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전체메뉴보기

이하늬 "결과를 되게 지향하며 살던 때가 있었죠"



영화

    이하늬 "결과를 되게 지향하며 살던 때가 있었죠"

    [노컷 인터뷰] 영화 '블랙머니' 김나리 역 이하늬 ②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블랙머니' 김나리 역을 맡은 배우 이하늬를 만났다.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 영화 '블랙머니' 내용이 나옵니다.

    억울하게 누명을 쓴 검사 양민혁(조진웅 분)은 스스로 무죄임을 입증하겠다며 수사에 나선다. 막상 뚜껑을 열어 보니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거론되는 복잡하고 교묘한 경제 범죄였고, 부장검사(조한철 분)의 경고에도 포기하지 않고 사건의 실체에 다가간다. 이 과정이 모두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지는 않는다. 척하면 척 찰떡궁합인 장 수사관(강신일 분)과의 협공으로 불법 도청을 하는가 하면, 동료 검사 최프로(허성태 분)의 사무실에서 핵심 문건을 습득한다.

    선(善)을 위해서라면 그 과정에서 벌어지는 불법은 눈감고 간다는 의미로 보일 수 있는 대목이다. 양민혁은 검사고, 김나리도 국제통상 변호사로 둘 다 법조인이라는 점을 상기하면 더욱 위험한 설정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떠오르기 마련이다. 지난 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하늬는 바로 그 부분이 "우리 사회를 반영해서 좀 슬픈 부분"이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본인 역시 과정보다는 결과를 지향하며 살았던 때가 있었다고 털어놨다. 물론 그 당시에도 과정이 옳지 않았을 때 스스로 돌아오는 아픔이 컸다고 전했다. 이제는 과정도 결과도 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강하게 한다는 이하늬와 나눈 이야기를 옮긴다.

    ▶ 영화 안에서 양민혁과 김나리는 정의를 위해서는 불법까지 감행한다는 태도가 꽤 자주 노출된다.

    양민혁과 김나리가 사실 결에 붙는다고 느끼는 게 그런 부분일 것 같다. 우리 사회를 반영해서 좀 슬픈 부분이랄까. (양민혁은) '내가 밝히고 볼게' 하는 결과론적인 사람인데 (관객들은) 노말한 사람이지 위험하다고 느끼지 않는다. 심지어 법조인인데도. 실제로 검사, 변호사가 선(善)을 위해서 그렇게 불법을 감행하는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행하는 캐릭터를 보면서 '아, 그래. 납득이 가'라고 하는 것조차 정의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 편법을 용납하고 수용한다는 부분이 확실히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양민혁 역을 조진웅 배우가 굉장히 고민 많이 하셨을 거라고 본다. 김나리도 그런 부분이 어느 정도 있어서 저도 고민됐다. 특히 그런 불법을 행하는 양민혁에게 뭐라고 하지 않나. '불법 도청하셨군요? 그래서 막프로구나'라고 하고, 중간에 '불법이면 난 이거 용납 못 해요' 한다.

    그때 그런 생각을 했다. 다들 대한민국이 선진국이 되길 바라지 않나. 그럼 우선 나부터 선진 개인인가, 하고 물어야 하는데 남에게 먼저 '너는 선진 개인이 아니야'라고만 하는 것 같다. 그러기 전에 화살표를 내게 돌려서 '나는 이럴 때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가' 반추해야 한다고 본다. 누군가를 편 가르고 손가락질할 게 아니라 나부터 자의식을 가질 때가 아닐까. 저도 연기하면서 몇 개월 동안 그 생각 때문에 되게 힘들었다. '단순 매각하는 건 억울하다' 하는 일차적인 감정뿐 아니라, 내가 만약 김나리였다면 선을 위해서 중간 과정이 악이어도 할 수밖에 없었을까 고민하느라. 그런 시스템 안에서 정의를 외치는 게 가능한지, 또 의미가 있는지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질문이 나오길 바란다.

