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너와 나, 우리 모두의 문제 '탈시설'

'탈시설 성지' 스웨덴에서 찾는 장애인의 미래⑥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 장애인 탈(脫)시설 정책을 국정과제로 채택했다. 하지만 한국은 여전히 시설 중심의 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유럽의 국가들은 일찍이 탈시설 자립 생활에 관심을 기울여왔다. 특히 대표적 복지국가 스웨덴은 1997년 모든 장애인 수용 특수병원 및 요양 시설의 폐쇄를 결정하고 '탈시설 사회'로의 전환에 성공했다. 본 기획은 탈시설 이후의 삶을 살고 있는 스웨덴의 사례를 통해 장애인도 자립해 살 수 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려면 어떤 시스템이 구축돼야 하는지 제시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스웨덴에선 왜 어디서나 장애인을 볼 수 있을까
②시설 '안' 사람들-시설 '밖' 사람들
③스웨덴에선 장애인도 '자기만의 속도'로 산다
④'휠체어' 탄 요가강사? 그곳에선 전혀 특별하지 않다
⑤'탈시설'한다더니…文정부 장애인 정책 어디까지?
⑥[대담]너와 나, 우리 모두의 문제 '탈시설'
(끝)
"나는 휠체어를 타고 외출할 때 코에 호흡기를 달고 (코로나19 때문에) 페이스 마스크도 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이런 모습은 웃겨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 사람들은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쳐다보지 않는다. 장애를 가진 사람도 그 사회의 일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아돌프 박사)
"저의 한 살 어린 여동생이 지적 장애와 자폐성 장애를 둘 다 가지고 있는 중증발달장애인이다. 13살 때 시설로 보내져 30살까지 살다가 탈시설 해서 저와 같이 살고 있다. 저희가 같이 버스 정류장에 서 있으면 슈퍼스타가 된다. 모두가 저희를 쳐다본다"(장혜영 의원)
이 대화는 2020년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눈 대화다. 최근 두 사람은 비슷한 상황에서 정반대의 경험을 했다고 밝혔다. 차이점이라면 한 사람은 스웨덴에서, 또 다른 사람은 한국에서 이 같은 경험을 했다는 점이다.
스웨덴에서 탈시설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1999년 12월 31일 모든 시설이 문을 닫을 때까지는 꼬박 40년이 걸렸다. 한국에서는 시설 내 인권 문제가 수면 위로 떠 오르며 80년대 후반부터 탈시설 의제가 싹트기 시작했다. 논의가 시작된 지 40년이 다 되어가지만 한국이 탈시설 사회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
지난 6일 스웨덴의 '인디펜던트 리빙(Independent Living in Sweden)'의 설립자 아돌프 라츠카(Adolf Ratzka) 박사와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박경석 공동대표 그리고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한국의 장애인 탈시설, 현재와 미래'라는 주제로 대담을 나눴다.
이들은 한국과 스웨덴에서 장애인 탈시설을 위해 안팎으로 끊임없이 목소리를 높여왔다. 박 대표와 장 의원은 CBS 목동 사옥 스튜디오에서 화상 미팅으로 참여한 아돌프 박사를 만났다.
사회자(박송이 기자) : 한국 장애인 탈(脫)시설 정책은 어느 수준까지 진행됐나.
박경석(이하 박): 한국의 장애인 탈시설 정책은 중앙 정부 차원에서는 하나도 없다. 꽝이다. 지방자치단체에서 일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서울시 같은 경우에는 주택과 탈시설 정착금도 지원하고 개인별 활동지원서비스를 한 달에 120시간 정도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중앙정부 차원에서의 정책은 없어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사회자: 문재인 정부가 들어설 당시 국가 차원에서 탈시설 이루겠다고 선언했는데 진전이 없었나?
