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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판 생활의달인 국영 미용실 '쓰롄메이파' 이야기



패션/뷰티

    중국판 생활의달인 국영 미용실 '쓰롄메이파' 이야기

    베이징 왕푸징 거리에 위치한 쓰롄메이파 본점. 굵직한 선으로 간략하게 그린 여성의 얼굴과 흩날리는 머리칼 장식이 아름다움에 대한 쓰롄의 바람과 열정을 보여준다. (사진=왕윈충)

     

    상하이의 유명 이발소 4개가 1956년 함께 베이징(北京)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출발한 쓰롄메이파(四聯美髪)는 지난 60여 년간 베이징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해 오고 있다. 쓰롄메이파는 단순한 이발소를 뛰어넘어 중국인들의 미적 감각이 변해온 과정을 목격한 '산증인'이 됐다.

    베이징의 유명 상업지구인 왕푸징(王府井) 거리에 자리잡은 '중화라오쯔하오(中華老字號, 오랜 역사를 가진 중국 브랜드)' 쓰롄메이파메이룽(美容)유한책임회사. 독특한 외관과 문 입구에 있는 파랑색·흰색·붉은색의 삼색 회전등을 통해 이 곳이 머리를 깎고 다듬는 장소임을 말해주고 있다. 여성의 아름다운 얼굴과 흩날리는 머리칼을 그린 장식에 치궁(啟功) 선생이 써주었다는 '쓰롄메이파' 네 글자가 보인다.

    "2월 2일, 용은 고개를 들고, 어른과 아이들은 머리를 깎아야 한다." 중국에는 음력 2월 2일에 이발을 하면 일년간 행운이 깃든다는 말이 전해진다. 때문에 이 날이 되면 왕푸징 거리에 있는 쓰롄메이파는 아침 7시도 되기 전에 영업을 시작한다. 하지만 문 밖에는 벌써 긴 줄이 이어져 있다. 모두 이발을 하기 위해 새벽 5시 즈음부터 쓰롄메이파를 찾은 사람들이다.

    ◇'한결 같은' 정성과 서비스

    1970 년대 말의 베이징 . 여성들이 구식 전기파마기로 파마를 하고 있다. (사진=쓰롄메이파 제공)

     

    쓰롄메이파는 왕푸징·둥쓰(東四)·구러우(鼓樓)·베이신차오(北新橋) 등 베이징에만 4개의 직영점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네 개 층의 왕푸징 점이 본점이다. 오전 9시, 항상 시끌벅적한 왕푸징 거리가 본격적인 하루를 시작하기 전이지만, 쓰롄메이파에는 일찌감치 이곳을 찾아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들이 있다.

    쓰롄메이파 왕란(王然) 부사장은 "정식 오픈 시간은 9시이지만 9시가 되기 전에 오시는 손님들이 많다. 이발사들이 도착하고 일할 준비를 마치면 오픈 시간 전에 문을 연다. 설립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매장을 운영해 오고 있다."고 말했다.

    기술·서비스·제품 등 쓰롄의 우수한 전통은 모든 부분에 대한 '정성'에서 시작된다. 세심한 서비스는 남성 고객들을 위해 사용하는 수건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처음 매장에 들어와서 세수를 한 뒤 1장을 쓰고, 머리를 감은 뒤 2장, 면도를 할 때는 5장을 쓴다.

    즉 남성 고객이 이발을 하고 면도를 하는데 모두 8장의 수건을 사용한다. 한번 사용한 수건은 바로 수거함에 넣는다. 수거함에 모아진 수건은 다음날 수거 전문 인력이 전문 설비가 구비된 소독실에서 깨끗하게 빨고 소독·건조하며, 이러한 과정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재사용될 수 있다.

    인테리어 면에서 본다면 다른 미용실이나 이발소만큼 화려하지는 않다. 하지만 일본에서 수입해 온 미용의자, 수입산 샴푸·린스, 맞춤 제작한 미용도구를 사용하고 있다. 미용가위 전용 소독기와 독립된 샴푸용 세면대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정성'은 비용 부담을 키울 수밖에 없지만 고객들은 편안함을 느끼고 걱정을 덜 수 있다. 2003년 사스가 유행했던 때, 많은 이발소들이 문을 닫고 영업을 중단해야 했던 것과 달리 쓰롄은 위생적인 미용환경과 소독시설로 서민들의 이발 고민을 해결해 주기도 했다.