    이하늬는 '블랙머니'로 배우 조진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과정과 결과에 대해 본인의 태도는 어떤 것 같은지.

    어떤 때는 결과를 되게 지향하면서 살았던 제가 있었던 것 같다. 과정이 옳지 않았을 땐 항상 아팠고. 웬만하면 과정도 선하고 결과도 선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요즘이다. 옛날에는 공공연하게 그런 얘기를 했다. '얘(상대)를 잡아먹는 연기를 해야 한다'고. 그런 말 자체가 구시대적인 말이라고 생각한다. 저는 배우이니까 현장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베스트는, (상대가) 선배가 될 수도 있고 후배가 될 수 있지만 최대한 그 사람의 에너지를 가장 좋게 하도록 제가 도와주는 거다. 그 사람도 내가 할 수 있는 좋은 걸 하도록 좋은 케미를 만들어내는 거다. 예전에는 독단적으로 출중해서 뭘 해야겠단 생각이었다면, 저한테는 (그 생각을 바꾼) 너무 좋은 예가 '극한직업', '열혈사제'다. 물론 연기 훌륭히 잘하는 분들이긴 하지만, 마인드가 열려서 할 수 있었던 점도 있다. '넌 숨만 쉬어, 난 숨 잘 쉴 수 있게 도와줄게' 한 게 있었다. ('극한직업' 배우들을) '극한 형제들'이라고 부르는데 어디 다른 현장에 가서도 잊지 말자고 한다. 과정이 좋았고 결과도 좋았던 걸 잊지 말고 어디 가서도 그렇게 하자고. 배우 입장에서 그런(상대보다 잘하고 싶다는) 욕심 날 때도 있었지만, 이젠 그런 시대가 갔다고 생각한다.

    ▶ 정지영 감독의 영화가 실화 기반이고, 사회 고발적인 소재가 많아서 결말도 좀 더 어둡고 절망적일 줄 알았다. 결말은 어떻게 봤나.

    시나리오에 그렇게 쓰여 있기도 했고, 크레디트 음악도 치타 씨가 불렀다. 이게 지금까지도 계속되지 않나. 자막도 되게 세다. (이 사건과 관련해) 단 한 명도 구속되지 않았다는 것. 승리의 역사라기보다는 마음 아픈 역사인데 '아직도 고발 중이에요. 우리가 고발할 수 있어요'라는 메시지가 있었던 것 같다. 그 기운이 관객분들한테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엔딩 장면이 많이 살았다. 조진웅 배우님이 너무 혼신의 연기를 해 주셔서. 배우에 따라서 연기 톤이 달라지지 않나. 텍스트로 봤을 때보다 감히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던 것 같다. 막 뱉어내는 것 같지만, 양민혁이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감정이 비집고 나와서 그 선언이 더 묵직하게 울리지 않았나. 그게 결국 이 영화가 가진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불법이 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고 생각할지라도 고발해야 한다. 우리 모두 그래야 한다' 2011년에 이미 그런 일이 있었지만 재판이 내년에 있다. 국가와 기업 간 소송에서 국가가 패소할 확률이 99%라고 한다. 지는 게임이다. 5조 원을 물어줘야 한다는데 그걸 누구 돈으로 물 것인가부터가… 이게 사장될 수 있는 얘기인데, 사장되면 안 되는 얘기인 건 확실한 것 같다.

    ▶ 다양한 선택을 하는 인물이 있는데 가장 얄미운 캐릭터를 하나 꼽자면. 부장검사(조한철 분) 활약이 눈에 띄더라.

