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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보호전문기관 뒤에 숨은 경찰, 아이는 결국 숨졌다



사건/사고

    아동보호전문기관 뒤에 숨은 경찰, 아이는 결국 숨졌다

    '가방 감금학대' 아동 숨져…끊이지 않는 아동학대
    한 달 전 신고 접수됐지만, 경찰·아동보호전문기관 모두 '유야무야' 조사
    경찰 "당시 상황, 응급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
    "아동학대를 범죄로 보지 않는 경찰 인식 개선해야"
    오는 10월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 시행…지자체 전담공무원 배치
    전문가들 "법원이 즉심 형태로 개입해야…지속적인 모니터링 필요"

    9살 소년을 여행용 가방에 7시간 동안 가둬 숨지게 한 여성이 지난 3일 영장 실질심사를 위해 대전지법 천안지원으로 들어서는 모습. (사지=연합뉴스)

     

    지난 4일 또 한 명의 아이가 학대를 당해 숨졌다. 9살 A군은 의붓어머니가 7시간 넘게 여행용 가방 안에 가둬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고,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지만 결국 사흘 만에 세상을 떠났다.

    아이를 살릴 기회는 있었다. 한 달 전에도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돼 A군의 아버지와 의붓어머니가 조사를 받았다. 경찰로부터 사건 조사를 의뢰받은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은 "학대가 의심되지만, 아이를 원 가정으로 복귀하도록 한다"는 결론을 냈다.

    관계기관의 첫 판단이 어긋났지만 경찰은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20여일 동안 경찰, 전문기관 그 누구도 아이를 들여다보지 않았다. 그사이 학대는 이어졌고 A군은 죽음에 이르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학대로 인한 사망 아동은 △2014년 14명 △2015년 16명 △2016년 36명 △2017년 38명 △2018년 28명에 달한다. 전문가들은 아동학대 사건을 처리하는 수사 관행, '시스템'이 바뀌지 않는 한, 아이들은 또 죽음을 맞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 1일 저녁 A군이 병원으로 옮겨지는 모습. 오른쪽 노란 옷이 계모 B씨. (사진=연합뉴스)

     

    ◇ 어쩌면, 아이를 살릴 수 있었던 '한 달'의 시간

    A군의 학대 피해 사실이 시스템에 처음 포착된 건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A군은 천안의 한 대학병원 응급실에서 머리 상처를 치료하고 돌아갔다. 이틀 뒤인 7일, 멍 자국을 의심한 응급실 의료진이 경찰에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하루 뒤, 천안 서북경찰서는 충남아동보호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했다.

    닷새 뒤인 13일에야 전문기관은 A군의 집을 방문했다. 조사관 2명이 각각 부모와 A군을 조사했다. 한 차례 방문조사 뒤 기관은 지난달 18일, 경찰에 사건 보고서를 보냈다. 결론은 '가정 기능 강화'였다. A군과 부모를 분리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보전 관계자는 "당시 A군이 부모와 떨어져 지내고 싶지 않다는 취지로 이야기하고 부모도 체벌을 인정하며 반성하는 듯 보여 분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보전의 1차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지난달 21일과 24일, 두 차례 아동학대 혐의로 A군의 아버지와 의붓어머니를 불러 조사했다. 조사 결과 지난해 10월부터 5월까지 A군을 학대한 혐의가 확인됐지만, 분리해 보호할 필요는 없다는 결론은 뒤집히지 않았다. A군에 대한 경찰 조사도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아보전의 조사는 여러모로 허술했다. 법무법인 지향 김수정 변호사는 자신의 SNS에 "부모가 학대한다고 말할 수 있는 어린아이가 대체로 몇 명이나 있나"라고 꼬집었다. 아동권리보장원 학대예방사업부 장화정 본부장은 "상담원이 아이와 좀 더 라포(신뢰)를 형성하고 여러 각도에서 질문했으면 의심되는 부분이 나왔을 텐데 그런 부분을 놓쳤다고 본다"고 말했다.