장애인 시민단체가 탈시설 국가 로드맵을 수립을 요구하며 서울시 종로구 도로에서 시위 행진을 하고 있다 (사진=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제공)
장혜영(이하 장): 한국은 2008년 장애인권리협약에 비준을 해서 그 영향 하에 들어오게 됐다. 2009년부터 박경석 대표님이 말씀해 주신 것처럼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서울시에서 탈시설 정책이 시행되었고, 중앙차원에서 '탈시설'이라고 하는 정확한 명칭을 정책적으로 사용한 건 현재의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부터다. 하지만 정말 선언적인 의미에서 탈시설이다. 구체적인 어떤 계획을 수립하거나 충분한 예산이 반영된 건 전혀 없다. 당장 내년 2021년도 정부 예산에 정확하게 탈시설 예산이라고 들어가 있는 항목은 딱 하나밖에 없다. 그것도 직접적인 사업이 아닌 간접적으로 어떤 중앙의 지역사회 전환센터라는 것을 만들기 위한 연구 용역에 2억 7천만 원 정도가 배정되어 있는 것이 끝이다. 반면 여전히 시설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예산은 5천 2백억 원에 달한다.
◇21대 국회의원 '탈시설 지원법' 공동발의…입법 문턱 넘을까
장혜영 의원은 최혜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탈시설 지원법’ 공동 발의를 준비 중이다. 해당 법안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끝내 입법 문턱을 넘지 못했다. 장 의원은 21대 국회에서 탈시설 지원법을 통과시키겠다며 의지를 다졌다. 박경석 대표는 탈시설 지원법이 ‘역사적인 시도’라며 환영한다는 뜻을 밝혔지만 정부와의 예산 조율 문제와 시설 관련 단체 등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험난한 길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장 : 지금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이 지역사회로 나올 수 있도록 탈시설 전환체계를 법적으로 규정하는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다. 중앙 정부와 지자체가 담당하는 의무들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규정을 하고 있다. 또 시설 조사 후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재 한국 장애인 복지법 상 장애인 권익 옹호 기관의 시설 조사는 가능하다. 하지만 인권침해가 드러났을 때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들이 거의 없다. 사안에 따라서 지급 중인 보조금을 중단하거나 정말 심각한 경우에는 시설의 설립 허가를 취소 또는 폐쇄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인권침해 양상에 따라 실제 집행 할 수 있는 행위들을 규정하고 있다. 이게 탈시설 지원법의 골자다.
박 : 장애인 탈시설 지원법이 제정이 될지 안 될지는 지켜봐야 한다. 국회 사안과 재정 상황, 정부의 협조와 거주 시설 협회의 태도 부모님의 반응 등 굉장히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법안의 발의는 매우 의미 있다.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한국 장애인 거주 시설협회에서 주도하는 '지역사회 중심의 주거 지원법' 정책 토론회가 있었다. 이걸 가만히 뜯어보니까 이건 시설을 지원하는 법이더라. 지역사회 중심이라고 표현했는데 차라리 ‘거주 시설 운영자 중심의 시설운영법’ 이렇게 말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그들이 제정하려는 법은 집안에서 10명까지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사진=취재원 제공)
사회자 : 10명까지 사는 곳이면 시설과 다르지 않다고 보이는데.
박 : 현재 한국에서는 시설에서 30명까지 살 수 있게 법으로 규정돼 있다. 이법은 2011년에 제정됐다. 물론 몇백 명이 사는 시설도 있지만 법이 생기기 전부터 운영되고 있어서 30명 이하로 줄이지 못하고 있다. 30명으로 제한하는 법이 생긴 이후로 30명을 기준으로 하는 시설도 많이 지어졌다. 이번에 장애인 거주 시설협회에서 내놓은 법안은 장애인이 10명까지 거주할 수 있으며 그곳에 상주 직원이 있는 형태다. 그런데 거기에 사는 사람은 활동지원서비스를 신청할 수 있는 자격이 없고 생계 급여나 국가가 주는 소득보장 측면에서도 지역사회에 사는 장애인에 비해 삭감된다. 거주시설협회에서 발의한 이 법안은 장혜영 의원님께서 주도하는 법과 정면으로 부딪칠 수 있다.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에 의문 제기…"신뢰와 시간 필요해"
장애인 탈시설 의제에서 가장 큰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은 바로 발달장애인의 가족이다. 이들은 경제적 상황 혹은 돌봄을 책임질 여력이 없기 때문에 당장 시설이 없어지는 것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아돌프 박사는 스웨덴이 아직도 완전한 탈시설을 이뤘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강조했다. 현재 스웨덴 내에서 존재하는 소규모 ‘그룹홈’ 역시 시설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아돌프 박사는 가족들에게 탈시설 정책을 납득시키기 위해선 장혜영 의원과 그 동생의 사례가 답이라고 말했다.
