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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MC 내세웠던 '거리의 만찬'에 벌어진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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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MC 내세웠던 '거리의 만찬'에 벌어진 일

    배우 신현준-방송인 김용민 새 MC 발탁, 16일부터 시작
    시사 현안에 중심에 선 당사자들을 거리에서 만나는 '여성 MC' 역할 컸던 프로그램
    KBS 청원 사이트에 현 MC 교체 반대 청원 올라와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시청자가 공감한 취지에 역행" 비판 제기

    오는 16일 방송부터 MC가 바뀌고 시즌 2를 방송하는 KBS2 '거리의 만찬'. 현재 MC는 양희은, 박미선, 이지혜다. (사진='거리의 만찬' 공식 페이스북)

     

    MC 전원이 여성이었던 KBS2 시사 토크쇼 '거리의 만찬'이 시즌 2부터 여성 MC 없이 간다. 오는 16일부터 배우 신현준과 방송인 김용민이 새롭게 진행한다. 프로그램이 추구하고 시청자가 공감한 취지에 역행하는 결정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거리의 만찬' 공식 페이스북에는 16일부터 MC가 바뀐다는 내용의 게시물이 올라왔다. 두 남성의 얼굴은 물음표와 흐림 처리가 되어 있었다. 이후, KBS는 4일 오전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거리의 만찬' 시즌 2 기자간담회에 신현준, 김용민과 제작진이 참석한다는 점을 공지했고, 두 사람이 새 MC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거리의 만찬'은 2018년 7월 파일럿으로 처음 선보인 방송이다. 파일럿 MC는 방송인 박미선, 이정미 정의당 대표, 김지윤 정치학 박사였다. 그해 11월 시작한 정규방송에서는 이정미 대표가 빠지고 MBC 아나운서 출신 방송인 김소영이 합류해 세 명의 여성 MC로 프로그램을 이어나갔다. 최근까지는 박미선과 가수 양희은, 이지혜가 호흡을 맞췄다.

    복수의 MC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은 '거리의 만찬'이 초기부터 주목받았던 시청 포인트이자 이 프로그램의 핵심 정체성이었다. '거리의 만찬' 공식 홈페이지에는 "뉴스로만 만족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진짜 세상을 못 보고 있는 당신에게, 그리고 가벼운 시사 예능에 지친 당신에게 권하는 디저트! 세 명의 여성 MC가 이슈 현장에 찾아가 진짜 이야기를 듣는다. 할 말 있는 당신과 거리의 만찬"이라는 기획의도가 나타나 있다.

    파일럿 1회 방송을 연출한 이승문 PD는 당시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시사나 정치 프로그램엔 대부분 남성 출연자들이 나온다. 일단 그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던 게 있었다. 그렇게 상상해 보니, 남성 출연자가 어떤 현장에 갔을 때와 매우 다른 시선이나 느낌이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라고 섭외 배경을 밝힌 바 있다.

    MC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KTX 해고 여성 승무원들의 천막이었다. 정규방송에서도 임신 중단, 맘카페, 스쿨 미투(#Me_Too, '나도 말한다'는 뜻으로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경험을 밝히는 것), 고(故) 장자연 사건 등 젠더 이슈가 적극적으로 다뤄졌다. 이밖에 두발 자유화, 제주 4·3, 개인에게 맡겨진 간병 문제, 소아완화의료, 노동환경 안전사고, 가스 검침원의 위험한 노동환경, 을지로 개발, 공익제보자들의 사연이 전파를 탔다.

    시청자들은 "수신료가 아깝지 않다"라며 호평했고, '거리의 만찬'은 제21회 이달의 PD상, 2018년 11월 한국YWCA연합회가 뽑은 좋은 프로그램상 성평등 부문, 2018년 12월 양성평등 미디어상 우수상, 2019년 3월 민언련이 선정한 좋은 프로그램상 등 상을 다수 받기도 했다.

    '거리의 만찬'은 그동안 충분히 마이크가 쥐어지지 않았던 이들의 목소리를, 세 명의 여성 MC가 직접 듣는다는 점에서 차별화된 프로그램이었다.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미디어에 의한 성차별 실태조사'(2017년 진행)에 따르면, 시사 토크 프로그램에서 남녀 진행자 비율이 9대1이었고, 여성 출연자는 10.6%에 불과했다. 이런 배경 때문에 시사 토크쇼 '거리의 만찬' MC 전원이 여성이라는 점은 '뉴스'가 될 수 있었다.