    맞다. 부장검사 좀 그렇다. (웃음) 약 먹으면서 일하다가 이광주 전 총리(이경영 분)랑 그렇게 악수하는 장면은 진짜 시나리오만 봐도 어이없더라. 그 뒤에 있는 한자가 공명정대이지 않나. 영화적으로 각색된 부분이고 영화인 걸 알지만, 조한철 형님이 연기 너무 잘하셔서. (웃음) 시사 때 배우님 만나서 한 대 때렸다. 서로가 서로를. (웃음)

    이하늬는 정지영 감독을 "살아있는 거장"이라고 표현했다. 수평적으로 의견을 나눌 수 있게 분위기를 만들어 주었고, 지혜로운 친구와 함께 이야기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사진=질라라비, 아우라픽처스 제공)

     

    ▶ 영화에서 아끼는 장면이나 대사가 있다면.

    정말 이 영화의 메시지이자 백미는 마지막 양민혁의 선언인 것 같다. 형법 234조(1항 "누구든지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할 수 있다", 2항 "공무원은 그 직무를 행함에 있어 범죄가 있다고 사료하는 때에는 고발하여야 한다")를 알면서 사는 사람이 누가 있겠나. (영화를 보면) 우리가 그런 권리와 의무가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고발할 수 있고, 고발해야 한다는 정언명령 같은 그런 선언이 되게 용기를 준다. 어떤 부분에서는 그 권리를 지금 알아서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선언문 하나에 되게 복합적인 감정이 들었다. 지금은 모두 억울하고 화나는 부분이 있는 것 같다. 표피적인 것 말고 아주 근본적인 것, 본격적인 이슈에 대해 좀 생각하고 얘기할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그 장면은 조진웅 배우님 인생 씬이지 않을까 싶다. (웃음)

    ▶ 이전에 작품에서 만났을 것 같은데 의외로 조진웅과 연기해 본 적이 없었다. 현장에서 보니 어땠나.

    조진웅 선배 같은 경우는 '인생에 배우 이거 하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정말 절실하다. 너무 절실하고, 이 열정과 절실함을 어쩔 거냐 할 정도로. (웃음) 정말 열심히 하는 그 모습이 진짜 후배로서는… 이제는 여유 있게 할 법도 할 텐데 어쩜 저렇게 열심일까, 어떻게 저렇게 지치지 않고 하실까 되게 신기하기도 했다. 매 씬 허투루 하는 게 없었다. 지나가는 씬 없이 하시는 걸 보고 참 대단하다, 정말 대단한 배우구나 싶었다. (웃음)

    ▶ 정지영 감독과 처음 작업해 봤는데 어땠나.

    사실 아티스트의 인사이드는 했던 작품들을 보면 알 수 있을 거 같다. 그래도 사람 만날 때는 단정 지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 사람으로 보려고 한다. 현장에서의 감독님은 친구 같았다. 너무 스스럼없었다. 서로 선을 지키지 못했던 경우가 아니라, 제 생각을 스스럼 없이 얘기할 수 있었다는 거다. 동년배여도 감독님이라는 위치가 있어서 디렉션 주고받을 때 수직적으로 되기도 하는데, 너무 수평적으로 해 주셨다. 그건 아랫사람이 잘해서라기보다 윗사람이 얼마나 편하게 해 주는가에 달린 것 같다. 윗사람이 너무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무드를 만들어 주니까.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김나리는 어떨 것 같아?" 하고 종종 물어보셨다. (웃음) 제가 말하면 '그럼 그렇게 하죠!' 이렇게 얘기해주시고. 되게 간단명료하고 정말 알아들을 수 있었다. 정말 당당한 여자라고 워드로 얘기해주신다. 조진웅 선배랑 만난 첫 씬이 (양민혁이) 손목 잡으면 '성추행범이 맞네요' 하는 거였는데 "더 당당하게 했으면 좋겠다구!" 하셨다. (웃음) 캐릭터가 훨씬 더 풍부하고 여유 있어질 수 있도록 감독님이 적재적소에 (디렉션을) 해 주셨다.

    ▶ 다른 인터뷰에서 정지영 감독을 보고 창작자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관해 돌아보게 됐다고 했던 게 인상적이었다. 어떤 모습에 감화됐나.

