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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목숨 사그라지지 않길"… '그 쇳물' 노래하는 사람들



사건/사고

    "소중한 목숨 사그라지지 않길"… '그 쇳물' 노래하는 사람들

    당진제철소 사망 노동자 추모시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로 재탄생…'챌린지'로 각계 참여 이어져
    '용균이 엄마' 김미숙씨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청원 도움 받아"
    '노래나 부르다 말겠지' 비판에 상처도
    "계속 이야기하고 관심 이어가는 것이 정답"

    그쇳물쓰지마라 챌린지(사진=유튜브 캡처)

     

    "광염에 청년이 사그라졌다. 그 쇳물은 쓰지 마라. 자동차를 만들지 말 것이며 가로등도 만들지 말 것이며 철근도 만들지 말 것이며 바늘도 만들지 마라. 한이고 눈물인데 어떻게 쓰나."

    2010년 9월 7일. 충남 당진의 한 철강업체에서 작업을 하던 20대 청년 김모씨가 전기로에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 전기로에는 1600도가 넘는 쇳물이 담겨 있었다. 유족은 김씨의 시신조차 찾지 못했다.

    여자친구와 내년쯤 결혼할 꿈을 꾸던 평범한 청년의 죽음. '제페토'라는 필명을 가진 한 누리꾼은 청년의 죽음을 다룬 기사의 댓글에 '그 쇳물 쓰지 마라'는 제목의 조시(弔詩)를 남겨 화제가 됐다.

    10년 뒤 시인의 시는 노래로 재탄생해 SNS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하다 수많은 노동자가 죽어 나가는 현실'을 고발하고 '죽지 않고 일할 권리'에 대해 힘을 모아 요구하고 있다.

    ◇노래로 탄생한 조시(弔詩)…'죽지 않고 일할 권리' 촉구

    1일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등 SNS에는 #그쇳물쓰지마라_함께_노래하기 해시태그를 단 영상들이 잇따라 올라왔다. '그 쇳물 쓰지 마라' 노래를 부르는 짧은 영상에는 "시도 선율도 가슴이 너무 아프네요", "사고가 기억납니다. 너무 안타까워요"라는 댓글들이 달렸다.

    '그 쇳물 챌린지'는 지난달 7일부터 시작됐다.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인 프로젝트퀘스천이 가수 하림과 함께 시에 멜로디를 붙여 노래로 만드는 작업을 거쳤다. 무료로 공개된 악보를 보고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공유하면 추후 하나의 합창 영상으로 만들 계획이다. 프로젝트퀘스천의 공식 인스타그램에 올라온 챌린지 영상만 지난달 28일 기준 120여개에 달한다.

    프로젝트퀘스천 최은원 대표는 "당진 사고가 일어나고 제페토 시인의 시가 쓰인 지 벌써 10주기인데 산재사고는 계속해서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사회 문제 하나가 계속 반복되고 해결되지 않는다는 건 사회전체가 이걸 방치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문제가 해결되려면 결국 자기 문제라는 '감정이입'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한 적절한 콘텐츠가 바로 노래라고 생각했다. 노래를 부르면서 기억하고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챌린지에는 수많은 사람이 참여하고 있다. 김용균재단 김미숙 이사장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최민 활동가를 시작으로, 정의당 장혜영 의원, 이재명 경기도지사, 가수 호란, 뮤지컬 배우 김사랑씨 등이 참여했다. 그 외에 주부, 보육교사 등 평범한 시민들도 카메라 앞에 섰다.

    (사진=정의당 심상정 대표 페이스북 캡처)

     

    ◇"다른 문법이 지닌 힘 느껴"…'노래' 통해 연대의 힘 배우기도

    그간 사회문제는 토론회나 기자회견, 집회 등의 방식을 통해 사람들에게 알려져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참여자들은 '다른 방식'이 좀 더 소구력을 갖기도 한다는 것을 챌린지를 통해 느꼈다고 말했다.

