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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적 록밴드 통해 '북한' 문 연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



문화 일반

    문제적 록밴드 통해 '북한' 문 연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

    [노컷 인터뷰]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
    2015년, 북한에서 첫 록 밴드 공연을 성사시킨 모르텐 트라비크
    라이바흐, 나치 스타일 복장과 도발적인 공연으로 전체주의 풍자하는 록밴드
    호기심에서 시작한 북한 방문…신뢰를 바탕으로 록밴드의 평양 공연 성사 시켜
    "남북 대화 재개는 고무적…가시적인 '진짜 결과'가 나올 것인지 궁금하다"
    "北과의 관계, '인간관계'와 같아…한반도, 아티스트로서 접근할 수 있는 과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의 감독 모르텐 트라비크 (사진=EBS 제공)

     

    전체주의의 모습으로 전체주의를 풍자하는 록밴드 '라이바흐'. 어떻게 보면 가장 문제적일 수 있는 록밴드가 세계에서 가장 문제적인 나라 중 하나라 지목되는 북한에서 공연을 펼쳤다. 전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킨 라이바흐의 평양 공연 과정을 솔직하고 생생하게 담아낸 작품이 있다. 바로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원제 'Liberation Day')이다.

    ◇ 도발적으로 전체주의 풍자하는 록밴드, '북한'에서 공연하다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습니다. 북한은 방문하기 어렵고 굉장히 폐쇄적인 나라로 알려져 있었죠. 외부에서 바라볼 때 북한에 관한 뉴스는 이상하고 기이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어요. 북한이라는 나라를 직접 방문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감독 모르텐 트라비크·우기스 올테, 2016년)의 감독이자 제16회 EBS국제다큐영화제 심사위원으로 한국을 방문한 노르웨이 출신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을 마주하게 된 시작을 '호기심'이라고 말했다. 북한 평양 양각도 국제호텔 내 양복점에서 산 정장(참고: 트라비크 감독은 이를 '마오쩌둥-김일성 스타일'의 양복이라고 표현했다)을 입고 나타난 그는 시종일관 유쾌한 언어로 2015년 평양 방문을 회고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속 록밴드 라이바흐 (사진=EBS 제공)

     

    지난 23일 서울 마포구 동교동 홀리데이인 익스프레스 미팅룸에서 만난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지난 2008년 북한을 첫 방문한 이후 적어도 15번 이상 북한에 다녀왔다. 지난 2017년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남북은 물론 북미관계까지 악화되면서 교류가 중단되는 듯했다. 그러나 한반도에 평화 분위기가 다시 고조되면서 북한과의 교류도 재개됐다. 지금도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 관계자들과 이메일 등을 통해 교류를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관계가 가능했던 이유는 '신뢰'다.

    그는 "신뢰 관계를 구축한다는 것은 북한뿐 아니라 누구를 향해서도 어려운 거 같다. 국가 간에도, 인간 사이에서도 신뢰를 쌓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많은 소통과 시간을 필요로 하는 일"이라며 "북한과의 관계에 있어서 내 전략은 '정직'이라는 단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신뢰를 얻기 위해 처음부터 정직하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갔고, 그들의 주체사상을 싫어하거나 코뮤니스트(communist·공산주의를 신봉하거나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에 반대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강조했다"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추진한 것이 바로 슬로베니아 출신 록밴드 '라이바흐(Laibach)'의 평양 공연이다. 북한에서 외국 팝가수가, 그것도 록밴드가 공연한 것은 라이바흐가 최초다. 그리고 그 최초이자 전 세계를 놀라게 한 라이바흐의 공연 과정을 담아낸 것이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이다.

    슬로베니아가 옛 유고슬라비아 연방의 일부이던 1980년 결성된 라이바흐. 라이바흐는 나치 스타일 복장과 나치 독일을 연상케 하는 도발적이면서도 전위적인 공연으로 전체주의를 풍자하는 록밴드로 유명하다. 활동 초기에는 사회주의 정부에 의해 공연이 중단되거나 밴드 이름 사용을 금지당하기도 했다. 라이바흐의 독특하면서도 강렬한 표현에 대해 일각에서는 그들을 '파시스트'라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논쟁적인 방식으로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록밴드가 북한에서 공연을 방문한 것은 그 자체로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 공연에 대해 트라비크 감독은 "20살 때부터 라이바흐라는 밴드를 굉장히 좋아했다. 라이바흐를 북한으로 데려갈 수 있을 거라고 상상도 못 했다"라며 "저스틴 비버 같은 평이한 팝 음악을 북한에 선보이는 것보다 라이바흐라는 논쟁적인 밴드와 그들의 음악을 보이고 싶었다. 이것은 내게 도전과제이자 큰 의미였다. 공연을 보거나 공연을 기획하는 등 공연과 어떤 식으로도 연관된 사람이라면 죽을 때까지 이 공연을 잊지 못할 거라고 정말정말 확신한다"라고 회고했다.

