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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컷 리뷰]삶의 끝자락에 선 노배우가 건넨 말…더 드레서



공연/전시

    [노컷 리뷰]삶의 끝자락에 선 노배우가 건넨 말…더 드레서

    연극 '더 드레서'…전쟁 속에서 공연 올리는 극단 이야기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것의 가치 짚어
    정동극장에서 내년 1월 3일까지

    (사진=정동극장 제공)

     

    연극 '더 드레서'(The dresser). 송승환만큼 이 연극에 맞춤한 배우가 있을까.

    지난 18일 정동극장에서 개막한 '더 드레서'는 오랜 세월 무대를 지킨 노배우 '선생님'(Sir)과 16년간 그의 의상을 담당한 '노먼'을 축으로 연극인들의 이야기를 다룬다.

    작품의 배경은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1942년 영국 소도시의 한 극장이다. 공습경보가 발령된 일촉즉발 상황이지만, 지방 투어 중인 셰익스피어 극단은 '리어왕'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전란 속에서도 극장을 찾아준 관객을 실망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공연 5분 전. 그런데 리어왕 역의 '선생님'이 좀 이상하다. 멀쩡히 외우던 대사를 까먹고, 정신도 오락가락한다. 과연 공연을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사진=정동극장 제공)

     

    더 드레서는 배우와 스태프가 한 편의 공연을 올리기 위해 애쓰는 모습을 섬세하게 보여준다. 선생님의 분장실로 꾸며진 무대는 때론 리어왕 공연장이 되고 때론 리어왕을 공연 중인 배우와 스태프의 대기실이 된다.

    우여곡절에 끝에 리어왕 공연을 마친 선생님은 관객 앞에 서서 말한다. "극장을 찾아준 관객 여러분 감사합니다. 버티고 살아남아야 합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속에서 쇼를 멈추지 않는 공연예술인과 2~3시간씩 마스크를 쓴 채 관람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관객에게 보내는 감사 인사였다.

    선생님의 소망은 좋은 배우로 기억되는 것이었다. 생이 얼마 남지 않은 그를 마지막 무대로 이끈 건 관객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은 열망이었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 누군가에게 기억된다는 거지. 나에 대해 잘 얘기해줘." 유언처럼 노먼에게 건넨 선생님의 한 마디가 남긴 울림은 깊다.

    김종헌 예술감독은 "고령으로 인한 질병도, 참혹한 전쟁의 포화도 연극 무대를 향한 이들의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 그 힘은 누군가가 나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겐 관객이, 노먼에겐 선생님이 그 누군가이며 삶의 이유"라고 말했다.

    더 드레서는 로날드 하우드의 동명 희곡이 원작이다. 송승환이 직접 고른 작품이다.

    9년 만에 연극에 복귀한 송승환은 최근 인터뷰에서 "무대·분장실에서 벌어지는 배우들의 이야기인데다가 제 역할도 극단 대표 겸 배우라서 친근감이 느껴졌다. 2차 세계대전 한가운데 공연을 올린다는 설정이 코로나19와 전쟁 아닌 전쟁을 치르는 지금의 상황과도 흡사하다"고 했다.

    2018 평창겨울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을 역임한 송승환은 이후 시력이 급격히 악화해 더 이상 글씨를 보기 어렵다. 하지만 각색 대본을 '더 드레서' 첫 미팅 때 다 외워 왔다고 한다. 송승환에게는 관객이 '누군가'이고, 연기가 '삶의 이유'인 것이다.

    안재욱과 오만석이 '노먼' 역을 번갈아 맡는다. 2021년 1월 3일까지.
    (사진=정동극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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