    (사진=KBS 시청자권익센터 홈페이지 캡처)

     

    하지만 시즌 2부터 여성 MC 없이 간다는 소식이 알려지고 나서, 온라인에서는 비판 여론이 나오고 있다. KBS 시청자권익센터에는 ['거리의 만찬' MC 바꾸지 말아 주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왔고, 이 청원은 올라온 지 이틀 만에 6200명 넘는 동의를 얻었다.

    손희정 문화평론가는 "'거리의 만찬'이 시작할 때, 박미선이라는 진행자의 상징성이 있었다고 생각하고, 여성 MC들을 중심으로 여성 이슈를 다뤄보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본다. 파일럿 첫 방송의 KTX 여성 승무원 투쟁을 시작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많은 가스 검침원, 스쿨 미투 등 여성 이슈를 비롯해 소수자 이슈에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다뤄온 시사교양 프로그램이어서 의미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꼭 여성 MC가 있어서 만이라기보다는, 소수자 이슈를 다룰 때 누구를 진행자의 얼굴로 할 것인지가 중요한 부분인데, ('거리의 만찬'은) 형식과 내용을 맞췄기에 훌륭한 기획이었다"라며 "초기 기획의도와 달라지는 부분이 있더라도 여성 MC를 간판으로 하는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전원 남성으로 바꾸는 것은 좀 이상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이번 결정이 프로그램의 취지와 쌓아 올린 가치를 훼손하는 '역행'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오수경 대중문화 칼럼니스트는 "여성 진행자가 만들어 낸 성과가 있다. 소외되었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함께 생각할 주제의 지평을 넓혔다. 그런 가치를 잘 구현하고 있던 여성 진행자들을 굳이 교체해 남성 진행자를 세우는 건, 그동안 프로그램이 추구했고 시청자들이 공감했던 취지에 역행한다"라고 비판했다.

    오 칼럼니스트는 이날 오전 페이스북에도 '거리의 만찬'과 '뜨거운 사이다', '까칠남녀' 등은 "그동안 고민과 성찰 없이 '보여주는 대로' 보던 세계에서 다음 세계로 진보할 수 있도록 시야를 넓혀 주었고, 담론의 지형, 토론의 쟁점을 바꾸었다.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몸'으로 소비되던 여성들이 '말'하는 주체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고, 이 프로그램들이 다루는 주제는 남성 중심의 주류 사회가 그동안 보여주지 않았던 주제였다"라며 "'퇴행'할 것을 단단하게 결심한 게 아니라면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들을 바꾸기 전에 이 프로그램이 어떤 사회적 가치를 만들어냈는지 알아야 한다"라고 썼다.

    권순택 언론개혁시민연대 활동가는 "시청자들은 여성 MC들이 제 역할을 충분히 잘 해줬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거리의 만찬' MC를 바꾸지 말라는 청원까지 올라왔다고 본다"라며 "'정치 시사를 아저씨들의 전유물'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MC 전원을 남성으로 교체하는 것은 '거리의 만찬'에 애정을 보냈던 시청자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이라고 말했다.

    방송인 김용민이 보여온 언행을 근거로 '거리의 만찬'에 부적합하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손 평론가는 "김용민 씨는 과거 여성혐오 발언을 한 것에 그치지 않고,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페미니즘 운동이 잘못됐다고 이야기하는 스피커를 불러 방송을 만들어 '안티 페미니즘 운동'을 하는 인물"이라며 "그를 KBS에서 가장 진보적인 사안을 다뤘던 프로그램의 사회자로 앉히는 것은 명백한 퇴행이고, 애초 프로그램 취지와도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권 활동가도 "김용민 씨는 지속해서 여성혐오 발언으로 논란을 빚었던 인물이고, 피해자가 명백히 있는데도 불구하고 클럽 '버닝썬'의 화제성만을 가져와 '버닝선대인'이라는 코너명을 지어 물의를 일으켰다"라며 "'시사가 중년 남성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은 문제이며 바꿔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가졌던 프로그램의 진행자로 적합하지 않다"라고 밝혔다.

    KBS 측은 이 같은 반발 여론을 인지하고 있다고 밝혔다. KBS 관계자는 5일 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기자간담회를 12일에 열 예정이고 거기서 제작진의 입장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취재진 질의에 답변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KBS2 시사 토크 쇼 '거리의 만찬'에서 다뤄온 주제들. 위쪽부터 임신 중단, 엄마들, 공익제보자들(사진은 서지현 검사), 스쿨 미투 (사진='거리의 만찬' 예고편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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