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라미란 배우가 안 했으면 아마 이 영화는 어려웠을 거예요"



영화

    "라미란 배우가 안 했으면 아마 이 영화는 어려웠을 거예요"

    [노컷 인터뷰]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 ①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영화 '정직한 후보' 장유정 감독을 만났다. (사진=황진환 기자)

     

    ※ 영화 '정직한 후보'의 내용이 나옵니다.

    '김종욱 찾기'와 '부라더'로 로맨틱코미디와 코미디를 선보인 장유정 감독. 시사적인 성격이 강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우연히, 혹은 운명처럼 브라질 영화 'O Candidato Honesto'를 알게 됐다. 거짓말을 못하는 정치인의 이야기라는 로그라인만 보고, 연출하겠다는 결정을 꽤 빨리 내렸다.

    그 후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이었다. 6~7개 당의 비서관, 보좌관, 대변인을 만났고, 4·3 보궐선거가 치러지는 지역을 직접 찾기도 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한쪽만이 아니라 최대한 다양한 입장을 보고 싶어서 여러 매체 기사를 같이 읽는다는 그의 태도는, 영화 연출에서도 이어졌다. 덕분에 '정직한 후보'는 한국의 정치·사회·문화 현실을 아는 만큼 더 재미있는, '잘 한국화된' 영화가 됐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몇몇 영화의 개봉이 미뤄지고, 극장에도 오는 사람이 없어 영화계가 울상일 때, '정직한 후보'는 개봉일을 그대로 유지했다. 그대로 가든, 연기하든 각각의 리스크는 있었다. 개봉 이틀 전인 지난 10일 오후, 서울 종로구 팔판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장유정 감독은 "아무렇지 않다는 말, 그거야말로 거짓말인 것 같다"라며 "일단은 이 상황이 나아지는 게 우선인 것 같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 정치인 주인공 영화, 취재하며 '발견'한 것들

    장유정 감독은 정치인이나 언론인이 주인공인 영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등 시사성이 강한 영화를 하고 싶었을 즈음 브라질 원작을 만났다. 정치인이 주인공인데, 거짓말을 못한다는 내용의. 장 감독은 "정치인들이 위선적 행위를 한다는 건 (어떤 의미에서) 우리가 자연스럽게 느끼는 지점이 있지 않나. 거짓말을 못하는 걸 떠나서 '진실이 튀어나오는' 설정이 재미있더라"라고 말했다.

    장 감독은 "로그라인 듣고 오케이하고 번역본 받고 한 달쯤 지나서 원작을 봤다. 원작에 매이지 않으려고 늦게 보려고 한 것도 있었지만, 이미 의원회관 다니며 인터뷰도 진행해서 그런지 '아, 이게 어차피 원작대로 갈 수는 없겠구나' 생각해서 마음을 내려놨다"라고 밝혔다.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이 제일 쉬운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이 선거를 코앞에 두고 거짓말을 전혀 못하게 되며 벌어지는 좌충우돌 코미디다. (사진=㈜수필름, ㈜홍필름 제공)

     

    '정직한 후보'는 거짓말과 빈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3선 국회의원 주상숙(라미란 분)이 갑작스럽게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시나리오 쓰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을 물었더니 "한국적인 실정을 많이 집어넣으려고 했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핵심 설정이 '판타지'였기에, 나머지를 현실에 밀착시켰다.

    장 감독은 "(거짓말을 못하게 된다는 건) 판타지다. 있음 직한 일도 아니다. 그러다 보니 그 외의 여러 부분, 선거하는 과정과 (사람 간) 관계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려고 했다. '여의도 ZOO' 영상에 나오는 각종 비리와 선거 때 나온 여러 에피소드에서는 리얼리티를 가져가서 코믹하게만 그리지 않으려고 했다"라고 전했다.

