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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씩, 천천히 스며드는 마음 '조금씩, 천천히 안녕'



영화

    조금씩, 천천히 스며드는 마음 '조금씩, 천천히 안녕'

    [노컷 리뷰] 외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감독 나카노 료타)

    (사진=㈜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제공) 확대이미지

     

    ※ 스포일러 주의

    기억을 잃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어떠한 걸까. 조금씩, 천천히 변해가는 가족, 그리고 그런 소중한 사람과 조금씩, 천천히 이별을 준비해간다는 건 어떤 모습일까. 영화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느리지만 섬세하게 이별의 모습을 담아낸다. 동시에 마음으로 이어진다는 것, 가족이란 것의 의미를 되묻는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감독 나카노 료타)은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와 7년이란 시간 동안 조금씩 이별을 준비하는 가족들의 이야기를 그린 드라마다.

    영화는 '행복 목욕탕'(2016)을 연출한 나카노 료타 감독의 차기작으로, '캡처링 대디'(2013)를 시작으로 하는 감독의 가족 영화 3부작의 완성작이다. 세 편의 영화를 통해 감독은 각자의 상처와 아픔을 보듬는 과정에서 진정한 가족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에서도 감독은 제목처럼 조금씩, 천천히 한 걸음씩 나아가며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보게끔 한다.

    아버지 쇼헤이(야마자키 츠토무)의 70번째 생일날, 두 딸 마리(다케우치 유코)와 후미(아오이 유우)를 불러 모은 어머니 요코(마츠바라 치에코)는 아버지가 치매에 걸렸다고 말한다. 조금씩, 천천히 나빠진단다. 근엄하고 규칙적인 아버지, 교장 선생님이었던 아버지가 가족들에 관한 기억은 물론 자신조차 잊어간다는 사실에 마리와 후미는 적잖은 충격을 받는다.

    일도 사랑도 무엇 하나 뜻대로 되지 않는 후미, 낯선 미국 생활에 좀처럼 적응하기도 힘든데 배려 없는 남편으로 인해 혼자 마음고생 하는 마리. 책을 좋아하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한 권 빌려주겠다며 건네주는 '국어사전'을 받은 후미는 마음이 복잡해진다. 마리 역시 언제든 필요할 때 손 내밀 수 없는 거리에 있는 게 미안하기만 하다. 조금씩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 옆을 어머니는 씩씩하게 지켜나간다.

    영화는 느린 호흡으로 2007년부터 2년 주기로 달라지는 아버지의 모습, 아버지의 곁을 지키는 어머니 요코, 두 딸 마리, 후미의 모습을 비춘다. 한 가족이면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가고, 각자의 고민을 안고 있고, 힘들어하는 이들을 보여준다.

    그런 가족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위로하는 건 조금씩 천천히 기억을 잃어가는 아버지다. 말도 어눌해지고, "괴로울지 마"라며 문법에도 맞지 않는 엉뚱한 말을 던지기도 한다. 책을 거꾸로 들고 보기도 하고, 집에 있으면서도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늘 우산 세 개를 챙겨 어딘가로 가려고 한다.

    (사진=㈜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제공) 확대이미지

     

    아버지가 왜 항상 우산 세 개를 챙겼는지,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는지에 관한 답은 영화 마지막에 확인할 수 있다. 아버지의 우산 세 개에 담긴 의미는 가족을 향한 '사랑'이었다. 아버지가 손에 꼭 쥔 것은 단지 우산 세 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잃지 못하는, 잃을 수 없는 '마음'인 것이다.

    자신조차 제어할 수 없는 아버지지만 가족들을 향한 마음만은 잃어버리지 않았다. 그런 아버지 곁에서 가족들은 잊었던 마음과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고, 아픔을 치유 받는다. 기억보다 타인을 끌어안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마음일지 모른다.

    영화가 보여주는 아버지와 가족들의 7년이란 시간 안에는 2011년 일본 대지진이 가져온 슬픔과 변화, 2020년 올림픽 개최지로 도쿄를 발표하던 2013년의 모습 등 일본인들의 희로애락이 녹아든 장면들도 담겨 있다. 마리와 후미 가족의 연결과 연대뿐 아니라 큰 아픔을 겪은 후 일본에도 서로를 잇는 연결과 슬픔을 이겨낼 연대가 필요함을 이야기한다. 그것이 인간이 가진 가장 큰 힘 중 하나이자 희망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조금씩, 천천히 안녕'은 7년이란 시간을 128분으로 압축해 보여준다. 영화를 관람하기에 다소 긴 시간일 수 있지만, 누군가와 영원한 이별을 준비하는 마음을 담아낸 두 시간은 그리 길다고 말할 수 없다. 이별한 이들에게 7년은 결코 긴 시간이 아닐 것이다. 치매를 다른 말로 영화의 원제이기도 한 '어 롱 굿바이(A Long Goodbye)'로도 부른다고 한다. 128분이 지나면 어느새 내 안에 스며든 어떠한 마음, 가족의 의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배우 아오이 유우, 다케우치 유코, 마츠바라 치에코, 야마자키 츠토무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더욱더 영화에 몰입하게 만든다. 삶에서 방황하고, 기억 속에서 방황하는 이들의 모습을 공감 가게 표현해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영화의 원작인 나카지마 교코의 소설 '조금씩, 천천히 안녕'을 조금씩, 천천히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또 하나, 영화 내내 등장하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이 눈에 들어온다. 가족을 잇고, 사람들을 잇는 건 '마음'이라는 영화의 메시지와도 연결돼 있다는 점에서 손이 가게 만든다.

    5월 27일 개봉, 128분 상영, 전체 관람가.
    (사진=㈜엔케이컨텐츠, ㈜디스테이션 제공) 확대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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