    정지영 감독님은 항상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고 오신다. 디렉션하실 때도 매 테이크에 뛰어오신다. 매 테이크 그렇게 뛰어오는 감독님은 처음 봤다. 저희가 가거나 무전을 쓰시거나 하는데, 매번 뛰어오시는 정 감독님 보면서 참… 겸허해지더라. '연기 똑바로 해!'라고 하는 어떤 말보다 더 파워풀하고 더 정신 차리게 하는! (웃음) 지금이야 제가 젊지만 74세가 되어도 저분과 같은 열정과 에너지로 현장에 있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많이 했던 것 같다.

    이하늬는 올해 영화 '극한직업', 드라마 '열혈사제', 영화 '블랙머니'까지 쉴 틈 없이 관객과 시청자를 찾았다. (사진=각 제작사 제공)

     

    ▶ '블랙머니' 출연진의 경력을 합치면 400년에 이르는데, 그 많은 배우 가운데 특별히 기억에 남았던 배우가 있다면.

    이경영 선배. 이경영 선배와 하는 신이 상대적으로 많이 있기도 했다. 어떤 화려한 기법보다 그의 순수한 눈이 생각난다. 풍파를 겪으면 사람이 굳은살이 생기는데 아직도 소년의 눈이어서 너무 신기했다. 아직도 호기심 가득하고 열정 가득하고 그러면서 연기는 세상 농염하게 하신다. '아!' 진짜 몇 번을 이랬다. 진짜 대단한 연륜의 배우구나 싶었다. 현장에서 '나 대단해!' 하면서 연기하지 않고, 되게 편안하게 연기하시는데 그런 분들은 화면에서의 어떤 만듦새가 다른 것 같다. 연기할 땐 미처 보이지 않았던 디테일이 화면에서는 다 드러나는 것 같은? 되게 신기하다, 경영 선배는. 아직도 피터팬 같은 생살을 갖고 있는 게 신기하고, 어떻게 그렇게 하는지 궁금하기도 하다. 아티스트로서는 되게 매력 있으시다.

    ▶ 연기하면서 스스로 거는 주문이나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나.

    저는 그냥 호흡인 것 같다. 어떤 이미지보다는. ('블랙머니' 땐) 떠 있지 않고 밑으로 계속 내리는 호흡을 했다. 평소 제 bpm이 100이면 '극한직업', '열혈사제'는 120, 150까지 했다면 여기는 70~80 요 정도로 조절했던 것 같다.

    ▶ 요즘 들어 '하고 싶은 이야기'가 과거보다 더 온다고 했는데, 어떤 작품을 볼 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지.

    이야기, 캐릭터 둘 다인 거 같다. 진짜 저는 장르나 캐릭터를 아직 국한 지어서 할 배우는 아닌 것 같다. 더 다양한 이야기 안에서 캐릭터를 만나고 싶은 게 크다. 제가 너무 하고 싶다는 마음이 첫 번째다. 두 번째는 제가 정말 잘할 수 있는 것.

    ▶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랑받고, 특히 '여성들의 워너비'로 인식되는데 이에 대한 본인 생각이 궁금하다.

    제가 사실 그렇지도 않은데… (웃음) 그냥 제가 배우를 직업으로 받아들이면서 그렇게 된 거 같다. 배우를 해서 뭘 얻겠다는 생각보다는, 이거로 뭐가 안 되어도 된다는 것. 그냥 하루하루 현장에 나가고 연기하는 것만으로도 이건 진짜 너무 가슴 뛰고 감사한 일이란 걸 깨닫고 그렇게 살기로 노력하면서, 대중이 '쟤가 진짜 연기하고 싶구나', '진짜 열심히 하고 싶구나' 하는 걸 봐주신 것 같다. '열심히 사네?' 이런 느낌이지 않을까. (웃음) <끝>

    배우 이하늬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제공)

     

    이 시각 주요뉴스


    Daum에서 노컷뉴스를 만나보세요!

    오늘의 기자

    많이 본 뉴스

    실시간 댓글

    투데이 핫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