    "저도 투표 많이 했으니까 선거(과정)를 되게 많이 봤을 것 아니에요. 근데 요리가 (완성돼) 나온 걸 보는 것과, 요리를 먹는 것이 완전히 다르듯이 직접 들어가 보니까 되게 재밌는 거예요. 일단, 기자분들이 자연스럽게 거리에 앉으시더라고요. 사진 찍는 분들은 사다리 갖고 오고. 그런 것도 되게 작은 것이지만, 실제로 본 적은 없잖아요. 그런 구도를 본 건 처음이니까요. 어떤 후보가 선거운동하고 있는데 비방하는 트럭이 지나가는 걸 봤는데, 그게 되게 느리~게 가더라고요. (웃음)

    또, 길에서 절하는 것도 봤고, 풍선 인형 쓰고, 마스코트 많이 두는 것, (눈에 잘 띄는) 탈 쓰는 것… 분위기를 띄워주니까 사람들이 몰리더라고요. 그리고… 아! 어떤 당 후보가 홍보 중인데 중간에 전혀 상관없는 당이 지나갔어요. (정치적 방향성이) 완전히 끝에서 끝인 곳인데 (관계자들이) 너무 친하게 인사를 하는 거예요. 정말 놀랐어요. 보좌관들한테 물어보니까 '그럼요. 같은 직종이잖아요~' 하더라고요. 근데 처음 봤을 땐 놀랐어요. 또 (정치인들이) 새벽 5시에 가스 충전소에 가요. 택시기사님들한테 인사하러요. 시외버스 터미널도 가고 출근길 지하철에 가고요. 그거 다 끝나면 식사하고. (그렇게) 스케줄이 짜여 있더라고요."

    '정직한 후보'에는 한국영화 최초로 촬영된 장소도 나온다. 바로 국회 도서관이다. 논문 쓸 때부터 자주 국회 도서관에 다녔던 장 감독은 이곳을 "굉장히 재미있는 공간"이라고 소개했다. 거기 있는 사람들도 왠지 의원 한 번쯤은 하지 않았을까 싶은 '포스'를 자랑한다면서. 선거의 달인이자, 위기에 빠진 주상숙을 도울 구원투수로 등장하는 이운학(송영창 분)에게 어울리는 공간이라고 생각했다. 장 감독은 "이운학이라는 캐릭터라면 국회 도서관에 있을 것 같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제가 영화감독인데 이 공간을 꼭 너무 (촬영) 하고 싶다고 굉장히 (의지를) 피력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오픈한 적은 없었지만 (영화와) 잘 어울린다고 판단하셨는지 허락해 주셔서 공들여서 찍었다"라며 "로비가 좋은 것 같아서 거기서 찍었다. 그 공간을 그대로 찍고 싶어서 (기물) 배치만 약간 다르게 했다"라고 설명했다. 이운학이 처음 등장할 때 그는 신문을 보고 있는데, 그건 '입'으로 사고치고 다니는 주상숙에 대한 내용이다.

    장유정 감독은 '정직한 후보'를 연출하기로 마음먹고 나서 국회 의원회관으로 가 사람들을 만나며 취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장 감독은 이날 인터뷰에서 신지선(조수향 분)의 머리 스타일, 장덕준(오만석 분) 앵커의 이름, 선거 전문가 이운학(송영창 분)이 있던 곳 등 영화와 관련된 일화를 세세히 전했다. (사진=㈜수필름, ㈜홍필름 제공)

     

    ◇ 처음부터 '여성 국회의원'이나 라미란을 떠올린 건 아니지만

    원작의 남성 대선 후보는 '정직한 후보'에서 여성 국회의원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별거 아닌 변화일 수 있지만, 성별의 전환은 이야기의 많은 부분을 바꾸었다. 처음엔 '정직한 후보'도 남성 캐릭터로 시작했다. 부인과 아이가 있는. 원작이 남자니까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그런데 완성해 갈수록 표현하기 어려운 지점이 생겼다.

