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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한 그물망 기각사유…영장 재청구 시도 사전 차단?



법조

    촘촘한 그물망 기각사유…영장 재청구 시도 사전 차단?

    유해용 '3500자 사유'보다 간결하지만, 검찰 입지 좁혀
    사법농단 책임 임종헌에…꼬리자르기 논란 거세질 듯
    사법 수뇌부 곳곳 개입한 정황에도 영장 기각 후폭풍
    임종헌 진술 확보 못한 검찰, 공모 관계 입증 부담
    검찰 "정해진 거 없어…원칙대로 갈 것"

    양승태 전 대법원장. 윤창원 기자/자료사진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핵심 피의자로 꼽히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향한 검찰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일각에서는 법원이 밝힌 구속기각 사유를 뜯어보면 검찰이 영장을 재청구하지 못하도록 촘촘히 그물망을 짠 수준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7일 각각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 대한 구속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이들 영장전담 부장판사들이 내놓은 기각 사유는 각각 210여자, 150여자로 법원이 지난 9월 이례적으로 3500여자가 넘는 설명을 내놓으면서 기각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사례와 비교하면 훨씬 짧고 간결하다.

    유 전 수석재판연구관 당시에는 법원이 법조항을 조목조목 들어가며 범죄 구성이 왜 안되는지 검찰을 상대로 마치 '교수' 역할을 자처했다.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받는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지난 6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이한형 기자/자료사진

     

    하지만 이번 경우에는 간결한 문장 안에 검찰의 향후 수사 입지를 좁혔다는 분석이다.

    우선 박 전 대법관의 경우 범행 관여 정도나 공모관계 성립에 의문이 있다고 판단했다. 앞서 구속된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과 공모관계를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검찰이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를 수집했다고 판단하면서도 정작 공모관계는 부정한 것이다.

    임 전 차장의 신병을 확보했음에도 박, 고 전 대법관들과 공모 여부를 입증할 핵심 진술을 받아내지 못한 검찰로서는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검찰 수사를 받는 박 전 대법관의 태도나 지금까지의 수사경과 등에 비춰볼 때 증거인멸 우려도 없다고 봤다.

    박 전 대법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원론적이고 정당한 지시'라거나 '후배 판사들이 알아서 했다'는 취지로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를 법원이 박 전 대법관의 정당한 방어권으로 본 셈이다.

    고 전 대법관은 △2016년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의혹 △평택·당진항 일대 공유수면 매립지 관할을 둘러싼 권한쟁의심판 사건 △전문분야연구회 중복가입 금지조치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 서명 등 혐의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법원은 '일부 범죄사실에 있어서 공모 여부에 대한 소명 정도가 부족하다'고 밝혔다.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시인했지만, 공범인지 여부에 다툼이 있기 때문에 구속할 수 없다는 모순된 판단으로 해석된다. 또 자택 압수수색을 포함해 광범위한 증거수집이 이뤄졌다는 점도 강조했다.

    결국 검찰이 공모관계를 다지기 위한 추가 압수수색 영장을 청구하더라도, 법원이 기각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 안팎에서는 이번 영장 기각 사유를 놓고 비난 여론이 거세질 전망이다.

    공모 관계에 의문을 던진 법원 설명에 비춰보면 앞서 구속된 임 전 차장에게 이번 사태의 책임이 있다는 뜻으로 읽힌다.

    하지만 검찰 수사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나 사법행정을 총괄한 법원행정처장으로서 박, 고 전 대법관이 다수 의혹에 관여한 정황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재판 논의를 위해 전범기업을 대리한 김앤장 소속 변호사를 만난 관련 정보를 전달한 사실이 확인됐다.

    물의 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 문건에는 양 전 대법원장 등 당시 사법행정 수뇌부의 자필 결재가 이뤄졌다.

    박 전 대법관은 2015년 각급 법원 공보관실 운영비 명목으로 따낸 예산 3억5천만원을 현금으로 돌려받는 과정에 연루됐다.

    당시 격려금 봉투에 본인의 이름이 적힌 것을 알게 된 박 전 대법관이 화를 내며 양 전 대법원장이 주는 돈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도 2014년 10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공관에서 만나 강제징용 소송에 관해 논의하거나 2015년 2월 이병기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국무총리직'을 제의받은 사실도 확인됐다.

    고 전 대법관 구속영장을 기각한 법원 판단에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고 전 대법관은 부산 스폰서 판사 비위 개입 의혹 등 크게 4가지 혐의에 대해서는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사실상 범죄 혐의가 소명됐다고 볼 여지가 큰 상황임에도 법원은 구속할 정도의 중한 사안이 아니라고 판단한 셈이다.

    검찰은 법원 결정이 나오자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며 "하급자인 임종헌 전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병대, 고영한 전 처장 모두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들의 전모를 규명하는 것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즉각 반발했다.

    하지만 영장 재청구 방침 등 향후 수사 계획에 대해서는 "정해진 것은 없다. 원칙대로 가겠다"며 말을 아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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