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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일반

    "아이에게 아빠는 죽었다고 말했어요"

    • 2008-12-24 07:00

    [연속기획 ''新 라이따이한은 누구의 자식인가'' ③] ''당신의 아이(?)가 필리핀에서 자라고 있다''

    우리나라 남성과 베트남이나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이른바 ''신 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아이들이 어머니 나라에 내팽겨쳐진 채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CBS는 이 같은 신라이따이한과 코피노 아이들의 고달픈 삶을 집중조명해 보고 해법이 무엇인 지를 진단하는 5부작 해외취재 기획시리즈를 마련했다. 24일 세 번째 순서로 한국인 아빠가 있지만 ''아빠 없는 사생아''로 내몰리고 있는 코피노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보도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엄마의 나라로 보내지는 한국 국적의 아이들
    ②필리핀에서 학교 다니는 선령이와 혜진이
    ③코피노 아이들, ''당신의 아이(?)가 필리핀에서 자라고 있다''
    ④끝나지 않은 신라이따이한의 ''한(恨)의 눈물''
    ⑤아픔은 치유될 수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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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빠''를 모르고 자라는 아이들

    국제결혼을 통해 태어난 코시안 선령이와 혜진이(CBS 노컷뉴스 22·23일자)는 부모의 파경과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엄마의 나라로 보내져 생활하고 있지만 ''그래도 행복하다''.

    실제로 국제결혼이나 연애결혼 등 정상적인 만남을 통해 현지에 정착한 가정들 중에는 잘 사는 경우도 많이 있다고 필리핀 현지 교민들은 전했다.

    하지만 ''정상적이지 못한'' 만남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경우는 사정이 다르다.

    필리핀은 낙태를 법으로 금지하고 죄악시하는 카톨릭 국가로, 임신을 하면 아이를 낳는 것을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가운데 한국 남성들의 성매매 관광과 유학생, 골프 관광객들의 무책임한 동거와 일탈은 필리핀 여성들을 미혼모로 만들고, 태어난 아이들을 ''아빠가 없는'', ''아빠가 누군지 모르는'' 사생아로 내몰고 있다.

    이들 미혼모 대부분은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다 아이를 낳는 경우지만 일부 여성들은 다른 직장에 다니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기를 수 없게 돼 유흥업소에 나가는 경우도 있다.

    한국인(Korean)과 필리핀인(Philippino)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란 뜻의 신조어 ''코피노(Kopino)''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현지 교민들은 코피노들이 주로 한국인과 유흥업소 밀집지역에 있으며, 5년 전 1천 명 정도였으나 지금은 1만 명 이상이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아이에게 아빠는 죽었다고 했다"

    "아이에게 아빠는 죽었다고 했어요. 아이가 커서 누군지도 모르는 아빠를 찾아나설 수도 있고, 행여 아빠가 한국인이라고 하면 비뚤게 자랄 수도 있으니까요"

    6살 난 사내아이를 둔 마리엘 토리오(27·여) 씨는 코피노 아이를 둔 미혼모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유흥주점에서 일한다.

    식료품가게 점원과 골프장 캐디로 일하면서 그럭저럭 생활했지만 아이가 올해부터 유치원에 다니는데다 아이를 돌봐주는 가족들에게 생활비까지 보내야 하기 때문에 지난 8월부터 이 곳으로 옮겼다.

    출근수당과 손님들이 주는 팁, 2차 수당까지 합치면 많게는 월 2만 페소까지 벌 수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그녀는 설명했다.

    마리엘 씨는 유흥업소에는 필리핀 여성 40명이 일하고 있으며, 이 중 10명이 한국 남자의 아이를 기르고 있다고 귀띔했다.

    한 때 마리엘 씨는 아나운서를 꿈꾸던 언론학도였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인 지난 2001년 말, 학비를 벌기 위해 골프장에서 캐디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운명이 달라졌다.

    예쁘고 샹냥하고 지적이기까지 한 그녀에게 ''알렉스 김''이라는 한국인 골프 관광객이 데이트를 신청했고, 한 달 정도를 사귀면서 열렬히 사랑했다. 적어도 마리엘 씨는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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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이 ''알렉스 김''이란 것 외에는 애 아빠에 대해 아는 것이 없어요. 나이도, 직업도, 하지만 그 사람을 만나면 행복했고 결혼하고 싶었어요"

    알렉스는 "다시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홀연 떠난 뒤 7년이 지나도록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

    ◈ "알렉스 김, 당신의 아들이 6살이 됐어요"

    문제는 그 때부터였다. 남자가 떠난 뒤로 마리엘 씨는 임신 사실을 알았다.

    당시 마리엘 씨는 대학생 신분으로 학교를 다녀야 했는데다 경제적으로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어 약을 먹고 아이를 지우려고 했다.

    낙태가 법적으로 금지돼 아이를 유산을 시킨 뒤 수술을 받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잘 생기고 건강하게 태어났다. 아빠를 많이 닮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고 생각해요. 제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잘 키우겠다는 생각 뿐이예요"

    마리엘 씨는 "애를 임신하고 낳았을 때 당신이 없어 슬펐어요. 이제 아이가 6살이 됐어요. 당신의 아들이예요. 다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 때까지 건강하게 지내세요"라며 한국 어딘가에 있을 애 아빠에게 그리움을 전했다.

    ◈ 코리아를 모르는 코피노 아이,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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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리엘과 알렉스 김의 아들 존 애슐리 토리오(6) 군은 90년대 초까지 미군이 사용한 필리핀 클락공군 기지 담장 옆 빈민가에서 큰이모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넉넉한 형편은 아닌 듯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과 4남매를 둔 이모네 가족은 존 애슐리 군과 함께 동생이 유흥업소에서 번 돈으로 생활하고 있었다.

    여섯 살 아들에게 엄마는 "동네 아이들의 질이 좋지 않으니 어울리지 말고 밖에도 나가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래서 생긴 취미가 클락공군 기지에서 이·착륙하는 헬리콥터와 전투기를 쳐다보는 일.

    아이는 비행기 소리만 나면 하늘을 쳐다보는 습관을 갖고 있었다.

    존 애슐리 군의 겉모습은 완벽한 여섯 살 한국 아이였다.

    하지만 한국에서 온 취재진에 아이는 왜 자신을 만나러왔는 지 의아해할 뿐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겨울연가'' ''''대장금'''' ''''주몽'''' 등 필리핀을 강타했던 한류열풍은커녕, 아빠의 나라를 가르키는 ''''코리아''''는 존 애슐리 군에게 낯설 뿐이다.

    엄마는 아들에게 "아빠는 죽었다"다고 말한 뒤, 더 이상 아빠에 대해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 역시 애 아빠의 이름이 ''''알렉스 김''''이란 사실만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BestNocut_R]

    엄마 이야기를 하자 존 애슐리 군은 커서 파일럿이이나 의사가 돼서 엄마가 늙어 아프면 고쳐주고, 집도 사주겠다고 기특한 말을 했다.

    애슐리 군에게 ''아빠가 보고싶냐''고 묻자 "아빠는 하늘나라에 계세요. 나중에 아빠를 만나면 ''사랑해요. 보고 싶었어요''라고 말하겠다"고 했다.

    아빠가 그리운 6살 아이에게 "네 아빠는 한국인이고, 지금 한국 어딘가에 계시다"고 말해주는 가족이 아무도 없다는 현실이 코피노를 둔 필리핀 가정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한국언론재단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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