    "라이바흐라는 밴드가 '파시스트'라는 헤드라인이 여기저기서 보도되자 북한 측에서는 다소 긴장했습니다. 그런 북한을 안심시키기 위해 저는 북한에 라이바흐 공연이 성사되면 세계적인 미디어의 관심과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설득했죠. 또한 라이바흐와 북한의 공연이 성공적으로 이뤄진다면 북한과의 문화적 교류가 가능하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다고 했어요. 북한에 있어서 장기적으로 중요하고 이로운 일이라고 이야기했죠."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사진=EBS 제공)

     

    ◇ 북한의 검열도 솔직하게 그려낸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공연은 추진됐지만, 공연 준비 과정은 순탄치 못했다. 북한 측의 검열에 의해 '가리라 백두산으로' 등 몇 곡은 부를 수 없게 됐고, 무대 영상에 대한 수정 요구도 들어왔다. 라이바흐의 색이 덧입혀진 편곡에 대한 불편함도 제기됐다. 영화 속에서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 측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한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북한의 요구를 너무 수용해줘서 라이바흐의 색이 사라졌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트라비크 감독은 "라이바흐를 검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북한 측에서 사용하는 권력의 언어를 적절하게 잘 사용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그는 "'라이프 이즈 라이프(Life is life)' 노래 가사를 보면 마치 김일성 주체사상에서 바로 발췌된 것 같은 내용 있다. 동시에 유머와 진지함을 담아내는 면도 있다"라며 "그리고 보컬리스트인 미나가 비틀스의 노래 '어크로스 더 유니버스(Across The Universe)'를 부르는데, '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Nothing's gonna change my world)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는 북한이 주장하는 순수성과 변하지 않고 순수함을 지키리라는 것을 대변한다"라고 말했다.

    이어 트라비크 감독은 "나는 로켓 발사를 위한 '파이널 카운트다운'도 북한과 남한 사이에 고조되는 긴장감 풍자한다고도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전 세계에 팽배하는 전체주의에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한다"라며 "예를 들어 누군가 평양에 가서 인권 유린을 비판하고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노래를 부른다고 하면, 절대 어떤 효과도 없을 거라고 본다. 반면 라이바흐처럼 권력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마치 흰개미가 땅굴을 조금씩 파나가는 것처럼 침투하는 효과적인 전략이 된다고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나는 절대로 북한 정부를 공격하거나 체제를 전복하려는 게 아니었다. 그것은 내 일이 아니라 북한 사람 또는 넓은 의미에서 한국 사람이 해결해야 하는 일이라 믿는다"라고 강조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의 감독 모르텐 트라비크 (사진=EBS 제공)

     

    북한의 검열 과정까지 고스란히 담아낸 데서 볼 수 있듯이 그가 영화를 만들면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진실'하게 담아내야 한다는 것이었다.

    트라비크 감독은 "이 영화를 북한 측 파트너에게도 보여줬는데, 피드백의 주된 내용이 정직하고 진실되며, 실제 상황을 잘 담아냈다는 것이었다. 영화인으로서 고무적인 피드백이었다"라며 "이 영화는 내가 북한의 통제 속에서 겪은 어려움을 많이 담아내고 있다. 그 이면에 인간과 인간 사이 교류와 대화, 토론을 담아내고 있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영화를 보면 알겠지만, 후반부에 나이 든 관객이 말했던 피드백이 어떻게 보면 공연의 진수라든지 내가 이루고자 했던 바를 잘 요약한 것 같다. 그가 말하길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와 종류의 음악이 있고, 이것도 그중 하나라고 말한다"라며 "사실 관객이 음악을 좋아했느냐 안 좋아했느냐 보다 북한에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이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는 게 중요하다"라고 이야기했다.

