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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15년전 질문 "이 시대에 성장과 분배는 선순환할 수 있는가?"



금융/증시

    노무현의 15년전 질문 "이 시대에 성장과 분배는 선순환할 수 있는가?"

    진보 경제학자 영산대 한성안 교수에 당시 김수현 비서관 통해 질문
    한 교수의 신문 칼럼을 읽고 김 비서관에 접촉 지시
    한 교수 "대통령 질문 명확해 놀라, 살아계시다면 이제 정리해 드릴 수 있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친필 메모(사진=노무현 사료관)

     

    참여정부가 새 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하면서 찬반 논란이 격렬했던 2004년 8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은 한 신문의 칼럼을 읽고 글쓴이를 찾았다.

    노 대통령이 본 칼럼은 한겨레신문 2004년 8월 4일자에 실린 '두 눈으로 보는 새행정수도 정책'이라는 제목으로 부산의 영산대학교에서 경제학을 지금도 가르치고 있는 한성안 교수가 쓴 글이다.

    새행정수도 건설에 찬성하면서 ▲자본주의 국가들이라도 나라마다 노동시장제도와 사회정책 등 소득분배 관련 제도가 다르다 ▲분배 관련 제도가 경제성장을 저해하거나 촉진할 가능성에 대해서는 한마디로 정리하기 어렵다 ▲ 그러나 분배제도의 도입은 소외된 다수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회적' 효과가 있다 ▲ 수도이전 문제도 '경제적 효과'는 물론 '사회적 효과'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을 담았다.

    노 대통령은 당시 김수현 청와대 차별시정 비서관(현 청와대 정책실장)에게 친필 지시를 내렸다.

    '성장, 분배와 관련된 좀더 정리된 자료와 논리가 있으면 정리하자. 한성안 교수에게 도움을 요청하라'는 내용의 친필 지시에 따라 김수현 비서관은 한성안 교수를 접촉했다.

    한 교수는 "그 해 여름에 청와대 부근(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한 두 차례 김 비서관을 직접 만났던 것으로 기억한다. 전화 통화도 여러번 했다"고 CBS와의 통화에서 말했다.

    김 비서관은 한 교수에게 대통령의 질문과 요청을 전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출범한 참여 정부가 진보 정권으로서 당시 고민하고 있었던 분배정책과 관련한 얘기들이었다.

    '성장과 분배는 실제 선순환할 수 있는가? 분배로 성장을 추동하는 정책이 과거 세계경제에선 성공한 사례가 있는데 지금은 힘을 잃고 있다. 왜 그런가? 잘 안되는 이유가 뭔가? 지식기반경제의 대두, 정보통신기술 주도의 산업발전 등 거대한 변화 앞에서 성장과 분배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한 교수가 이에 대한 이론과 실증적인 연구결과들을 정리해주면 좋겠다. 연구 프로젝트를 하나 만들면 어떨까?'

    김수현 청와대 정책실장(왼쪽)과 한성안 영산대 교수.

     

    한 교수는 "대통령의 질문은 명확했고, 정말 알고 싶어 했던 것 같다"면서 "대통령이 지방대 교수에게 연락해 이런 질문들을 전한데 대해 놀라고, 그를 다시 보게 됐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 당시엔 스스로도 이론적인 정리가 충분히 되지 못해 연구프로젝트를 실제 수행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15년이 지나 '공부가 쌓인' 지금 한 교수는 노 대통령이 "지금 살아계신다면 정리해 드릴 수 있을텐데 그걸 못해 못내 아쉽다"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였던 지난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이 글에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그렇게 명확하지 않다. 분배의 목적은 경제적 효과보다 이 땅의 차별받는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사회적 효과다. 그것만으로도 분배정책은 실행될 이유가 충분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것이 성장이라는 경제적 효과로 발전할 것인지는 그 나라의 제도적 조건에 달려 있고, 더 나아가 혁신적 역량에 달려 있다. 그런데 혁신역량마저 제도적 역량에 좌우된다. 포스트케인지언과 제도경제학의 섬세한 조율이 필요한데, 이게 바로 정치다."라고 썼다.

    한 교수는 김수현 당시 비서관으로부터 노 대통령의 친필 메모를 전달받아 간직하고 있다가 노무현 사료관에 기증했다.

    노무현 사료관은 대통령과 한 교수의 에피소드를 전하면서 2004년, 집권 2년차에 성장과 분배라는 개념에 대해 '어떻게 새로운 틀로 접근할 것인지'를 고민했던 노 대통령이 이후 이런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동반성장론', '비전 2030'으로 나아갔다는 김수현 비서관의 말을 인용하고 있다.(관련 글 : 노무현 사료관 홈페이지->사료이야기->"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관한 실사구시"[기증사료 이야기-9 한성안 교수])

    또 노 대통령이 당시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에 관한 실증적 자료를 많이 주문했고 실제 대통령 지시에 따라 '빈곤 및 소득분배와 개선효과 추이'(2007년), '사회지출과 경제성장의 관계'(2006), '물흐름 효과의 개념 및 사례 분석'(2006), 'OECD 국가의 사회지출과 경제성장'(2006) 등의 보고서가 나왔다고 전한다.

    "일련의 보고서들은 분석결과 △사회지출의 증가가 경제성장을 저해한다는 실증적 증거가 없고 △감세가 세수증대 및 성장을 촉진하는 증거 또한 발견되지 않았으며 △복지국가의 조세구조가 더 성장친화적·기업친화적이라는 점 등을 보여주고 있다"고 사료관측은 요약했다.

    KTV 인터뷰 "대통령, 참여정부를 말하다"(2007년 11월 11일 방영)

     

    노무현 사료관의 같은 글에 소개된 2007년 11월 11일 KTV특집 인터뷰에서 노 대통령이 한 얘기도 눈길을 끈다.

    "복지냐 성장이냐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아주 옛날 사람들입니다. 지금 어느 나라에서 복지냐 성장이냐 갖고 논쟁합니까? 이미 복지와 성장의 선순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은 정책으로도 증명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클린턴도, 영국의 토니 블레어도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습니다. 지금도 '분배냐 성장이냐'라고 얘기하면 오늘날 이 복잡한 문제를 절대로 풀 수가 없습니다."

    한성안 교수에게 자문을 구했던 2004년으로부터 3년이 흐른 뒤 노 대통령은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던 것으로 보인다.

    한 교수는 제도경제학을 오랫동안 다뤄온 경제학자로 진보적 경제학자의 모임인 한국사회경제학회 이사로 활동하며 '한성안 교수의 경제학 광장'이라는 블로그와 SNS를 통해 경제현안에 대해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제도경제학(Institutional Economics)은 제도가 경제행위에 미치는 영향에 촛점을 맞추는 경제학의 조류를 말하며, 제도를 주어진 것으로 보고 시장을 중시하는 보수적인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비해 진보적 경제학으로 분류된다. 유한계급론을 쓴 미국의 학자 소스타인 베블렌(Thorstein Bunde Veblen)의 이론들이 근간을 이룬다.

    한 교수는 부산대학교 경제학과를 나와 독일 브레멘 대학교에서 수학(경제학 박사)했으며 제도경제학 그리고 혁신에서 국가의 역할을 인정하는 '네오슘페터리안(Neo-Schumpeterian)'의 관점에서 연구활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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