    "거짓말을 못해서 뭔가 진심이 튀어나오려고 하는, 얄궂은 상황에 처한 캐릭터이잖아요. 그걸 눌러야 하고요. 만약 (관객이 봤을 때) 분노가 치밀 정도로 미우면 (주인공이) 뭔가를 깨닫고 달라졌을 때 공감하기 어려울 거라고 봤어요. 어느 정도의 사랑스러움은 유지해야 했고, 누군가에겐 을이어야 했어요. 슈퍼 갑인 당 대표 앞이나, 시어머니 앞에선. 복잡하지만 사랑스러움이 있는 캐릭터를 코미디로 가되, 진지하고 성숙한 것까지 해야 했어요. 그걸 라미란 배우는 확실히 해줄 것 같았죠. 라미란 배우가 안 했으면 아마 이 영화는 어려웠을 거예요."

    의원실에선 천하제일이지만 어떤 관계에선 약자인 부분은 영화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만약에 남성 의원이었으면 정치판에서 더러운 꼴 덜 봤을 거라고 하는 대사나, 시어머니(김용림 분)의 전화를 받을 땐 무릎을 꿇고 조아리는 자세가 대표적이다. 장 감독은 "꼭 여자여서 그런 부분을 넣은 건 아니다. 진짜 여성주의 영화들이 많고, 저희는 거기에 비하면 굉장히 부족하다"라면서도 "(제가) 여자 감독이라 제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게 있다"라고 밝혔다.

    극중 주상숙이 탈모 증상이 없는데 가발을 쓴 것도 우리가 익히 아는 여성 정치인의 머리 기본값이 대부분 '짧은 머리'라는 데서 착안한 것이다. 장 감독은 헤어 스타일의 힌트는 미국 대선에 출마한 바 있는 힐러리 클린턴에게 얻었다고 귀띔했다. 주상숙은 신뢰감 가진 이미지를 위해 가발을 쓰고, 거짓말을 못하게 되면서 가발도 시원하게 벗어버린다. 장 감독은 "(주인공이) 남자라면 다른 표현이었을 거다. 여자가 가진 디테일에서 표현방식을 찾아낸 것"이라고 말했다.

    거대 보험사의 횡포에 맞서 소송을 진행하고 '서민의 일꾼'을 자처하며 초선 생활을 시작한 주상숙은 재선, 3선을 하면서 적당히 낡고 닳은 정치인이 되었다. 거짓말을 못하게 되고 나서야 잊고 지냈던 자신을 돌아본다. 주상숙의 부패와 위선을 가장 따끔하게 지적했던 신지선도 다선 의원이 되자 달라진다. 머리 스타일도 '기성 정치인'의 모습과 같았고, TV 프로그램에서 어떤 일이 잘되면 그 후보와 술 한잔해야겠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신지선 역의 조수향이 극 후반부에 쓰고 나온 라미란이 초반에 쓴 바로 그 가발이었다고. 장 감독은 "(영화를 보면) 장덕준(오만석 분)을 제외하고는 조금씩 치우쳐져 있지 않나. 장덕준이 (신지선에게) '머리도 참 잘 어울리시고요' 하는데, 전 우리가 정치인들에게 지속적으로 관심 가지고 지켜봐야 한다는 걸 말하고 싶었다"라며 "(주상숙도) 비례대표 시절엔 국민 사이다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어느 순간 변질됐다. 교묘한 거짓말에 속은 것도 있지만, 우리도 어느 정도 감시자 역할을 놓친 게 있다는 걸 짚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시사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장덕준 캐릭터의 이름에도 비밀이 있다. 동포의 학살 참극을 알리려다가 일제에 암살당한 동명의 순직 기자 이름에서 따왔다. 장 감독은 "일제 시대 때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다가 최초로 순국한 기자님이다. 그걸 신문기사로 읽고 언론의 중도를 지켜가는 캐릭터를 만들 때 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라고 덧붙였다. <계속>

    장유정 감독이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 앞서 진행한 포토 타임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