아돌프(이하 아): 여러분들은 스웨덴이 완전히 탈시설이 된 나라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사실 그것은 맞지 않는다. 그룹홈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떤 부모들은 그룹홈을 시설로 보지 않는 경우도 있다. 특히 인지 장애 자녀의 부모들 같은 경우에는 본인 자녀를 더 이상 돌봐줄 수 없게 됐을 때 자녀가 살 수 있는 곳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 방법을 찾고 있다. 그러다 보니 그룹홈이 생기게 되는 것이고 부모들이 그룹홈을 원하게 되는 것이다.
아: 저는 부모의 마음을 100% 이해한다. 왜냐하면 가족들이 걱정할 이유가 너무나 많다. 부모들은 시설을 대신할 방법을 알지 못하고, 발달장애인이 자립해서 사는 걸 본 적 없으니 미지의 대안을 주면 반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장혜영 의원과 여동생의 사례가 많이 전파돼야 한다. 장애인 가족들이 이 사례를 많이 접하면 그 사안에 관해 관심을 가지고 믿을만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신뢰를 구축하려면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이 없기 때문에 시설을 선호하게 된 것이다. 이런 해결책과 행복한 이야기를 알리는 게 중요하다.
장혜영 의원과 동생 장혜정 씨는 영화 '어른이 되면'에 출연했다. 이 영화는 장 의원이 감독으로 연출을 맡았다. (사진=시네마달 제공)
장: 이것이 제가 탈시설한 동생과 지역사회에서 사는 모습을 자전적 다큐멘터리로 만든 이유다. 같이 살아보지 못한 사람은 그런 세상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상상하기도 어렵다. 같이 사는 경험을 영상이든 다른 방법으로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생각보다 별거 아니구나’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재밌는 사실은 탈시설을 당장 해야 한다는 사람과 탈시설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근거가 똑같다.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다.
영화 '어른이 되면' (사진=시네마달 제공)
한쪽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지금 당장 해야 한다고 말하고, 다른 쪽에서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나중에 해야 한다고 말한다. 탈시설 지원법에 대한 원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 이유가 이 때문이었다. 탈시설을 하겠다고 정해야 다음 준비과정으로 가는 건데, 모든 게 준비된 다음에 간다고 하면 말로만 끝날 확률이 높다. 그래서 원칙이 중요하다. 가족에게 옵션이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고 안심시켜야 하는 긍정적 소통이 필요하다.
◇6세 이하·65세 이상 활동지원서비스 못 받아…연령제한 없애야
활동지원서비스는 장애인의 삶에 자유를 더하고 탈시설을 위해 꼭 필요한 수단이지만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장혜영 의원은 장애를 가진 친동생 이야기를 꺼내며 이 같은 문제를 지적했다.
장: 제 동생을 지원해주는 활동지원인이 3명인데 이 3명은 원래 제 또래 친구였다. 이들은 활동지원인 일과 전혀 관계가 없었다. 제가 이 친구들을 설득했다. 제 동생을 친구들에게 소개해 관계를 맺게 한 후, 한국 사회에서 장애인이 시설에 나와 살아가는 게 얼마나 투쟁적인 일인지 그 친구들이 공감을 하고 나서야 지금 제 동생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예외적인 케이스를 넘어서 스웨덴 사회를 모델로, 박사님이 스웨덴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인 것처럼 제 동생도 아주 평범한 사람으로 살았으면 좋겠다. 간혹 장애인과 활동지원인 사이에서 옷 입는 문제까지 간섭한다는 인권침해 사례가 나온다. 장애인을 주체로 인정하지 않으니 일어나는 일들이다. 그런 인권침해를 당하면서도 문제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사람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중증장애인일수록 지원 시간이 적을수록 활동지원인 자체를 고용하기 어렵고, 매칭되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싫어도 참고 견디고 있다. 그것이 현재 한국의 활동지원서비스의 문제다.
