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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고들기]'비혼모' 사유리가 무너뜨린 '정상가족' 신화



문화 일반

    [파고들기]'비혼모' 사유리가 무너뜨린 '정상가족' 신화

    기혼자만 인공수정 가능한 한국…부모·자녀 중심 '정상가족' 공고
    '정상' 테두리 벗어나면 복지 혜택 소외·사회적 편견 갇혀 고통
    전문가 "양육자 배려 없는 사회 '결손 가정' 프레임까지 씌워 낙인"
    가부장제 질서 거부 여성들→남성 전통 역할 '남편' '아버지' 배제
    "정책이 현실 흡수해야…다양한 '공동체' 가족 개념으로 인정받길"

    방송인 사유리. (사진=사유리 SNS 캡처)

     

    '비혼'은 되지만 '비혼모'도 가능할까. 공동 양육자로서 남성 존재를 지운 방송인 사유리의 '비혼 출산'을 두고 어느 때보다 논쟁이 뜨겁다. 무엇이 됐든 그동안 한국 사회가 가까이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유형의 가족 공동체 탄생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사유리는 15일 SNS에 "2020년 11월 4일 한 아들의 엄마가 됐다. 모든 사람들에게 감사하다고 전해주고 싶다. 지금까지 자기 자신을 위주로 살아 왔던 제가 앞으로 아들을 위해서 살겠다"고 출산 소식을 알렸다.

    KBS 단독 보도에 따르면 사유리는 난소 나이가 48세라는 진단을 받고 '비혼 출산'을 결심했다. 한국에서는 기혼자만 인공수정이 가능한 탓에 그는 일본 정자은행에서 정자를 기증받아 시험관 시술을 거쳐 아기를 낳았다.

    '비혼모'는 '미혼모'와 그 결과는 같지만 과정은 완전히 다른 개념이다. 미혼모는 남성과의 사이에서 아기를 가졌으나 결국 엄마 홀로 양육하는 경우를 말한다. 그러나 '비혼모'는 자발적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처음부터 이 가족 공동체에 남성 양육자를 위한 공간은 없다. 남성은 단지 '정자 기증자'라는 기능적 역할에 그칠 뿐이다.

    사유리의 소식이 알려지면서 SNS 곳곳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사유리를 응원하는 목소리와 함께 "아빠 없이 자라는 아이는 불안정할 수 있다"는 이른바 '정상' 가족론이 대두됐다.

    이 같은 정상 가족론은 한부모 가정에 대한 우리 사회 뿌리 깊은 편견과 그 맥락을 같이 한다. '결혼'이라는 사회 제도에 따라 부부와 자녀로 구성된 가정이 완전하니, 이 반대인 가정은 '불완전'하다는 시각이다. 그러나 전문가는 이러한 사회적 편견이 제대로 복지 지원이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한부모 가정을 더욱 고립시킨다고 지적한다.

    젠더정치연구소 관계자는 18일 CBS노컷뉴스에 "배드파더스(bad fathers·이혼 뒤 자녀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는 부모들 신상 공개 사이트), 미혼모 문제에서 보듯이 대다수 한부모 가정 양육자들은 여성"이라며 "애초에 한국 경제활동 구조가 양육자를 배려하는 시스템이 아니라서 경력 단절인 경우도 많고, 돌봄과 경제활동 모두를 혼자 감당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여기에 '결손 가정' 프레임까지 씌워져 낙인 찍히고,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전부 실패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고 진단했다.

    그렇다고 '정상 가족'이 모두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혼자서는 인공수정도, 입양도 못하는 한국이지만 올해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03년부터 해마다 증가해 지난해 4만1389건을 돌파했다. 이는 전년(2018년) 대비 13.7% 증가한 결과다. 이 가운데 가정 내에서 발생한 사례가 2만3883건(79.5%)으로 가장 높았다. 해당 통계는 한국의 정상 가족 신화가 얼마나 '신기루' 같은 것인지 보여준다.

    젠더정치연구소 관계자는 "부모 모두가 있는 가정에서 성장한다고 해서 아동 학대, 가정 폭력 등을 경험하지 않는 건 아니다. 이 때문에 부모와 자녀로 구성되지 않은 가족을 비정상적으로 보는 시각에서의 논쟁은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고 짚었다.

