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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천시장님, 8개월 된 우리 셋째는 어떡하나요?"



스포츠일반

    "이천시장님, 8개월 된 우리 셋째는 어떡하나요?"

    이천시, 35년 최고 역사의 정구팀 일방적 해체 통보

    지난해 제 23회 아시안컵 히로시마 국제정구대회에서 단체전 준우승을 차지한 이천시청 선수단 모습. 윗줄 왼쪽에서 두 번째가 이명구 감독이다.(사진=이천시청 정구팀)

     

    제 41회 회장기 전국소프트테니스대회가 열린 22일 전북 순창공설운동장 내 소프트테니스장. 이천시청 남자팀 선수단의 표정에는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에이스 이요한(30)이 일반부 남자 단식 결승에서 아깝게 우승을 놓쳤기 때문이다. 이요한은 이날 192cm 장신의 김태민(24·창녕군청)에 2 대 4로 졌다.

    이천시청 선수단이 더 아쉬웠던 것은 시의 팀 해체 통보 뒤 출전한 첫 대회였기 때문이다. 이천시는 지난 8월 소프트테니스는 물론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등 직장 운동부를 올해까지만 운영한다고 밝혔다. 사전 협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선수단에 통보한 것이었다.

    35년, 한국 남자 소프트테니스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천시청이었다. 선수단으로서는 날벼락 같은 소식이었다. 당장 새 팀을 구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소프트테니스계에서는 이적을 위해서는 최소한 1년 전에 준비를 해야 한다. 신인 선발 등 팀 운영 및 예산 계획이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담당 공무원의 비하 표현에 선수단은 큰 상처를 입었다. 시 체육지원센터 권 모 소장은 소프트테니스(정구)를 '짱구'로 비아냥댄 것은 물론 "파리채와 비슷한 기구로 즐기는 놀이"라고 비하했다. 비단 정구뿐만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 전체를 모독한 표현이었다.

    때문에 이번 대회에 임하는 이천시청 선수단의 각오는 남달랐다. 그러나 우승 문턱에서 아쉽게 정상 도전이 무산됐다. 다만 팀 해체 논란과 홍역 속에서도 이천시청은 이번 대회에서 선전을 펼쳤다. 이요한이 개인전 단식 준우승을 차지했고, 주장 지용민(39)-배환성(35)이 복식 3위에 올랐고, 단체전도 3위로 마쳐 입상했다.

    제 41회 회장기 전국 소프트테니스대회에 참가한 이천시청 선수단의 모습.(순창=이천시청)

     

    경기 후 선수들은 이명구 감독, 이연 코치와 함께 조촐한 회식 자리를 열었다. 코치진은 선수들에게 "어려운 상황에서도 잘했다"고 격려했고, 선수들은 "더 나은 성적을 냈어야 했는데…"라고 화답했다.

    분위기는 훈훈했지만 걱정이 없을 수 없다. 당장 내년 거취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7명 선수들 중 5명이 기혼자로 모두 자녀가 있는 가장이다.

    최고참 지용민은 "초등학교 4학년, 2학년에 생후 8개월 된 아이까지 아들만 3명"이라면서 "아내도 육아 휴직 중"이라고 했다. 지용민의 아내는 아이를 업고 팀 해체 반대 탄원서를 시청에 제출하기도 했다.

    배환성, 박상엽(34) 등도 미취학 어린 자녀 2명을 둔 아빠다. 아내들은 모두 전업 주부. 배환성은 "당장 2개월 뒤면 팀이 해체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하소연했다. 박상엽도 "처음 해체 통보를 들었을 때 정말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어린 선수들도 막막하기는 마찬가지다. 막내 정상원(24)은 "이제 실업 2년차인데 팀 해체 소식을 들었을 때 죽고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고 토로했다. 정상원은 지난달 김광진 청와대 청년비서관과 유승민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선수위원의 도움으로 이연 코치, 마라톤, 트라이애슬론 선수 2명과 함께 청와대를 방문해 어려움을 호소하기도 했다.

    한국실업소프트테니스연맹 정인선 회장(왼쪽)이 지난달 이천시청을 방문해 정구팀 해체를 반대하는 탄원서를 이천시의회 정종철 회장에게 전하고 있다.(사진=실업연맹)

     

    최근 청년 세대들의 분노가 남의 일이 아니다. 이현권(25)은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 명문팀에 들어왔는데 해체된다고 하니 정말 화가 났다"면서 "마음 같아서는 (엄태준) 시장님을 찾아가서 따지고 싶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나마 이요한, 김형준(31)은 진로가 정해졌지만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둘은 각각 내년 음성군청, 문경시청으로 이적한다. 자신의 뜻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김형준은 "지난해 뒤 연봉 제도가 바뀌어서 처우가 나빠졌다"면서 "가장인 이상 어쩔 수 없이 더 나은 조건의 팀을 찾아야 했다"고 털어놨다.

    이천시청은 올해 선수 최고 연봉을 6000만 원으로 상한선을 정했다. 최저 연봉은 3000만 원으로 성적 등에 따라 차등을 뒀다. 이 감독은 "억대 연봉도 아닌데 3000만 원이나 차이가 나면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10명 선수단의 1년 예산은 연봉과 대회 출전 경비 등을 포함해 8억 원이다. 프로 인기 종목 선수 1명의 몸값도 안 된다.

    선수단이 바라는 점은 한 가지다. 시가 방침을 바꿔 팀을 운영하는 것이 최선이나 그게 불가하다면 최소한 다른 팀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라도 달라는 것이다. 이 감독은 "내년 이적 시장은 끝이 났다"면서 "경쟁력이 있는 선수들이 내후년 이적을 할 수 있게 내년까지만이라도 팀을 운영해주는 게 인간적 배려"라고 강조했다.

    소프트테니스팀을 소개하는 이천시청 홈페이지.

     

    "전국 지자체 정구부 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이천시청 정구부는 전직 국가대표 출신의 감독, 코치진을 지도자로 하여 국내·외로 다수의 입상을 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지역 인재 재능기부 등을 통하여 우리 시의 체육 발전에 이바지하고 있습니다." 이천시청 홈페이지에 나온 팀 소개다. 이런 팀을 한순간에 해체한다는 것이다.

    최근 택배 기사 등 비정규직, 직장의 갑질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배려는 해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이천시청은 젖먹이 어린 자녀를 둔 선수들을 길거리로 내몰아야 할까.

    이천시청 작장 운동부 소개에는 "앞으로도 우리 시의 브랜드 가치 제고 및 홍보에 앞장서겠습니다"는 문구가 빠짐없이 등장한다. 과연 비인간적인 막장 행정을 펼치는 이천시청의 브랜드 가치가 높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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