    서비스와 세부적인 면에서의 노력도 있지만, 쓰롄은 안정적인 기술로 더 큰 인정을 받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운영 기간 동안 쓰롄은 전통 이발 기술과 중국인의 얼굴형과 모발 특징을 고려한 기술을 종합했다. 이 덕분에 무성 드라이(無聲吹風), 민머리 깎기, 실면도(絞臉) 등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웨이브 스타일을 개발했다. 동시에 베이징시 둥청(東城) 무형문화유산전승항목으로 신청했다.

    다양한 서비스 항목 중 면도는 오래된 미용기술이다. 상당한 완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발사 실습생들은 가장 먼저 손목 쓰는 기술부터 익혀야 한다. 가위나 빗, 면도 칼을 사용하는 것 모두 완력을 필요로 한다.

    남성 이발의 경우 아주 작은 차이로도 전체적인 느낌이 완전히 달라진다. 58세의 이발사 겅진싱(耿進興)은 남성 미용 항목 중 '민머리'와 '둥글게 깎기(拱三茬)'의 '달인'이다. 그는 이들 기술의 무형문화유산 계승자이며 남성 이발 교육 및 지도를 책임지고 있다. 그가 가르치고 있는 제자들 대부분이 매장의 핵심 인력이다.

    미용기술을 배우던 학생이던 당시, 겅진싱은 젓가락과 벽돌을 가지고 손목의 힘과 평행감각을 기르는 연습을 했었다. 겅진싱 씨는 "첫째, 손목의 유연성이다. 둘째, 정확성을 위해서는 힘을 고르게 쓸 줄 알아야 한다. 이러한 내공이 없으면 고객의 머리를 만질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헤어' 60년 변천을 목격하다

    평일의 오전, 쓰롄 1층의 여성고객부가 분주해지기 시작했다.(사진=왕윈충)

     

    1956년, 상하이 서비스업의 베이징 지원을 위해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직접 나서면서 요식·의류·세탁·사진·미용 등 상하이 서비스 업계의 라오쯔하오 유명 상점들이 잇따라 베이징으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이 같은 배경 하에 당시 상하이 이발업계에서 큰 명성을 떨치던 화신(華新)·쯔뤄란(紫羅蘭)·윈상(雲裳)·상밍(湘銘) 네 개 이발소의 이발사 108명이 기차에 몸을 실었다. 온수기와 미국에서 수입해 온 이발용 회전의자, 갖가지 이발도구들을 챙겨 베이징에 도착한 그들은 왕푸징 둥안(東安)시장 북문의 진위후퉁(金魚胡同)에 '쓰롄'이발관을 열었다. '쓰롄'이란 4개 이발소가 연합했다는 뜻이다.

    당시 일반 이발소의 이발 가격이 4자오(角)였는데,'쓰롄이발'의 가격은 8자오로 무려 두 배나 비쌌다. 심지어 파마 가격은 2위안 2자오에 달했다. 그럼에도 수입산 가죽으로 만든 회전의자에서만 누릴 수 있는 편안함에 더해 샴푸·이발·면도·드라이까지 이어지는 완벽한 서비스가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쓰롄이발만의 서비스가 허리띠를 졸라매고 살았던 당시 사람들에게 전혀 새로운 느낌을 선사했던 것이다. 베이징으로 옮겨온 것은 선진 이발설비나 성숙한 기술, 쾌적한 서비스뿐만이 아니었다. 남방사람 특유의 섬세함·세련된 감각·우아함이 북방사람들의 소박함·정중함·호탕함과 맞물리면서 쓰롄은 수도 베이징의 각계 인사들로부터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당시 베이징 사람들의 헤어스타일은 다양성이 부족했다. 여성들의 파마는 굵은 웨이브, 작은 웨이브 정도뿐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쓰롄이 가져온 세련되고 새로운 스타일은 베이징 미용업계에 새 바람을 불러왔다. 1956년 8월 4일자 <베이징르바오(北京日報)>에 쓰롄의 헤어스타일 10가지가 실리면서 커다란 반향이 일었다.

