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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좇는 '밭떼기' 상인에게 장악된 채소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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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로또 좇는 '밭떼기' 상인에게 장악된 채소 농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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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농작물 산지폐기의 악순환, 대수술이 필요하다>
    ⑥ 배추밭 70% 장악한 '밭떼기' 상인
    정부 책임 방기 속 유통상인들이 농촌경제 쥐락펴락
    일부 유통상인들, 계약금 지급은 물론 계약서조차 작성 안 해
    밭떼기 상인들이 품종 선정과 비료 주기 등 전 과정을 주도
    밭떼기 상인들도 하청, 재하청의 피라미드식 구조

    전남 해남에서 20년 가까이 배추 농사를 지어온 60대 A씨는 지난 2010년과 2018년 집중호우와 폭염 등으로 배추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큰 돈을 벌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다. 농사를 짓기 전 유통 상인과 이른바 밭떼기(포전거래) 계약을 맺은 A씨에게 하루가 다르게 치솟는 배춧값은 남의 나라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배춧값이 언제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불안에 떨어야 하는 상황에서 A씨와 같은 농민들은 밭떼기 상인과의 포전거래 계약는 포기하기 힘든 유혹이다.

    특히 정부가 농산물 유통에 대한 판로를 책임지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대형 유통 상인들이 정부의 자리를 대신 차지하게 됐다. 올해 배춧값이 폭락하면서 A씨는 유통 상인들에게 전체 금액의 20%밖에 받지 못하고 산지폐기를 결정했다. 뒤늦게 A씨는 지자체와 농협 등에서 실시하는 3~4차 산지폐기에 지원해 전체 재배 면적의 30% 남짓에 대해 평당 3000원대 보상금을 받았다.

    전남 무안에서 양파를 재배하는 50대 B씨의 상황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B씨는 해마다 반복되는 산지폐기에 대비하기 위해 씨앗을 파종하기도 전에 밭떼기, 즉 포전거래 계약을 맺고 있다. 문제는 산지폐기가 반복되는 상황에서 유통 상인들은 점차 계약금을 줄이는 것은 물론 제대로 된 계약서조차 쓰지 않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계약금을 더 주겠다는 유통 상인이 나타나더라도 다른 계약을 맺기는 쉽지 않다. 유통 상인들 사이의 네트워크가 촘촘한 상황에서 자칫하다간 유통 경로가 막힐 수 있기 때문이다.

    채소 농사를 짓는 농촌지역의 경제가 이처럼 왜곡된 배경에는 대규모 포전거래 계약을 맺는 유통상인 이른바 밭떼기 유통 상인들이 있다. 대부분의 농민들은 포전거래 유통상인과 계약을 맺은 뒤 밑거름을 뿌리고 씨앗을 심거나 물을 대주는 최소한의 역할만 맡게 된다. 유통상인이 품종 선정부터 비료주기, 비닐 작업 등 사실상 전 과정을 주도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통 상인들은 농산물 가격이 폭락했을 때 발생한 피해를 간간이 찾아오는 가격 폭등의 기회를 통해 만회하지만 농민에게는 소위 대박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는다.

    유통 상인들이 맺고 있는 이중 삼중의 피라미드 구조 역시 농촌경제를 좀먹게 한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대규모 유통 상인들은 수십억 원을 움직이며 큰 규모의 밭떼기 계약을 맺고 소규모 유통상인에게 다시 하청을 주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산지폐기와 같은 극단적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대규모 유통 상인들은 소규모 유통 상인이나 농민들만큼 큰 피해를 보지 않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로또처럼 이른바 '대박'을 노리는 대형 유통 상인들의 판단에 따라 채소농사를 짓는 농촌경제가 휘청일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였다는 의미다.

    이처럼 대형 유통 상인들은 농작물 생산량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판로와 가격을 좌지우지하면서 채소 유통시장을 왜곡하고 있다. 막대한 자금력을 앞세워 채소 가격을 쥐락펴락하는 이들 유통 상인들은 채소 시장을 왜곡하는 암적인 존재라고 볼 수 있다. 또 수십억을 굴리며 밭떼기로 산지 물량을 싹쓸이하는 이들은 가격이 폭락하면 손쉽게 산지폐기를 선택하면서 산지폐기가 일상처럼 되풀이되는 데 일정 부분 영향을 미친다. 해남 등에서 활동하는 D 유통업체 대표는 "씨앗을 심기 전 필요한 준비과정과 물을 대주는 등의 작업을 제외하고는 유통상인들이 채소 재배의 대부분에 관여하고 있다"며 "산지폐기 여부도 사실상 유통상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으면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통 상인들에게 농촌경제가 장악된 상황에서 포전거래 유통 상인들이 갑자기 농민들과 밭떼기 계약을 맺지 않는다고 나설 경우에도 큰 혼란이 초래될 수 있다. 농산물 유통 가격의 3분의 2 이상이 인건비와 운송비인 상황에서 농민들은 유통 인과의 관계를 단절하기 힘들다. 주성룡 대상 영농조합법인 대표는 "정부의 근시안적인 대응이 근본적인 이유겠지만 농촌경제를 망친 주범은 유통 상인이라고 생각한다"며 "낮은 이자로 유통자금을 대출받은 유통 상인이 사실상 채소 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전남 해남 한 농협 관계자는 "산지폐기가 발생했을 경우 유통상인들에게 가장 큰 피해가 돌아간다는 것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유통상인들이 계약금은커녕 계약서조차 작성하지 않고 농민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상황에서 더 큰 피해를 고스란히 감당할 유통상인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농작물 가격을 좌지우지하는 배후세력인 밭떼기(포전거래) 상인들은 지역에 따라 농작물 생산량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물량을 싹쓸이해 가격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이처럼 밭떼기 상인들이 주요 채소 농사를 장악하면서 가격이 폭락하면 손쉽게 산지폐기를 선택하는 원인으로 지적된다.

    광주CBS의 기획 보도 <농작물 산지폐기의 악순환, 대수술이 필요하다>

    여섯 번째 순서로 밭떼기 유통 상인들에게 장악당한 채 왜곡돼 가는 채소 농사의 현실에 대해 보도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풍년의 역설-'배추 주산지' 해남 산지폐기 현장을 가다
    ②땜질식 처방 '산지폐기' 전국 각지에서 일상화
    ③배추 농사 20년 지은 해남 농민의 한숨
    ④해마다 반복되는 농작물 가격 폭등과 폭락
    ⑤농민-농협-지자체·정부 '침묵의 카르텔'이 산지폐기 초래
    ⑥배추밭 70% 장악한 '밭떼기' 상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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