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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청년 한꺼번에 학살'…한(恨) 많은 제주 표선백사장



제주

    '마을 청년 한꺼번에 학살'…한(恨) 많은 제주 표선백사장

    [4.3, 기억과 추억 사이 ⑤] 서귀포 표선해수욕장
    표선면·남원면 일대 주민 수백 명의 일상적인 학살 터
    '18세~40세 남자'는 무장대 아니어도 마구잡이로 총살
    하루아침에 '고아' 신세 유족…"학교 못다니고 힘들게 살았다"
    지금은 민속촌과 리조트가…학살의 기억은 사라지고 방치

    제주 4.3 당시 수많은 사람이 군경의 총칼 앞에 억울하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제주 땅 곳곳이 이들의 무덤으로 변했습니다. 현재 관광지로 변한 그 무덤엔 4.3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많은 이가 제주에서 즐거운 추억을 남기지만, 71년 전 아픔을 기억하는 이들은 얼마나 될까요? CBS노컷뉴스는 매주 한차례씩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4.3 학살터를 소개하며 4.3의 비극을 기억하겠습니다. 다섯 번째로 4.3 당시 수백 명의 주민이 희생된 표선 해수욕장을 찾았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오늘도 어머니 유해 위로 비행기 뜨고 내린다
    ② 피로 물들었던 모래사장 지금은 제주 관광명소로
    ③ 대량학살 자행된 제주 정방폭포…지금도 울음 쏟아내다
    ④ 4.3 학살 흔적 지워지는 제주 성산일출봉
    ⑤ '마을 청년 한꺼번에 학살'…한(恨) 많은 제주 표선백사장
    (계속)


    표선 해수욕장. 4.3 당시엔 사진 오른 편까지 넓은 백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서 주민 수백 명이 총살됐다. 현재는 그 자리에 제주민속촌과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제주 4.3 당시 수백 명의 민간인이 일상적으로 처형된 표선 백사장. 71년 전 주민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던 백사장엔 현재 민속마을과 대형 리조트가 들어서 있다.

    더 많은 관광객을 받아들이기 위해 도로 확장 공사 중인 부지 한가운데 위태롭게 서 있는 4.3 표석만이 그날의 비극을 전할 뿐이다.

    ◇ 수백 명 희생된 백사장은 사라지고 대규모 관광시설이…

    1일 오후 서귀포시 표선해수욕장 인근 제주민속촌. 4.3 당시엔 이곳은 '한모살'로 불리며 넓은 모래사장이 펼쳐져 있었다. 현재 민속촌 주변으로 대형 리조트와 식당가, 야영장이 들어서 있다.

    과거의 백사장은 사라지고 대규모 관광시설이 자리 잡고 있지만, 4.3 때만 해도 서귀포 표선면, 남원면 일대 주민이 일상적으로 총살됐던 악명 높은 학살 터다.

    토산리민 200여 명이 집단 총살당하는가 하면 세화1리 청년 16명이 "무장대 토벌 가자"는 군인 명령에 따라나섰다가 한꺼번에 희생되기도 했다.

    이처럼 대규모 집단총살뿐만 아니라 간간이 한두 명이 끌려 나와 총살되는 등 4.3 기간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총살이 집행됐다.

    4.3 당시 군 부대가 주둔했던 표선면사무소 자리엔 현재 제주은행 표선지점이 들어서 있다. (사진=고상현 기자)

     

    지금은 제주은행 표선지점이 들어선 과거 표선면사무소에 육군 2연대 1대대 2중대의 1개 소대가 주둔했기 때문에 주민들의 피해는 더 컸다.

    이날 만난 변여옥(82‧여)씨는 4.3 때 표선면사무소 인근에 거주해 당시 상황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군인들이 폭도가 아니어도 아주머니, 할머니 가리지 않고 백사장에서 총살했어요. '탕탕탕' 소리가 끊이지 않아 많이 무서웠죠."

    금모(78)씨도 "군인들이 주민들을 한 사람씩 총을 쏜 게 아니라 총알 아끼려고 일렬로 세워서 한꺼번에 총살했던 게 생각납니다. 끔찍했습니다"라고 기억했다.