    이미 30년 이상 '비혼 출산'이 가능했던 서구 선진국들이 좋은 사례다. 한국과 달리 이들 국가는 비혼 여성도 자발적 선택으로 출산이 가능하도록 비배우자 인공수정을 합법화하고 있다. 임신과 출산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할 뿐만 아니라 실제 사회 부작용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한국공공정자은행 박남철 이사장은 "비배우자 인공수정을 통해서 아기를 낳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임신과 출산의 조건이 잘 갖춰진 사람들"이라며 "부작용이 정상적인 부부는 한 4% 나오는데 비배우자 인공수정에서는 1% 정도 밖에 안 나온다. 또 가정의 양육조건이 좋기 때문에 아이들이 사회적 적응도가 높고 더 잘 성장한다는 보고도 최근에 나오고 있다"고 밝혔다.

    사유리 선택에 박수를 보내는 여성들의 심리 저변 역시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저출산 문제로 직결되는 '비혼주의'와도 밀접한 연관을 가진다. 이 시대 젊은 여성들은 왜 단순히 결혼을 보류하는 정도가 아닌 '결혼을 회피하는' 상황에까지 다다른 것일까.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기성 결혼 제도를 떠받치는 가부장제 질서를 거부하는 여성들이 늘었기 때문이다. 작게는 태어나는 아이의 성(姓)부터 크게는 경력 단절·독박 육아까지, 가부장제에 편입되는 순간 여성에게는 '기울어진 희생'이 따라온다. 더욱이 이미 사회적 쟁취를 경험한 여성들은 '나'라는 존재 없이 '가정'만 바라보고 사는 삶에 충분히 행복하기 어려워졌다. 이렇게 결혼은 더 이상 '행복'과 동일선상에 놓일 수 없게 된 셈이다.

    '비혼모'는 결국 '비혼'에서 태어난 결과물이다. 결혼을 필요로 하지 않는 여성들 중 일부가 엄마와 자녀로만 구성된 공동체를 꾸리거나 이를 꿈꾸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아버지, 남편으로서 남성의 전통적 역할은 배제된다.

    젠더정치연구소 관계자는 "최근 젊은 여성들이 구조적 관점으로 결혼 속 가부장제를 바라보면서 더이상 남성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안전하거나 완전한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며 "공동 육아를 해도 임금 격차로 인해 엄마 위주로 육아 휴직을 하는 등 결국 여성에게 많은 희생이 돌아오는 현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결혼을 회피하는 결과가 생긴다"라고 분석했다.

    이어 "파트너로서 남성에 대한 신뢰는 없지만, 아이를 갖고 싶어하는 비혼 여성들도 있다. 그러한 여성들이 사유리씨 결단에 지지를 보내는 것"이라며 "반면 남성들은 여성들이 처한 구조 속에서 이런 문제를 바라보는 대신 '다 그렇지 않다'는 개인의 문제로 보는 경향이 있다. 그런 가운데서도 사회적으로 남성 없이 꾸린 공동체가 인정받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존재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듯 이제는 성별로 나뉘어 무의미한 논쟁으로 대립하기보다는, 하루빨리 전근대적인 가부장제를 청산하고 다양한 성격의 공동체를 '가족' 개념으로 인정하는 사회 제도를 고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사유리 사건을 계기로 '비혼 임신'에 대한 법률적 검토도 이뤄지고 있다. 이전까지 비배우자 인공수정 즉 '비혼 임신'은 불법과 합법조차 따질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었다. 얼마나 제도권이 '비혼' 파급 효과에 무지했는지 알려주는 대목이다.

    이 관계자는 "낙태죄 폐지가 안 되는 것만 보더라도 정책 결정자 중 여전히 가부장적 세계 질서를 옹호하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이런 현실 속 사회 변화가 정책에 흡수되고 있지 않다"며 "이를 계기로 우리 사회가 좀 더 다양한 유형의 최소 단위 공동체를 인정하길 바란다. 또 제도를 통해 이들도 동일하게 복지 혜택을 받아야 한다. 복지 수급 역시 부모와 자녀로 구성된 가족 중심이 아닌 개인으로 변화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파고들기'는 CBS노컷뉴스 문화·연예 기자들이 이슈 깊숙한 곳까지 취재한 결과물을 펼치는 코너입니다. 간단명료한 코너명에는 기교나 구실 없이 바르고 곧게 파고들 의지와 용기를 담았습니다. 독자들 가슴속 깊이 스며드는 통찰을 길어 올리겠습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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