    아보전만의 문제는 아니다. 전문가들은 수사기관이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판단을 전문기관에 떠넘기는 현 상황에선, '시스템에 포착돼도 죽는 아이들'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 강제권 없는 전문기관에 뒷짐 진 경찰

    아동학대를 중한 '범죄'로 보지 않고 민간기관에 맡기는 수사기관의 안일한 인식이 9살 아이를 죽음으로 몰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이수정 교수는 "강제권이 없는 집단이 아동학대 사건을 전담하다 보니 아이가 죽어야 끝난다"며 "당장은 별것 아닌 것처럼 보여도 취약한 사람들이 피해자가 되는 사건들이 외면받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아보전 실무 담당자는 "아보전이 낸 의견이 100이라면 경찰이 100을 (그대로) 가져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경찰은 통상적으로 구속 요건을 따져 '긴급성' 등이 있다고 판단하는 경우 아동학대처벌법 위반 혐의로 입건하고, 이외 사건에는 아동복지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아보전에 일차적인 판단을 맡긴다. 이 사건을 수사한 경찰 관계자도 "당시 상황이 응급하다고 판단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초기에 A군에 대한 긴급 조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현행 아동복지법은 피해 아동의 '원 가정 복귀'를 목적으로 한다. 이 교수는 "현행법은 가부장적 질서에 기반하기 때문에 친권 제한이 어렵고 학대를 받아도 가해자가 있는 가정에 그대로 머물게 한다"고 꼬집었다. 아보전 실무자들은 "아동복지법만 적용했을 때 현장에서 분리하기 어렵다. 가정방문 조사도 부모가 거부하면 강제할 방법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피해 아동에 대한 모니터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천안 서북경찰서는 A군 가정을 A등급 '학대 우려 가정'으로 분류해놓고도 신고 접수 다음 날 경고 전화 외에 어떤 점검도 하지 않았다. 첫 가정 방문조사 이후 20여일 동안 경찰과 전문기관 모두 A군의 상황을 확인하지 않았다.

    경찰서마다 APO(학대 예방 경찰관)를 두고 있지만, 서울 일선서 APO 1명이 관리하는 피해 아동은 평균 40명 선이다. 경찰 관계자는 "관리하기 빠듯한 게 현실"이라며 "아동학대 건에 대해선 수사기관이 강제적으로 방문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일러스트=연합뉴스)

     

    ◇ 아동학대 처벌법 개정안 시행 D-4개월…'학대 고리' 끊을 수 있을까

    지난 3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아동학대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개정안은 오는 10월 1일부터 시행된다. 개정안에는 기존에 아보전이 수행하던 현장 조사나 응급조치 등 관련 조치를 지자체 소속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이 대신 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전담 공무원은 학대 행위자를 조사할 수 있으며, 신고 접수 직후 현장조사 외에도 학대 행위자에게 출석과 진술,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현장 출동한 전담공무원이나 전문기관 직원의 조사에 응하지 않는 경우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되고, 전담 공무원의 업무 수행을 방해한 사람은 5년 이하의 징역이나 1천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공공성 확보 차원에서 사례 판정과 조사는 전담 공무원이 하고, 사례 관리는 아보전 (상담원)이 한다"며 "전담공무원 1명이 아동학대 50건을 맡도록 권고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개정안이 근본적 해법이 될 수 없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벌써 나오고 있다.

    이수정 교수는 "지자체의 목적은 복지 지원이다. 납세자인 가해자의 자유권을 제한하는 일에 전문성을 갖고 잘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며 "상담을 조건부로 가해 부모에게 기소유예를 선고하는 제도가 더 횡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영미권 국가처럼 법원이 즉심 형태로 강제명령을 내리는 등 개입해야 한다. 이후 지속적인 모니터링도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정익중 교수는 "학대 부모 대상 상담·치료 등이 권고사항일 뿐인 것도 한계"라며 "아동학대 처리 시스템 전반을 손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모든 사건에서 아이들이 죽을 수 있다. 경찰과 전문기관이 사건을 보다 세심하게 다뤄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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