아돌프 박사는 한국의 활동지원서비스 제도 중 연령 제한에 대한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현재 활동지원서비스는 만 6세부터 65세 사이에 있는 장애인만 신청할 수 있다. 만 6세 이하의 어린 자녀가 중증장애가 있는 경우에도 활동지원 서비스는 지원되지 않는다. 또 65세 생일이 지나면 현재 이용하던 활동지원서비스가 끊기고 노인장기요양보험 체제로 넘어간다. 이렇게 되면 하루에 받을 수 있는 정부 차원의 활동지원시간은 최대 4시간으로 줄어든다. 아돌프 박사는 나이가 어리거나 많다고 활동지원시간이 덜 필요하거나 더 필요하지 않다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당사자의 상황에 맞는 활동지원 시간을 제공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아 : 저는 장애인 자녀를 둔 엄마들을 많이 만났다. 자녀가 복합장애를 가졌고 나이가 어린 경우 부모들은 매우 어려움을 겪는다. 활동지원인이 생기자 엄마들이 다시 살아났다. 어떤 부모들은 직장을 계속해서 다니고 자신의 커리어를 이어나가게 됐다. 어린이를 위한 활동지원 서비스는 꼭 필요하다.
◇장애 정책에는 늘 '예산 최소주의'…탈시설 결국 모두의 문제
대담에 참여했던 이들은 하나같이 한국 장애 정책의 근본적인 원인을 '돈'이라고 지적했다. 장혜영 의원은 장애 등급제 시스템의 핵심에는 예산 최소주의가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장애인 관련 예산을 일반 예산과 통합한다. 장애 정책을 ‘비가시화’함으로써 사회 인식 자체를 바꿀 수 있는 방식을 차용했다.
장: 이 시스템은 가장 적은 돈을 들여 장애 당사자들이 가장 적게 불평하게 고안됐다. 장애등급제처럼 등급을 매겨서 ‘너는 5급이니까 안 돼. 쟤는 1급이니까 돼’, ‘그렇게 불만이면 장애가 더 심하던가’. 이처럼 마치 당신의 장애가 덜 심하므로 지원하지 않겠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서비스를 최소화 할 수 있다.
박 : OECD 가입국 중 유럽은 장애인 예산이 매우 많다. 반면 한국 순위는 저 밑에 있다. 경제 능력은 상위인데 장애인 관련 지출은 꼴찌에서 두 번째다. 선진국처럼 많이 내자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의 수준에 맞게 예산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적어도 예산을 지금보다 3배로 올려야 한다.
아 : 장애 관련 예산과 서비스는 통합적으로 적용돼야 한다. 일반 대중, 즉 비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장애인과 통합해야 한다는 말이다. 대중교통 정책이 대표적이다. 장애인 대중교통 할인 혜택을 장애 예산에 포함하지 않고 교통정책 예산으로 책정한다. 특정 예산을 들여서 장애인만 쓰게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 이 장애인 보세요. 돈이 너무 많이 들어요’와 같은 사회 인식 자체가 사라진다.
장 : 통계에 따르면 장애인 거주 시설에서 사는 장애인 수만 약 3만 명이다. 정신장애인은 따로 집계되는데 2배인 6만여 명이 시설에 살고 있다. 사람들은 이 3만 명과 6만 명이 다 똑같은 방식으로 탈시설 할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3만 명의 장애인들이 시설에 살고 있다면 3만 가지의 탈시설 하는 방법이 있고 3만 가지의 계획이 필요한 것을 말이다.
우리는 늘 그와 같은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그만큼 섬세하고 적극적인 계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라도 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상태를 지향하고 만들고 그걸 계속 지켜가면 된다.
※ 본 기획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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