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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니나 내나', 일방적 배려보단 대화가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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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뷰] '니나 내나', 일방적 배려보단 대화가 필요해

    [노컷 리뷰]

    왼쪽부터 '니나 내나' 삼 남매의 둘째 경환 역 태인호, 첫째 미정의 딸 규림 역 김진영, 첫째 미정 역 장혜진, 막내 재윤 역 이가섭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 영화 '니나 내나'의 내용이 나옵니다.

    '가족이니까' 더 따뜻하게 보듬고 챙길 수 있지만, '가족이라서' 숨길 수밖에 없는 부분도 있다. 도대체 '가족'이 뭐길래 사람들은 그 이름 안에서 투닥거리고 목소리 높이다가도 찡해지고 눈물을 훔칠까.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니나 내나'(감독 이동은)는 저마다 그 무게를 버거워하지만 좀처럼 티 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하는 삼 남매를 통해 '가족'을 들여다본다.

    첫째 미정(장혜진 분)은 온통 가족 생각뿐이다. 어릴 적 집 나간 엄마 경숙(김미경 분) 대신 엄마 노릇을 해 왔기 때문인지, '우리 가족이 잘되는 것' 하나에만 집착한다. 그렇게 들인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다. 절에도 가 보고 무당도 찾았지만 무릎을 탁 칠 만한 답이 나오는 건 아니다. 거기다 원래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성정이 아니다 보니, 가족을 두루 살피는 엄마 겸 큰누나라는 위치가 영 맞지 않는다.

    둘째 경환(태인호 분)은 처음에는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인 듯 그려지지만, 웬만해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어떤 일이 벌어져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묵묵한 인물이다. 삼 남매 중 가장 맏이 같은 모습인데, 아내 상희(이상희 분)가 오해할 만한 일을 해서 약간은 눈치를 보며 지내는 중이다. 그러나 본심은 엉겁결에 튀어나오는 법. 그는 괴팍한 제 아버지처럼 살지 않으려고 애쓴다.

    막내 재윤(이가섭 분)은 이들 중 가장 자주, 일상적으로 가시를 세운다. 잠시만 연락이 안 되어도 집으로 찾아오는 큰누나 미정을 대할 때 특히 그렇다. 두 사람의 대화는 영화 초반부터 후반까지 꽤 자주 어긋나며 삐걱거린다. 가족이니까 더 살갑게 한 몸처럼 지내야 한다고 믿는 미정과 정반대에 선 재윤은, 가족이기 때문에 말 못 하는 게 있다고 말한다.

    '니나 내나'는 너무 보고 싶다는 엄마의 편지 한 통에 삼 남매가 파주로 떠나는 로드 무비다. 꼼짝없이 한 공간에 있으면서 이들은 같이 시간을 보내고 한 마디라도 더 이야기를 나눈다. 미정의 딸 규림(김진영 분)도 함께. 그러나 엄마는 이미 병세가 악화돼 세상을 떠났고, 삼 남매는 장례식장에서야 엄마를 마주한다.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엄마가 이미 저세상 사람이 된 상황, 술까지 마셨겠다 미정은 응어리를 끄집어낸다. 뭐든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미정에게, 재윤은 가족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챙기라고 하고 자신은 게이라고 밝힌다. "지금까지 쭉 그래왔"지만 "어찌나 관심들이 없던지"라며.

    서로를 생각하는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제대로 표현하는 방법을 몰라서 상처 주는 방식으로 뱉어왔던 미정과 재윤, 그 사이에서 별달리 자기 말을 해 오지 않았던 경환은 그제야 속내를 나눈다. 삼 남매의 긴장과 갈등이 최고조에 오른 장례식장에서의 폭발 장면에서 오히려 카타르시스를 느낀 이유다.

    영화 '니나 내나'는 미정-경환-재윤 삼 남매를 통해 '가족이니까', '가족이라서'라는 말의 진의가 무엇인지 들여다본다.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상대가 어떻게 느끼는지 상관없이 '내 식대로' 하는 일방적 배려보다는,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이 닫힌 마음을 더 열고 관계를 건강하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발견했다. 연락의 빈도, 마음 쓰는 방식의 적정한 수준이 사람마다 다른데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더 무심했다면, '엄마 만나러 가는 여행' 이후 세 사람은 조금씩 달라지지 않았을까.

    전작 '기생충'에서 입이 걸고 생활력 강하며 다소 뻔뻔하기까지 한 충숙 역으로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장혜진은, 눈치가 부족해 약간의 답답함을 불러오지만 한편으로 귀여움과 짠함이 느껴지는 미정으로 완벽하게 변신했다. 평소 차갑거나 의뭉스러운 전문직 역할을 자주 연기한 태인호는 아기 낳는 아내 곁을 지키지 못한 미안함에 엉엉 눈물을 흘리는 경환의 얼굴 역시 너무나 잘 소화한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가섭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동년배로서 가장 공감할 만한 대사를 줄줄 말했던 재윤과 썩 잘 어울렸다. 신경질적인 예민함과, 내심 가족을 생각하는 김첨지 같은 구석을 동시에 지닌. '당신의 부탁'에서도 평범한 대사로 웃음을 자아내는 마법을 부린 이상희는, '니나 내나'에서도 웃음을 전하면서 중간중간 숨 쉴 구멍을 만들어냈다. 사무치는 원통함, 딸에 대한 미안함, 황홀경에 가까운 춤사위 등 폭넓은 연기를 선보인 경숙 역의 김미경도 눈에 띈다. '배심원들' 양춘옥 역의 그 배우였다는 걸 뒤늦게 알고 적잖이 놀랐다.

    '환절기', '당신의 부탁'에 이어 '니나 내나'까지 가족 이야기를 다루면서도 결이 달라 작품마다 새로운 느낌이 있다. 이 사회나 미디어가, 혹은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강조했던 '정상가족'의 신화는 이동은 감독 작품에서 굳이 되풀이되지 않는다. 다만 '이런 가족도 있을 수 있지' 싶은 변주가 빠지지 않는다. 그 속에서 관객은 더 다양한 가족의 형태를 상상할 수 있다.

    '이건 영화 속 명대사야!' 하는 작위적인 힘주기가 없지만, 영화 속 대사 역시 왠지 허투루 지나치기 쉽지 않다. 미정이 일하는 웨딩 홀의 사정, 돈을 주면 누군가는 위험한 일을 한다는 것, 사람들이 책 자체를 읽지 않는다는 근심, 내가 내 생각을 해야 한다는 주장, 우리 아버지처럼 안 살려고 노력했다는 흐느낌… 이 사회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에게 남은 흔적 같은 대화들이 잘 잊히지 않았다.

    늦가을의 쓸쓸함과 한적함, 포근함이 잘 녹아있는 영화다. 새삼 내 '가족'을 돌아보게 하며. 한국사회를 뒤흔들었던 참사가 일어난 2014년 쓰여진 이 작품에는 세월호를 떠올리게 하는 애도의 표시들이 드러나 있기도 하다.

    10월 30일 개봉, 상영시간 102분 53초, 12세 이상 관람가, 한국, 드라마.

    지난달 30일 개봉한 영화 '니나 내나'는 '환절기', '당신의 부탁'을 연출한 이동은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이다. 세 작품 모두 부산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는 기록을 썼다. (사진=명필름, 로랜드 스튜디오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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