> 4월 보궐선거. 정치컨설팅 ‘민’ 박성민 대표, 김수민 시사평론가, 김민하 시사평론가, 그리고 임경빈 작가. 네 분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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