    ◇ 군경의 마구잡이 총살로 '청년'이 사라진 토산리

    표선 백사장에서 많은 주민이 희생됐지만, 인근 토산리 청년들의 희생이 가장 컸다. 숨진 사람 수가 200여 명에 달한다. 200호 규모의 작은 마을인 토산리는 4.3을 겪고 난 이후 청년이 없는 마을이 됐다.

    김평우(79)씨가 4.3 당시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그 뒤로 제주민속촌 입구가 보인다. 과거 백사장이었던 민속촌에서 김 씨의 아버지가 총살됐다. (사진=고상현 기자)

     

    김평우(79)씨의 아버지 역시 25살의 나이에 표선 백사장에 끌려가 희생됐다. 알토산(토산2리) 주민이었던 김씨의 아버지는 단지 18세~40세의 남자라는 이유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군경에게 끌려가 총살됐다.

    김 씨는 "1948년 12월 15일에 군경이 회관으로 마을 사람들을 모았고, 18세~40세 남자만 따로 분리했어요. 아버지와 작은아버지가 그때 군경에게 끌려가 12월 18일과 19일에 표선 백사장에서 희생됐습니다."

    특히 며칠 뒤인 12월 21일 두 번째로 군경이 토산리 주민들을 소집했고, 이때는 할머니,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총살했다. "저도 그때 죽을 뻔했지만, 다행히 목숨을 건졌습니다. 하지만 눈앞에서 친할머니가 총살되는 것을 봐야 했어요…."

    군경이 토산리 주민을 집단 총살했던 이유도 터무니없다. 토산리 인근 가시리 주민 중 무장대 활동을 했던 사람이 잡혔는데 이 사람에게서 토산리 주민 명단이 있었던 것이 발단이 돼 학살이 이뤄졌다.

    "무장대 사람이 포섭을 위해 임의로 작성한 명단을 토대로 무고한 사람들을 무장대로 몰아서 죽였어요. 그때 젖먹이 애기도 총살한 걸 보면 얼마나 무지막지하게 학살이 이뤄졌는지 알 수 있어요."

    김 씨의 어머니는 당시 다행히 다른 지역에 있는 친정에 가 있어서 화를 피할 수 있었지만, 4.3으로 남편이 죽고 마을이 불에 타자 재혼했다. 4.3으로 졸지에 고아가 된 김 씨의 삶은 평탄치 못했다.

    "8살의 나이에 하루아침에 고아가 됐어요. 살기 위해 학교도 못 다니고 음식점 심부름 등을 하며 어렵게 살았습니다. 차라리 그때 저도 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죽었다면 고생스럽지 않았을 텐데…." 김 씨는 한이 맺힌 듯 더는 말을 잇지 못했다.

    ◇ 한 많은 표선 백사장…학살의 기억은 버려지고 방치

    제주민속촌. (사진=고상현 기자)

     

    수많은 사람의 한이 서린 표선 백사장은 더 이상 과거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백사장 일부만 남아 있다. 1987년 2월 제주민속촌이 지어진 이후로 대형 리조트, 식당들이 들어서면서 제주의 대표적인 관광지로 변했다.

    곳곳에 맛집과 관광지를 소개하는 안내판은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4.3의 비극을 알리는 표석은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인 공터에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이다. 이마저도 어지러운 공사 현장과 공사 안내판에 가려져 제대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심지어 대규모 학살이 자행된 제주민속촌 안내판에도 민속촌 소개 글만 있을 뿐 4.3 당시 수백 명이 학살됐다는 글귀 한 줄도 없다. 군부대 주둔지였던 제주은행 표선지점도 마찬가지다.

    김 씨는 "관광객이나 지역 사람들은 표선 해수욕장을 관광지라고만 생각한다"며 "유가족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과거의 비극을 기억해주고, 잠시라도 희생자들의 넋을 기려주길 바라지만, 현재 그러지 못해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4.3 71주년을 맞은 올해 후손들은 4.3의 전국화, 세계화를 외치며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도 추념식을 열고 있지만, 정작 학살의 기억은 버려지고 방치되고 있다.
    표선 백사장에 유일하게 세워진 4.3 유적지 표석. 현재 그 주위로 도로 확장 공사가 진행 중이다. (사진=고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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