    신문을 들고 찾아와 사진 속 스타일처럼 해달라고 주문하는 여성들이 줄을 지었고, '쓰롄'에서 머리를 하는 것 자체가 신분을 드러내는 일종의 상징이 되었다. 또한, 이 때부터 메이란팡(梅蘭芳)과 그 부인 푸즈팡(福芝芳), 메이바오주(梅葆玖), 마롄량(馬連良), 예성란(葉盛蘭) 등 경극(京剧) 예술가들과 왕샤오탕(王曉棠), 셰톈(謝添), 푸춘신(濮存昕) 등 1세대 유명 배우들, 그리고 왕쿤(王昆), 궈란잉(郭蘭英), 리구이(李谷一), 마위타오(馬玉濤) 등 인기 가수들 모두 쓰롄이발의 '단골 고객'이 되었다.

    1978년 9월 말, 확장 후 새롭게 단장한 '쓰롄이발관'은 왕푸징 진위후퉁 서쪽 입구에서 신장개업을 했다. 그때의 이발소 면적은 무려 720㎡, 두 개 층에서 영업을 했다. 눈썹정리, 메이크업, 가발제작 등 미용 서비스 항목이 추가됐다.

    당시 쓰롄에서 파마를 하기 위해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의 모습은 외국 기자에 의해 촬영되기도 했다. 심지어 가격표가 일본 언론에 실리는 일도 있었다. 1984년, 쓰롄은 일본의 미용설비를 도입한 뒤 명칭을 '쓰롄메이파팅(四聯美發廳)'으로 변경했다.

    지난 수 년간 중국인의 헤어스타일과 유행의 변천과정을 지켜봐 온 쓰롄. "1980-90년대에는 퀴프 스타일의 헤어와 나팔바지가 멋쟁이들의 패션이었다. 드라마 <인재려도(人在旅途)>의 여 주인공이 했던 어깨 길이의 굵은 웨이브도 당시 여성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스타일이다." 왕란에 따르면, 1990년대 말에 이르러 긴 기장의 물결펌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머리 색에 있어서도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흑발이 주류였던 90년대 말, 유행에 민감한 사람들은 짙은 갈색을 선호하다가 점차 와인 색으로 갈아탔고, 브릿지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2000년대에 들어선 이후 기술이 발달하고 사람들의 생각과 미적 감각 또한 변화하면서 맹목적으로 유행만을 쫓기 보다는 개성을 추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오늘날 여성들의 헤어스타일은 더욱 더 개성화되고 있다.

    ◇쓰롄은 하나의 '대가족'

    미용사 구이슈펑(歸秀鳳)은 쓰롄의 원로 미용사다. 은퇴한 지 8년이 되었지만 쓰롄과 고객들의 사랑으로 지금도 매주 4일 출근하며 고객들에게 아름다운 헤어스타일을 만들어준다. (사진=왕윈충)

     

    62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가운데, 그 당시 베이징 지원에 참여했던 남방의 이발사는 '베이징 사람'이 된지 오래다. "나는 항상 겅 이발사를 찾는다. 안심하고 머리를 맡길 수 있고, 이발을 하고 나면 시원하다." 회갑을 넘긴 린(林)씨는 2층의 VIP실에서 겅진싱의 서비스를 받고 있다.

    수 년 째 겅진싱을 찾고 있다는 그는 겅 이발사의 손이 빠르고 걱정을 덜 수 있다고 말한다. 쓰롄에서 41년째 일하고 있는 겅진싱은 단골 고객만 200-300명에 달한다. 어떤 고객은 가족 3대가 모두 그의 단골일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고객들이 많고 많은 미용실 중에서 쓰롄을 찾는 것에 대해 겅진싱은 쓰롄의 서비스 품질과 위생적인 환경, 뛰어난 이발 기술을 그 이유로 꼽는다.

