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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설에도…" 기약 없는 이산가족 눈물만



사회 일반

    "이번 설에도…" 기약 없는 이산가족 눈물만

    이번 설도 넘긴 상봉…이제 '5만3천 명' 남은 이산가족
    정부, 개별관광 통해 이산가족 고향 방문 추진…북 호응 있어야

    "고향에 잠시 갔다만 와도 좋겠어요. 멀리서라도 '저게 내 집이었지…, 저 길로 학교 다녔지….' 그렇게라도 봤으면 좋겠어요."

    이산가족인 이보숙 할머니(85)는 화목했던 어린 시절만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서러운 소녀처럼 눈가가 불거졌다. (사진=윤철원기자)

     

    평안남도 대동군이 고향인 이보숙 할머니(85). 고향을 그리던 오빠는 지난해 세상을 떠났다. 88세였다. 고향땅을 밟을 거란 할머니의 자신감도 하루하루 떨어져만 가고 있다.

    "저 역시도 그럴 거 같아요. 팔십이 넘었으니까. (이산가족 상봉) 신청은 해놨는데, 만날 기회가 없을 거 같아."

    1951년 1.4후퇴 당시, 엄마 아빠는 작은아버지와 사촌동생 그리고 오빠를 먼저 남쪽으로 내려보내며 "남자들 밥 좀 챙겨주라"며 이 할머니를 함께 달려 보냈다. 그러면서 3일 뒤 서울 남대문에서 만나자고 약속했다.

    만나기로 한 날부터 나흘 밤낮을 꼬박 기다렸다. 남대문에 붙은 광고지란 광고지는 모두 찾아 헤맸다. 그때 나이 열여섯, 이 할머니는 그렇게 부모님, 동생들과 두 번 다시는 못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사진 같은 건 생각도 못했어요. 남대문에 가면 만날 수 있을 줄만 알았죠. 3~4년 뒤에 북에서 내려온 사람들한테 수소문 끝에 내려오시지 못했다고 들었어요."

    북에 남은 가족들에 대한 마지막 소식이었다.

    70년이 지나 열여섯 소녀는 여든을 훌쩍 넘긴 노파가 됐다. 하지만 멀리 학교에서 돌아오는 딸을 자전거를 타고 마중 나오던 아빠의 뒷모습, 벌거벗고 냇가에서 물장구치며 고기잡이를 하던 기억까지, 화목했던 어린 시절만 떠올리면 금방이라도 엄마 아빠를 잃어버린 서러운 소녀처럼 눈가가 붉게 물들었다.

    "명절 때, 설날 같은 때, 제일 보고 싶어요. 한복으로 까치저고리 해서 입혀주시고, 예쁜 옷 입고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세배하고 맛있는 거 먹고, 부모님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던 거 같아요."

    ◇ 이번 설도 넘긴 상봉…이제 '5만3천 명' 남은 이산가족

    사실 명절 때면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성사되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이번 설은 그럴 수 없게 됐다.

    4.27 판문점 선언에 이어 9.19 평양 공동선언 등 남북 정상간 합의에서 이산가족 문제는 단 한 번도 빠지지 않았다. 그렇게 2018년 8월, 3년 만에 상봉이 재개됐고, 남북은 추가 상봉을 위한 회담도 약속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하노이 회담 이후 북미관계가 경색됐고, 남북간 대화는 단절됐다.

    남북 관계가 꼬일수록 초조한 건 이산가족들이다. 대부분이 고령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에만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3천여 명이 이산의 한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23일 통일부와 대한적십자사에 따르면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1988년부터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 가운데 3,147명이 지난 1월부터 11월 사이에 별세했다.

    재작년에는 3,795명이, 지난해에는 4,914명이 그리던 가족을 만나지 못한 채 눈을 감아야 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으로 대한적십자사에 등록된 이산가족 상봉 신청자는 모두 13만3,365명으로 이 가운데 생존자는 약 40%인 5만2,997명으로 조사됐다.

    문재인 정부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대북제재를 피할 수 있는 북한 개별 관광을 검토하고 있고, 특히 이산가족 개별 관광을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다.

    이산가족들은 단체 상봉이 아닌 개별 관광을 통한 방문이라도 허락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어려서 생모와 헤어져 얼굴조차 모른다는 이산가족 김명희씨(72·여)는 "'이정옥'이라는 이름 석자와 출신학교를 아는 게 전부"라며 "하지만 학교에 가면 자취를 밟아 볼 수 있지 않을까. 갈수만 있다면 꼭 찾고 싶다. 어머니를 만나고 싶고, 어머니가 살던 집을 보고 싶고, 돌아가셨다면 무덤이라도 보고 싶다"고 말했다.

    문제는 북한이다. 정부는 북한이 호응해주길 기대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북한이 당국간 대화를 거부하고 있어 개별 관광의 실현 가능성은 미지수다.

    통일부 관계자는 "정부로서도 이산가족 문제를 가장 긴급하고 꼭 필요한 사안이라는 점은 분명하게 인지하고 있다"며 "대북 제재를 피해 개별 관광으로 이산가족들이 고향을 방문할 수 있는 방안을 구상하고 있지만 아직 확정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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