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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돼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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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우리를 슬프게 하는 돼지들

    [조중의 칼럼]

    (사진=연합뉴스)

     

    "정원 한편 구석에서 발견된 작은 새의 시체 위에 초추(初秋)의 양광(陽光)이 떨어져 있을 때, 대체로 가을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안톤 시나크(Anton Schnack)는 산문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에서 초가을 햇빛에 드러난 작은 새의 죽음을 애도한다. 푸른 지구 행성에서 아직 낭만을 느낄 수 있던 1940년대 이야기다.

    그로부터 70여년의 세월이 흐른 2007년 1월 어느 날, 초원 위를 날던 새들이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며칠 사이 수천 마리의 각종 새들이 추락해 죽었다. 호주 서부지역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새들이 죽은 원인은 아무도 모른다.

    지난 20일 북아메리카에 서식하는 새의 개체수가 1970년 대비 29%나 줄었다는 논문이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50여 년 사이 30억 마리의 새가 사라진 것이다. 이 연구를 이끈 코넬대 조류연구소 과학자 켄 로젠버그는 "재앙이 임박했다"고 말했다.

    지난 8월에는 700살 된 빙하 장례식이 아이슬란드에서 열렸다. 사라진 빙하는 아이슬란드의 수도 레이캬비크 북동쪽에 있는 오크 화산을 700여 년 간 덮고 있었던 오크빙하였다. 수백 년 끄떡없던 북극 얼음이 녹아내린 것이다.

    죽거나 사라지는 것은 새와 빙하뿐이 아니다. 인류에게 최고이자 최대의 고기식량을 제공해주는 돼지가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무더기로 땅에 묻히고 있다. 이 돼지열병은 유럽과 중국 그리고 북한을 거쳐 우리에게까지 다가왔다. 전염되면 100% 사망에 이르는 치명적인 전염병이다.

    문정훈 서울대 교수는 "아프리카돼지열병 확산을 빨리 막지 못하면 한반도에서 돼지가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북한 평안도 지역은 이미 돼지가 전멸했다. 중국에서는 돼지고기를 사려는 시민들이 몰려들면서 마트가 아수라장이 됐다. 어느 날 지구상에서 종적을 감춘 공룡처럼 돼지 역시 자료사진과 영상으로만 볼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인간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공포의 에볼라 바이러스가 아프리카에서 다시 창궐하고 있다. 2014년 에볼라로 사망한 사람은 1만1300여 명. 치명적인 바이러스 전염병은 에볼라 말고도 다양하다. 지카바이러스, 메르스, 조류독감 등이 인류를 넘보고 있다. 언제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가 나타나 인류를 멸망시킬지도 모른다. 지구 행성에 '바이러스 대공황'이 닥칠 날도 멀지 않았다는 경고다.

    세계기상기구(WMO)는 지난 22일 "최근 5년이 인류 역사상 가장 더웠고 이산화탄소 농도도 가장 높았다"는 분석을 내놨다. 이 상태로 기후변화가 계속된다면 전 지구적으로 돌이킬 수 없는 심각한 재앙이 초래된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지구의 재앙은 온난화에 따른 동식물의 멸종과 북극과 남극의 빙산이 사라지는 것과 지금껏 겪어보지 못한 폭염과 초강력 태풍과 치명적인 신종 바이러스에 가축과 인간이 속절없이 죽어가는 것까지 다 포함된다. 기후변화와 전염병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세계보건기구(WTO)도 지난 18일 세계준비감시위원회(GPMB) 보고서를 통해 "오랫동안 우리는 전염병의 사이클을 방치해왔다"면서 "세계는 전염병이 닥칠 상황에 준비되지 않았다"고 경고했다.

    무시무시한 공포가 다가오고 있는데도 정치인들은 '기후위기 비상행동'에 관심조차 없다. 국내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지금 당장 기후변화를 막기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한다는 시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정치인들은 공정과 정의라는 형이상학적인 좌우 진영싸움으로 날밤을 샌다. 시민과 언론과 SNS까지 내전을 방불케 할 만큼 싸운다.

    그들은 기후변화에 따른 지구 행성의 위기와 눈에 띄게 나타나는 재앙의 모습들에 무감각하다. 자신들이 뜨거워지는 주전자 속의 개구리 신세인줄 모른다. 달아오르는 주전자 속에서 권력과 이념에 매몰돼 서로 치고 박다가 어느 날 물이 끓기 시작하는 것을 알고는 비로소 합심해 탈출하려 할 때는 이미 늦었다.

    "당신들은 빈말로 내 어린 시절과 내 꿈을 앗아갔다" 24일 열린 유엔본부 기후행동 정상회의에서 16살의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가 트럼프를 비롯해 세계 각국 정상들에게 내뱉은 쓴 소리다. 우리 정치인들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당신들의 빈말이 착한 돼지를 궤멸시키고 있고 자라나는 어린 자녀들의 꿈까지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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