    옆 VIP 실의 구이슈펑(歸秀鳳) 역시 쓰롄의 원로 미용사로, 여성 고객들을 담당하고 있다. 1980년 쓰롄에 들어와 일을 시작한 이후 베이징시 노동모범 등 많은 상을 수상했으며, 국가급 고급 헤어디자너이기도 하다.

    사실 처음 쓰롄메이파에 오게 됐을 때만해도 구이슈펑은 미용사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구이슈펑은"시간이 지나면서 이곳에 계신 선생님들 모두 멋있고 단정하게 보였다. 그분들이 하시는 헤어스타일도 모두 섬세하고 예뻤다. 그렇게 조금씩 일이 좋아졌다."며 "헤어스타일은 그 사람의 얼굴형과 분위기, 직업에 맞춰 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이와 사회 발전에 따라서도 변화해야 한다. 예를 들어 35살이 넘고 머리가 쳐진다면 뿌리 쪽 펌을 해서 풍성하고 입체감을 주는 게 좋다. 그러면 훨씬 생기있어 보인다."라고 말했다.

    구이슈펑은 미용사라는 직업이 경험도 중요하지만 끊임없이 공부하고 교류하면서 장점을 배우는 것 또한 중요하다고 말했다. "변화에 뒤쳐지지 않고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야 한다. 그러지 않는다면 도태될 것이다. 이 일이 좋다면 늘생각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흐름에 발 맞추다

    수도 베이징 서비스업의 '라오쯔하오'답게 과거 중국에서 유행했던 헤어스타일은 대부분 쓰롄에서 탄생했다. 60여 년이 지난 현재 곳곳에 미용실이 들어섰지만, 쓰롄메이파의 입지는 여전히 견고하다.

    머리 깎기나 면도 같은 전통적인 기술을 계승하고 있는 헤어샵일 뿐만 아니라 고객들이 편안함과 쾌적함을 느낄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쓰롄의 멈추지 않는 혁신이 가장 큰 이유다.

    "쓰롄은 수 십 년간 유행의 선두에 서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노력하고 있다." 과거에 할 수 있었던 일이라면 쓰롄은 미래에도 똑같이 해낼 수 있다고 왕란은 말한다. 쓰롄의 주요 고객이 중장년층인 것은 사실이지만, 쓰롄은 유행과 시대의 변화 속에서 새로운 시도를 멈추지 않고 있다.

    3층의 '신개념 작업실'은 10여 년의 노력 끝에 많은 젊은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곳의 기술총감인 왕잔성(王戰勝)이 출근하는 날이면 매장 앞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이와 함께 신개념 작업실은 젊은 디자이너 양성을 담당하며 계승의 책임을 다 하고 있다.

    손에 든 것은 드라이어기와 브러쉬 뿐. 바람의 세기와 온도를 조절하고 브러쉬의 각도와 방향을 조정해 가면서 두 개의 간단한 도구만으로 최신 유행 스타일의 물결 웨이브를 만들어낸다.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이 같은 기술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쓰롄을 제외하고 현재 베이징에서 이같은 기술을 구사할 수 있는 미용실은 손에 꼽을 정도다.

    쓰롄메이파는 중국 미용업계에서 유일한 라오쯔하오 기업이다. 국영이라는 우위는 업무의 안정성에서도 찾을 수 있지만 그보다 라오쯔하오가 주는 따뜻한 분위기가 더 큰 강점이다. 수 년간 쓰롄은 '일대일'의 도제식 교육 전통을 유지해오고 있다. 일반 미용실에서는 3-4개월의 실습기간만 거치면 바로 미용사로서 머리를 만질 수 있지만, 쓰롄에서는 최소한 2년 이상 '연마'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왕푸징 거리에 있는 쓰롄메이파는 수도 베이징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최고의 기술, 서비스로 고객들을 만족하게 하는 것이 쓰롄메이파와 왕푸징 거리의 명예를 지키는 것이다." 왕란의 얼굴에 자부심이 넘쳤다.

    ※본 기사는 중국 인민화보사에서 제공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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