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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알맹이 빠진 공수처, '셀프 특혜' 폐지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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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럼] 알맹이 빠진 공수처, '셀프 특혜' 폐지부터

    [구성수 칼럼]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사진=연합뉴스)

     

    "배가 뭍에 있을 때는 움직이지 못하고, 일단 바다에 들어가야 방향을 잡고 움직일 수 있다. 이번 합의 처리는 배를 바다에 넣기까지 절차다."

    23일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이해찬 대표의 발언이다.

    자유한국당을 제외한 여야 4당이 선거제 개편안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을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지정)에 올리기로 잠정 합의한 뒤 이를 추인하기 위한 의원총회에서다.

    여야 4당의 합의 특히 공수처 설치와 관련해 아쉬운 점이 있지만 일단 합의 자체가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발언이다.

    이 대표의 발언은 공수처 추진 역사를 돌아보면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공수처 도입이 처음 추진된 것은 2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98년 이회창 당시 한나라당 총재가 '고위공직자비리특별수사처'를 추진한 바 있다.

    그 이후에도 김대중 대통령이 '공직비리수사처'의 도입을 고려했고 노무현 대통령도 대선 공약으로 '공수처' 설치 공약을 내세운 바 있으나, 모두 무산됐다.

    공수처 도입의 필요성은 국민의 공감을 얻었지만 막상 추진하는 단계에서는 검찰과 야당의 반발로 한 걸음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지난 역사에 비춰볼 때 이번에 여야 4당이 공수처 설치법안을 패스트트랙에 올리기로 합의한 것은 '배를 바다에 넣는 것'과 같은 엄청난 진전임에 틀림없다.

    여야 4당의 합의가 깨지지만 않는다면 패스트트랙에 따라 최장 330일 뒤에는 공수처가 마침내 설치된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공수처 설치 등 사법개혁을 주창해왔던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아쉬움이 많지만 (여야 4당의) 합의안에 찬동한다"며 "2020년 초에는 공수처가 정식 출범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이나 조국 수석이 모두 아쉬움이 있다고 하는 부분은 합의안이 문재인 대통령이 당초 그렸던 '공수처 그림'과 차이가 난다는 점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공수처를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 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을 위해 필요한 기관'으로 보고 있다.

    "원래 사정기관이 검찰이 있고 경찰이 있지만, 기존의 제도적인 사정기관들이 대통령 친인척, 대통령 주변의 비리, 이런 것에 대해서 제 기능을 못 했기 때문에 설치의 필요성이 제기됐던 것"이라고 밝혔다.(지난 2월 15일 청와대 국가정보원·검찰·경찰 개혁 전략회의)

    그래서 문 대통령이 첫 번째로 꼽은 공수처 수사대상은 대통령과 대통령의 친인척 특수 관계자였고 그 다음이 청와대 권력자들, 국회의원, 판사, 검사 등이었다.

    하지만 이번 여야 4당이 합의한 안에서는 공수처가 기소권을 갖는 수사 대상은 판사와 검사, 고위직 경찰로 한정됐다.

    문 대통령이 그린 공수처 그림에서 중요한 알맹이가 송두리째 빠진 셈이다.

    이 점 때문에 '반쪽 짜리 공수처', '누더기 공수처'가 됐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민주당과 조국 수석은 공수처 설치의 지난한 역사를 의식한 때문인지 이번 합의에 만족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단 배를 띄워놓은 상태 속에서 아쉬운 부분을 하나씩 고쳐나가겠다는 심산이리라.

    하지만 그것이 말처럼 쉬울지는 의문이다.

    이번 합의만 해도 여야간 보통 어려움을 겪은 것이 아니다.

    그동안 한국당은 "공수처가 정부에 비판적인 정치인에 대한 탄압용으로 쓰일 수 있다"며 공수처 설치에 반대해 왔다.

    하지만 한국당을 배제한 가운데서도 여야 4당은 밀고 당기기 끝에 결국 국회의원을 공수처 기소대상에서 제외시켰다.

    어떻게 보면 한국당의 반대를 이유로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반영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회의원의 사익 추구와도 연관이 있는 이해충돌방지 부분을 삭제하고 통과시킨 김영란법에서처럼 이번에도 여야 4당이 '셀프 특혜'를 부여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이다.

    이런 비판을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이번 합의를 밀어붙인 여야 4당이 추후에 국회의원을 자진해서 기소대상에 넣겠다고 나서는 것은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처럼 기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민들은 20여년만에 추진되고 있는 공수처 도입이 문 대통령이 당초 그렸던 그림에서 벗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그 그림의 핵심은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최고 고위층 권력자들에 대한 특별사정기관'이다.

    선거제 개편도 중요하지만 공수처 도입이 선거제 개편과 묶여 핵심 알맹이가 빠진 채 졸속으로 추진하는 것은 오히려 안하는 것만도 못하다.

    특히 그 추진이 제1야당의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국회를 사실상 마비시키면서까지 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는 곰곰이 돌아볼 일이다.

    적어도 그 추진이 국민의 지지를 받으려면 최소한 '셀프 특혜'부터 폐지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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