    1호 챌린지 참여자로 나선 김미숙 이사장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국회 국민동의청원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김 이사장은 "노래를 하면서 사람들이 청원에 더 많이 참여하게 됐다고 들었다"며 "한 사람 한 사람이 청원을 하기도 쉽지 않았을 텐데 (다행이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그러면서 "노래를 통해 청원에 참여하게 된 분들이 앞으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 산업현장의 현실을 확인하는 과정을 통해 점점 더 이 문제에 관심을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노동자의 사망 배경에 기업의 중대한 과실이 드러났을 때 사업주나 원청에 책임을 지우고 처벌 수위를 높이는 내용의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청원 한 달 만에 10만명의 동의를 얻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환경노동위원회에 각각 회부된 상태다.

    최민 활동가도 "맞는 이야기도 늘 하던 방식이 아닌 다른 문법으로, 다른 사람이 목소리를 낼 때 그 힘이 더 큰 것 같다"며 "저희(시민사회계)가 그동안 말과 글로 이야기를 해왔지만, 제페토 시인의 시가 한 번에 촌철살인으로 와닿았던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그는 노래를 부르며 서로가 한마음임을 확인하는 챌린지를 통해 '연대'의 힘을 배울 수 있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홍대 거리에 붙었던 '반성문'에 대해서 언급했다.

    최근 한 노동자가 서울 마포구 삼성디지털플라자 공사현장에서 승강기 통로작업을 하다 갑자기 작동한 승강기에 끼여 숨졌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시민이 대자보를 붙였고, 그 옆에는 다른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자보와 포스트잇을 붙이며 추모의 마음을 전했다.

    최 활동가는 "챌린지가 조금이라도 홍대에 붙은 '대자보'에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봤다"며 "신문에 칼럼을 쓰고, 기자회견을 하는 거창한 일은 아니지만 대자보나 포스트잇을 쓰면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고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걸 배우는 계기였을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지속적인 관심과 노력 필요

    물론 노래를 통해 오랫동안 고착화된 노동 현실이 한 번에 바뀌지는 않는다. 최 활동가는 "챌린지가 순항하는 것과 현실은 다르다"며 "김용균 사건만 보더라도, 2주기를 앞두고 있지만, 추모조형물을 세우기로 한 기본적인 합의사항마저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챌린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이제 첫 발을 내디뎠을 뿐이다. 김 이사장은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통과될 때 반대가 심해 결국은 누더기로 통과됐다. 용균이 없는 용균이법은 노동자의 죽음을 막지 못하고 있다"며 "지금 중대재해기업처벌법도 그런 허술한 법이 될까 봐 우려가 많이 된다"고 말했다.

    이어 "'안전'은 누가 가만히 있으면 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계속 이야기하고 다루고 회의하고 논쟁해야 한다.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 챌린지도 마찬가지다"라고 설명했다. 꾸준한 관심과 노력만이 해법이라는 뜻이다.

    '노래나 부르다 말겠지' 같은, 날 선 비판에 참여자들이 좌절보다는 꿋꿋함을 택하는 이유도 같다. 하림씨는 자신의 SNS에 "이 노래의 종착지는 법안 통과를 넘어 자신이 위험한 상황인지도 모르는 분들까지 현실을 깨닫고 저항할 용기를 얻는 것"이라며 "아마 챌린지는 곧 시들해지겠지만, 그 언저리에 함께 부르는 사람이 있다면 작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제페토 시인은 CBS노컷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수십 년간 변하지 않은 현실이 노래 하나로 바뀌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다"며 "노래를 통해 과거의 비극적 사건을 기억하고 유족의 마음을 헤아려봄으로써 산업재해가 나와 가족의 이야기일 수 있다고 생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챌린지가 끝난 이후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다고 해도 노래는 다시 시민의 입을 통해 소환될 것이기에 우려는 없다"면서도 "원청이 하청업체에 위험 업무를 떠넘기는 것, 무리한 일을 거부하더라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 실효성 있는 법적 장치가 마련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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