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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포 無, 예고된 완패' 韓 테니스, 복잡한 현실·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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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일반

    '차·포 無, 예고된 완패' 韓 테니스, 복잡한 현실·과제

    • 2020-03-1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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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기는 좋았는데...' 한국 남자 테니스 대표팀 정홍(왼쪽부터), 송민규, 정윤성, 정희성 감독, 남지성, 이덕희가 5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와 데이비스컵 원정 예선 대진 추첨을 마친 뒤 필승을 다짐하고 있다.(칼리아리=대한테니스협회)
    12년 만의 세계남자테니스선수권대회(데이비스컵) 본선 진출이 무산된 한국 테니스. 대표팀은 지난 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 칼리아리에서 열린 데이비스컵 예선 원정에서 완패를 안았다.

    4단식 1복식으로 진행된 예선에서 먼저 3패를 안았다. 이후 3번째 단식이 열렸지만 의미가 없었고, 4번째 단식은 상호 합의에 따라 생략됐다. 이에 따라 이탈리아가 오는 11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상위 18개 국가가 벌이는 본선에 진출했다.

    애초 이번 예선은 열세가 예상됐다. 국가 랭킹 11위 이탈리아와 29위 한국의 대결이었다. 이탈리아는 단식 세계 랭킹 11위 파비오 포니니를 비롯해 로렌조 소네고(46위), 지안루카 마거(79위), 스테파노 트라발리아(86위) 등이 포진했다. 반면 한국의 최상위 랭커는 238위인 남지성(세종시청)이었다.

    대표팀은 이변이 많은 데이비스컵에서 반란을 노렸지만 결과는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첫 단식에서 251위 이덕희(현대자동차 후원·서울시청)가 포니니에 0 대 2(0-6 3-6) 완패를 안은 데 이어 남지성도 마거에 0 대 2(3-6 5-7)로 졌다.

    그나마 1승 가능성이 있었던 복식에서도 힘을 쓰지 못했다. 호주오픈 복식 2회전에 진출한 남지성-송민규(KDB산업은행)도 포니니와 짝을 이룬 복식 전문 선수 시모네 보렐리의 이탈리아에 0 대 2(3-6 1-6)으로 졌다. 정윤성(333위·CJ 후원·의정부시청)이 4단식에서 트라발리아에 0 대 2(0-6 1-6)으로 지면서 대표팀은 한 세트도 얻지 못한 채 예선을 마쳤다.

    지난해 9월 데이비스컵 중국 원정 예선에서 권순우가 백핸드 스트로크를 구사하는 모습.(사진=대한테니스협회)
    사실 대표팀은 이번 예선에서 핵심 전력이 빠졌다. 현재 한국 선수 중 최고 랭커인 권순우(CJ 후원·당진시청)와 2018년 호주오픈 4강에 오른 정현(제네시스 후원)이다. 지난주 69위까지 올랐던 권순우는 도쿄올림픽 출전을 위해 랭킹을 끌어올리려고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에 전념하기로 했고, 정현은 스폰서 문제로 불참을 결정했다.

    만약 둘이 있었다면 2008년 이후 데이비스컵 본선 진출도 꿈이 아니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정희성 대표팀 감독(부천시청)은 예선을 마친 뒤 "열심히 준비했는데 한 수 위의 상대에 역부족이었다"고 패배를 인정하면서도 "권순우, 정현이 있었다면 대등한 경기를 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탈리아의 코라도 바라주티 감독도 "만약 둘이 있었다면 힘든 경기가 됐을 것"이라고 했다.

    4주 연속 ATP 투어 8강의 상승세를 탄 권순우라면 상대 2번 단식 주자 마거는 충분히 제압할 가능성이 높았다. 정현도 부상 등으로 142위까지 떨어져 있지만 호주오픈 4강에 한때 세계 19위까지 올랐던 경험을 무시할 수 없다.

    예선 첫날을 1승1패로 마친다면 이탈리아로서는 에이스 포니니를 단식에만 출전시켜야 하는 상황이라 한국이 복식에서 승리할 공산이 컸을 터. 그렇게 되면 정현이 마거와 마지막 승부를 펼치는 구도도 그려볼 수 있었다. 하지만 어쨌든 대표팀은 차·포를 뗀 채 전쟁에 나서야 했다.

    테니스계 일각에서는 대한테니스협회가 어떻게 해서든 두 선수를 출전시키도록 했어야 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반대로 권순우와 정현도 잠시 개인을 잊고 한국 테니스를 위해 태극 마크를 달고 나라를 대표해 국가 대항전에 나왔어야 했다는 의견도 맞선다.

    하지만 여기에는 서로 모두 어쩔 수 없는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다. 아직은 인기 종목이 아닌 한국 테니스의 씁쓸한 현실이 핵심 선수들을 빼고 전쟁을 치러야 하는 배경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2017년 9월 정현이 대만과 'ITF 데이비스컵 아시아-오세아니아 1그룹 플레이오프' 1단식에서 강력한 포핸드 스트로크를 날리는 모습.(사진=대한테니스협회)
    먼저 데이비스컵 불참을 놓고 논란이 된 정현과 협회의 상황을 살펴보자. 정현은 발 부상 등을 이유로 개인 테니스화 착용을 협회에 요청했다. 협회는 공식 스폰서가 아닌 용품은 테이프 등으로 로고를 가리고 착용하면 된다고 답했다. 이에 정현 측은 그렇게까지 출전하지는 않겠다고 했고, 협회는 선수의 의견을 존중한다고 했다.