    록밴드 라이바흐의 'Tanz mit Laibach' 뮤직비디오 중 (사진=유튜브 화면캡처)

     

    ◇ 하나의 반도, 두 개의 나라…"아티스트로서 도전할 수 있는 과제 제공"

    미디어에서 이야기하는 북한은 이상하고 알 수 없는 곳이다. 그리고 위험하다. 그러나 트라비크 감독이 말하고 보여주는 북한은 미디어에서 말한 것보다 생생하다. 그가 직접 보고 듣고 겪었기 때문이다.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 외에도 트라비크 감독은 책 '반역자의 북한 안내서'(A Traitor's Guide to North Korea)와 다큐멘터리 '평양, 예술의 기술'(War of Art)(감독 토미 굴릭슨)을 통해 북한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평양, 예술의 기술'은 오는 9월 20일 개막하는 제11회 DMZ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를 통해 아시아 최초로 선보인다.

    오랜 시간 한반도를 직접 보고 겪었기에 그는 객관적이고, 동시에 솔직할 수 있다. 모르텐 트라비크 감독은 2017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달았던 남북관계가 지난해 열린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회복됐다고 봤다. 남북대화와 북미대화가 재개되는 현재 상황에 대해 그는 "굉장히 긍정적 변화로 생각한다. 양측이 대화 나눈다는 것 자체가 고무적"이라고 평가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 (사진=EBS 제공)

     

    트라비크 감독은 "반면 이런 상황 속에서 가시적인 '진짜 결과'가 나올 것인가가 궁금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사고방식을 잘 이해하고 있다. 한국전쟁 당시 가족이 북한에서 피난 내려왔다는 배경도 중요하게 작용한 것 같다"라며 "대화를 통해서 어떠한 결과가 나오는지 보고 싶다. 현재 남북한 상황이 정말로 변화를 향해 가는 과정인지, 아니면 계절처럼 지나가는 한시적인 상황인지 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변해가는 것은 단지 남북관계만이 아니다. 꾸준히 남북한을 방문하고 교류하며 긴 시간 한반도를 살펴본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 사회가 어떤 면에서는 개방적으로 변하지만, 어떤 면에서는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11년 전 평양 방문 당시를 떠올리며 "공식적이진 않지만 자본주의 시스템이 많이 도입된 것 같았다. 마치 1980년대 중국과도 같은 양상"이라며 "그러나 경제가 개방될수록 사회의 다른 면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정치·문화적 측면에서의 통제는 강화되고 있었다. 문화적인 개방의 베이스가 점점 축소되고 있는 것이 북한의 현실"이라고 말했다.

    다큐멘터리 영화 '어느 록밴드의 평양 방문(Liberation Day)'의 감독 모르텐 트라비크 (사진=EBS 제공)

     

    2017년 교류 중단, 이후의 문화에 대한 통제적인 분위기 속에서도 2015년 트라비크 감독과 라이바흐가 만들어 낸 변화의 씨앗은 조금씩 자라나 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트라비크 감독은 2015년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이 증명됐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북유럽의 저명한 음악학교인 스웨덴 예테보리 음악대학과 북한 김원균명칭 음악종합대학(참고: 북한 내 최고 음악예술인 양성기관으로, 국내에서도 유명한 북한 가요 '휘파람', '반갑습니다' 등의 고(故) 리종오 작곡가 등이 이 대학을 졸업했다)과의 프로젝트를 북한 측과 논의하고 있다"라며 "다른 전 세계 음악가들도 북한과 협업하고 싶다고 말한다. 나는 이것이 2015년 라이바흐 북한 공연의 직접적인 영향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밝혔다.

    트라비크 감독은 북한과의 관계도 일상에서의 '인간관계'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호기심에, 사랑에 빠져 관계를 시작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그렇게 서로를 알게 되면서 새로운 모습을 계속 발견할 수 있는 보통의 인간관계 말이다. 그리고 트라비크 감독은 관계 속에서 발견한 상황을 예술적 기록으로 남겨가는 도전적인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그렇기에 가장 가까이 맞닿아 있으면서 동시에 가장 멀리 있는 북한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게 됐다.

    "나는 남북한 양쪽을 모두 바라볼 수 있는 특별한 위치에 있습니다. 나는 한국 문화를 두 가지 다른 버전을 통해 접했죠. 한국 사람들, 한반도 사람들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하나의 역사와 하나의 언어를 나누고 있어요. 하나의 나라가, 하나의 민족이 다른 방향으로 분리됐다는 콘셉트 자체가 흥미롭고, 상황 자체가 기묘하죠. 이런 상황은 아티스트로서 예술적으로 바라보고 도전할 수 있는 과제를 제공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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