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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총각이면 결혼할텐데"…권력형 성폭력 전체 70%



사건/사고

    "내가 총각이면 결혼할텐데"…권력형 성폭력 전체 70%

    20일 인권위 '성희롱 시정권고 사례집' 9집 펴내
    "적극적 반대의사 표시하지 않아도 성희롱 될 수 있어"
    "진정 시 '2차 피해' 호소 늘어…성희롱 인식범위도 확대"
    "피해자 일상 회복 위해 2차 피해 예방에 노력 기울여야"

    #한 도소매업체에서 과장으로 근무한 A씨는 회사 대표 B씨로부터 단둘이 사무실에 있을 때 종종 "내가 총각이라면 A씨와 결혼할 거야", "A씨를 내 걸로 만들 거야"라는 말을 들었다. B씨는 다른 여직원과 함께 근무하고 있던 A씨에게 갑자기 내려와 "여자가 큰 가슴하고 작은 가슴하고 뭐가 더 당당하냐?"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고, "이런 얘기를 해도 될지 모르겠는데 어려서부터 자위를 하게 되면 난자가 많이 배출이 되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서는 불임이 빨리 될 수 있다"고 말하며 성 기구 이야기를 하기까지 했다.

    조금 더 노골적인 희롱도 있었다. B씨는 A씨에게 "부인은 여행을 가고 아들은 예비군 훈련을 가서 집에서 혼자 지내는 것이 싫다"며 "A씨가 남자로도 바뀌고 여자로도 바뀌었으면 좋겠다. 지금 같을 때 남자로 바뀌어서 우리 집에 가서 술도 먹고 같이 잠도 자고 할 수 있지 않느냐?"라고 떠보기도 했다.

    (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자료사진)

     

    국가인권위원회(인권위)는 이와 관련해 "B씨는 신뢰의 의사 표시였다고 주장하나 소속 근로자에 대한 신뢰 표시는 다른 언어적 표현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라며 "B씨의 해당 발언은 A씨는 물론 일반적 사람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도 성적 굴욕감과 혐오감을 느끼기에 충분하다"고 판단해 B씨에게 특별인권교육 수강을 권고했다.

    해당사례를 포함해 인권위는 20일 지난 2018년 1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2년에 설쳐 시정권고한 성희롱 사례 34건(2018년 16건·2019년 18건)을 모은 '성희롱 시정 권고 사례집 제9집'을 펴냈다.

    지난 2007년부터 사례집을 발간해온 인권위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시정이 권고된 진정사건은 모두 243건(8.7%)이다. 이에 따른 구제 조치로는 △특별인권교육(192건·44.5%) △징계·전보·경고·주의 등 인사조치(69건·16%) △재발방지대책 수립(96건·22.2%) △손해배상(61건·14.1%) 등이 권고됐다.

    이 중 대부분은 직장 상사가 피고용인을 대상으로 벌인 '권력형 성폭력'인 것으로 조사됐다.

    사례집에 따르면 권고조치가 내려진 사건의 69.1%(168건)는 직접 고용관계에 있는 상사와 하급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직위로는 성희롱 가해자의 경우 대표자, 고위관리자, 중간관리자가 78.6%였고, 피해자는 평직원이 77%로 대다수를 차지했다. 피해자들의 성별은 91.3%(222건)가 여성, 연령대는 20대 37.5%(91건), 30대 33.3%(81건) 등으로 나타나 사회 초년생이거나 연차가 높지 않은 여성들이 주로 피해를 입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권위는 사건 당시에 곧바로 거부감을 나타내지 않았다 해서 성희롱으로 볼 수 없다는 인식은 합리적이지 않다고 봤다.

    한 신문사 상사가 후배에게 카카오톡 메신저 등을 통해 수차례 성적 뉘앙스가 담긴 메시지들을 보낸 것이 예로 인용됐다. 상사 C씨는 회사 후배인 D씨에게 "옆에 E 있니? E는 자빠뜨려야지", "너 새로 산 침대 스프링 한 번 시험해봐야 하는데", "굶주렸는데 왜 이렇게 온 몸을 감고 있냐. 남자가 오다가도 지쳐서 못 와" 등의 메시지를 여러 차례 전송한 것으로 조사됐다.

    D씨의 인사조치 요청에 따라 인사위원회를 통해 정직 2개월의 징계 처분을 받은 C씨는 인권위 조사과정에서 '평소 D씨와 성적인 이야기를 가감없이 나누는 사이였다', 'D씨는 적극적으로 호응했고 단 한 번도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았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사진=국가인권위원회 제공)

     

    하지만 인권위는 "D씨가 적극적으로 동참했다기보다는 단순한 호응이나 분위기를 맞추기 위한 응대 수준의 답변을 한 것으로 보인다"며 "오랜 시간 D씨가 C씨의 성적 언동으로 고통스러워했다는 지인들의 진술과 정신과 방문치료 등을 종합해보면 오히려 외면적으로는 호응해야 하면서도 내면적으로 성적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던 이중적인 고통의 상태에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C씨가 부서 내 저급한 성적 언동 등을 예방하고 적극적 조치를 취해야 하는 팀장의 직위에 있었던 점에서 D씨의 호응이 있었거나 적극적 반대의사 표시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D씨의 성희롱 피해사실 자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주장은 수긍하기 어렵다"고 못박았다.

    피해를 공론화하는 과정에서 발생 가능한 '2차 피해'를 적극적으로 막아야 한다는 의견 표명도 있었다.

    지방직 공무원인 진정인이 회식 후 귀가를 위해 차 안에서 대리기사를 기다리고 있을 때 불쑥 해당 차량에 승차해 껴안고 입을 맞추는 등 추행한 피진정인이 다른 직원들에게 "우리는 서로 좋아하는 관계였는데 이제 와 성추행을 당했다 한다", "진정인의 남편이 성기능 장애라 진정인이 바람이 났다" 등의 소문을 퍼뜨린 사건이 거론됐다.

    이에 인권위는 "국가기관 등의 장은 성희롱 피해자가 신원 노출이나 불이익한 처우, 부정적 반응 등을 예상해 기관에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알리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고 성희롱 피해를 방관, 은폐하는 관행을 근절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며 "성희롱 예방지침과 성고충 처리가 내실 있게 운영되고 구제의 실효성을 제고하기 위한 상시적 점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권위 관계자는 "최근 성희롱 진정사건들은 피해자가 성희롱 사실을 알리고 문제 삼는 과정에서 부정적 반응이나 여론, 불이익한 처우와 정신적 피해 등 '2차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늘었다"며 "성인지 감수성의 측면에서 성희롱이라 인식하는 범위가 넓어졌다는 점도 특징"이라고 말했다.

    아울러 "성희롱의 규제가 피해자의 성적 자기결정권 및 인격권뿐 아니라 노동권 및 생존권 보장에 있음을 감안하면 피해자의 일상 회복을 위해 2차 피해 예방에 좀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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