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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 "낙태죄,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非범죄화 바람직"



사건/사고

    인권위 "낙태죄, 여성 자기결정권 침해…非범죄화 바람직"

    "형벌은 '낙태 감소'보다 '안전하지 못한 낙태' 선택케 해"
    "임신 주수 따라 차등적용,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 어긋나"
    "국제 흐름에도 역행…처벌규정 삭제로 전면 재검토 필요"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 지난 10월 8일 서울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정부의 형법, 모자보건법 개정안 입법예고안에 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박종민 기자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가 '낙태죄 폐지'를 하루 앞두고 낙태 관련 형사처벌 여지를 남긴 정부 개정안(案)에 대해 "비(非)범죄화 방향으로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인권위는 31일 국회에 제출된 형법·모자보건법 일부개정법률안에 대해 "낙태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건강권과 생명권, 재생산권을 침해하므로 개정안에 대한 심의·의결 시 낙태 비범죄화 입장을 견지하는 방향으로 개정안을 마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국회의장에 표명했다고 밝혔다.

    앞서 헌법재판소는 지난해 4월 낙태 처벌조항이 담긴 형법 제269조 및 270조에 대해 임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취지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리며 올해 말까지 해당 법 조항을 개정할 것을 권고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임신 14주'까지 낙태를 폭넓게 허용하되 '임신 15~24주' 시기엔 예외적 허용사유를 두는 개정안을 지난 10월 입법예고했다. 개정안은 기존에 명시된 △성폭행·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임부의 건강 위험 외 '임신 지속이 사회적 또는 경제적 이유로 임신 여성을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하거나 처하게 할 우려가 있는 경우'를 낙태가 가능한 사례로 새롭게 추가했다.

    하지만 형법상 낙태죄를 존치시켜 법적으로 처벌 가능성을 열어뒀다는 점에서 여성계를 중심으로 거센 반발이 일었다.

    인권위는 형벌 조항을 여전히 고수하는 개정안이 '낙태 감소'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제공

     

    인권위는 "낙태죄가 낙태를 줄이는 데 실효적이지 않음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지난 2010년부터 올 8월 사이 검찰이 낙태죄로 기소하는 건수는 연간 10건 이하로 이미 사문화됐다고 볼 수도 있는 등 낙태죄는 사회적 규범으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18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 보고서' OECD 자료를 살펴보면 2010년 기준 한국의 '추정 낙태율'은 15.8%인데, 낙태가 허용된 미국은 11.8%(2015년 기준), 독일 7.2%로 낙태율이 더 낮게 나타났다"며 "오히려 비범죄화가 낙태율을 좀 더 감소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이해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임신 주수'에 따른 일률적인 차등적용도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어긋난다고 짚었다.

    인권위는 "정부 개정안은 낙태죄를 유지하며 임신 주수에 따라 적용을 달리하고 있는데, 그 기준이 마지막 월경 시작일인지 착상일인지 등 의학적으로도 매우 불명확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며 "태아의 '독자생존 가능시기'인 24주 또한 이견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여성 개인의 신체적 조건이 다르고 정확한 임신 주수를 인지, 확인하지 못하는 경우도 상당해 임신 주수에 대한 자의적 적용을 배제할 수 없다"며 "헌법 제12조 제1항에서 도출되는 죄형법정주의의 중요한 내용인 명확성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을 소지가 높다"고 덧붙였다.

    유엔(UN) 권고 등 국제적 흐름 또한 '낙태죄 폐지'로 무게가 실리고 있다고 언급했다.

    인권위는 "유엔 자유권위원회는 '생명과 소녀들의 안전하고 합법적인 낙태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을 부인하는 새로운 장벽을 도입해서는 안 되며, 기존의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며 "세계보건기구(WHO) 역시 '안전한 임신중절을 시기적절하게 받는 것을 방해하는 절차적·제도적 장벽들은 철폐되어야 한다'고 선언한 바 있다"고 짚었다.

    또한 "WHO와 미국 연구단체인 구트마허연구소(Guttmacher Institute)의 발표에 따르면, 낙태를 금지하거나 임산부의 생명이 위태로울 때만 허용하는 나라에선 4건 중 1건만이 안전한 방법으로 이뤄졌다. 낙태가 폭넓게 허용된 국가에선 10건 중 9건이 안전하게 시행됐다"며 "우리나라는 낙태죄로 여성이 낙태를 선택할 경우 불법수술을 감수할 수밖에 없고, 의사에게 수술을 받더라도 안전성을 보장받을 수 없어 건강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권위는 "정부개정안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재생산권 및 건강권을 침해할 우려가 있으며 국제기구의 흐름에도 역행하는 것이므로 처벌규정을 삭제하는 방향으로 재검토돼야 한다"며 "여성의 임신·출산 전 과정에서 국가의 의료적·사회적 지원을 통해 실질적으로 자기결정권, 건강권 등을 행사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전환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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