    양 측 모두 스폰서의 입장을 듣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협회는 공식 스폰서 아디다스로부터 1년 3억 원의 현금과 5억 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받는다. 정현 역시 라코스테(의류), 나이키(신발) 등과 수억 원대의 후원을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회는 운영과 예산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공식 스폰서를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곽용운 협회장은 "지난 집행부보다 후원 규모를 2배 정도 늘렸지만 협회 예산이 많이 들어간다"면서 "예를 들어 2018년 아시안게임을 대비해 대표팀의 합숙만 해도 1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고, 여기에 유소년 지원에도 협회가 신경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로서는 1년에 1, 2번뿐인 국가 대항전만큼은 공식 스폰서 용품을 사용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이덕희는 이번 예선에서 테이프를 붙인 테니스화를 착용했다.

    권순우도 데이비스컵 대신 ATP 투어를 택한 이유가 있다. 아직까지 권순우는 현대자동차그룹 후원까지 받는 정현처럼 스폰서 규모가 크지 않은 상황이다. 한 테니스계 관계자는 "정현이 한국 최초로 메이저 대회 4강을 이루면서 후발 주자인 권순우의 후원은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면서 "넉넉하지 않은 가정 형편에 투어 출전과 개인 코치(임규태) 비용을 감당하기가 버거울 것"이라고 귀띔했다.

    때문에 권순우로서는 빨리 랭킹을 올려 주가를 높여야 하는 상황이다. 도쿄올림픽 출전도 마찬가지.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올림픽에서 성적을 내면 다음 후원 계약에서 유리한 조건에 설 수 있다. 정현은 랭킹이 낮아 올림픽 출전이 사실상 불가능하지만 권순우는 확정적이다.

    더군다나 권순우는 지난해 데이비스컵에서 맹활약을 펼쳤다. 9월 중국 구이양에서 열린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예선에서 단식 두 경기를 잡으면서 예선 진출을 이끌었다. 4년 동안 3회 이상 데이비스컵에 출전해야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는 자격도 채웠다. 참고로 정현은 2017년 데이비스컵에 2번 출전한 바 있다. 정현은 이번 예선에 뛰었다면 올림픽 출전 자격을 얻지만 랭킹이 낮아 현실적으로 뛰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이탈리아 남자 테니스 국가대표 에이스 파비오 포니니가 6일(현지 시간) 한국과 데이비스컵 예선 1단식에서 이덕희의 거센 공격을 힘겹게 받아내고 있다.(칼리아리=대한테니스협회)
    이런 사정 속에 대표팀은 남은 선수들로 전력을 꾸렸다. 결과는 완패였지만 그래도 소득은 있었다. 대부분 하위 랭커들과만 대전했던 선수들이 톱 랭커들의 공을 받으면서 자극을 받은 것.

    이덕희는 11위 포니니와 단식 1세트에서 긴장한 듯 영패를 안았지만 2세트에는 그래도 상대 서브 게임을 브레이크하는 등 나아진 모습을 보였다. 그런 이덕희에 대해 포니니는 "젊고 스트로크가 좋은 선수로 만약 하드 코트에서 경기를 했다면 힘들었을 것"이라면서 "앞으로 랭킹이 더 올라갈 것"이라고 칭찬했다.

    이덕희도 "2세트는 포핸드 자신감이 돌아와 기회가 왔는데 아까웠다"면서 "조금만 더 열심히 하고 실력을 쌓아 다시 붙으면 이기고 싶다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고무적인 표정을 지었다. 경기 후 이덕희는 포니니와 유니폼을 교환하기도 했다.

    포니니와 복식에서 맞붙은 남지성도 "분석과 패턴 준비가 미흡했다"면서도 "다시 하면 더 나은 경기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각오를 다졌다. 마지막 단식에 나섰던 정윤성도 "첫 세트에는 긴장했지만 나중에 만나면 더 잘하겠다"고 입을 앙다물었다.

    '포니니가 먼저 바꿔 입자네요' 한국 남자 테니스 국가대표 이덕희가 7일(현지 시간) 이탈리아와 데이비스컵 예선 원정을 마치고 상대 에이스 파비오 포니니와 교환한 점퍼를 입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칼리아리=노컷뉴스)
    정 감독도 "예선 수확이 있다면 톱 랭커와 붙을 기회가 많지 않은데 포니니와 단식, 복식을 한번씩 해보고 느낀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선수들이 투어 생활을 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발전해야 할지 생각을 많이 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유럽은 어린 선수들이 쭉 클레이 코트에서 배우는데 하드 코트가 대세인 우리로서는 약점인 만큼 보완책을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협회는 이번 예선에서 얻은 성과와 교훈 등을 분석해 규정도 손볼 예정이다. 곽 회장은 "권순우와 정현이 오지 않은 점은 아쉽지만 다른 선수들이 언제 톱 랭커와 붙을 기회가 오겠나"고 반문하면서 "좋은 경험이 돼서 선수층이 두터워질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선수들이 국가대표의 자부심을 갖고 최상의 전력을 구축할 수 있도록 데이비스컵 출전 규정 변경 등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데이비스컵 월드 그룹1로 밀린 한국 남자 테니스는 오는 9월 플레이오프를 치른다. 여기서 이기면 내년 다시 한번 데이비스컵 예선 진출권을 얻어 본선에 도전할 기회를 갖는다. 한국은 1981년과 1987년, 2008년 데이비스컵 본선에 오른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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